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윤석열 정부의 재벌특혜와 경제형벌 양형 완화를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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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9.28. 조회수 10212
칼럼

[월간경실련 2022년 9,10월호] [시사포커스(3)]

윤석열 정부의 재벌특혜와 경제형벌 양형 완화를 우려한다


오세형 경제정책국 부장



며칠 전 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시민분께서 특별한 약속도 없이 경실련에 찾아오셨다. 모 재벌그룹 계열사의 하청업체 사장을 오랫동안 맡으셨던 분인데, 30년이 넘는 기간 원청으로부터 받은 갑질횡포, 불공정행위들을 말씀하시면서 그 켜켜이 쌓인 아쉬움을 토로하신 것이다. 이제는 그 업체마저 완전히 청산이 끝나 이젠 빛바랜 명함만이 남은 상황이셨다. 사실 이런 경우 실제 해당 기업이 폐업하는데 원인이 되었던 그 재벌그룹의 갑질문제를 특정하기 쉽지 않고,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거나 증명하기 어려운 내용들로, 공정거래위원회 고발이나, 법률적 구제를 시도하기도 힘든 내용이다. 도와 드릴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는 것이다. 그래도 멀리서부터 발걸음을 하셨던 그분의 마음에는 ‘공정’을 기치로 내건 윤석열 정부가 본인의 설움을 어떤 방식으로라도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으셨던 게 아닐까 한다. 박근혜 정부의 정경유착에 대한 단호한 수사와 기소 그리고 유죄입증 등의 과정에서 본 그 어떤 공정하고 정의로울 것이라는 기대가 윤석열 대통령이 만들어진 원동력이었던 부분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가 사실은 실체가 불분명한 것이었음을 이젠 잘 알 수 있다. 공정한 경쟁환경을 조성하고 재벌을 개혁하여 혁신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윤석열 정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제 조그만 기대조차 내려 놓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특별사면 및 복권을 단행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이었다. 이들은 국정농단 정경유착 범죄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제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들에게 행한 사면과 복권은 공정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기조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었다. 사면과 복권이 갖는 기능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번 중대경제사범들에 대한 사면과 복권은 검찰총장 출신으로 법의 지배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가 스스로 정치적 기반을 무너뜨린 것이다. 재벌 총수들의 구속이나 복역사례에서도 알 수 있지만, 해당 개인의 형사처벌이 기업투자·기업경영·기업가치 등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고, 반대로 총수리 스크가 감소되어 주가 등이 상승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국민경제의 성장과 발전도 개별기업의 임직원에서부터 국가적 단위의 시민전체가 열심히 노력한 바가 큰 것이다. 그럼에서 중대한 경제범죄를 저지를 자들에게 ‘국민경제발전기여’를 말하며 사면 복권을 행한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윤석열 정부는 경제형벌 규정을 전수조사한 뒤 개별형벌들의 필요성과 합리성을 따져보겠다며, 지난 7월 ‘경제 형벌 규정 개선 태스크 포스(TF)’를 출범시키고 향후 운영방안과 제도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사실 그럴싸한 목적이 있는 듯 보이지만, 해당 방침은 공정경제질서를 주요한 가치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다. 경제범죄는 상대적으로 국민의 생명 안전과 관련이 적다고 보고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 등의 도입을 논의한다는 것이다. 보호법익에 따라 사람의 생명·건강·안전 등에 관한 살인·상해·폭행 등의 범죄와 재산권·소유권 등에 대한 재산범죄 또는 경제범죄 등으로 형벌을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산범죄·경제범죄가 일반적인 생명과 신체에 관한 범죄에 비해 실제로 생명과 신체에 덜 위해하다고 보기 어렵다. 재산범죄·경제범죄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생활에 치명적인 침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범죄·경제 범죄는 더욱 악랄해지고 교묘해지고 있기에, 처벌을 강화해야 함에도 오히려 비범죄화나 형량감면에 급급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방향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8월 10일 ‘대기업집단 제도 합리화’라는 명목으로 동일인의 친족범위를 축소하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하여 입법예고했다. 이는 재벌들의 사익편취와 경제력집중 심화를 가져올 위험을 높이는 것이다. 또한 재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공정을 외쳤던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자기모순적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시행령에는 특수관계인에 포함되는 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혈족 6촌·인척 4촌 이내’에서 ‘혈족 4촌·인척 3촌 이내’로 축소하는 내용이 있다. 공정거래법상 특수관 계인제도1)는 대기업집단 정책이 적용되는 기업집단의 범위를 확정하는 것이다. 동일인의 친족범위 축소는 바로 기업집단 정책이 적용되는 기업집단의 축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재벌들의 사익편취와 경제력집중을 심화시키게 된다. 친생자 있는 사실혼 배우자는 새로이 친족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의제하여 일견 친족범위 확대로 재벌 규제를 확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법이나 국세기본법 등에서는 이미 사실혼 배우자를 특수관계인에 포함시키고 있어 공정거래법에서도 더 빨리 포함시켰어야 함에도 늦어진 것이며, 친생자 있는 경우로 한정한 것도 문제로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재벌특혜의 단면들을 돌아보았다. 앞서 윤석열 정부의 공정함이 경제정책에도 미치리라는 기대를 버렸다 했지만, 이제 겨우 출범 5개월 되어가는 정부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싶은 마음도 크다. 앞으로는 중대경제범죄자에 대한 사면 복권을 신중히 해야 한다. 경제범죄자들에 대한 형벌감면에만 집중하지 말고, 경제 범죄에 대한 형벌과 행정처분을 강화하여 공정경제질서 확립에 나서야 한다. 재벌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와 사익편취를 강화하게 될 동일인 친족범위 조정도 중단해야 한다.

이제 겨우 조금 회복하는가 싶은 코로나19 대유행, 기후위기에 따른 탄소중립 요구,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경기침체·물가상승 우려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경제 위기를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혁신이 가능한 경제구조 기반을 만들어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선 대대적인 경제 사회 구조 개혁을 시작해야 하고 그 시작은 재벌개혁이어야 한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윤석열 정부가 실기하지 않고,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위험이 매우 큰 재벌들에 대한 정확하고 치명적인 개혁의 길을 가기를 제발 바란다. 그것이 바로 자유로운 시장경제질서의 기초이다.

1) 동일인 및 동일인 관련자(친족, 계열회사·비영리법인 및 그 임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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