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 ‘덫’에 빠질라

관리자
발행일 2008.10.03. 조회수 569
칼럼

강철규 경실련 공동대표·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부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도 주가폭락, 환율급등, 물가불안을 수반한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들어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97년 금융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이룬 금융감독의 강화와 기업재무구조의 건실화로 미국처럼 금융회사의 도산과 구조조정까지는 가지 않고 있는 점이다. 2000억달러 이상 축적한 외환보유액 덕분에 국가신용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다.
지금 미국은 산업자본주의를 넘어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와 있다. 자동차산업에서 보듯이 미국의 전통산업은 지속적으로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로 정보기술(IT)산업과 더불어 금융산업이 등장한 것이다. 제조업 전체 부가가치에 대한 금융산업의 부가가치 비중이 한국은 3분의 1 이하인데 반해 미국은 3분의 2 이상이나 된다.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특성은 첫째로 금융업무 영역의 과감한 철폐와 금융상품의 자유화 등 대폭적인 규제완화, 둘째로 대형의 금융투자회사들의 출현, 셋째로 기업직접금융의 보완업무를 넘어서 스스로 투자사업에도 진출한 것 등이다. 이러한 직접투자 사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위험이 증가했다.


대형화한 금융투자회사들이 온갖 종류의 금융상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에 판매하게 한 것은 대폭적인 규제완화이다. 그런데 규제완화에 비해 건전성 감독과 신뢰도 평가,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시스템은 아직도 정립되어 있지 않거나 부실한 상태이다. 미국 비우량주택담보대출에서 대규모 부실채권이 발생한 것이나 세계시장을 상대로 판매한 각종 파생상품의 파탄으로 금융사들이 도산한 것은 주택가격과 주가하락에도 원인이 있으나 견제장치 없이 지나치게 규제가 풀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제금융자본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물좋은 시장’이라고 할 수있다. 각종 금융상품을 쉽게 판매, 회수할 수 있고 시장규모도 적절히 크며 마진도 높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는 실물경제의 건전성 여부와 관계없이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더구나 대폭적인 규제완화, 공기업의 민영화, 비즈니스 프렌들리 등으로 표현되는 새 정부의 경제 정책은 미국 금융자본의 한국진출을 더욱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2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은 미국식 금융자본시장을 모방한 것이다. 이법은 증권과 운용, 선물 등 업무영역 철폐로 대규모 투자은행을 만들고 각종 투자상품의 자유화 등을 포함하고 있다. 긍정적인 면은 투자자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총괄적으로 제공한다는 점과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투자상품이 다양해진다는 점이다. 또 외국의 대형 투자은행과 경쟁하여 선진기법을 익히고 필요한 경우 대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지 그리고 대형 투자금융회사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어떻게 보증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이를 해결할 제도가 확립되지 않으면 미국과 같은 문제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금산분리 완화는 자통법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간의 경계를 허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완화의 정도가 심하면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지배로 산업과 금융 간에 견제와 균형의 기능이 마비된다. 만약 산업자본의 지배를 받는 금융이 고위험 고수익 투자사업을 추구하다 잘못되면 건실하던 산업자본마저 몰락할 수 있다. 따라서 금산분리는 현수준을 유지하거나 완화하더라도 완화폭을 대폭 줄여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경계를 유지해야 한다.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출총제 폐지안이 통과될 경우 재벌들의 순환출자가 자유롭게 되어 금융계열사 확장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순환출자의 문제점인 가공자산으로 만들어진 금융계열사들이 속출한다면 금융부실의 위험은 훨씬 증대할 것이다.


미국 금융위기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굵직한 규제완화 정책들에 대해 투자자 보호와 금융사 건전성 감독, 신뢰도 평가에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10년 전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과 금융이 보수적으로 대응해서 현재의 피해를 줄이고 있듯이 당면한 규제 개혁들도 좀 더 신중하게 그리고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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