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부동산정책? 실패할겁니다”

관리자
발행일 2006.09.14. 조회수 635
칼럼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개인사를요? 그 얘기는 안했으면 하는데요. 별로 말할 내용도 없고 말하기도…(웃음)”

“그래도 <시민의신문>이니까”라는 말로 겨우 인터뷰 약속을 받아 냈다.

<시민의신문>이 경실련에서 시작했다는 과거의 인연도 나름의 작용을 했다.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
이정민기자

경실련 사무총장은 나이순?



박병옥 총장은 1963년생이다. 올해로 만 43세. 불혹의 나이다. 17년간 꾸준히 경실련과 함께한 박 총장은 불혹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한 단체의 ‘장’을 맡을 이유는 충분한 듯 하다. 그러나 그는 “어쩌다 보니 연배 순으로 경실련 사무총장이 된 것”이라며 “인터뷰는 국장들이 해야 하는데”라고 말한다.

박 총장은 1981년에 있었던 ‘고려대 문무대 109인 사건’의 제적생 중 1인이다. ‘고려대 문무대 109인 사건’은 전두환 정권 당시 2차에 걸쳐 문무대(대학생 군사집체훈련을 위한 기관)에 입소한 고려대 학생들이 군사집체훈련을 거부하다 19명이 제적, 1명 무기정학, 89명 직권휴학 등을 당한 사건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의 장화식 정책위원장도 당시 문무대 사건 의 109인 중 1명이었다. 그는 당시 사건을 이렇게 말한다.

“별거 아니었습니다. 대학교 신입생이 군대가서 데모하다 짤린 얘기죠.(웃음) 그 당시에는 강제징집제도가 있었거든요. 장화식 위원장과는 그 전까지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알게 됐죠.”

박 총장은 경실련에서 일을 하기 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대학부 간사로 일했었다. 초기 경실련 창립에 관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학생운동과 직간접적으로 연이 닿아있던 사람들이다.

“지금의 경실련은 아닙니다. 많이 바뀌었죠. 그 당시 기독학생운동에 관여했던 사람들 중 지금 경실련의 회원 이상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에 경실련은 이들이 주축이었습니다. 서경석 목사도 마찬가지였구요. 87년 6월부터 일하던 KSCF를 89년 4월인가 그만뒀습니다. 쉬고 있을 때 선배 한 명이 같이 경실련 운동을 해보자고 하더군요. 그 때부터 경실련에 남게 된 거죠.”

17년의 시간. 그 동안 경실련도 많은 부침이 있었다. 90년대 한국시민운동의 중심이라고 여겨졌던 시기부터 97년 김현철 도청테이프 사건으로 경실련이 휘청할 때도 박 총장은 경실련을 지켰다. 그리고 2003년부터 경실련의 7번째 사무총장으로 지금까지 오고 있다.

서울 동숭동에 위치한 경실련에서 만난 박 총장의 처음 느낌은 한마디로 ‘무섭다’. 시민단체 활동가들 중에서도 눈에 띌 만큼의 큰 체격의 소유자, 과묵한 듯한 표정, 부스스한 옷차림. 경실련이 밖에서 기자회견이라고 하고 있으면 뒷짐 지고 이리저리 ‘어슬렁어슬렁’하고 있는 박 총장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얘기를 나누는 도중 그런 느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 그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때로는 만담가로 때로는 치열한 논쟁가로 변한다. 그와 얘기를 나눈 1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였다.








이정민기자

“그게 고민입니다. 뭘 해야 할지. 사실 많이 걱정 됩니다.”



예상외의 답변이다. 경실련에서 할 일이 없다니. 그것도 사무총장이 말이다. 이런 기우는 잠깐. 잠시 큰 한숨을 들이 마시더니 이내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경실련 업무의 한축은 부동산과 건설입니다. 건설 개혁은 몇 년 동안 계속 밀고 온 것입니다. 이 운동과 관련해서 올해에는 원가공개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공공주택문제에 힘을 실어야 할 듯 합니다. 판교의 실패는 공공주택문제의 심각성을 잘 드러내 주는 일례입니다.”

여전히 부동산 문제가 경실련 제1의 사업이다. ‘좌 참여연대, 우 경실련’ 시민운동 진영에서 이념의 정도를 파악할 때 경실련은 언제나 상대적으로 참여연대 오른쪽에 있다. 그러나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경실련은 한국사회 어느 누구 보다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후분양제는 물론 재개발, 재건축 사업의 완전 공영개발을 주장한다.

