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에 바란다 4

관리자
발행일 2008.02.16. 조회수 508
칼럼

"의사수는 선진국의 절반 수준, 공공의료는 공공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바닥 수준.."

정책결정자들이 흔히 잘못 알고 있는 명제가 있다. 민간시장은 효율적이고 공공부문은 비효율적이라는 논리이다. 과연 그런가? 수많은 실증 사례를 보면 민간이기 때문에 효율적인 것이 아니라 민간부문은 대부분 경쟁이 존재하므로 경쟁의 결과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공공부문은 대개 독점이므로 비효율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문제는 독점인가 아닌가이지 민간인가 공공인가가 아니다. 공공부문이라도 경쟁을 하게 되면 효율성이 제고되고 민간부문이라도 독점화되면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이다.


뉴욕의 쓰레기 수거업무는 민간위탁업자와 뉴욕시 직영기관이 동일한 조건으로 입찰을 통해 경쟁하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한국의 초중고 교육은 학교간 경쟁이 없기 때문에 교실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잘 가르치든 못 가르치든 학생모집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정해진 월급에 공부는 사교육이 더 잘 해주는데다, 내신이라는 강력한 수단으로 학생을 통제하기 때문에 공교육의 질은 떨어지고 교사의 생산성은 형편없는 것이다.


반면 사교육시장은 그야말로 자유경쟁이기 때문에 다양한 교육내용과 최상의 교육방법으로 교육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동통신이나 전기, 석유 등은 소수의 기업이 독점하기 때문에 고가격이라는 비싼 대가를 소비자가 치르고 있다. 이처럼 경쟁이 작동하게 되면 거의 예외없이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살아나고 독점화되면 저생산, 저효율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 의료시장은 어떤가?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의료시장은 전형적인 독점시장의 특성을 가진다. 우선 면허제도에 의해 의사의 공급이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신규진입이 봉쇄되어 있으며, 한 명의 의사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는 등 의사인력의 공급이 매우 비탄력적이다.


또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전문적이기 때문에 소비자는 잘 알지 못하고 공급자인 의사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의사가 진료내용을 전적으로 결정하며, 의료서비스에 대한 가격도 진료를 받은 후에 의사 마음대로 결정한다. 한마디로 의사는 전형적인 독점자의 위치에 있고 소비자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의사간 경쟁을 줄이기 위해 의료계는 의과대학 입학인원을 감소시키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의료시장의 이러한 특성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때가 ‘60~’70년대 한국사회이며, 당시 대학병원은 죽을 때 마지막으로 한번 가보는 곳이라든지, 의사는 허가받은 도둑이라든지 하는 말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축생도』나 『꺼삐딴 리』등의 소설을 보면 서구와는 달리 왜 우리 사회에서 의사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있다.


병원비를 낼 형편이 못되는 환자는 아예 거절당하는 것이 관행이었고 환자가 죽든 말든 그것은 병원의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1970년대 중반 대도시에서 자장면 한 그릇이 보통 60원이었는데 당시 동네의원에서 주사 한 대 맞고, 2~3일치 약을 타오면 환자는 3~4천원 정도의 진료비를 지불했다. 즉, 외래진료비가 자장면 60그릇 정도의 비용과 맞먹었다는 얘기다. 지금으로 치면 동네의원에 감기몸살로 한번 갈 때 진료비가 20~30만원 수준이었다는 말이다.


중병으로 병원을 가게 되면 병원측에서는 먼저 입원수속부터 하라고 종용하고, 입원수속을 받은 후에야 치료든 수술이든 할 수 있었고, 입원수속이 안되면 도리없이 병원문을 나서야 했다. 이러한 구조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어 일반 국민에게 병원 문턱은 매우 높았고, 중병으로 가정경제가 파탄에 이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였다.


이러한 문제가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1977년 건강보험이 도입되면서부터이고, 의료인력의 공급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1980년대 초반 제5공화국 때 국회가 해산되고, 국가보위상임위원회가 의과대학과 치과대학 입학인원을 대폭 증가시킨 이후이다. 그리고 건강보험 적용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병원문턱도 그에 비례하여 낮아지게 되었다.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이 증가한 배경이 있음은 물론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국회와 관료는 이익집단의 로비에 의해 쉽게 삼각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전체 국민을 위한 입법이 이루어지기 매우 어려운 구조인데, 1980년대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이익집단의 반발을 잠재우고 일거에 의사수를 집중적으로 증가시키는 정책결정이 단행되었다. 그 혜택이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의료시장은 정부의 규제가 없을 경우 그 자체적으로 독점이 형성되어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심각하므로, 불가피하게 국가 개입을 통해 사회적 편익을 극대화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고, 의사수를 충분히 증가시키고, 공공병원의 확대를 통해 의료시장의 독점적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모든 선진국이 그렇게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 도입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건강보험 혜택이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여, 여전히 고액의 의료비로 인해 가정경제가 파탄나고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통상적인 치료도 제때 하지 못해 증병으로 키우는 경우가 많다.

