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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담보대출은 '재앙의 시한폭탄'

홍종학 교수 (경원대 경제학과,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기형적 대출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택을 담보로 하는 거액 대출이면서도 3년이라는 단기 대출이라는 점, 상환능력을 가늠하는 소득이나 신용상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담보만을 믿고 해주는 대출(asset-backed lending)이라는 점, 이자만 상환하다가 마지막에 원금을 전부 상환(balloon payments)해야 하는 대출이라는 점 등은 미국에서는 극히 경계하고 있는 대출의 특징이다. 미국에서 소비자 보호를 위해 철저히 규제하고 있는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의 전형적 형태로 미국의 법무성이나 주택도시개발성, 연방거래위원회 및 각 주 정부의 웹사이트에서 모두 경고하고 있을 정도로 대단히 위험하게 취급하고 있는 대출형태이다. 그런 대출이 급격히 증가하여 가계대출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안정적으로 가계대출을 증가시켜 가계대출을 연착륙시키겠다며 태연자약하고 있는 당국자의 모습에서 필자가 '폭탄돌리기'가 시작되었음을 직감한 것이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미국의 대공황과 일본의 장기불황을 심화시킨 대출 미국의 대공황 이전이나 일본의 거품이 붕괴되기 이전에 현재 국내에서 성행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대출의 특징은 거품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무제한으로 투기자금이 공급된다는 점이다.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담보가액이 증가하여 대출액도 증가하게 된다. 가격이 상승할 때는 이자의 부담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거품이 붕괴되는 순간 이자는 물론 원금의 상환도 힘들어져서 부실채권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건전성이 위협받는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자금회수에 들어가게 되고, 그 결과 자산가격은 다시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소비자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되고 소비는 극심한 침체에 빠지게 된다. 미국인들은 대공황 이후 이런 대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주택담보대출을 모두...

발행일 2005.06.17.

칼럼
건설족과 투기꾼만을 위한 저금리

  홍종학 교수 (경원대 경제학과,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과 양극화 현상에 대해 주의깊게 관찰해 온 학자들은 현재의 경기부진을 해소하는데 저금리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오히려 부동산 가격 폭등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으로 인해 경제의 장기적 건전성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경부는 집요하게 금리인하를 요구했고, 금융통화위원회는 지속적으로 금리를 내렸다. 광풍처럼 불어닥친 부동산 가격 폭등 현상에 서민들은 넋을 잃고 있는데 그들은 여전히 여유롭다. IMF사태로부터 이어진 카드사태, 가계부채 문제, 부동산 폭등, 양극화 심화에 이어 또 어떤 재앙이 찾아올지 두려울 뿐이다.   경기부양효과 없는 금리인하를 지속한 재경부와 금통위   2001년 2월 5%였던 콜금리는 2002년 한차례의 인상을 제외하고 총 8차례가 인하되어 현재의 3.25% 수준까지 내렸지만, 경기부양효과는 크지 않았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2003년 이후에 소비와 투자는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계속 확인되었음에도 재경부는 지속적으로 저금리를 요구했고 그 요구에 맞춰 금융통화위원회는 계속 콜금리를 내렸다.   경기가 나쁠 때 금리를 낮추는 금융정책을 써야 한다는 것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적 원리이다. 그러나 경제학 교과서는 단순히 그 결과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금리를 낮추었을 때 어떤 전파 경로(Transmission Mechanism)를 따라 경기를 부양시키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금리를 낮추면 기업의 투자가 늘고 소비가 증가하는 교과서의 이론이 항상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리는 투자의 기회비용이므로 투자에 영향을 미친다.   소비의 경우에는 첫째, 자산가격이 상승하여 부(wealth)를 증대시키고 이에 따라 소비가 늘어나는 자산효과, 둘째, 금리가 낮아 저축대신에 소비를 하는 대체효과로 인해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반면에 이...

발행일 2005.06.13.

칼럼
부자가 돈안써 문제?그것이 허구인 이유

홍종학 교수 (경원대 경제학과,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지난 2년간의 내수침체가 설비투자와 소비의 부진 탓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경제의 취약점을 지적하면서 설비투자부진과 좌파적 정책, 반기업정서를 연결시켜 마치 대기업이 투자를 줄인 듯이 선전한 것은 거짓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전선동은 대성공을 거두어 여기저기서 재벌에게 특혜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하였고 그 결과 많은 친재벌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한 것에 대해 정부의 각성을 촉구한 바 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취약점인 소비 부진과 관련한 왜곡을 밝히고자 한다. 역시 소비와 관련해서도 노무현정부의 좌파정책과 그것이 촉발한 반부자정서로 인해 부자들이 움츠러들었고, 그 결과 소비를 줄이는 바람에 전반적인 소비가 줄어들었다는 주장들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이른바 부자들의 소비가 살아나야 경기가 회복된다는 부자소비론이다. 다양한 인사들이 돌아가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주장하는 통에 의문의 여지는 없어보였다. 금년 초에 다소 소비가 살아나자 부자들이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는 기사들이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을 장식한 것을 보면, 부자들이 소비를 줄여 전반적인 소비가 부진했다는 신화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 난무하는 경제 현실 그러나 조금만 상식이 있다면 정부가 마음에 안 들어서 부자들이 소비를 줄인다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부자들이 진정 좌파정책을 두려워한다면 소비를 늘릴 것이라는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이 높다. 좌파 정부가 세금을 올리는 등의 이유로 재산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진다면 소비를 더하거나, 아니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릴 것이라는 것이 더 합리적인 예측일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앞선 글(2005.3.17 재경부가 날려버린 1조8천억 원의 비밀-오마이뉴스 홍종학칼럼)에서 밝힌 대로 정부는 지난 2년간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막대한 손실을 감수할 정도였기 때문에 부자들이 재산을 해외에 ...

