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대통령과 욕, 비어, 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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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9.29. 조회수 12082
칼럼

[월간경실련 2022년 9,10월호-우리들이야기(2)]

대통령과 욕, 비어, 속어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지난 9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7차 재정공약회의 참석 후 회의장을 나오며 한 언행이 중계되었는데, 그 내용은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로 알려졌다. 이를 언론은 욕설 혹은 비속어 파동이라는 말로 전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의 언행이라 그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다. 국격의 실추, 국제적 망신 등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이번 파동에 대해 대통령실 및 여당 측과 야당 측의 입장 차이가 크다. 특이한 점은, 대통령실과 여당은 국회가 미국의 의회를 말하는지 한국의 국회를 말하는 것인지의 문제와 ‘바이든’이라는 말을 했는지 혹은 다른 단어였는지 진위를 가리는 데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야당은 대통령이 욕설 혹은 비속어를 썼다는 사실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욕설과 비속어에 관한 개념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욕설’ 혹은 ‘욕’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는, 사전에 나오는 대로,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 또는 남을 저주하는 말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누가 누구에게 욕을 하다’처럼 반드시 ‘~에게’라는 대상이 있다. 그저 혼자 하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누군가에게 향하는 행위이다. 바로 이때문에 욕을 하면 상대방이 모욕감을 느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에게 ‘꼴통’이라고 하거나, 내가 한 말에 대해 ‘개소리’라고 하면 나는 즉각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강도(强度)가 비교적 약한 욕에 해당한다. ‘쪼다’, ‘꼴깝을 떨다’, ‘아가리’와 같은 단어나 표현들은 조금 더 강도가 세고, ‘새X’ ‘개새X’, ‘X할 놈’ 등 더욱 더 심한 욕이 된다. 강도의 차이가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모두 인격을 모독하는 말, 즉 ‘모욕어’이다.

‘욕’의 둘째 의미는, (꼭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이 아니라) 점잖지 못하고 천한 말이다. 흔히 ‘상소리’, ‘상말’이라고 하는 말로서, 언어학에서는 이를 ‘비어’(卑語, vulgarism)라고 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욕을 하지 말고 고운말을 써라.’라고 할 때의 ‘욕’이 바로 이 비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아, 일이 개같이 돼 버렸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상대방을 모욕하려는 의도 없이, 단지 본인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천박한 표현이다. ‘(상황이) ㅈ같이 (돼 버렸네.’, ‘(아) x팔 이게 뭐 지?’, ‘(그 사람이 일을) 깽판치는 바람에...’ 등과 같은 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상대의 인격을 모욕하려는 의도로 말을 할 때는 많은 경우 이 ‘비어’를 이용한다. 그러므로 모욕어와 비어가 상당 부분 중첩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모욕어가 비어는 아니며, 모든 비어가 모욕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둘은 구분될 수 있다. 어쨌든 ‘비어’는 ‘모욕어’와 달리, 상대방을 모욕하려는 의도가 있는 말은 아니지만, 그 말을 쓰는 사람 자신이 천한 사람이 된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할 말이다. 언론에 서는 ‘비속어’라는 말로 ‘비어’와 ‘속어’를 함께 아우르는 말을 흔히 쓰는데, 언어학적으로는 이 둘은 구분되는 개념이다.

한편 ‘속어’는 통속적으로 쓰는 저속한 말로서, ‘창피하다’라는 의미로 쓰는 ‘쪽팔리다’나 ‘잘못되었다’를 뜻하 는 ‘(일이) 글러 먹었다’, ‘그만두다’를 뜻하는 ‘(공부를) 때려치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속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쓸 수 없으며 친한 사이에서 일반 대중이 널리 쓰는 표현이어서 외국어를 학습할 때는 반드시 배워야 하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영어의 슬랭(slang)을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바로 이 슬랭이 속어이다.

