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내 ESG,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 서진석 비랩코리아 이사

회원미디어팀
발행일 2024.02.05. 조회수 50634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4년 1,2월호][인터뷰]

“국내 ESG,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 서진석 비랩코리아 이사 -

장한 회원미디어팀 인턴

 최근 들어 ESG라는 단어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ESG란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로, 이해관계자가 기업의 비재무적인 요소(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평가하기 위한 도구로 등장하였습니다. 이는 기업 관점에서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 요소를 의미하는 단어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에서는 2025년부터 실행하기로 했던 ESG 공시 의무화를 2026년 이후로 1년 이상 연기하기로 발표하는 이슈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경실련은 ESG에 대한 이해를 돕고, 앞으로 국내 ESG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관해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ESG 전문가를 찾았습니다.

Q. 월간경실련 구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비랩코리아 이사 서진석입니다. 저는 1993년 경실련에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시민의 신문’ 창업 과정을 함께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경실련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경실련에서 발간하는 ‘월간경실련’에서 제 얘기를 전달하는 거라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Q. ESG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ESG가 무엇이고 기존의 CSR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A. 우리나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게 되면 과거의 용어를 짓밟고 새로운 용어의 경쟁력을 세우려고 하는데요. 근본적으로 ESG와 CSR의 뿌리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CSR도 기업의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을 확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투자자들의 참여도 필요하니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구했고 투자자들이 동참하면서 ESG 용어가 좀 더 활발하게 쓰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ESG도 기업이 사회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뿌리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투자자들의 용어로 ESG가 많이 얘기되면서 조금은 다른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과 사회가 있다고 하면, ESG는 사회와 환경으로부터 기업이 받는 영향, 리스크와 기회 요인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반면 CSR은 그 영향 외에 기업이 사회나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다른 방향에 관한 질문도 계속해 오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투자 섹터의 경우 기업이 받는 리스크에 대해서는 관심이 높지만, 기업이 끼치는 리스크에 대해서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어 아쉽습니다.

Q. 기업이 ESG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저는 이해관계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든다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의 장기적인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서 ESG 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것이고, 시민단체 관점에서는 사회 환경 문제에 대해 기업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의 사회적 규범은 투자자 중심으로 ESG가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 규범에서 사회 환경 문제가 중시되고 있고 ESG 규제가 몰려오는 상황이고, 또 소비자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기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에 대비하지 않으면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가 훼손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사회 환경 문제가 심각하고 또 기업이 그것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기업 역시 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꼭 덧붙이고 싶습니다.

Q. 2021년에 집필하신 <행동주의 기업>을 관심 깊게 읽었습니다. 행동주의 기업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 예시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A. 제약회사들이 ‘우리는 인류의 건강에 기여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기업들은 거창한 미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기업의 경우 그 미션을 실질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노력은 미진한 편인데, 반면 행동주의 기업은 자신이 내걸고 있는 미션을 실질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속가능성을 위해 더욱 크게 노력해야 하는 기업들은 자신이 지속 가능하다고 천명합니다. 그 미션을 달성할 의지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동주의 기업들은 미션을 달성하려고 하기에 우리가 항상 부족하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행동주의 기업의 전반적인 특징 중 하나는 ‘비즈니스를 도구로 사용한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원재료 단계까지의 업스트림과 폐기 단계까지의 다운스트림 등 전반적인 가치 사슬에서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비즈니스 역량을 활용합니다. 그 과정에서 공급자, 고객 등 여러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이끌어 냅니다. 
 때로는 미션 추구 과정에서 사회적 저항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양성 가치를 추구한다고 하면 반발하는 보수 세력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반발까지 극복해 내면서 미션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을 행동주의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국내 기업 중에 ‘행동주의 기업’이라고 칭할 만한 기업이 있을까요?
A. 없습니다. 대표적인 행동주의 기업으로 파타고니아, 벤앤제리스, 닥터브로너스, 러쉬, 더바디샵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들의 국내 지사에서 가능성을 일부 보이고 있습니다만, 온도 차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파타고니아 코리아 같은 경우, 상당히 행동주의 기업적인 면모를 띠고 있습니다. 이처럼 앞서 나가는 글로벌 기업의 국내 지사나 법인에서 이러한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일부 소셜 벤처들에서 변화의 모습이 보이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국내에서 행동주의 기업의 모습은 미진하다고 생각합니다.

