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국가가 방치한 응급의료, 반복되는 길거리 위 사망

관리자
발행일 2023.07.31. 조회수 41399
칼럼

[월간경실련 2023년 7,8월호] [시사포커스(2)]

국가가 방치한 응급의료, 반복되는 길거리 위 사망


- 응급실 뺑뺑이 사건의 구조적 원인 -


가민석 사회정책국 간사


응급의료 제공은 국가의 의무다

응급환자에게 제때 처지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 즉시 생명이 위험하거나 심신상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한다. 시간이 핵심이다. 이를 지키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는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부족해도 최소한의 보건의료가 제공되도록 응급의료기관과 응급의료종사자, 응급이송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응급환자의 골든타임(골든아워)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응급환자가 병원까지 신속하게 도달할 이송체계가 부실하거나, 근처에 병원이 없거나, 병원은 있어도 의사가 없다면 그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와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민낯

응급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갈 길을 잃었다. 병상이 없어서, 전문의가 없어서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거부하는 통에 길거리를 배회하다 골든타임을 놓쳐버린다. 최근 대구에서 추락한 중학생, 서울에서 고열을 앓던 5세 아이, 용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70대가 그렇게 사망했다. 여러 응급실을 전전한 것은 아니지만 국내 최고 병원이라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 사망한 간호사도 즉시 처치해 줄 의사가 없어 골든타임을 넘기고 말았다.


병상과 의사가 없어서 응급환자를 받지 못한다면 그건 명백한 필수·공공의료 공백이다. 최근 필수과 의사 부족과 지역의료 격차 문제가 심각한데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됐고 앞으로 더 심각해질 예정이다. 우리나라 공공의료 비율은 실제로 형편없는 수준이다. 공공병원과 병상 비율로 보았을 때 OECD 평균은 55~70%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10%도 되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감염병 환자의 약 90%를 10%도 되지 않는 공공병원에서 감당하면서 환자가 길거리에 방치되기도 했다. 의사와 병상이 없어 지역을 떠돌면서 사망하기도 했고 이러한 피해는 지방에서 더욱 극심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국 시도별 응급의료 격차 실태 및 개선방안”

경실련은 지역의료 격차와 필수의료 공백 실태를 드러내는 분석발표를 수차례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19일에는 응급의료 인프라와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었는지를 살펴 응급실 뺑뺑이 사건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응급환자는 크게 중증 응급환자와 경증 응급환자로 나눌 수 있다. 모두 응급치료를 요하지만 중증응급환자야말로 즉시 처치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중하며, 뇌졸중, 심근경색, 중증외상환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중증응급환자들에게 최종치료를 제공해야 하는 의료기관이 “권역응급의료센터”(이하 센터)다. 응급의료법에 따라 상급종합병원 및 300병상을 초과하는 종합병원 중에 지정하며, 중증응급환자를 중심으로 타 기관에서 적절히 조치하지 못한 응급환자들을 포함해 최종치료를 제공하는 역할이다. 응급의학전문의 5명 이상, 소아 전담 전문의 1명 이상 확보하도록 인력 기준도 설정하고 있다.


문제는 중증응급환자를 수용해야 할 센터가 충분치 않고, 있어도 여건이 열악하거나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는 점이다. 전국 17개 시도를 중진료권으로 나누면 70개 권역이 된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인구수·이동시간·의료이용률 등을 기준으로 나눈 것으로, 실제 행정구역의 면적만 보더라도 동일한 수준으로 보는 것은 한계가 많다는 점에서 전국을 균일한 분포로 보기에 적합하다. 이러한 70개 중진료권을 기준으로 <표2>를 봤을 때 당장 센터가 없는 권역이 절반이다(34/70). 주요 중증응급환자의 골든타임을 심근경색의 경우 발병 후 2시간 이내, 출혈성·허혈성 뇌졸중은 3시간 이내, 중증 외상은 1시간 이내로 보곤 하는데, 센터가 없는 권역의 지역민들은 사는 곳에 따라 이미 ‘불리한 조건’으로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센터가 있는 권역에도 허수가 존재한다. 응급상황은 언제 벌어질지 모르고, 벌어진다면 제때 의료진을 만나서 응급처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응급 상황에 24시간 대응할 수 있도록 필수진료과 전문의를 5인 이상 확보하지 못한 센터가 다수다(최소 5인이 확보되어야 주 1회 당직을 통해 24시간 대응체계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음. 응급의학과 법정 최소기준도 5인). 3대 중증응급환자 중 뇌졸중 환자에는 신경외과, 심근경색 환자에는 흉부외과, 중증외상 환자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각각 필수적이고, 소아응급환자에게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대응되어야 한다. 그런데 위 <표2>와 같이 센터로 지정되었음에도 5인 기준을 채우지 못한 기관도 상당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응급의학과를 제외한 신경외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에 대한 인력기준은 없어 위반사항은 아니겠으나, 중증응급환자들에게 최종치료를 제공해야 하는 센터에서도 3대 주요 응급질환에 대해 적절히 대응할 환경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한 한계다.


