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를 이어줄 ㅊㅊㅊ] 김종철 교수, 그의 발언이 그립다

관리자
발행일 2022.06.02. 조회수 11117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2년 5,6월호-당신과 나를 이어줄 ㅊㅊㅊ]

김종철 교수, 그의 발언이 그립다


조진석 나와우리+책방이음 대표


 

며칠 전 대학 졸업 후, 20년 만에 후배를 만났습니다. 저와의 인연은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날의 만남을 그는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인권 책을 선물 받아 읽어보았노라고, 그때 참여한 생태·환경강의가 지금도 떠오른다고, 같이 준비한 영화제도 생각난다고, 마치 어제 일처럼 제게 재잘대면서 이야기하더군요. 저는 오늘 일처럼 모든 것이 느껴지고, 수많은 사람과 함께 했던 일이기에 특별나게 생각하지 못한 것을 그만 후배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20여 년 동안 인권, 평화, 생태·환경 분야 문제를 풀고자 노력해왔고 지난 10년의 세월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출판, 서점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심하며 살아왔기에 이와 분리된 삶을 생각할 수도 상상할 수 도 없을 정도로 사회 문제를 푸는 것이 곧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여 년 동안 과연 인권이 얼마나 증진되었고, 평화는 공고화되었으며, 생태·환경은 개선되었을까, 문득 뒤돌아보면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그다지 큰 성과가 있었을까 싶은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과연 출판의 환경은 나아지고 서점 경영은 안정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 또한 그렇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대학 1학년 때 통학버스를 황급히 타던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1교시 수업 시간에 맞추려고 서둘러 나왔지만, 이것저것 준비한다고 조금 늦게 정류장에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학생이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 넋을 잃은 채 서 있는데 마침 대학 로고가 새겨진 버스가 다가오는 걸 보고서 필사적으로 버스를 세우고서 탔는데, 알고 보니 교원 출근 버스였습니다.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이 모두 교수였다는. 좌석에 앉지도 못한 채 1년 시간 넘도록 서가면서 교수들의 찬 시선과 차가운 말을 들었습니다. “학생이 어디 버릇없이 교수 버스에 탈 수 있어!”, “요즘 학생들은 아래, 위도 없구만”. 버스 운전사는 지각생 대학생을 안타깝게 느껴서 태워줬는데 오히려 그분이 난감해하는 걸 대학 1학년이어도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버스에서 다급히 내리면서 다시 이 버스를 타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학교 다니는 내내 버스 타 고 오는 내내 겪은 수모로 인해서 머릿속에 의문점은 커져만 갔습니다.

왜 학생이 타는 통학버스와 교수가 타는 출근 버스가 별도로 있어야 하는가. 학생은 버스 요금을 내는데 왜 교수는 내지 않는가. 설사 출근 버스에 학생이 탄다고 해서 그것이 그렇게 비난받아야 하는 일인가. 대학 1학년이 버스를 잘못 탔다면, 자세히 일러주는 것이 교육 아닐까. 당시 경황이 없어 묻지 못했던 질문이 하나둘씩 떠올랐습니다. 이런 의문에 더해서, 이 대학은 박근혜(우리 모두가 아는, 탄핵당한 바로 그 대통령)이사장이 대학 입시 비리 등 갖가지 패악을 저질러서 대학의 학생, 교수가 합심해서 결국 이사장직을 사퇴한 대학이었다. 그이와 관계된 이사들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대학 정상화를 목적으로 교육부에서 임시 이사를 파견한 곳이었다. 법인의 전입금이 미미하고, 정부의 재정 지원도 많지 않아서 대학의 재정 대부분은 학생의 등록금으로 충당하는 형편이었다.

