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있는 시민운동의 길을 생각한다

관리자
발행일 2009.11.17. 조회수 552
칼럼

 


시민있는 시민운동의 길을 생각한다



신대균(전 경실련 조직위원장)


 


 


경실련은 출범 이래 지난 20년 동안 많은 성과를 이룩했다. 경실련은 전문가들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정책비판과 대안제시를 통해 한국사회의 정책 변화에 크고 많은 영향을 끼친 단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경실련의 이러한 역할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경실련의 의미는 그와 같은 정책적 영향력 집단으로서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실련 출범의 시대적 배경이 된 노태우 정부의 출범은 한국 사회운동의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노태우 이전의 폭압적인 군사독재정권아래에서는 강경한 반체제적 투쟁이 불가피하였고 학생운동- 민중운동을 주축으로 하는 사회운동의 발전되어 갔다. 이는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적 상황아래에서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사회운동이 시민대중과 멀어지는 문제점이 확대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시민계층이 사회운동과 멀어지면 보수화가 진행되고 그것은 민주주의와 사회개혁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노태우 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우리나라 사회운동은 종래의 학생운동-민중운동 중심의 틀에만 국한되지 않고 시민계층을 사회개혁의 지지세력으로 만들기 위한 시민운동을 발전시킬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경실련은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시민운동이라는 새로운 운동지평을 창출하기 위해 출범한 운동이었고,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고 그러한 사회운동의 발전의 필요성을 입증하였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시민운동이 한국사회에 끼친 좋은 영향과 그 중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실련의 창립 직후 기존의 사회 운동권으로부터 경실련에 대해 개량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경실련 상임집행위원회에서 이런 비판을 제기한 사람들과 정식으로 토론을 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래서 그런 비판을 제기한 사회학자와 내가 운동론에 관한 대담을 한 적이 있다. 만약 경실련 운동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경실련은 개량주의적 성향을 가진 소수의 인사들의 실패한 시도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대학생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하여 감옥생활을 하였고, 석방된 이후에는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일체의 공민권을 박탈당하였고 해외여행도 불가능하였다. 군사독재정권이 존속하는 한 나의 개인적인 생활은 성립할 수 없었다. 이런 경위로 나는 사회변혁과 나의 삶이 동일시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88년 노태우 정권의 출범이후 나는 당시까지 민통련-민주쟁취국민운동 서울시 본부 사무처장으로 재야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나는 기존의 재야운동을 떠나 새로운 사회 운동을 개척할 필요성을 느끼고 새로운 시민운동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나의 학생 시절부터의 선배인 서경석 목사로부터 ‘부동산투기와 싸우는 시민운동’과 같은 운동을 전개해 보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나는 그러한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였다. 당시에 부동산가격의 폭등으로 세입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사회문제가 발생하였다.


 


일단 정권에 대한 국민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적 상황이 되면, 정권의 민주적 교체는 추상적인 과제가 되고 정책 문제가 피부에 와 닿는 문제가 된다.  부당한 정책으로 국민이 고통을 겪을 때, 그것을 개혁하지 못하면 한 사회의 민주화 능력도 개혁 능력도 부족함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정책개혁운동이 사회운동의 과제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부동산 문제가 국민을 괴롭히는 문제일 때는 그 정책과 싸우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부동산 문제가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나 그것은 경제적 부정의의 소산이므로 포괄적인 경제정의실현운동으로서 전개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경실련 초기 창립준비그룹의 의견이 되었다.


 


이 시기에 박세일 교수는 정부와 야당 어느 쪽을 그것만으로 한국의 민주화와 사회개혁이 완성될 수 없으므로 제3의 사회운동 즉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하고 있었다. 경실련 창립을 준비하던 시기에  서경석 목사, 박세일 교수와 함께 나의 집에서 이런 논의를 하기도 하였다. 이런 종류의 여러 차례의 회합을 통해 경실련 창립 그룹이 형성되었다.
경실련을 창립하고 나는 초대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나는 경실련이 한국 사회운동의 새로운 발전으로서 사회개혁을 지지하는 시민세력을 육성하는 시민운동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의 조직화가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조직위원회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고, 따라서 그 중요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시민회원들을 조직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 보았다. 초기에는 회원모임도 개최해보고, 회원 친목모임도 개최하여 보았다. 그러나 시민조직사업은 성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았고, 확실한 조직 방법이 쉽게 찾아지지도 않았다. 


 


경실련의 성과는 정책 활동과 여론형성 활동을 통해서 훨씬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경실련 운동에서 정책 활동과 조직 활동은 불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당초에 시민세력의 육성의 필요성이라는 관점에서 경실련에 참여한 나로서는 시민조직의 발전이 중대한 과제라고 생각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신속한 성과가 더딘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더 밀고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시민대중조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며, 시민운동은 정책적 영향력 중심의 운동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해 보았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조직위원장과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 사무처장을 거쳐 정부의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위원을 맡게 됨으로써 경실련의 상근직을 사임하게 되었고 경실련의 시민조직 운동에 대해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문제는 지난 20년 동안 경실련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2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이 문제를 두고 나는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이었을까 라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에 대해 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것은  비록 지극히 어렵다고 하더라도 지난 20년간 큰 비중을 두고 한결 같이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오는 것이 옳았고, 그렇게 해 왔다면 20년 동안에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다. 


 


조직운동은 성과가 더디고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조직운동을 생략하고 사회운동이 발전하는 길은 없다. 오늘날 한국의 시민운동이 가장 뼈아프게 듣는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은 조직 작업에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경실련 출범 당시 사회운동의 새로운 국면으로서 시민운동을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이라는 대의를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시민운동의 많은 문제점의 원인이기도 하고, 시민운동의 생존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시민의 조직화에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다면 꼭 같은 문제를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시민운동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나라 정치 사회적 상황을 보면 시민세력의 육성이 없이는 민주주의와 사회개혁도 해답이 없다는 것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고 나는 본다. 정치개혁이나 부정부패 추방 같은 우리 사회의 개혁을 위한 근원적 과제는 대중적 영향력이 없이는 성취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20년간의 경험을 통하여 확인하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볼 때, 다수의 시민대중이 사회개혁의 지지세력이 되도록 만드는 시민조직은 시민운동의 여전히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이를 위해서 경실련은 장기간에 걸친 노력과 투자로 시민조직사업을 전개할 마음의 다짐을 다시한번 새롭게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약력>
전 경실련 조직위원장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 사무처장
현 주식회사 바이오컨 대표이사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첨부파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