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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산책] 낙원(駱園)의 밤

[월간경실련 2023년 3,4월호-우리들이야기(4)] 낙원(駱園)의 밤 -곡선과 어둠의 미장센- 최윤석 사회정책국 간사 ‘낙산’에서 ‘낙(駱)’자의 훈은 ‘낙타’이다. 이번 달 ‘혜화산책’ 제목에 쓸만한 말장난 거리를 찾아보다가 알게 됐다. 기껏해야 ‘떨어질 낙(落)’, 더 가봐야 ‘풍류 락(樂)’ 정도나 되겠지 싶었는데 정말로 ‘낙타 낙(駱)’이었을 줄이야. 심지어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아예 대놓고 ‘낙타산(駱駝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실제로 도심에서 뜬금없이 솟은 낙산의 가늘고 긴 능선을 보며 종종 낙타의 봉(峯) 같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렇단다. 그래서 낙타산이란다.1) 2) 참, 조상님들 보시는 눈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 싶다가도,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 사람들이 이역만리 타국에만 살던 낙타를 어떻게 알았을까? 미스터리가 남는다. 그것도 낙산이라는 이 친근한 산의 메타포로 삼을 만큼 익숙했다니. 귀 기울여 정적을 듣는 시간 어쨌거나 다시 낙산에 올랐다. 낙타의 등처럼 생긴 그 능선을. 평지에 조성된 공원이 기껏해야 2차원의 움직임을 허락하는 데에 반해 이 낙타 등 위에서는 3차원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것도 그냥 낙타가 아니라 굽이굽이 척추가 측만한 낙타라서, 한낮의 낙산은 이벤트 밀도3)가 높은 거리처럼 점하고 싶은 지점들이 다채롭고 또 많다. 그러나 밤의 낙산은 그 많은 이야기를 암막 뒤에 숨기고 성곽의 선과 면으로만 남는다. 달도 밝지 않은 하현이었다. 창경궁로를 지나는 자동차들의 타이어 마찰음이 먼 북소리처럼 울리는 즈음이면 그제야 풀벌레들의 비밀스러운 속삭임이, 그리고 그보다 더 내밀한 연인들의 간질거림이 들려온다. 이 은밀한 밤을 겨우내 기다려 왔다. 쿨타임4) 찼다. 밤공기에 아직 겨울의 잔향이 설핏 느껴지는, 이맘때쯤이면 더할 나위 없다. 모처럼 만나는 리즈시절5) 낙산의 전경을 몇 컷의 사진 속에 담아보았다. 이세계로 가는 길 근처 노포(老鋪)에서 치킨에 소주 한잔을 걸쳤다. 문을 나서자 완연...

발행일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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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산책] 경실련 뉴비를 위한 낙산공원 튜토리얼

[월간경실련 2022년 7,8월호-혜화산책] 경실련 뉴비를 위한 낙산공원 튜토리얼 최윤석 기획연대국 간사   혜화산책이 오늘 찾은 곳은 낙산공원입니다. 정확하게는 낙산공원 다녀오는 길이랄까요. 이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따로 설명이 필요하겠냐마는, 굳이 보태자면 낙산은 경실련 동숭동 사무실 바로 뒤에 있는 작지만 매우 유명한 산입니다. 그런데 낙산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들이 눈에 잘 띄지 않다 보니, 사무실 근처에서 종종 사람들에게 ‘낙산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하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에 한번 가보고 싶어도 입구가 어디인지, 얼마나 걸릴지에 대한 감이 없었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신입 입장에서 혹여 길을 잃거나 예상치 못한 일로 사무실 복귀가 늦어질까 두려웠던 게지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평소에 걷는 산책루트를 한번 소개해 볼까 해요. 당시의 저처럼 낙산을 처음 가고자 하는 후배가 있다면 좀 더 쉽게 마음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독자분들 중에서도 그런 분들이 계시겠지요. 여느 때처럼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사무실을 나섭니다. 건물에서 나와 조금만 걸으면 경실련을 품은 동숭3길 주택가를 만납니다. 여기서 어느 쪽으로 갈지 선택을 해야 해요. 시계방향으로 가려면 오른쪽을, 반대 방향으로 가려면 왼쪽을 고르면 됩니다. 저는 오른쪽이 좋아요. 그편이 경사가 더 가파르거든요. 덕분에 오르막길을 오래 걷는 수고로움을 피할 수 있어요. 길을 따라 쭉 가다 보면 주택가답게 작은 놀이터가 하나 나옵니다. 신입 때는 일이 안 풀리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남몰래 찾아 시름을 달래곤 했었지요. 멍하니 앉아 느릿느릿 그네를 움직이고 있으면, 동네 꼬마들이 ‘다 큰 어른이 이 시간에 왜 저러고 있담’ 하는 것 같이 한심한 표정으로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놀이터를 끼고 모퉁이를 돌면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경사진 고갯길이 나오는데 거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발행일 2022.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