정부개혁의 방향 -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관리자
발행일 2009.11.21. 조회수 517
칼럼

 


정부개혁의 방향 -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채원호(경실련 정부개혁위원장)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도 어느덧 60해가 넘었다. 서구의 근대 국가들에 비하면 아주 짧은 역사이긴 하지만, 이 기간 동안 한국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 1948년 일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에 불과하던 것이 2007년에는 20,000달러를 넘어서면서 2만불 시대를 여는 듯 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8년에는 19,231달러로 후퇴하였다. 정치적으로는 1980년대 후반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한 국가의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을 정도로 민주주의가 만개하는 듯 했으나, 최근 다시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우려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논란은 있지만 우리는 선진국들이 수세기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지난 60년 동안 이룩해 냈다. 그야말로 압축된 근대화과정이 아닐 수 없다.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지속해 온 우리경제가 1995년 국민소득 1만불을 달성한 이후 2007년에야 2만불을 달성한 것은 대부분의 선진국이 1만불 달성 이후 5-10년내에 2만불도 도약한 사실을 상기할 때,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의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인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우리나라의 정부개혁 방향을 성찰해 보고자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부역할이 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형 모델은 한 때 후발산업화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일본형 모델은 정치적 안정 하에서 고도경제성장과 상대적으로 평등한 소득배분을 가능케 한 성공사례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버블경제의 형성과 붕괴를 거치면서 1990년대 이후에는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경제침체의 어두운 터널에 진입한 채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저성장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일본은 1990년대 후반 하시모토 정권에서 대대적인 사회경제구조의 개혁을 추진했다. 2001년에 성립한 고이즈미(小泉) 정권 하에서는 사회보장 축소,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최근에는 고이즈미의 개혁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데, 논쟁의 초점은 일본판 양극화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격차사회론’이다. 구조개혁의 결과가 일본의 국가경쟁력 강화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 20년간 계층간 격차, 지역간 격차만 급속히 확대시켰다는 것이다. 과거 일본은 지니계수가 주요국 중에서 낮은 수준이었으며 이를 상징하는 ‘1억 총중류사회’는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격차사회’의 진전은 격차가 세습된다는 ‘격차세습(隔差世襲)’에 대한 경고로 이어지고 있으며, 격차세습으로 인한 심각한 부의 편재 현상은 일본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새로운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계층 간 뿐만 아니라 도농 간 등 지역적으로도 심각해지고 있으며, 고령화의 급격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에 대한 복지혜택이 점차 시장원리를 중시하고 있어 세대 간 격차 또한 심각해지고 있다. 1990년대에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개혁(국가․시장 관계의 재편)이 일본 국민들의 삶에 새로운 문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만약 문제의 본질이 그러한 국가․ 시장 관계의 재편, 특히 국가의 과도한 후퇴, 혹은 부적절한 후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신자유주의적 개혁 패러다임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懷疑)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일본은 산업화시대 이래로 우리의 훌륭한 역할모델이었는데, 이제는 반면교사의 역할모델이 되고 있다. 후발주자로 일본의 추격자였던 한국이 일본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정부의 역할 모델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IMF를 거치며 소득 2만불의 덫에 걸려 기로에 서 있다. 한편으로는 중진국의 덫에서 벗어나 선진국에 진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당위가 되어버린 신자유주의 정부혁신 패러다임에 대해서는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민영화나 규제완화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정부혁신이나 사회보장 축소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곧바로 국가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신공공관리론(NPM) 도입이후 드러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행정개혁의 패러다임으로 '통합형 정부론'이 등장하고 있다. 신공공관리론의 기본방향은 정부기능 재편을 통한 정부 규모 감축, 정부권한의 위임과 관리의 전문화, 시장원리와 성과관리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 위임화, 성과관리의 도입은 부처별․부서별․개입별 목표와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내부의 수직적 능률성은 성취하였으나, 횡적인 조화와 협조는 미흡하여 여러 부처에 걸친 문제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정책 조정․통합의 실패 문제를 제기하였다. 전통적인 부처 영역을 뛰어넘는 다부처 관련 정책 간에 협력과 정책조정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됨에 따라 영국 등 선진국들은 정책 전반에서 통섭과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즉 통합형 정부론이란 신공공관리론(NPM) 도입 이후 드러난 정책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행정개혁의 패러다임으로 통합형 정부, 정책정합성 등 정책통합 강조하는 접근방법이다.



  다음으로 지난 정부의 행정개혁이 정치․행정 이원론에 해당하는 관리론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행정개혁의 방안은 다양한 측면에서 모색될 수 있다. 이를테면 조직의 환경 변화를 예측하여 조직과 집단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행태 변화를 유도하는 경로를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공무원의 행태 변화에 초점을 둔 전략을 선택한 후, 이를 통해 조직의 구조와 환경을 변화시키려는 노력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그 간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정부개혁 혹은 행정개혁은 어떠한 접근방식이었나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과거 새 정부가 등장할 때마다 이루어진 행정개혁의 접근방식은 대체로 조직의 구조를 변경하거나 새로운 관리기술의 도입이었다.


과거 동력자원부나 여성부의 신설은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지만, 상징적인 방법을 통해 정부의 구조를 재설계한 사례였으며, 이를 통해 정부개혁의 가시적 성과를 보여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신공공관리론적 행정개혁 패러다임은 '관리의 효율성이나 생산성 제고'를 지향하는 접근방법이었던 탓에 '국가 전략이나 정책 품질 제고'라는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현대의 경제, 외교정책과 같이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국가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경우에는 다양한 상황설정을 통한 시나리오 작성이 필요하며, 다양한 대응방안을 상황적응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국가전략의 중요성이나 정책품질의 중요성이 간과되기 쉬운 관리론적 정부혁신 패러다임에 대해서는 큰 틀의 수정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총선에서 집권한 일본의 민주당 정권이 창설한 '국가전략국'도 좋은 벤치마킹 대상이 될 것이다.


 


 


<약력>
전 경실련 부추본 정책위원
현 경실련 정부개혁위원장
   가톨릭대학교 정경학부 행정학 전공 교수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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