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하고 청렴한 사회를 위하여

관리자
발행일 2009.11.20. 조회수 464
칼럼

 


투명하고 청렴한 사회를 위하여


 



박인제(전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1987년은 우리 민주헌정사에서 큰 이정표를 세운 한 해였다. 그러나 이는 시작의 처음에 지나지 않았다. 민주화의 담론은 무성하였으나 내용을 채울 대안은 거칠고 빈약하였다. 이런 각성에서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시민운동, 경실련 운동이 1989년 닻을 올렸고 허무는 일에서 만드는 일에의 참여에 목말랐던 보통 시민들의 봇물 같은 동참이 이어졌다. 말석에서나마 그 대열에 합류한 것은 나로서도 행운이었다.


  경실련 출범 초기의 주요의제는 당시 광풍같이 몰아치던 토지투기 같은 부동산 문제였다. 사람들은 땅 투기, 집 투기에 열중하였고 기업 심지어는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업이 본래의 생산 활동 보다는 업무와 무관한 부동산 취득에 열을 올리자 정부는 기업으로 하여금 비업무용 토지를 처분토록 하는 한편 감사원이 그 실태조사에 나섰다. 그런데 1990년 5월 감사원의 어느 감사관이 감사원이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를 감사하던 중 외압에 의해 그 감사가 중단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하여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다음 전격 구속당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용기 있는 감사관이 이후 국민감사관으로 불리어진 이문옥 前감사관이다. 근래의 가장 인상적인 양심선언자 중의 한 사람이요, 서구에서 말하는 호루라기 부는 사람 즉 ‘휘슬블로어(Whistle Blower)’의 전형으로 최초의 내부고발자, 공익제보자라고 불려 마땅한 분이다.


  이문옥 前감사관의 용기 있는 양심선언은 경실련 운동이 지향하던 바로 그 핵심의제를 온 세상에 각인시킨 일이었다. 경실련에서 즉각 공동변호인단을 꾸려 변론에 나섰고 그런 의미 있는 사건의 주심변호사를 맡게 된 것은 나에게는 또 다른 행운(?)이었다. 6년여의 지루한 법정투쟁 끝에 석방, 무죄, 감사원 복직판결을 차례로 받아낸 것은 경실련 운동사에서도 기록될 만한 일이었다. 경실련 운동은 당연히 한국사회 전 분야에 걸친 부정, 부패, 부조리, 비리문제 등으로 확산 되었다.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가 설치되고 나도 그에 참여하였다. 이런 경실련의 아젠다들은 우리 사회에 대한 나의 문제의식의 일부로 확고히 자리하게 되었다.


  창립 경실련의 정책 사령탑이었고 현재는 경실련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강철규 교수께서 초대 부패방지위원장으로 취임하였고 나를 부패방지위원회 고문변호사로 위촉한 것도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해 온 때문일 것이다. 이 부패방지위원회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이문옥 前감사관 같은 ‘휘슬블로어’의 신분과 신변을 보장, 보호하는 일이 아니던가. 그 후 나는 부패방지위원회에서 이름을 바꾼 국가청렴위원회의 (비상임)위원으로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


이런 인연들 때문인지 2008년 3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가 통합되어 신설된 국민권익위원회의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역시 경실련의 중추였던 양건 교수께서 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경실련이 애써 그 신설을 이끌어 1994년 설립된 국민권익구제기관으로 경실련 창립 중추멤버였던 신대균 목사께서 위원으로 참여하여 그 설립기초를 다졌고, 신철영 前경실련 사무총장께서 그 사무처장, 위원장으로서 국민권익위원회로 통합되기 직전까지 이를 이끌었다. 국가청렴위원회는 위에서 보았듯이 강철규 경실련 공동대표가 역시 그 주춧돌을 놓았고 나 또?국민권익위원회로 통합되기 직전까지 참여하였던 곳이다.


  경실련의 중추들이 기초를 다지고 키워나간 위원회들이 통합된 기관에 양건 교수께서 전 위원장을, 내가 그 아래에서 실무를 총괄하는 직책을 맡게 된 것을 단순히 우연으로 돌릴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국가기관이므로 물론 경실련 같은 시민운동과는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마땅하나 그 정신만은 크게 다를 바가 있겠는가. 섬김과 공선후사의 마음과 자세로 국민의 고충을 보듬고 부정부패 없는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에 정부와 시민운동이 따로 일 리가 없다. 그러나 경제력 세계 10위 초반의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행복지수는 세계 100위 내외라는 조사결과도 있을 지경이고 청렴지수도 겨우 40위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우선 부정부패 문제에 대해서만 잠시 살펴보자. 경실련도 지향해 온 바와 같이 우리나라가 선진 일류국가 수준의 청렴한 나라가 되는 길은 무엇일까. 작은 부패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 권력형부패 근절을 위한 국민적 의지의 결집과 제도적 대안의 모색이다 (이는 작은 부조리는 미흡하나마 그 동안 많이 줄어든 반면 잊힐 만하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대형 권력형 부패, 비리 스캔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비리 공화국으로 얼룩지게 하고 그것이 작은 부패도 막으려는 소시민의 선한 의지마저도 꺾어 놓는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헌법상 권력구조에서부터 권력형부패 사건의 수사, 소추구조, 모든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장치에 이르기 까지 빠짐없이 구현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여전히 고비용·저효율의 수렁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정치구조의 개선,(예컨대 정당, 선거제도를 다시 한번 점검 하는 일이다.) 권력형 부패사범에 대한 처벌이 보다 철저히 이루어지도록 공소시효를 연장한 후에 구속, 양형기준을 보다 강화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과제이다.


부패연루 공직자의 피선거권 박탈기간도 연장되어야 하고 비위면직자의 취업제한기간도 더 길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부패사범에 대한 사면 또한 경과기간 설정(예를 들어 판결확정 후 5년경과) 등 신중하게 행사할 방도가 강구되어야 한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검증시스템이 보다 촘촘해져야 하고 전관예우 금지 등 퇴직 후 취업으로 인한 이익충돌 회피 방안도 보다 정교해져야 하며 일반 공직자의 행동강령(윤리강령)도 위와 같은 이해충돌 방지 차원에서 보다 정치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아니 그 보다 먼저 보다 적실한 대안으로 다듬어지기 위해서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등의 좋은 거버넌스 형성이 선결 조건이다. 경실련이 언제나 그 한 축을 굳건히 지키고 있어 마음 든든하다.


 


 



<약력>
전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국가청렴위원회 위원
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변호사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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