발행일 2005.06.03.

칼럼
강도 귀족들의 화려한 변신

김성훈 <상지대 총장ㆍ경실련 공동대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제1기 집권 초 선거에 기여가 큰 대기업 오너들을 위해 재산상속세를 인하해주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 고든 무어 인텔 회장, 그리고 IMF 환란 이래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조지 소로스 회장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재벌기업주들이 일제히 이를 반대했다. 오히려 “상속세를 더 많이 거둬 부의 대물림 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무렵 대한민국에서는 재계대표 한분이 유난히 반기업정서가 높은 우리 사회 현상을 개탄하며 너무 억울하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국민의 55% 이상이 재벌과 기업주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부정적인 한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한 말인즉 도대체 우리나라 경제를 누가 이 정도로 끌어올렸으며 이나마 일자리를 누가 마련했느냐는 것이다.   자본주의 본거지인 미국도 지난 세기 초반까지는 국가적으로 반기업정서가 아주 높았다. 오죽했으면 뭇 백성들이 재벌들을 가리켜 ‘강도귀족들(Robber Barons)’이라고 불렀을까. 중소기업과 소상인들, 그리고 노동자ㆍ농민들을 울리는 독과점적 시장지배 행위가 극심했고 경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자원의 난개발과 환경생태계 파괴, 마침내는 금융공황과 경기침체의 원인을 제공했다. 재벌들이 온갖 비리와 부조리에 관련됐고 정경유착 행위가 관행화됐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이들 재벌기업들의 경영철학이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시작했다. 부의 세습화와 대물림 행위부터 사라졌다. 일찍이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강조했던 열심히 기업을 일구고 부를 축적해 성공한 다음, 피땀 흘려 축적한 부를 자식들에게 불로소득으로 대물리지 않고 흔쾌히 사회에 환원하기 시작했다. 임종 때는 의례 자유시장 경쟁에서 낙오한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외 그룹을 구제하기 위해 공공 박애단체들에 유산을 몽땅 기부했다.   나아...

발행일 2005.03.28.

칼럼
재경부를 개혁해야 경제가 산다

필자는 중증 개혁병 환자다. 개혁피로증에 개혁무용론이 판치며 개혁은 그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현실속에서 혼자만 소리높이 개혁을 외치고 있다. 필자에게만 한국경제의 신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탓일까? 과거의 개혁은 잘못된 개혁이며, 그 개혁이 성과도 없이 좌초한 것은 파괴적 개혁의 결과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필자는 새로운 창조적 개혁을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나라도(!)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개혁을 요구해온 이론적 근거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홍종학 교수 (경원대 경제학과,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97년 12월, 난데없는 외환위기에 온 국민은 경악했다. 충격에 휩싸인 국민들에게 도하 각 언론은 재경부(당시 재경원)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기사를 연이어 쏟아냈다. 진로를 예측하기 힘들던 한국경제의 앞길을 헤쳐 나가야 할 재경부에 대한 공격의 화살은 날카로웠다. 어디서 그런 자료를 그리도 쉽게 구했는지 모피아들의 독단과 전횡, 도덕적 해이에 대한 심층 취재 기사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필자는 당시 이러한 보도태도에 반대했다. 위기를 수습한 후, 위기의 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한 후 재경부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다.   크나큰 오산이었다. 외환위기에 대한 청문회는 논란만 거듭하다가, 상대당을 헐뜯기만 하는 반쪽짜리로 끝났다. 재경원은 재경부로 이름만 바꾸었다. 예산을 다루는 부서만 떼어 내 기획예산처를 만드는 것으로 재경부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처방은 끝났다.  금융감독위원회를 새로 만들어 재경부로부터 독립적인 금융감독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시늉만 냈다. 그리곤 모든 것은 예전으로 돌아갔다.   재경부의 관료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정책실패는 계속되고, 각종 거품의 후유증으로 한국경제는 중병에 걸린 환자의 형국이 되어버렸다. 한국의 외환시장은 다시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을...

발행일 2004.10.08.

칼럼
노무현 정부를 떠나 보내며...

