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정신과 한국 시민운동의 방향

관리자
발행일 2009.11.18. 조회수 414
칼럼

 


헌법정신과 한국 시민운동의 방향


- 경실련 사무총장 시절을 회고하면서 -



이 석 연(전 경실련 사무총장)



 


  내가 경실련 사무총장으로 있던 1999년부터 2001년 사이는 한국 시민운동의 격동기였다.  20세기 마지막이자 21세기 벽두라는 시대적 상황에 맞물려 많은 국가 사회적 이슈를 탄생시켰다.  2000년 1월 10일 경실련의 공천부적격자 명단발표를 기폭제로 한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 의약분업, 시민단체(운동)의 정치 참여문제, 시민단체에 대한 국가지원을 둘러싼 논의 등 굵직한 문제들이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 과정에서 경실련은 항상 논의의 한 중심에 서 있었고, 나 역시 논의를 주도하였으며, 때로는 논의의 직접 당사자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2001년 9월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 시민운동의 방향을 놓고 나와 참여연대 사무총장이었던 박원순 변호사와 벌였던 논쟁은 시민운동의 방법론을 둘러싼 많은 논의와 국민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당시 경실련은 총선연대가 주도하는 낙선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공직선거법’이 비록 국민의 참정권을 제한하는 문제 있는 법이라 하더라도 적법절차를 거쳐 개폐되기까지는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선거 현장에서 하는 특정 후보의 낙선운동은, 누구를 찍고 안 찍고는 유권자의 양식의 문제로서 시민단체가 관여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점에서, 시민운동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낙선운동을 금지하는 선거법 조항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 역시 지론이기도 하다. 


 


  나는 시민운동을 하면서 그 가치관의 지향점을 헌법정신 내지 헌법적 가치에 두고 이를 시민운동에 접목시키려고 노력했다. 헌법적 가치 내지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원리 및 적법절차를 핵심으로 하는 법치주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는 기본권 존중의 정신으로, 이는 인류보편의 가치이기도 하다.  헌법적 가치 중에서도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사회권 내지 생존권적 기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회적 약자와 서민들의 눈물과 한숨을 담아내지 못하는 법은 제대로 된 법이 아니다.  나는 모든 사회문제와 국정현안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적법절차를 따라 합리적으로 논의, 해결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가치관, 이념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국적의 시민들이 합의할 수 있는 기본 텍스트는 헌법이다.  따라서 헌법은 국민통합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  시민운동 역시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면서 헌법정신의 틀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나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보수주의자라거나 또는 보수주의자로 변절하였다고 매도하고 있다.  나는 보수주의자도 진보주의자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진보 보수니, 좌우니 하는 논쟁에는 관심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헌법주의자 내지 헌법적 자유주의자라고 말하고 싶다.  헌법재판소 등 공직시절, 나는 진보주의자 더 나아가 운동권이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그 후 변호사 시절, 국민의 정부와 특히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헌법정신을 강조하고 그에 입각한 헌법소원 등 공익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보수주의자로 되어 있었다.  나는 헌법재판소 시절부터 지금까지 헌법정신에 입각한 소신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반면, 우리 사회의 스펙트럼 내지 시대적 추는 보수․진보, 좌우로 기울어짐이 반복되었다.


 


  2001년 11월말 나는 경실련 사무총장직을 떠나면서 한국 시민운동과 경실련의 좌표에 대하여 짤막한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오늘의 시점에서도 대체로 타당하다고 생각하기에 그 핵심부분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회고에 갈음한다.



 


“시민운동이 목표로 하고 있는 개혁은 어디까지나 시민 개인의 구체적 삶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시민 개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고양시키는데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개혁이 진보세력의 독점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온건하면서도 변화를 지향하는 중도보수성향의 시민들과 그들이 갖고 있는 개혁의지를 대변할 새로운 시민운동이 필요하고 이러한 시민운동은 과거 재야의 투쟁식 내지 운동권 방식으로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통일을 추구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우위에 두고 경제적 정의를 주장하면서도 자유시장경제의 질서라는 헌법의 기본이념을 소중히 여기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개혁을 요구하면서도 그 개혁이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적법 절차를 준수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다수의 시민들을 대변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민운동이 시민운동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에 이런 것에 게을리 하면 경실련은 시민운동의 주도권을 잃게 될 것이고, 나중에 잘못하면 시민운동 밖으로 밀려날 것입니다.”


 



 


<약력>
전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
   경실련 사무총장
현 법제처장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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