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지방의원은 개꿀?

관리자
발행일 2023.11.28. 조회수 48119
칼럼

[월간경실련 2023년 11,12월호][시사포커스(1)]

지방의원은 개꿀?


- 전국 지방의원 임기 1년 조례 발의 실태


최윤석 사회정책국 간사


온 나라가 내년에 있을 선거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말말말. 그야말로 말의 성찬이다. 본격적으로 선거국면에 들어가기도 전에. 늘 그랬듯이 정치인들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무책임하게 내뱉고, 매스컴은 자칭 평론가라는 여의도 하이에나들의 입을 빌려 영양가 없는 논쟁을 끊임없이 증식시킨다. 그런데 이렇게 세인의 모든 관심사가 정치권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도 용케 그 시선에서 벗어나 은인자중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사는 세상이 바로 지방의회다.


대개 정치인들이 대중의 관심을 갈구하듯 지방의원들도 응당 그럴 것 같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최소한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당락은 대중의 관심과는 별 상관이 없으니까, 무관심 속에서도 의정비는 꼬박꼬박 나오니까 말이다. 지방의회, 지방의원이 주인공인 원고가 월간경실련 지면을 차지한 것도 꽤 오랜만이다. 그만큼 지방의회는 대중의 눈에서 멀어져 있었다. 지금 당장 길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았을 때 자신이 사는 곳을 대표하는 지방의원의 이름을 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줌이나 될까. 필자도 마찬가지다.


먹고 살기 바쁜 데 대통령이 누군지나 알면 되지 그런 사람들까지 신경 써야 하나? 맞는 말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봐야 한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의 최종 진화형이 눈에 빤히 보인다는 까닭도 있지만, 그들의 충실한 활동이 다른 권력의 폭력을 방지하고, 또 그들 가운데 선덕이 악덕보다 번영하여 공동체에 더 기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우리와 같은 시민단체가 존재하는 이유일 터.


서론이 길었다. 좌우지간 이런 전차로 말미암아 지난 9월 경실련 의정감시센터는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의원들의 입법활동 정보를 수집, 그 실적을 분석하여 발표하였다. 지난해 임기 시작일을 기점으로 딱 1년간의 활동을 평가했다. 아래에서 그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 지방의원 11% 일 안 하고 의정비 수령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사 결과 424명에 이르는 지방의원이 임기 후 1년이 다 될 때까지 단 한 건의 조례안도 발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사에는 임기 중 퇴회(退會)한 의원을 대상에서 제외했으며 의장 및 재보궐 선거 당선자도 배제했기 때문에, 깊이 들여다보면 실제 조례 발의에 소홀한 의원은 더 늘어날 것이다.


많은 조례를 발의한 의원을 덮어놓고 높게 평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악법도 어찌 됐건 법의 범주에 들어가 있듯이, 조례 중에도 발의 안하니만 못한 의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의하지 않은 것은 확실한 문제이다. ‘의원은 법으로 말한다’는 경구처럼, 공동체가 공유하는 질서의 입안은 의원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한이다. 또 동시에 그들이 대표하는 민의를 대변할 정석적인 수단이다. 뒤집어보면 이러한 기능이야말로 의원의 ‘쓸모’인 것이다. 424명의 지방의원은 스스로 자신의 무자격을 증명한 셈이다.


▲ 경기·경남·강원 등 3개 광역의회 및 경북 지역 기초의회 ‘나이롱 의원’ 집중

각 지방자치단체별 의회의 입법실태를 살펴보면 특정 지역에서 압도적으로 입법 실적이 낮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광역자치단체 의회의 경우, 의원 1인당 발의건수 및 미발의 의원 분석에서 경기도, 경상남도, 강원특별자치도가 나란히 꼴찌그룹을 형성했다. 기초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저실적 의회 순위권에 경북 지역 기초의회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1년간 발의하는 조례의 이상적인 양을 산술적으로 특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의회와 비교했을 때 특별히 다른 조건에 해당하지 않으면서도 두드러지게 적은 양의 조례를 이들 의회가 발의했다는 사실은, 의장을 포함해 해당 의회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의정활동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돌이켜 성찰해보아야 할 여지를 남긴다. 특히 17개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규모가 크며, 가장 많은 의정비를 받으면서도 가장 적은 조례를 발의한 경기도의회 의원의 경우 의장을 필두로 의회 차원의 각성이 필요해 보인다.


▲ 조례 발의에 드는 의정비 많게는 16배까지 차이, 의회별 격차 ‘심각’

각 의회 의원이 받는 의정비(의정활동비+월정수당)를 의회별 1인당 조례 발의 건수로 나누어 조례 1건을 발의하기 위해 들어가는 의정비를 계산해 고비용 의회와 저비용 의회를 비교해 본 결과, 광역의회는 6배, 기초의회는 16배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나 의회별로 심각한 수준 차이가 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같은 차이는 각 의회의 자성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접게 만든다. 자치라는 차양 아래에서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태만하게 의회가 운영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원 입법 없이 그저 자치단체장의 거수기 역할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행태들은 결국 행정안전부 등 중앙 정부의 규제·관리의 필요성을 부각하여 지방자치 무용론을 강화하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국토균형발전의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이다. 환경과 조건이 달라짐에 따라 주민 공동체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사회 영역에 대한 명문화된 기준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기준들은 다시 공통된 행위규범을 낳고, 이들이 축적되어 구성원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으면 신뢰자본으로 기능한다. 즉 조례를 입법하는 행위는 주민 공동체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행하는 사전 정지작업인 셈이다. 자치단체가 이를 소홀히 하면, 더뎌진 자본(신뢰자본)의 축적이 결국 생산성(주민의 삶의 질) 저하로 이어져 애꿎은 주민들만 피해를 봄은 물론, 지역 간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XX인 개꿀론
“연예인이 개꿀이야.”

가수 출신의 한 연예인이 최근 예능에서 농담처럼 가볍게 풀어낸 이 자기고백이 한동안 크게 회자가 된 바 있다. 다른 업에 종사해보니, 연예인을 업으로 삼았을 때 감당해야 했던 노고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취지였다. 대중의 선호가 업의 원동력이 된다는 측면에서 정치인과 연예인은 닮아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도 ‘개꿀’일까? 최소한 지방의원은 그래 보인다. 앞선 결과와 같이 일단 당선만 되면 주업(입법)을 하든 안 하든 간에 따박따박 의정비가 계좌에 꽂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더 ‘꿀’이다. 연예인은 그들을 항상 예의주시하는 시선에 행동 하나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데에 반해 지방의원에게는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경실련이 국민을 대신해 그들의 업무성과를 앞으로도 꼬박꼬박 점검해 나갈 예정이다. 월급주는 이들은 시쳇말로 쎄가 빠지게 일하는 데 받는 이들은 탱자탱자 놀아서야 되겠는가. 한편 희망적인 사실은 그들에게 주어진 4년의 임기 중 고작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발표로 다른 의회는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눈치껏들 보시면서 남은 3년은 더 모범적인 의정활동이 될 수 있도록 전국의 모든 의회, 의원 여러분들이 박차를 가해 주시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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