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가 주목하는 이슈] 탕수육 찍먹 논쟁과 시민사회

관리자
발행일 2022.09.30. 조회수 6986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2년 9,10월호-우리들이야기(3)활동가가 주목하는 이슈]

탕수육 찍먹 논쟁과 시민사회


- 극단의 위험성 -


임정택 수습간사



탕수육 찍먹?

탕수육 ‘부먹’과 ‘찍먹’.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모르시는 분들 위해 간단히 말씀드리면, 튀김에 양념 버무리면 부먹, 소스에 고기 찍어 먹으면 찍먹이죠.


고작 이게 주목하는 이슈?

재벌 개혁, 부동산 문제, 정치 혁신, 노동 인권, 시민 안전, 소비자 보호, 기후 환경, 국제 정세와 인류 평화 등. ‘수많은 사회 이슈 놔두고, 고작 탕수육 찍먹이라니...’ 원고 구상하며 오랜 시간 고민했는데,


하나, 사회 이슈에 맞고 틀림이 없고
둘, 탕수육 찍먹 이면에 숨은 무언가를 보았기에
셋, 그 무언가가 시민사회와도 닮아 있어서

집필 결정했습니다. 부먹이든 찍먹이든, 탕수육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자 수습간사로서, 부족한 글 올려 봅니다.


부먹vs찍먹, 논쟁의 서막

부어 먹든 찍어 먹든, 음식 기호에는 정답이 없죠. 이에 따른 논쟁도, 대중의 관심도 크지 않았습니다. 한데, 음식 배달 대중화와 맞물려 탕수육은 일대 변화를 겪습니다.


양념을 붓거나, 함께 볶아먹던 탕수육 본래 형태에서 벗어나, 따로 담은 소스에 튀김을 찍어 먹는 방식이 유행했고, 이 흐름 속에 탕수육을 접한 이 중 일부는 ‘바삭함’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며, ‘찍먹 우월론’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먹론자들은 탕수육 ‘원류의 의미’를 강조하는 동시에, 소스 그릇 하나에 여럿이 고깃조각 찍는 데에서 오는 위생 문제를 지적하며 맞섰습니다.


충격

부먹vs찍먹 논쟁. 사실 흔한 인터넷 놀잇감 중 하나일 뿐이었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구요. 하지만 저에게 큰 충 격을 준 일이 일어납니다.


인기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 희극인 장도연 씨가 탕수육 양념을 튀김에 붓는 순간, 상대역 양세찬 씨에게 머리를 세차게 가격당하는 장면에서 한번, 그 모습에 손뼉 치며 웃는 관객, ‘속 시원하다’는 인터넷 반응에 두번 놀랐습니다.


다른 입장과 가치관에 가해지는 폭력이, 웃음거리로 소비되는 현장. ‘다름’이 ‘틀림’으로 비하되는 순간을 본 것이죠.


퇴보

“개그 가지고 너무 진지한 것 아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먹을 향한 폭력성이 희화화되고, ‘찍먹=정 답’ 수식이 일반화되면서, 대중 중화요리는 퇴보의 길을 걷습니다.


중식의 핵심은 ‘튀김’과 ‘볶음’. 좋은 고기를 적절한 반죽으로 튀겨, 양념과 볶거나 버무리는 탕수육은, 대중 중화요리의 정수입니다. 고기, 튀김, 양념 삼박자가 어우러진 한 접시의 향연. 이제는 ‘바삭 제일주의’에 밀려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핵심이 흐릿해진 지금, 탕수육뿐 아니라 간짜장도 내리막이죠. 주문 즉시 춘장을 볶지 않고, 미리 만들어둔 짜장에 양파 한 줌 넣어 데워줍니다. 가짜 간짜장이죠. 볶음밥도 마찬가지. 알알이 파기름 입혀 계란, 채소와 고슬고슬 볶은 밥. 그 자리는 ‘식용유 찐밥’에 빼앗겼습니다.


원재료 가격과 임대료 및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원가절감 노력으로만 보기에는, 요리 질적 저하가 심각합니다.


결국 피해는 중식 애호가 몫이죠. 혹시나 시켜보면, 역시나 후회하니까. 제대로 하는 집이 점점 사라져, 선택지가 줄어드니까. 그럼에도 중식이 그리워, 언젠가 다시 찾지만 또 후회하는 반복이니까.


오늘 우리 시민사회는

기호의 다름과 다양성, 본연의 가치에 대한 존중 실종이 중식 조리 후퇴로 이어지는 과정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멸시, 극단적 배타성이 우리 시민사회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도, 지난 9월 6일 똑똑히 보았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이하 대통령령) 폐지 추진 이야기입 니다.


정부 지원 차단으로 시민단체 억압이 숨은 목적. 국무총리실 소속 시민사회 활성화 기구 ‘시민사회위원회’와 대통령령 폐지가 수단. 명분은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운영 및 예산 효율성 제고입니다. 국무총리비서실은 앞선 9월 1일 각 정부 부처와 지자체에, 규정 폐지령안 의견 조회 공문을 비공개로 보냈습니다. 당초 검토기한 고작 8일, 논란이 일자 16일로 바꿨습니다. 회신 없으면 폐지 동의 간주 조건이었습니다.


시민‘단체’와 소통 없이 이뤄진 일방적 처사보다 더 우려되는 건, 시민‘사회’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정부가 지 나치게 편향된 자세로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생각, 다양한 가치관, 여러 사연과 사정의 사람들, 민주주의 근간인 시민 그리고 사회. 옳고 그름, 선과 악, 정답이 없는 시민 참여 생태계를, 정부가 앞장서 적폐로 몰고 있습니다.


피땀으로 쟁취해, 이제야 선진으로 향하는 계단을 놓기 시작한 한국 시민사회가, 온갖 왜곡의 수사로 매도된 채 여론 도마에 올라, ‘틀림’으로 돌팔매 맞고 있습니다. 존중과 소통,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극단의 광기. 그 벼랑 끝엔 권력가도, 위정자도 아닌 평범한 우리 시민들이 내몰릴 게 자명하기에, 푸른 가을 하늘에도 그리 기쁘지 않습니다.


탕수육에 소주 한 잔으로 마음 달랠까 하다가도, 근처 마땅한 집 찾기 쉽지 않아, 서글플 뿐입니다.



첨부파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