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적 권력구조의 개편

관리자
발행일 2009.11.20. 조회수 668
칼럼

 


지방분권적 권력구조의 개편


 



이기우(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


 



  1. 시대에 뒤진 권력구조 개편의 발상



 헌법 개정이 논의될 때마다 국가의 권력구조가 중심이 된다. 이번의 헌법개정논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의원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가 거론되고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말도 단골 메뉴처럼 등장한다. 대통령의 임기를 단임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4년 중임으로 할 것인가 등도 빠지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부분적인 헌법 개정을 주문하면서 이러한 권력구조개편에 한정시키자는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과연 21세기 권력구조로 논의하기에 적합한 발상인지에 대해서 깊은 회의를 느끼게 한다. 지난 30년간 개정된 다른 나라의 헌법 개정에서 이러한 권력구조개편이 중심적인 관심이 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의 권력구조논의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가의 권력구조를 논의함에 있어서는 수평적인 권력관계와 수직적인 권력관계를 동시에 고려하여야 한다. 수평적인 권력관계는 3권분립론과 같이 입법-행정-사법 등과 같은 국가기능간의 수평적인 권력관계에 대한 것이다. 수직적인 권력관계는 지방분권과 같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즉, 중앙정부-시/도-시/군/자치구 간의 권력배분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전체로서 효율적인 작동을 고려하여 국가권력구조를 논의하여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국가권력구조의 개편논의는 국가경영체제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집중적으로 거론해온 3권분립론에 중심을 둔 권력구조개편논의는 기본적으로 국가권력의 남용을 방지하는 것에 주된 관심을 두고 있는 발상이다. 이러한 수평적인 권력구조는 국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국가조직원리가 아니라 반대로 국가의 효율을 희생하더라도 국가의 적극적인 활동을 억제하자는 소극적인 구성 원리이다. 쉽게 말하면 국가의 기관끼리 서로 발목을 잡도록 함으로써 국가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도록 하는 상태로 묶어두자는 이론이다. 이러한 논의는 국가에게 최소의 역할만을 요구하는 야경국가 내지 고전적인 자유국가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발상이다. 오늘날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기 위해 내각책임제를 도입해야한다는 발상은 모두 이러한 낡은 시대의 발상에 불과하다. 더구나 '분권적 대통령제'라는 말은 수평적인 권력구조문제의 본질을 수직적인 권력구조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왜곡된 개념이다. 어느 제도를 취하건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국가경영체제의 측면에서 보면 큰 차이는 없다.


 


 


  2. 국가의 효율성원리로서 수직적 권력분립론



 반면 수직적인 권력구조의 측면에서 권력분립의 원리는 중앙집권적인 권력의 편재와 남용을 극복하기 위해서 국가와 지방정부사이에 권력을 분점 하도록 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면서도 역할분담과 경쟁구조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국가의 목적을 실현하는데 이바지 하게 된다. 과거에 지방분권은 비효율의 대명사처럼 취급되었다. 심지어는 지방분권을 주장하는 논자들도 국가의 효율성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 지방분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곤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지역 간 경쟁이 심화되고 국경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는 오히려 지방분권적인 권력체제가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분석이 지지를 받고 있다.


 예컨대, 미국이 계속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과거에 비효율적인 국가권력구조로 파악했던 고도의 지방분권적인 연방제도가 오히려 효율적인 국가운영에 기여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물론 전시와 같은 긴급 상황에서는 중앙집권적인 동원체제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평시의 국가권력구조로는 지방분권적인 권력구조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분석이 오늘날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지역의 다양성을 보장함으로써 혁신적인 정책이 등장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어 개혁이 아래로부터 위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권력구조이다. 어쩌면 지방분권적인 권력구조는 혁신의 자동적인 확대재생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권력체제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정책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고도의 위험사회에서 중앙집권적인 권력구조는 위험의 전국화를 초래할 수 있다.


즉, 한 정책이 잘못되면 국가전체가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지방분권적인 권력구조는 정책이 잘못되어도 위험을 한 지역에만 국한시키는 위험분산의 기능을 한다. 위험이 한 지역에만 국한되기 때문에 지역단위로 다양한 정책이 실현될 수 있고 이는 국가의 혁신을 용이하게 하는 전제조건이 된다. 무엇보다도 지방분권적인 체제아래서 지역이 주민과 기업유치를 위한 경쟁의 주체가 됨으로써 지역 간 경쟁을 통하여 효율성과 자기책임을 강화하는 동기를 제공해 준다.


 


  3. 지역주의의 선순환을 위한 권력구조



 한국에서 망국병으로 치부되는 지역주의문제도 기실은 국가권력구조 내지 국가경영체제의 잘못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낡은 행정구역이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효율적인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벽”이라고 언급한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국정경영철학의 빈곤을 드러내고 있다. 지방행정구역만 개편하면 모든 지역발전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다. 지역주의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지역주의 내지 지역감정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에 있는 곳이 많지만 우리처럼 “망국적”인 폐단으로 보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선진국에서는 지역주의를 강조하고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지역과 국가발전의 활력을 찾으려고 한다. 유럽공동체는 지역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지역에 지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력과 자원을 배분하고 지역문제를 지역에서 자기 책임하에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므로 지역문제가 중앙정치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고 있다. 지방분권적체제아래에서는 지역 간 경쟁을 통하여 지역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향상시키며 이를 위해 지역감정은 경쟁을 촉진하는 활력이 된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주의는 일반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우리나라의 부정적인 지역주의의 근간은 중앙정부가 대부분의 자원과 권력을 독점하고 이를 지역에 배분함에 있어서 편파적이었기 때문이다. 설사 똑같이 배분하였다고 하더라도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처럼 편파적으로 비추어 지는 것이다. 지역문제를 지역에서 해결하지 못하도록 하는 중앙집권체제로 인하여 지방의 중앙의존성은 날로 심화되고 있으며 지방의 독자적인 노력은 약화되어왔다. 서로 많이 빼앗아가려는 “분배투쟁”에 집중되고 있다. 이에 중앙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어느 지역에 어떤 “선물”을 던져주겠다는 지역포퓰리즘적인 공약을 남발하고 선거 때마다 악순환되고 있다. 우리의 부정적인 지역주의문제의 본질이 국가경영체제의 잘못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정구역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은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권한과 재원을 지방으로 이전하여 지역문제를 그 지역에서 해결하도록 지방분권을 강화하는데 있다. 지방에서 각자가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지역주의문제가 해결이 된다.



 이제 국가권력논의 개편에 있어서 19세기적인 낡은 틀을 깨고 국가의 효율과 민주성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도록 수직적인 측면에서 국가와 지방간의 권력관계에 논의의 초점을 두도록 발상을 전환하여야 한다.


 


 


<약력>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교수
 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첨부파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