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동서양의 꽃 작명법

회원미디어팀
발행일 2024.05.30. 조회수 15866
칼럼

[월간경실련 2024년 5,6월호][전문가칼럼]

동서양의 꽃 작명법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이제 계절은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봄꽃들이 지고 이제 여름꽃들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있다. 동백꽃과 매화로부터 시작하여 산수유, 목련, 벚꽃이 활짝 피었다 져버리고 개나리와 진달래, 유채꽃, 철쭉이 이어받더니 이제 봄과 함께 종말을 고한다.

 우리말의 봄꽃의 이름들은 참 다채롭다. 더러는 꽃이 피는 계절을 알려주기도 하고(동백), 더러는 꽃이 피는 장소를 알려 주기도 하며(산수유, 목련), 때로는 꽃의 특성을(개나리, 진달래) 알려주기도 한다.

 우선 ‘동백’(冬柏, 冬栢)은 ‘겨울 동(冬), 측백 백柏’으로 구성되어, 겨울에 피는 측백나무라는 뜻을 보이고 있다. 봄을 준비하는 시기에 제일 먼저 피는 꽃이라는 뜻이다.

 ‘산수유’(山茱萸)는 ‘산에서 나는 수유’(쉬나무의 자주색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씀)를 뜻한다. ‘산딸기, 산머루, 산나리, 산달래, 산냉이, 산국화, 산버들, 산철쭉’ 등의 이름에서도 ‘산’(山)의 쓰임을 볼 수 있다.

 물론 들에서 난 것을 알리는 ‘들장미, 들국화, 들꽃, 들모란, 들뽕나무’ 등도 있지만, 이는 사실 꼭 ‘들’이라기보다는 (기른 것이 아닌) ‘야생의’ 또는 ‘저절로 난’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들’은 넓은 땅을 가리키는 말인데, ‘땅’과 어원이 같다. 그리고 ‘들’을 집앞으로 옮긴 것이 ‘뜰’이다.

 또 ‘목련’(木蓮)은 ‘나무에 핀 연꽃’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인데, 연꽃과 생물학적으로는 달라도 모양이 비슷한 것을 근거로 하여 지은 참 멋진 이름이다. 연꽃과 모양이 비슷하면서 이름도 비슷한 꽃이 또 있다. ‘수련’(睡蓮)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물 수(水)’가 아니라 ‘졸음 수’(睡) 자를 쓴다는 점이다. 곧 '잠자는 연꽃'이라는 뜻이다. 낮에는 꽃잎을 여러 차례 활짝 열지만 기온이 내려가는 밤에는 완전히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한편 개나리와 진달래는 그 명칭에 있어 대조를 이룬다. 각각 ‘개-’와 ‘진-’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접두사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나리의 ‘개-’는 ‘야생하는, 품질이 낮은’을 뜻하는 접두사로서, ‘진달래’의 ‘진짜의, 품질이 좋은’을 뜻하는 ‘진-’(眞)과 대조를 이룬다. ‘진-’ 대신에 ‘참-’을 쓰기도 한다.

 ‘나리’는 백합(百合)을 뜻하는 순우리말인데, 여기에 ‘개’가 붙어 ‘야생의 나리’라는 뜻의 ‘개나리’가 된 것이다. 여기에 ‘참-’이 붙은 것이 ‘참나리’로서 국내 자생 나리 중에서 가장 흔한 주황색 종이다. 사실 개나리는 백합과도 아니고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다른 꽃인데도 공연히 ‘개-’을 붙이는 바람에 억울하게 이름상으로는 평가절하된 느낌이다. 그러나 실제 아름다움에는 차이가 없다.

 ‘진달래’는 이름 그대로 ‘달래’에 ‘진-’이 붙은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달래’는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이라고 할 때의 수선화과(Amaryllidaceae)의 부추속에 속하는 매콤한 맛의 그 ‘달래’는 아니다. 현대어에 들어와 두 단어의 발음과 표기가 같아진 동음이의어이다.

 진달래와 매우 비슷하여 흔히 구별을 잘 못하는 꽃이 철쭉이다. 철쭉은 한자어 ‘척촉’(躑躅)에서 온 말인데, ‘텩툑’, ‘텩튝’, ‘텰듁’으로 변화를 거치다가 구개음화를 일으켜 ‘쳘듁’이 되고 경음화가 적용되어 ‘철쭉’에 이르렀다. 진달래와 철쭉은 구분이 쉽지 않아 흔히 혼용되어 왔고, 지역에 따라 ‘진달래’를 ‘참꽃’이라 하고 ‘철쭉’을 ‘진달래’라고 하는 곳도 있다. 둘 다 ‘참-’, ‘진-’을 붙여 동일한 대우를 해주는 셈이다. 반면에 어떤 지역에서는 서열(?)을 두어 이름 그대로 ‘진(眞)달래’를 ‘참꽃’이라 하고 ‘철쭉’을 ‘개꽃’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철쭉을 ‘개꽃’이라고 하는 이유는 어쩌면 먹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뇌피셜(?)을 부려 본다. 진달래는 먹을 수가 있어서 찹쌀가루를 반죽한 것에 붙여 기름에 지진 ‘화전’(花煎)이라고 하는 떡을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철쭉은 독성이 있어 먹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봄꽃 이름들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성을 고려하여 명명하는 반면에 서양의 꽃 이름은 우리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어진다.