의사수도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고 공공의료는 공공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바닥 수준이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가 헌법에 규정된 건강권 보장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말뿐이었으며 정책집행의지도 추진력도 없었다. 
 
의료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은 독점시장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목적 외에 국민의 기본적 권리인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의식주와 마찬가지로 의료서비스는 인간이면 누구든지 기본적으로 향유되어야 할 필수 재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헌법에도 건강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근로자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자본주의경제의 순조로운 발전을 위해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한 경우가 많았다. 근로자가 건강해야 기업의 생산성도 높아지고 이익이 증가하며, 사회적 불안 감소로 자본주의가 순조롭게 발전할 수 있으므로 근로자의 건강을 사회적 연대를 통해 보장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근로자뿐만 아니라 자본가에게도 이익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보건의료체계를 보면 보수정당이나 진보정당 모두 비슷한 보건정책을 내놓고 있어, 이른 바 보건정책의 수렴 현상이 보편화되어 있다. 
 
미국은 선진국에서 유일하게 시장중심의 민간의료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인데, 역사적으로 6명의 대통령이 유럽식 의료보장제도를 도입하려고 시도했으나 민간보험회사와 의사협회의 반대로 모두 실패하였고, 존슨대통령 시절인 1965년 노인을 위한 메디케어제도와 극빈자를 위한 메디케이드제도만 가까스로 도입하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클린턴의 의료개혁안이 좌절된 바 있다. 그 결과 미국은 GDP의 14% 이상을 국민의료비에 지출하면서도 건강 상태는 최하위 수준이고, 인구의 20% 내외는 무보험 상태에 있으며, 근로자를 위한 민간의료비 지출이 생산원가에서 지나치게 높게 차지하여 포드자동차와 GM자동차가 도산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민간시장 중심의 의료체계가 의료문제를 넘어 기업의 경쟁력까지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의료제도를 풍자한 다큐멘터리 영화 씨코(SICKO)는 시장 중심의 의료제도가 가지는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인터넷에서 수많은 누리꾼은 이명박당선자가 이 영화를 꼭 보아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다. 국회의원과 공무원의 단체 관람을 권하고 싶다.


일부 지식인들이 미국식 의료제도를 마치 세계의 표준인양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대부분이 미국 유학시절 무상의료의 혜택을 보았거나 학교의료보험에 가입하여 좋은 경험만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중산층이 겪고 있는 의료 문제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며, 더욱이 다른 선진국 의료제도의 장점은 거의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오해이다.
 
시장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인 분야도 있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분야도 있다. 민간경제가 전자라면 보건의료나 문화, 환경 등이 후자에 속한다. 시장에 맡기게 되면 경쟁의 장점보다는 독점의 폐해가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이 의료분야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을 민영화한다든지, 건강보험공단을 인위적으로 분할하겠다는 발상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정책이다. 우리사회가 가진 의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어 경험적으로 그 효과가 이미 입증된 제도를 오히려 폐지하겠다고 제안하는 것은 제 정신이 아니다.


인수위에 참여하는 일부 보건의료전문가 그룹은 극단적 시장주의자들이며, 평소 재벌 소유의 대기업이나 특정 이익집단의 이익을 대변해온 사람들이다. 5-6공 시절에 활동하다 학계의 경쟁에 의해 자연스럽게 밀려난 인사들도 있다. 이들이 제안하는 정책을 보면 이미 20년 전에 실패로 끝난 것도 있고,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실패임이 입증되었는데도 한풀이 차원에서 제시되는 것도 있는 것 같고, 대기업이나 공급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의료산업화라는 것도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등 제조업의 경우에는 응당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 마땅하나, 의료서비스는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에 상업화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지금도 다른 나라에서 유사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상업화되어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민간병원인데 여기에 더 이상 무엇을 추가한단 말인가. 외국환자를 유치하여 돈을 벌면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의료서비스는 물건 수출이 아니라 사람이 수행하는 서비스이고 더구나 언어소통이 되는 의사가 직접 제공해야 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외화벌이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바, 외화 몇 푼 벌자고 국내 의료제도를 해체할 수는 없다.


민간병원은 현재에도 외국환자 유치나 이윤추구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데 굳이 영리병원을 들고 나오는 것은 일부 법인병원 소유주들이 자식에게 세금 없이 병원재산을 상속시키고 싶은데 이것이 잘 안되니까 요구하는 것뿐이다. 민간보험회사의 시장 확대를 위해 국민의 생명을 담당하고 있는 건강보험제도를 깨고자 하는 발상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제안이다. 
 
이명박정부는 10년만의 정권 교체라고 기뻐하기 이전에 정치적 이해를 떠나 국민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과거정부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바, 국민의 심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루지 못한,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으로서의 건강권을 실현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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