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공직자에게 인문학을 부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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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12.02. 조회수 15809
칼럼

[월간경실련 2022년 11,12월호-우리들이야기(2)]

공직자에게 인문학을 부과하자!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후 한 달이 지나고 있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여전히 스산하다. 국회에서의 국정조사에 관한 여야의 극한 대립에서부터 유가족들의 눈물의 기자회견과 각계각층의 성명서 발표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해결된 것이 없고 모든 일들에 분노만 쌓여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난 여론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번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공직자들이 없다는 점이 우리를 가장 화나게 한다. 행안부장관, 경찰청장, 경찰서장, 용산구청장 등 관련 기관장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바와 같이, 국민의 안전 유지와 복리 증진을 떠맡고 있는 공직자들에게는 누구보다 강한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공직자에 많은 그토록 많은 권한을 부여한 것은 반대로 그만큼의 막중한 책임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이란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制裁)’이다. ‘책임’(責任)이라는 말의 구성은 ‘꾸짖을 책’, ‘맡길 임’으로 되어 있다. 잘할 것으로 기대되어 일을 맡기지만 만일 잘못하면 꾸짖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인정받은 능력만큼의 노력을 다하되, 만일 그렇지 않으면 국민으로부터의 질책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리만을 누리고 질책은 면하려 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그 개념 자체로도 논리적인 모순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의 정신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고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의 공직자들이 보이는 태도는 왜 이럴까?

한 마디로 이는 공직의 기강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업무 수행에 있어 근본적으로 인문학적 사유가 결여되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인문’이란 인간의 근원적 문제와 인간의 문화와 사상을 말하므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행정 활동을 시행함에 있어 그 어떤 경우에도 망각해서는 안 될 대전제를 이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직자를 선발하기 위한 자격 요건에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자로 명시할 수 없을까? 혹자는 이 같은 생각을 너무 순진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코웃음 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결코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미 하나의 법률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에 제정된 「인문학 및 인문 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이 법은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를 진흥하고 사회적으로 확산함으로써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고 나아가 국민의 정서와 지혜를 풍요롭게 하며,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 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1조) 그리고 이 법은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이 인간의 존엄을 바탕으로 사회적·문화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고 경제·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도록 함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법이다.(2조)


그렇다면 이 법을 잘 활용하여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에게 인문학 교육을 받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법은 인문교육을 적용하는 대상의 지정에 있어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제13조와 시행령 제9조를 보면, 이 법의 당연한 적용대상인 초, 중, 고교와 대학, 평생교육기관 외에, 또 다른 대상으로 재외 교육기관, 청소년시설, 소년원, 도서관, 미술관, 지방문화원, 군, 교정시설, 민영교도소 등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소외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기관들이 눈에 많이 띈다. 왜 인문학 교육을 이처럼 소외계층에 국한시키고 있을까? 물론 이들에게 용기를 줌으로써 치유와 재활의 발판을 마련해 준다는 점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국가와 사회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공직자들과 정부기관들에 오히려 인문정신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이처럼 소외계층이나 저소득 계층에 인문학 교육을 국한시키려는 시각은,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창의적, 비판적 사고를 통해 궁극적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인문학을 그저 정신적 위안거리나 제공해주는 개인의 교양쯤으로 치부하는 인문학에 대한 몰이해를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사례라 하겠다. 그것도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물론 인문학을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환경을 극복하면서 보다 나은 삶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필요하고도 중요하다. 그러나 법 내에 기술된 기관들이 그러하다 보니 그러한 기능에만 국한시키는 사고는 정녕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인문학 교육이 필요한 대상에, 국민에게 행정 서비스를 제공함을 임무로 하는 공직자들을 포함해야 함을 나는 강력히 주장한다. 노동시장, 이주, 환경 파괴, 자연재해와 재난, 출산율 감소, 실업 증대, 빈곤의 지속, 불평등의 심화 등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항하여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일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바탕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려는 인문학에 대한 지식과 소양을 갖춘 사람에게만 주어져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제 인문학 진흥법을 개정하여, 혹은 공직자 관련법을 개정하여 인문학 교육을 공직자들에게 필수적으로 받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문학은 인간과 삶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 하는 학문이고, 인문정신은 인간과 삶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이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적 성장 이데올로기에 여전히 갇혀 있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물질의 생산과 그것을 위한 경쟁, 그리고 수익의 창출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이런 사회는 국민의 안전에 대한 가치를 무시하게 되고 이에 대한 심적, 물적 투자를 소홀히하게 되어 결국 국민의 삶은 피폐해지고 삶의 기반은 위태롭게 된다.


이제 우리 사회에 안전을 보장하고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인문학적 사유와 성찰을 도입하자. 그리하여 상처투성이가 되어 나락으로 떨어진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져 올리고 우리의 삶을 재건하자. 이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우리 사회의 안전과 행복을 위탁한 공직자들에게 인문학을 부과하자.


인문의 눈으로 국민을 바라보도록.
인문의 정신으로 세상을 생각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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