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노동기본권 침해하는 경제자유구역법안 처리를 즉각 중지하라

관리자
발행일 2002.11.13. 조회수 2632
사회

정부와 국회가 11월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고자 하는 [경제자유구역의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안)]은 외국인 친화적 경영여건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경제자유구역에 입주한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해서 노동관계법중 일부 법률규정의 적용배제 조항을 두고 있다.


법안에 의하면 경제자유구역은 시도지사의 요청에 따라 경제자유구역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재정경제부장관이 지정한다. 또한 경제자유구역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재정경제부장관이 시도지사의 동의를 얻어 지정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법안 제4조).


당초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의결하여 국회에 제출한 법안은 경제자유구역의 지정기준으로 국제공항, 국제항만, 광역교통망, 정보통신망, 용수, 전력 등 기반시설의 공급수준을 명시하였다. 이러한 기준만으로도 전국의 주요도시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될 수 있어 매우 심각한 조항이었다. 그런데 6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최종통과된 법안에는 이러한 조항마저 대부분 삭제되어 사실상 전국의 모든 지역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정해지게 되었다.


법안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월차휴가, 생리휴가를 폐지하고, 주휴를 무급화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법안(제18조 제2항)은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제5조, 제6조)가 정한 26개 파견대상업종을 전문업종에까지 확대하고 파견기간도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법안(제20조)은 또한 경제자유구역에 입주한 기업의 "근로자는 노동쟁의에 관한 관계법률상의 절차를 엄격히 준수하여 산업평화를 유지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법안은 노동쟁의조정법안의 독소조항을 악용하고, 더 나아가 사소한 절차상의 문제까지 꼬투리를 삼아 공권력 투입을 정당화하려는 사전조치이다. 또한 '산업평화'의 언급은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자체를 제약하는 것으로 경제자유구역에서 노동조합의 활동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법안(제18조 제2항)은 경제자유구역에서 장애인고용촉진민직업재활법, 고령자고용촉진법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


또한 법안은 외국학교법인이 경제자유구역내에 초중등 및 대학(원)의 설립을 허용하고 내국인 입학까지 허용하고 있다. 초중등교육기관이 외국학교법인에 개방되는 것은 공교육체계에 심각한 위협을 줄 것이다.


나아가 각종 필수적인 환경규제에 관한 법률들의 적용을 면제해 주어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를 예고하고 있다. 법안(제12조)는 외국인기업이 개발사업을 시행할 경우 개발사업실시계획을 작성하여 재정경제부장관의 승인을 얻는 것으로 모든 인허가를 생략해 주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환경관련법안 34개가 사실상 무력화된다. 나아가 법안(제16조 제2항)은 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을 원활히 시행한다는 명목으로 개발이익환수에관한법률, 자연환경보전법, 대체초지조어비, 생태계보전협력금, 산림전용부담금, 교통유발부담금, 공유수면 점·사용료, 환경개선부담금 등을 감면해 주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에 입주하는 외국인투자기업 개발사업자는 여러 환경관련 부담금을 감면받는 것과 함께 법인세, 소득세, 재산세, 종합토지세 등 주요 직접세를 감면받게 된다. 또한 외국인투자기업의 경영활동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국세, 지방세가 감면되고, 외국인 편의시설 설치에 자금이 지원되며, 국·공유 재산의 임대료도 감면된다.


법안은 외국인의 경제자유구역 내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하고 있다. 이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법 규정에 의한 요양기관으로 간주되지 않음으로써 건강보험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 완전 상업의료체제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될 개연성이 높으며,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운영한다지만 우리나라 의료관행을 볼 때 고소득 내국인의 의료기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32년전인 1970년 1월 1일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하는데 외자유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여 「수출자유지역설치법」과 함께 「외국인투자기업노동조합및노동쟁의조정에관한 임시특례법」이 제정된 일이 있다. 이 임시특례법은 외자기업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할 때와 노동쟁의가 발생한 때에는 노동청장에게 신고서를 제출하고(제4조 및 제5조), 외자기업의 노동쟁의 조정을 위해 보건사회부에 「외자기업노동쟁의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제3조), 이 특별조정위원회에 의한 조정이 성립되지 아니한 때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에 회부하도록 하였다(제6조).


이 법은 외자기업의 노사관계를 공익사업에 준하여 특별관리하는 것으로서 노동쟁의를 강제조정할 수 있도록 하여 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하였기 때문에 위헌론에 봉착하였는데 결국 1986년 5월 9일 폐지되고 말았다.


경제자유구역법안은 32년전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당시는 노동자의 기본권 제한은 외자유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앞세운 제3공화국의 개발독재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2002년 '국민의 정부'의 핵심부서인 재경부가 외자기업에 대한 노동법 적용상의 특례를 "외국인 친화적 경영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 불가피하다고 강변할 수 있을 것인가.


30여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당시와는 비교도 안되는 세계 10위권을 지향하고 있다. 이제 외자유치도 보편적(global) 기준에 따라 추진해야하며, 노동시장에서 외자기업에 대해 국내기업보다 유리한 여건을 애써 제공하는 것은 기업간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이며 굴욕적·매판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경제자유구역법안은 "외국인 친화적 경영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결국 30여년전의 개발독재 시대로 회귀하였고 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함으로써 노동계의 심각한 반발을 초래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국회는 법안 처리를 즉각 중단하고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사회적 합의의 절차를 거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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