Q. 국내 ESG의 한계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A.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비즈니스 운영 과정에서 사회, 환경에 어떤 리스크와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다지 고민해 오지 않았습니다. 즉 법적인 기준이나 사회적 규범을 지키기 위한 노력 중심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하면 대부분 비즈니스 가치 사슬과 벗어난 사회공헌 등을 통해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ESG는 기본적으로 사회공헌을 넘어 비즈니스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공헌 근육이 아니라 비즈니스 근육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우 비즈니스 근육을 제대로 써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비즈니스 전반적인 부분들을 어떻게 살펴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첫 번째로 가장 큰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비즈니스의 가치 사슬 전반을 봐야만 합니다. 원재료의 채취와 가공, 부품 조달, 상품 조달까지 전반적인 업스트림 과정과 그것들을 판매하고 유통하고 소비돼서 폐기되는 다운스트림 과정 전반적인 것들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공급망이라고 한다면 1차 협력사까지만 보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우리나라는 공급망 문제라고 한다면 공급망에 대한 갑질, 공정거래 이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에 머물 러 있습니다. 좀 더 확장해도 사회공헌 차원에서 동반 성장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들은 대부분 1차 협력사를 넘어서서 2차, 3차, 그리고 원재료 단계까지 공급망에 대한 인권, 환경 관리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소비 단계에서 환경 영향이 얼마나 큰지, 어떻게 줄일 것인지, 폐기 단계에서 어떻게 순환 경제를 만들어 내야 할 것인지, 원재료 채취 과정에서 인권을 보호하고 환경 파괴를 어떻게 안 할 것인지, 이러한 측면으로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 ESG는 직접적인 계약 관계 범위를 크게 넘어서고 있지 않은데 이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로, 영향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ESG 열풍이 불면 ESG 개념이 무엇인지 알아본 다음에 곧바로 ESG 대표 사례를 찾고자 합니다. 즉 환경 영향 평가나 인권 영향 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활동하고 있던 사례들을 ESG로 포장해서 보도자료 내기 바쁘니까 ESG 워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업들과 글로벌 기업 간에 차이가 나는 부분이 바로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는지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중요한 것은 추적성과 투명성입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글로벌 ESG 평가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받지만, 이것은 외부 컨설팅 기관을 고용해서 정답을 써내는 법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부족한 점을 추적하고 투명하게 공시하는 것이 글로벌 기업과 차이 나는 대표적인 부분 중 하나입니다.

Q. ESG 공시 의무화가 2026년으로 연기되었습니다. ESG 공시 의무화를 위해 어떠한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글로벌 지속가능성 3대 ESG 공시의 경우 2025년도부터 차례로 공시 일정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준비는 그동안 미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최대한 기간을 늦추고, 규정을 완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26년에 할 지라도 글로벌 규범과는 달리 기준을 완화하여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ESG 공시를 해야 한다’라는 입장이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ESG를 규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최대한 늦추고 싶은 게 일반적인 기업의 관점일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환경적 위기나 사회 불평등 이슈를 보게 된다면 지금도 이미 상당히 늦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글로벌 공시와 차이가 생기는 이슈로는 Scope3(기업이 보유하거나 통제하지 않는 공급망과 제품 소비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LCA(원재료 추출에서 수명 종료에 이르는 제품/서비스의 전체 수명 주기 동안 발생시키는 환경 영향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것), 환경 영향 평가 및 인권 영향 평가, 공급망 실사 등 많습니다.

 이런 부족한 부분들을 열심히 준비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ESG 공시 시기를 늦추자 한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든다면 LCA 같은 경우, 원재료부터 폐기 단계까지 환경 영향 평가를 하려면 2~3년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하는데, 준비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공시를 늦추려고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Q. 기업이 ESG 활동을 진행하면서 시민단체와 협업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ESG 활동을 전개하는 것에 있어서 시민단체의 역할과 필요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기업의 ESG, CSR를 견인해 내는 역할에서 다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외부 견제 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든다면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 영양정보 표시제 및 유해 물질 감시, 디지털 개인 정보 보호와 같은 부분들을 시민단체에서 계속 요구했기 때문에 법규가 만들어지고 기업의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시민단체가 해왔었고 또 앞으로 할 수 있는 부분들은 기업의 ESG나 CSR의 어젠다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외부 견제 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ESG의 주요 어젠다에 대해 좀 더 광범위하고 앞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EU의 ESG 규범과 국내 실천 수준 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디지털 상품 여권, 원재료 단계의 환경 파괴 및 인권 유린 이슈 등과 관련 시민단체 역할이 많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 시민단체가 기업과 협력하여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기업의 ESG 경영은 ‘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순환 경제를 구현하려면 이러한 주제에 대해 앞서 고민하는 시민단체들이 있기에 협업을 통해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추가로 시민단체 스스로 내부의 ESG도 돌아볼 필요성이 있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1) 서진석 이사는 ‘비콥’ 확산 운동을 하는 비랩 코리아의 이사입니다. 동시에 이노소셜랩의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ESG 부서에 근무하고 있는 
ESG 전문가입니다.

2) 오픈 이노베이션이란 기업이 연구, 개발, 상업화의 과정에서 외부의 기업이나 연구소, 대학 등으로부터 지식이나 아이디어 등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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