 예를 들어 목련은 영어로 magnolia(매그놀리아)인데, 우선 듣기에는 멋있는 것 같지만 그 뜻을 알고 보면 참 재미없다. 프랑스 의사이자 식물학자 피에르 마뇰(Pierre Magnol, 1638-1715)의 이름 Magnol(마뇰)에다 추상명사화 접미사 -ia(이렇게 끝나는 꽃이름이 많기에)를 붙여서 만든 것이다. 식물의 체계적 분류를 고안해 낸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란다. 그리고 개나리는 영어로 forsythia(퍼시시아)인데, 이는 중국에서 이 꽃의 관목을 들여온 스코틀랜드의 원예학자 윌리엄 퍼시스(William Forsyth, 1737-1804)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렇게 명명한 것이었다.

 그런데 서양의 꽃에는 이렇게 사람의 이름을 이용한 것이 참 많다. 예컨대 begonia(베고니아)도 식물학에 많은 후원을 했던 프랑스령 캐나다의 총독이었던 미셸 베공(Michel Bégon : 1638-1710)의 이름을 딴 것이고, 백일초(百日草)를 뜻하는 zinnia(지니아)도 독일의 식물학 교수 요한 고트프리트 친(Johann Gottfried Zinn : 1727-1759)에게서 딴 것이다. dahlia(다알리아)도 스웨덴의 식물학자 안데르스 다알(Anders Dahl)의 이름을 따 지었다. 그는 위대한 식물학자 린네(Linnaeus)의 제자였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의 꽃에는 이처럼 학자의 이름을 넣어 명명한 것이 없다. 그저 모양과 색깔과 얽힌 사연 같은 것으로 이름을 지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꽃 이름에 사람 이름이 들어간 꽃이 하나 있기는 한데, 미스김라일락’이 그것이다. 1947년 미국의 식물 채집가인 엘윈 M. 미더(Elwin M. Meader)가 북한산에서 야생의 털개회나무(수수꽃다리) 종자를 채취해 미국으로 가져간 뒤 개량하여 만든 품종이다. 그가 한국 근무 당시에 같은 사무실에서 자료 정리를 도왔던 여직원인 미스김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인이 붙인 이름이 아니다. 역시 서양인의 작명법이다.

 또 하나, ‘영산홍’(映山紅)을 연산군(燕山君)이 이 꽃을 좋아하여 붙였다는 설도 있기는 하다.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일기에 연산군이 영산홍 1만 그루를 후원에 심으라고 지시했다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 이미 '영산홍'이라는 이름으로 그 꽃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꽃 이름의 기원을 연산군으로 볼 수 없다.

 내친김에 하나 더 들자면, ‘박태기나무’가 우리말에서 사람 이름을 소재로 한 꽃 이름 작명의 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완벽한 민간어원설이다. ‘박태기’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꽃 모양이 마치 밥알을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중부지방 사투리로 밥알을 ‘밥티기’라고 부르는 데에서 연유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태기나무는 나무들 중에서 가장 많은 꽃을 피우는 종으로 일컬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도 수많은 밥티기가 잘 연상된다.

 그렇다면 서양인들은 왜 그렇게 꽃 이름에 사람 이름을 넣는 것일까?

 나는 이것이, 서양인들이 자연을 항상 정복의 대상으로만 접근하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꽃 이름뿐 아니라, 별을 발견하는 등의 업적이 있거나(1134 케플러, 프톨레마이오스 성단), 자연법칙을 발견하거나(보일-샤를의 법칙, 아보가드로 법칙, 아르키메데스의 원리) 원소를 발견하거나(퀴륨, 아니슈타이늄, 노벨륨), 병의 원인을 알게 되거나(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치료법을 발명한 때에도(하이네-메딘병) 그들은 자연을 정복한 것을 기념하여 그 업적을 이룬 사람의 이름을 넣거나 혹은 해당 분야의 위대한 학자의 이름을 넣는 예가 부지기수로 많다.

 하지만 자연(自然)은 글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인간의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도 꽃처럼 한때 피었다가 사라진다. 그저 자연 내의 똑같은 존재이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면 현재 우리가 앓고 있는 모든 환경 문제가 풀릴 수 있다.

 우리 동양이 그동안 지나치게 서유럽(서구)의 문명에 침탈되어 ‘서구화’되었는데, 이제는 인간 중심의 서구를 자연 중심의 동양 문화로 이끌어 ‘동양화’시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댓글 (1)

"자연은 글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인간의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넘 공감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