열린우리당은 자신들의 총선공약인 분양원가공개를 포기하고 원가연동제를 실시하면서 시민단체와 협의를 거쳤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부동산 문제에 가장 전문적인 경실련은 협의에서 배제됐다. 그만큼 경실련이 부동산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가장 적나라하게 정부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경실련의 평가는 잔인하다. 지난 달 25일 환경정의가 주최한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 평가 토론회에 나온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했고 지난 3년 동안 그 강도를 더 높여왔다. 단기간에 성과가 날 수 없는 정책이니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 총장은 이에 대해 “왜 반밖에 모르는지…”라며 혀를 찼다.

“수요억제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공급정책은 과거 어느 정부보다 많고 강력합니다. 공급정책이 수요억제정책을 잡아먹었습니다. 8.31대책에서 송파신도시 개발 계획이 빠졌으면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개발계획을 발표한다는 것은 소수의 불로소득을 보장해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급정책은 결국 투기자만 배부르게 할 뿐입니다.”

박 총장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미래를 ‘실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참여정부는 기업도시, 행복도시, 혁신도시 갖가지 이름으로 전 국토를 파헤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불로소득에 대한 환수장치는 전무하다. 지역개발이라는 명분은 좋았지만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전무했다. 박 총장은 “이런 상황에서 수요억제정책이 빛을 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문제. 그 뿐일까. 박 총장은 말을 이어갔다.

경제관료…개혁의 첫번째 대상이 돼야

“부동산 문제와 더불어 하반기에 집중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공직사회 개혁운동입니다. 최근의 법조비리에서도 잘 드러나듯 재경부, 건교부 등의 경제관료들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이 사람들이 공직에 있는 동안 건설회사나 이익집단을 위한 정책을 만들다 공직에서 물러나면 관련 업계로 진출합니다. 이 커넥션을 끊고자 합니다. 공직사회 개혁의 핵심은 바로 관료개혁입니다. 부동산 운동과 관련해서도 관료들이 언제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이정민기자

박 총장은 실제로 관료들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정보를 왜곡하고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들을 그대로 둔 채 우리사회의 장기적인 계획은 어렵다는 것이 박 총장의 견해다.

왜 관료들을 싫어할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문제 삼는데 박 총장은 아닌 듯 하다. 박 총장은 웃으면서 답한다.

“솔직히 정치인들은 컨텐츠가 별로 없습니다. 정보가 어디서 나오는가만 잘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정보는 관료에게서부터 나옵니다. 정책에 관한 내용 역시 대부분은 관료에서 비롯됩니다. 정치인은 그 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제 경실련의 운동은 주의, 주장을 외치는 운동에서 탈피할 것이라고 한다. 드러내고 싶지 않는 정보를 드러내는 것.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정보를 알게 하는 것이 다음 시민운동의 모습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시 부동산 문제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집값을 보고 참여정부를 욕합니다. 그렇지만 돌아서서 자신의 집값이 같이 오르기를 바랍니다. 당연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경실련의 부동산과 관련한 운동이 무의미 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유효합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입니다.”

‘정직은 최선의 방책’이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이 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정직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이 전제돼야 한다. 정직하지 않고서는 정직한 것 보다 제약을 받는 것.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박 총장은 “사회시스템이 투기로 돈을 벌 수 있게 만들어 놨는데 그것을 이용하려는 일반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애초부터 인간의 이기심을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을 사회적 공공성과 어떻게 조화를 이뤄 가게 할 것인가가 가장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투기에 대해서 이성에 호소하면 문제해결은 요원해집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로 정직하게 땀 흘린 만큼 대접받는 사회라면 투기는 결국 범죄로 인정될 것입니다.”

투기 얘기가 나오니 자연스럽게 요즘 문제가 되는 ‘바다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바다이야기 문제는 결국 우리사회에서 ‘탐욕의 질서를 구조화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탕주의, 쉽게 벌자는 생각이 바다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큰 돈을 굴릴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부동산 투기를 합니다. 그러나 돈이 없는 일반 서민들은 로또를 꿈꾸고 바다이야기에 빠지면서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생각들이 이제는 구조화되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그들을 비난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로비스트 합법화? 여전히 시기상조

한나라당의 이승희 의원이 ‘바다이야기’를 계기로 로비스트 법제화 방안을 발의했다고 한 것에 대해 그는 “시기상조”라고 잘라말했다.

“미국의 로비와 우리나라의 로비는 개념부터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로비는 정책판단에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 일체를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경실련도 로비 단체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로비는 여전히 뒷거래를 뜻하고 은밀하게 뭔가를 주고 받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이 변하지 않는데 합법화를 한다는 것은 도움 안 됩니다. 우리나라의 어떤 정치인이 이익집단의 로비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합법화된 통로로 로비를 하겠다고 하는데 대다수 국민들도 어렵다는 반응입니다.”

