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스토리

필터
칼럼
[칼럼] 북한은 왜 그럴까?_김효선 경실련통일협회 인턴

북한은 왜 그럴까?  - 극장국가 북한 이해하기 -   김효선 경실련통일협회 인턴 / 한양대 정책학과 4학년   북한이라는 나라는 정말 이상하다. 특히 피폐한 경제현실 속에서도 '위대한 조국’이니 ‘강성대국’같은 공허한 구호만 외치는 걸 보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아버지에서 아들로, 그리고 다시 손자로 권력이 승계되는, 희귀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어떻게 북한은 경제정책면에서 대단히 실패했음에도 독재에 대한 사회의 조직적인 저항을 받지 않았을까? 혹자는 삼엄한 주민통제, 정신세뇌 등을 통해 이를 달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완벽히 설명되지 않는다.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권익현교수와 정병호교수의 저작인 <극장국가 북한>은 바로 그 ‘다른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북한은 김일성의 강력하지만, 시간적인 한계를 지닌 카리스마 권력을 아들에게 승계한 유일무이한 일을 해내었는데, 이는 예술과 문화, 사상과 이론을 동원한 거대한 ‘승계 드라마’를 만드는 일에 국가의 총력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드라마’는 김일성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한다. 14살의 김일성은 아버지 김형직에게 권총 두 자루를 받는다. 그 의미는 식민치하의 조국을 구하기 위해선 무력이 필요하다는 것. 두 권총을 받고 김일성은 혁명가로서의 길을 내딛게 된다. 1930년대 김일성은 만주 항일 빨치산을 이끈다. 여러 혁혁한 무공을 쌓고, 일제의 수탈로 신음하고 인민들에게 구원의 빛이 된다. 특히 부모 잃은 고아들을 보듬어 안았고, 이들의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었다. 결국 그의 위대한 영도 덕분에 조선민족은 역사상 처음으로 강한 국가를 갖게 되었다. 조선민족은 그의 영도를 찬양하였고, 세계 여러 나라의 지도자 및 주요 인사들도 그의 탁월함에 감명한다.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 때 김일성은 몸소 참전하여 인민군대를 이끈다. 그때 열 살 된 김정일이 그의 막사...

발행일 2014.01.14.

칼럼
[칼럼] 가치관에서 보는 남북문화의 차이와 거리_이병수 건국대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가치관에서 보는 남북문화의 차이와 거리       이 병 수 건국대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I. 들어가는 말   1) 분단이후 남북은 상호 이질적인 체제와 제도를 형성해왔다.   o 남한 :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원리에 입각한 자본주의적 사회변화 진행 o 북한 : 사회주의 이념과 국유화에 입각한 사회주의적 사회변화 추진   2) 일반적으로 말해 정치 경제적 체제가 달라지면, 사회문화적 차원의 삶의 양식 또한 달라진다.   o 특정한 사회의 문화는 사회체제의 성격이나 지배집단의 의도에 따라서 그 골격이 규정되기 때문이다. 남북의 정치권력은 자신의 사회체제에 적합한 문화형태를 구성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제도화하였다. 요컨대 남북 체제의 차이는 남과 북의 사회구성원들이 상이한 사회문화적 삶을 영위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3) 그러나 남북 사이에는 이러한 일반론(체제 차이---->사회문화적 차이)을 상회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o 체제 차이가 사회문화적 차이를 가져온 중요한 요인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분단 후 적대와 증오의 냉전문화를 통해 서로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누적시켜온 분단 상황은 남북의 사회문화적 차이에 적대적 감정의 깊은 골을 덧붙였다. 다시 말해 남북의 사회문화적 차이에는 체제차이에서 비롯된 일반론적 측면과 더불어 분단체제에 의해 유발된 상대의 문화와 가치관에 대한 적대적 평가가 동반되어 있다.   4) 생활문화의 영역 가운데 가치관은 바람직한 행위를 가늠하는 척도(평가기준)로써 공동체 생활에 방향을 제시하는 윤리적 기초이다.   o 크게 근본 가치관(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역사에 대한 견해, 인권에 대한 견해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II 근본 가치체계(집단주의와 개인주의)   1) 남한의 개인주의   ① 체제이념적 가치로서의 개인주의 o 개인주의는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바탕이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바탕이다....

발행일 2013.12.24.

칼럼
[칼럼] 김정은 체제 1년과 핵전략의 변화_김근식 경실련통일협회 운영위원장

  김정은 체제 1년과 핵전략의 변화     김근식 경실련통일협회 운영위원장          2012년 4.13일 국방위 제1위원장 취임으로 공식출범한 김정은 체제가 1년을 경과했다. 지난 1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대내적으로 경제개혁과 정치안정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대외적으로는 김정은 체제가 일관되게 강경과 대결 기조를 고수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 김정은 체제 공식 출범에 맞춰 북한은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4.13일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북한은 12.12일 은하 3호 발사를 재강행했고 미국과 국제사회는 안보리 제재 결의안 통과로 응수했다. 북미 협상 국면은 사라지고 2013년은 시작부터 강경 대결 국면이 지속되었다. 북한은 급기야 3차 핵실험을 진행했고 한반도는 최대의 군사적 긴장 고조와 전쟁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마침내 북한은 김정은 체제 출범 1주년을 맞아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경제건설과 핵무장의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곧이어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보유를 정당화하는 대내적 입법조치마저 단행했다. 비핵화 협상을 전제로 안전보장을 담보받고자 했던 기존의 대미 핵전략이 이제는 ‘세계의 비핵화’ 이전에는 비핵화 협상 불가라는 사실상의 핵보유 장기화 전략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북의 핵문제에 대한 입장은 시종일관 강경일변도로 고조되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만 해도 북미협상의 동력은 유지되었고 어렵사리 북미는 2012년 2.29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나 북한은 그해 4월 김정은 체제 공식출범을 정당화하고 강성대국 선포를 가시화하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이었던 인공위성 발사를 강행해야만 했다. 2.29 합의에 ‘대륙간탄도탄 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일체의 발사 금지’라는 문구 대신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단’으로 표시된 것도 사실은 북이 김정일 체제 출범이라는 대내적 요구에 의해 장거리 로켓을 쏠 수밖에 없음을 염두에 둔...

발행일 2013.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