반면에 비어는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금기시되는 말을 가리킨다. 많은 경우 성(性)이나 배설 등과 관련되는 말로서 그 천박한 느낌이 너무 심하여, 한 마디로 ‘쓰면 안 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 말이다. 바로 이 때문에 언론에서 단어의 온전한 형태를 쓰지 않고, 적어도 일부를 ‘XX’ 혹은 ‘**’ 등으로 표기하는 방식을 관행으로 취하고 있다. 한국어 뉴스에서도 ‘이 XX들’, 영어 뉴스에서도 ‘those f***ers’라고 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처럼 금기시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비어를 쓰게 되면, 자신의 품격을 실추시킴은 물론이고, 듣는 상대방도 불쾌한 느낌을 갖게 되어 상대에 대한 예의에도 어긋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비어는 상대가 윗사람이라면 사용이 불가능하고, 아랫사람이라도 불쾌감을 조성함으로써 리더로 따르려는 마음, 즉 존경심에 손상을 초래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친한 사이의 경우 친근감의 표현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상대가 동의하는 경우에 한하며, 아무리 이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품격이 실추함은 불가피하다.

이번에 대통령이 쓴 단어들 가운데 ‘새X’는 우선 ‘모욕어’에 해당하는 말로서, 그 대상이 미국의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었다. 이 점 때문에 대통령실에서는 이 말의 대상이 미국 국회가 아니라 국내의 야당 의원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야당 국회의원에게 사과하는 말을 함께 표현했어야 할 텐데 그것이 없었다.

그런데 ‘새X’는 ‘모욕어’이었을 뿐 아니라 ‘비어’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이 말을 한 대통령의 품격이 실추되었는데, 대통령은 국가원수의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의 품격도 함께 실추된 것이 문제이다. 국민들이 자존심이 상하고 분노를 느끼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이다.

그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어휘는 ‘쪽팔리다’라는 속어인데,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일반 대중이 쓰는 저속하고 교양 없는 표현이므로, 국가 원수가 입에 올리는 말로는 적절하지 않다. 이를 흔히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문제 삼을 것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아무렇지도 않은 발언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일반 대중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쪽팔려서 어떡하냐’는 ‘체면 상해서 어떡하냐’로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한편 대통령실에서는 ‘바이든(이)’의 부분을 ‘날리면’이었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계획이나 안(案), 프로젝트 등을) 무효화 하다’라는 말이 있음에도 굳이 ‘날리다’라는 속어를 쓰는 격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대통령실은 품격은 고려 대상에 넣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의 실언은 카메라가 촬영하고 있는 줄 모르고 튀어나온 말이다. 대통령으로서 기대되는 적절한 언어 사용은 아니어서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것이었지만, 이후에 이어진 대통령실과 여당 의원들의 대응은 더욱 커다란 실망을 주는 것이었다. 대통령실의 홍보수석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다시 한 번 들어봐 주십시오.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장은 언어학적으로 세 가지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

우선 문법적 오류로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날리면(이) 쪽팔려서 어떻게 하나?"라고 제시된 문장은 매우 자연스럽지 못하다. ‘승인 안 해주면’과 ‘날리면’의 연결이 부자연스럽고 동어반복에 해당한다.

두번째는 음조론(prosody)적 오류인데, 이 같은 의미라면, '쪽팔리다'의 주어가 본인이 되어, 야당의원들이 승인 안 해주면 자신의 체면이 상하는 것을 걱정하는 말인데, 억양은 왜 비웃는 억양이고 얼굴은 왜 희희낙락 하는 표정인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셋째로는 발화시점의 오류인데, 만일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왜 즉각 발표하지 않고 하루 종일 침묵하다 밤 늦게 발표했을까 하는 것이다. 취재진이 대통령에 직접 여쭙고 확인 받은 것이냐고 물었을 때 이에 대한 홍보수석의 답변도 즉답 대신 ‘저는 대통령실 홍보수석이다.’이었기에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대통령은 실언이 나온 직후, 언어 사용에 다소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분명하게 인정하고, 자신의 발언은 언어 사용상의 문제일 뿐, 폄하나 무시의 의도를 가지는 것이 아니었다고 이해를 촉구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어떠한 사과도 없이 주변에서 발언 내용의 진위를 따지도록 방치했다.

발언 가운데 모욕의 대상이 미국 국회의원과 바이든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데에만 신경을 쓴 반면, 대통령과 국가의 품격에는 아무런 신경도 안 쓰는 모습은 크게 실망스러웠다. 이 과정에서 국내의 야당 의원들과 국민 전체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다는 점도 매우 유감스럽다.

대통령은 언어의 품격을, 대통령실은 정부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런데 그 품격은 '국가와 국민의' 품격이라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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