기본 인프라와 인력이 부족한 상황인데, 지역별 격차를 따지면 의료취약지의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지역별로 인구당 전문의 수가 적고, 중진료권별 24시간 대응이 가능한 센터가 부족하며, 더 나아가 중증응급환자의 사망률이 높은 지역을 종합해보니, 경북·충남·전남이었다. 센터가 아예 없는 지역도 있다 보니 당연한 결과인데, 이 지역은 공통적으로 국립의과대학이 없어 필수의료 인력 수급이 어렵고 적정 수준을 갖춘 의료기관이 부족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러모로 우리나라 필수·공공의료의 공백이 일부 지역민들에게는 훨씬 더 심각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장단기 대책이 모두 필요하다

센터가 중증응급환자에 대한 최종치료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병원 내 전문의를 확보해야 한다. 현재 응급의료법령에서는 응급의학과 5인 이상 확보기준을 세우고 있고 이에 따라 최소한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지만, 별다른 기준이 없는 신경외과나 흉부외과 등 진료과에서는 인력 공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골든타임 내 치료가 필수적인 질환 관련 진료과의 전문의를 확보하기 위해 인력 기준을 개선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 및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병상이 없어서” 중증응급환자를 받을 수 없는 이유는, 센터 내 경증환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센터 내원 환자의 83.5%가 중증이 아닌 응급환자다. 경증 응급환자는 본래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올 것이 아니라, 별도 기준과 역할을 가진 ‘지역 응급의료센터’로 가야 한다. 중증응급환자의 뺑뺑이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권역센터에서는 중증응급환자를 거부할 수 없도록 강제배치하고, 지역센터가 중증 이외 응급환자를 담당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비어 있는 지역에 센터를 당연 지정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센터는 의료기관이 신청하고 국가에서 지정하는 방식이다. 즉 중증응급환자를 볼 여력이 충분해도 신청하지 않으면 센터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다. 올해 기준으로 살펴본 결과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의료기관 15개소가 센터로 즉각 전환이 가능함에도 지역센터에 머물러 있었다. 중증응급환자에 대한 24시간 대응이 가능한 의료기관이 센터급으로 당연 지정되도록 하여 진료권별 공백을 즉시 메우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 대책으로는 한계가 많다. 의사를 채우려 해도 구할 수 없고, 센터급으로 전환할 의료기관도 주로 수도권 및 주요 광역시에만 몰려있기 때문이다. 결국 의료취약지의 응급환자들은 여전히 의료공백 속에 놓일 수밖에 없다. 또다시 ‘수가’를 올리는 게 해법이라는 주장이 고개를 내밀지만, 이는 여러 단기 대책 중 하나일 뿐이다. 건강보험 수가는 기본적으로 의료행위가 발생해야 적용된다. 의료취약지에는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기관 자체가 없는데 아무리 수가를 올린다 한들 우리나라에 뿌리 깊은 필수의료 공백과 지역 격차를 해결할 리는 만무하다.


결국 의사 자체가 부족하고, 필수 진료과나 의료 취약지에는 특히 더 부족하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18년째 동결된 의대 정원을 확대해 의사 수를 충분히 확보하고, 단순 증원이 아닌 국가가 필요한 곳에 적절히 배치하기 위한 새로운 의사양성체계를 수반해 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실련이 공공의대를 신설하고 의대정원을 최소 1,000명 확대하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 같은 대안을 10년 전에도, 10년 걸린다며 미뤘다. 우리나라에 명백히 존재하는 의료문제를 애써 외면한 채, 수가 인상 가지고 진료과 사이 제로섬 게임을 반복했고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앞으로 10년에 대한 기로에 놓인 지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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