경실련, 메시지 중심 조직으로 거듭나야

이야기는 다시 경실련과 시민사회로 돌아왔다. 9월 6일부터 진행된 경실련 중앙위원회 얘기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정민기자

“경실련 중앙위원회는 일반적으로 하는 향후 사업계획 공유하고 뭐 그런 정도의 얘기만 나누는 자리입니다. 오히려 이번 행사에서는 지역 경실련 활동가들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시민운동의 대안을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시민운동가는 늘 이런 고민을 합니다. ‘나는 왜 열심히 하는데 시민들의 반응은 별로일까.’ 바로 그런 고민을 함께 하게 만든 자리였습니다.”


박 총장은 경실련 사업을 예로 들며 “원가공개, 후분양제 등을 통해 시민들과 이성적 공감은 가능할 수 있었다”며 “그렇지만 정서적 공감은 거의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업을 할 때 사업의 내용을 더욱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 총장은 이를 ‘고객관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민운동에 시민들의 삶의 리얼리티가 필요합니다. 솔직히 시민운동가들의 사고방식과 일반 시민들의 사고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운동가들도 변해야 합니다. 이런 실험도 하반기에는 해 볼 생각입니다. 시민들과 공감하고 반응할 수 있는 메시지를 찾아 볼 생각입니다. 그래야지 시민들이 후원도 해주시고 회원으로 가입도 해주시고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실험일까. 내용을 말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박 총장은 웃으면서 “아직은 말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나중에 성공하면 꼭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시민운동가 재생산…문제는 선택
어디가 아플지 스스로가 결정해야

현재 경실련은 국장급 활동가들을 해외 연수를 보내고 있다. 경실련에서 비용을 부담한다. 현재는 2명의 활동가가 연수 중이다. ‘어려운 살림일 텐데’라며 말을 꺼냈다.

“물론 사람이 빠지면 힘들죠. 하지만 이것은 NGO의 성장전략 문제입니다. 일 중심의 성장전략은 사람을 소모품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능력있는 사람을 가져다 쓰면 그 뿐입니다. 자기개발은 개인의 몫이고 그 또한 돈이 없어 못합니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NGO의 이직률은 25%가 넘어 갑니다. 그런 구조 속에서 지속적인 발전은 불가능합니다. 일 중심의 전략에서 사람중심의 전략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사람중심의 전략은 힘이 들더라도 사람을 키우는 것입니다.”

박 총장은 이를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지식기반의 사회로 세상이 변하면 시민단체 역시 지식기반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런 지식기반 사회의 NGO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바로 정보와 데이터다. 박 총장은 “이제 주장만 가지고는 운동이 안된다”고 단정했다. ‘지속적인 사람’이 필요하다면 ‘지속적인 학습능력’을 갖추도록 요구해야 하며 이는 단체가 지원해 줘야 한다는 것이 박 총장의 견해다.

“현재와 같이 상근자와 전문가로 분리된 구조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준 전문가 수준의 상근 운동가들이 운동을 주도해야 합니다. 엄밀성과 객관성, 과학성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다소 무리였지만 경실련은 이것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지금 있는 사람들의 헌신으로 굴러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는 아닙니다.”

“경실련이니까 가능한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풀뿌리 단체들은 재생산은커녕 활동가들의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을 정도로 열악하다고 했다. 박 총장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그렇게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경실련은 전문기관으로 가야합니다. 그래서 수천 개의 단체와 연결돼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일에 필요한 리더가 필요합니다. 풀뿌리 단체 역시 자신에게 맞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풀뿌리 단체의 비전에 맞는 어떤 리더가 필요한지 어떻게 노하우를 쌓아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영어 공부하는 것이 정답인지 보다 전문지식을 쌓는 것이 정답인지 자신이 하는 운동에 합당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정민기자

박 총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경실련이 돈이 많아서 쉽다고 했습니까. 풀뿌리 단체보다 상대적으로 좋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활동가들 월급 주기도 어렵습니다. 여유가 있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가 아플지 그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풀뿌리 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 명이 있는 단체에서도 사람이 필요하면 키워야 합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재생산 문제가 시민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 시민사회의 맏형 격인 경실련의 생각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97년 이후 경실련은 끊임없이 내부 추스르기에 힘써 왔다. 그리고 이제 다시 그 날개를 펼쳐 보일 때가 된 듯하다. '구관이 명관‘. 시민운동을 가장 오랫동안 고민해 온 경실련이다. 박 총장의 구상이 침체 일로의 시민운동의 새로운 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민의 신문 박성호 기자>


* 이 인터뷰는 9월 12일 시민의 신문(http://www.ngotimes.net)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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