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악용하는 시장 지상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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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11.07. 조회수 504
칼럼

양혁승 경실련 정책위원장·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지금 우리는 1929년 대공황 이래 70여 년 만에 정상적 규제 장치 없이 운영되어온 자유방임적 시장이 지각변동을 일으켰을 때 그로부터 발원된 쓰나미의 파괴력이 어떠한지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사태를 목도하고 있다. 이번의 위기는 시장에 대한 과신을 앞세우며 1980년대 이래 전세계적 유행이 되다시피 한 신자유주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등에 업고 시장에 대한 규제를 최대한 철폐해야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상태에서 맞이하는 사태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와 시사점은 매우 크다.


사실 시장 메커니즘은 인류가 고안한 것들 중 인류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대표적 시스템임에 틀림없다. 시장 메커니즘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데 대해 크게 이의를 달 사람은 우리 사회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방임된 시장은 심각한 폐해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사전에 예방하고 시장 메커니즘의 순기능을 높이기 위해 적절한 시장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도 이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우리 정부는 시장 지상주의자들의 옹호자 내지는 선도자임을 자임하며 시장이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정상적 규제까지 철폐하는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다.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과 시장 지배력을 강화시키게 될 총액출자제한제도 철폐,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산업 자본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은행까지 지배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금산 분리 완화, 자연 독점 상태에 있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같은 공기업의 민영화 등이 일부 예에 해당한다.


시장의 도덕적 해이 부추길 수 있는 조치들 양산


그뿐만이 아니다.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동산시장의 거품에 편승해 고분양가를 고집하다가 미분양 사태에 직면한 건설업체들을 살려내겠다고 국민의 세금을 쏟아부으면서 그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가 하면, 비정상적인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투기적 수요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큰 조치들 - 종합부동산세 완화, 그린벨트 완화,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과세 완화, 재건축 규제 완화 등 - 을 연쇄적으로 내놓고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논리는 현재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어 있으니 이러한 조치들로 인해 집값이 급격하게 오를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다. 이는 불씨가 없으니 장작을 쌓고 휘발유를 부어도 괜찮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이상의 정부 조치들은 국민 경제의 건강성 증진이나 시장 질서의 정상화, 서민 생활의 질 향상 등의 차원에서 보면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조치들이다. 이에 대해 논리적 일관성을 갖는 설명은 정부가 잇달아 내놓고 있는 조치들은 경제 위기를 기회로 삼아 시장 지배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재벌 기업들과 부동산 과다 보유자들, 그들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정치 세력들의 이익을 확실하게 지켜줄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 이 글은 시사저널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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