부패한 구재단과 재단의 선임으로 총장직을 수행하는 이를 내쫓고서 선거를 통해 총장을 선출했다. 오로지 투표권은 교수에게만 주어졌다. 그것도 정규직 교수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재단의 하명으로 임명된 총장이 아니고 정부가 선임한 것이 아니고, 대학의 교수들이 총장을 선출했다. 이걸 그 당시에는 ‘민주적’이라고 인식했다. 학생(사실은 학부모의)의 재정 기여가 절대적인데도 학생에겐 단 한 표도 주어지지 않았는데도 ‘민주 총장’으로 불렸다. 1980년대 말의 대학 풍경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처럼, 재단에서 총장을 임명하거나 정부에서 총장 선임을 결정하거나 여전히 교수가 총장 선출에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교수와 대학원생이 있는 자리에서, 김종철 교수는 “학생 한 명이 교수들 출근 버스를 탔는데 그렇게 교수들이 못마땅해하더라고. 가르치는 교수나 배우는 학생이라 학교를 가야 하는 목적은 매한가지이니 같이 가면 어떠냐고, 오히려 같이 타고 가는 것이 교육으로 맞지 않느냐고” 이야기하는 걸 곁에서 들었습니다. 가끔 출근 버스가 통학버스인 줄 알고서 타는 학생이 있었던가 봅니다. 출근 버스의 다른 문제점은 지적하지 않아도 그 버스에 학생과 같이 타야 한다는 생각은 다른 교수에게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생각은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백반집을 즐겨 찾은 것에서도 학생과 교수 간의 분별하는 마음이 없음을 알 수 있었으며 대화 역시 격의 없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등이 단지 선구호만으로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교수만의 총장 선출이 아니라,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과 직원과 강사를 포함해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은 분들이 여러분이지만 대학과 이해관계에 있는 지역주민까지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은 흔히 들을 수 있는 주장은 아니지 않을까요. 대학이 단지 대학의 구성원만의 독자적인 공간이 아니라, 지역에 기반을 두고서 이해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권리도 담겨야 한다는 점을 강변하는 대학교수는 김종철 교수를 빼고 아직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런 발상이, 선출의 과정상 기득권을 대표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될 수밖에 없는 국회의 한계를 이야기하고 이를 보완하고 어쩌면 본질적인 자치가 될 수 있도록 시민이 주체가 되는 시민의회를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연일 민주주의 퇴행으로 일로매진할 때, “지금 문재인 정부에 필요한 것은 성장 논리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민초들의 삶의 궁극적 근거, 즉 지역의 경제와 문화를 살리는 방향으로 급진적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그 리고 지역경제와 문화의 재생에는 소농을 장려하고 에너지 자급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대하는 것이 첫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발언』 Ⅲ, p.181)고 썼지만 결국 문재인 정부는 그의 출신 지역의 경제와 문화조차 살리지 못했고, 세계적인 곡물 대란을 앞둔 이 시점까지 식량 자급의 방법을 내놓지 못하였고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공급의 불안정성과 무기화를 해결책으로 에너지 자급의 길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지역 경제 소생과 식량과 에너지 자립’은 추구해야 할 방향입니다.

영시(英詩) 수업 시간에 정작 영시를 배울 수 없었다는 하소연을 영문학과 학생들이 하고, 대학원생들의 진로를 적극적으로 열어주지 않는다는 호소와 어떤 사안에 비타협적인 태도로 논의를 어렵게 하고, 안하무인의 태도로 대학 내에 수많은 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학과 교육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점은 또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이 김종철 교수를 생태원리주의자라고 여깁니다. 김종철 교수가 언급한 기후변화, 직접(숙의)민주주의, 식량과 에너지 자립, 기본소득, 시민의회, 비례대표제, 원자력의 문제점, 한미FTA의 문제점, 지역공동체, 지역화폐 등등이 과연 급진적이고 원론적인 주장일까요. 오히려 상식적인 주장이 아닌가요. 변화하는 세계, 위험으로 치닫는 세상에 경보기처럼 울리는 주장을 이젠 책으로밖에 만날 수 없습니다. 칼칼한 목소리와 꼼꼼한 글쓰기를 다시 만날 수 없음에 나날이 안타까움만 더합니다.




[당신과 나를 이어줄 ㅊㅊㅊ]은 책방이음의 조진석 대표가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책방이음은 시민단체 나와우리에서 비영리 공익 목적으로 운영하는 서점입니다.

첨부파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