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인터뷰]'열심(熱心)' 으로 통하는 까칠한 서른살의 활동가

관리자
발행일 2012.03.26. 조회수 1093
스토리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필자에게는 상대를 금세 재단해버리는 몹쓸 습관이 있었다. ‘이 사람 말 좀 통하겠는데’, ‘이 사람 안 되겠구나’ 등의 양분화 작업이 불과 10분안에 진행됐다. 섣부른 판단이 가져온 몇몇의 좋지 않은 상황을 겪은 이후로 못된 버릇을 고치려고 노력 중이지만, 최승섭 간사와의 만남은 때로는 첫인상이 반이상 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줬다. 누가 봐도 성실하고, 본인만의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약간의 까칠함과 소탈함을 지닌 승섭 간사와의 대화, 지금부터 시작한다.
  
 지금은 평간사들 중에서 최고참이 되어버린 최승섭 간사에게도 경실련에 대한 첫인상이 있었으리라. ‘아파트 거품 빼기 운동’이 한창이던 2005년 대학신문사 활동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경실련은 부동산운동 단체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한다. 7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대한민국의 집값을 내리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는 부동산감시팀의 간사가 되었다. “주택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인식변화가 필요한데 이는 사회철학을 바꾸는 작업이라 쉽지 않다”며 “언론이 일조해 재테크의 수단으로 굳어진 주택에 대한 거품을 빼고, 질 높은 정보를 제공해 언론의 영향력을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경실련에서 일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업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관련기사를 꼼꼼히 체크하고 예전보다 더 공부하려는 태도가 생겼다는 것을 꼽았다. 의도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논문 및 보고서를 찾아 비판적으로 읽는 습관도 기르고 있다고.


 


 활동하면서 느낀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지난해 12월에는 경실련에서 가락시영 종상향과 관련하여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하자 조합에서 의도적으로 집단 항의전화를 해 이틀간 경실련의 모든 전화기 코드를 뽑아두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최 간사는 어려움을 느꼈기보다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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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의 아이콘 최승섭 간사는 주말에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도 겸하고 있다. 깊은 밤, 편의점 풍경은 피로와 외로움, 새벽 특유의 센티멘탈리즘이 섞여있을 듯하다. 지금은 아니지만, 유흥가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일할 때는 한 취객과 멱살잡이를 했을 정도로 참기 어려운 상황도 겪었다고. 이제는 어언간 7~8년차 알바생. 위기를 여유롭게 넘기는 유연함도 생겼다. 또한, 머리만 대면 바로 수면을 취하는 장점 아닌 장점(!)도 생겼다고 한다. 한번은 지각을 했는데, 전날 잠자리에 누워 시계 알람을 맞추는 사이 잠이 들어버렸다고 한다. 짙은 고단함이 묻어있는 웃을 수만은 없는 에피소드다. 


 


 그런 그에게 남들이 자거나 쉴 때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에 대해 물었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편의점의 수는 지난해 2만 개를 넘어섰으며,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암연구소(IRAC)는 생체리듬을 교란하는 야간노동을 자동차 유해가스나 유해물질인 다이옥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발암 요인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누가 ‘노동자 건강권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쉬세요’라고 말할 수 있겠냐”며 “대형마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주간노동만으로 충분한 부분은 야간근무를 줄여가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하고 야간에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노동만으로 살기 힘든 세상을 만들어 놓고 노동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본질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권리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그가 가진 존재감을 고려하면 경실련에 큰 손해(?!)일 수도 있겠지만, “경실련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뭘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마도 교육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어디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나라 대학운영시스템 문제를 고민하던 시절,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의 도움으로 대학예산 및 적립금 분석 작업을 진행하며 교육운동의 필요성을 통감하게 되었다는 그. 졸업 전에는 NGO의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NGO들을 탐방하는 기회를 얻었는데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을 취재하며 열정적인 대표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다고 한다. 한때 언론인을 꿈꾸기도 했지만, 자극적 소재의 선택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외면 등 언론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한 인터넷언론에서 일하면서 느끼게 되었고, 시민운동 쪽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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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에서


 


 올해로 서른이라는 청년기의 방점을 찍은 최승섭 간사. 그 인생의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은 오묘하게도 섞여있었다. 20대 내내 그의 최대 고민은 ‘어떻게 하면 신문을 더 잘 만들 수 있을까’이었다고 한다. 마침내 취재부장을 맡았던 3학년 시절, 과한 욕심 탓이었는지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영양실조로 쓰러졌다고 한다. 대학교 1학때부터 몸담았던 신문사에서 3학년이란 시기는 그동안 체득한 대학신문에 대한 본인의 가치관과 이상을 지면으로 담아내는 가장 중요한 시기. “2~3개월을 그냥 흘려 보내야만 했는데 동기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몸이 회복된 6월부터는 더 열심히 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때마침 대학신문에도 IT바람이 불어 인터넷신문을 통해 총학생회 개표 실황 등을 생중계하며 이례적으로 높은 관심을 모았다고 한다.


 


 최악의 순간을 기회로 삼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어내는 그를 ‘열심’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난 항상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으니까”라는 말을 조금의 가책도 없이 내뱉을 수 있는 그의 모습이 약간은 부럽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열심(熱心), 뜨거운 가슴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도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필로그
인터뷰를 마치고 도착한 문자. “인터뷰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진짜 할 말이 없어요. ㅋㅋ 죄송” 이 사람 보이는 것 외에 숨어있는 다른 면을 파헤쳐보겠노라 다짐했건만, 내가 졌다. 짧은 대화를 통해 파악한 최승섭 간사는 적어도 보이는 것에 충실한 사람이란 것(좋은 의미로!). 그런데 스웨덴 밴드 Kent는 어떻게 알았을까? 음악 찾아서 듣게 생기진 않았는데… 나중에 인터뷰 시즌2가 생기면 그때 다른 분이 파헤쳐보길 기대해본다.


 


글 | 안세영 회원홍보팀 수습간사


 


※릴레이인터뷰는 인터뷰를 받은 상근활동가가 상대를 지목해 인터뷰하는 릴레이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현재까지  권오인 부장 → 최희정 수습간사 → 김삼수 팀장 → 안세영 수습간사 → 최승섭 간사  의 순서로 인터뷰 기사가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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