필자는 중증 개혁병 환자다. 개혁피로증에 개혁무용론이 판치며 개혁은 그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현실속에서 혼자만 소리높이 개혁을 외치고 있다. 필자에게만 한국경제의 신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탓일까? 과거의 개혁은 잘못된 개혁이며, 그 개혁이 성과도 없이 좌초한 것은 파괴적 개혁의 결과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필자는 새로운 창조적 개혁을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나라도(!)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개혁을 요구해온 이론적 근거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홍종학 교수 (경원대 경제학과,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더 이상 지켜 볼 수가 없다. 통한의 눈물을 삼키며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 한국경제의 희망을 접고, 언제 올지 모르는 진정한 개혁세력의 집권을 다시 기다리며 이별을 고해야 한다. 안녕, 노무현 정부여... 어차피 짝사랑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그랬고, 김대중 정부가 그랬는데, 노무현 정부만이 크게 다르리라고 예상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제발 김영삼, 김대중 정부가 실패한 원인을 분석한 실패백서를 만들자던 필자의 호소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때부터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걸 ‘난 할 수 있다’ 증후군으로 명명해야만 했던 필자의 절박함을 권력의 단 맛에 취한 그들이 느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분노와 증오에 찬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정부 깍두기 머리를 하고 돌아온 대통령을 기대에 차 지켜보던 순간부터 그 이후 절망감으로 감싸일 때까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마도 권력의 속성일 것이다. 국민들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쥐어준 그 순간, 그들은 그 국민을 잊어버렸다. 재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들의 거짓 공세에는 일일이 답하지만, 말없는 중소기업과 영세 상인들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잘못된 위험관리로 부실해진 카드사와 투신사는 한 푼이라도 더 회수하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지만, ...

발행일 2004.08.10.

칼럼
창조적 상상력의 빈곤(2)-일주일만에 끝난 정지선 준수

필자는 중증 개혁병 환자다. 개혁피로증에 개혁무용론이 판치며 개혁은 그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현실속에서 혼자만 소리높이 개혁을 외치고 있다. 필자에게만 한국경제의 신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탓일까? 과거의 개혁은 잘못된 개혁이며, 그 개혁이 성과도 없이 좌초한 것은 파괴적 개혁의 결과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필자는 새로운 창조적 개혁을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나라도(!)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개혁을 요구해온 이론적 근거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홍종학 교수 (경원대 경제학과,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필자가 살던 아파트는 고가도로 밑에서 좌회전을 해서 들어가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전방의 터널에서 나온 차들이 고가를 타지 않으면 아파트 입구 쪽의 가파른 경사로를 타고 내려오게 되어있었다. 가파른 경사로에 신호등도 꽤 멀리 있는 탓에 이 차들은 정지선을 무시하기 일쑤여서, 차가 밀리는 퇴근 시간에는 신호가 바뀌기를 몇 번이나 기다리다가 경적을 울려대며 간신히 좁은 차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서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퇴근시마다 자주 이런 일을 겪으며 짜증이 났지만 길을 막아선 차의 운전자들만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가끔 정지선을 지키는 지혜롭고(!) 선량한 운전자가 있어도 곧 옆 차선에서 비집고 들어오는 탓에 결국은 마찬가지 상황이 되었다. 교통체증이 심한 퇴근시간에 조금 더 가봐야 서있긴 마찬가지인데도 그런 운전자가 대부분이었다. 더욱 짜증나게 하는 것은 파출소가 바로 10미터 밑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그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은 정지선 단속을 하겠다고 나섰다. 놀랍게도 그날 집에 가기 위해 좌회전을 기다리고 있던 필자의 차를 막아서는 차는 없었다. 퇴근 시간에 처음 뻥뚤린 대로를 가로질러 아파트에 들어가며 필자는 기분이 매우 좋았...

발행일 200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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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상상력의 빈곤(1)

필자는 중증 개혁병 환자다. 개혁피로증에 개혁무용론이 판치며 개혁은 그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현실속에서 혼자만 소리높이 개혁을 외치고 있다. 필자에게만 한국경제의 신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탓일까? 과거의 개혁은 잘못된 개혁이며, 그 개혁이 성과도 없이 좌초한 것은 파괴적 개혁의 결과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필자는 새로운 창조적 개혁을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나라도(!)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개혁을 요구해온 이론적 근거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홍종학 교수 (경원대 경제학과,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개혁은 ‘새로운 질서의 창조’를 의미한다. 개혁이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질서를 통해 사람들은 경제사회의 운용방식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갖게 되고, 이러한 인식의 공유가 거래비용을 축소하여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현대 경제사회의 제도나 기구 등은 대부분 이런 질서를 유지하여 거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 경제학의 많은 과제들이 이러한 경제 질서의 중요성과 경제 질서의 효율성을 다루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개혁은 창조적 작업이다. 개혁이 단순히 과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개혁 작업은 단순하다. 그러나 과거의 질서보다 더 우월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내지 못한다면 개혁은 무의미한 것이다. 더욱이 개혁은 새로운 질서를 매우 빠르게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즉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거의 질서가 무너지면 혼돈으로 인한 값비싼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렇게 비용을 치르면서 사람들은 개혁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고,  개혁은 불가능하게 된다.   과거의 질서는 오랜 역사를 통해 유지 발전되어 왔다. 이미 사람들은 과거의 질서에 길들여져 있고,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새로운 질서로 이동하기 어렵다면 현상유지(s...

발행일 2004.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