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안전’, ‘안보’, ‘보안’이 모두 security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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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05.31. 조회수 37076
칼럼

[월간경실련 2023년 5,6월호] [전문가칼럼]

‘안전’, ‘안보’, ‘보안’이 모두 security인 이유?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뉴스를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기계에 손이 끼이고, 하역 중 사고로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도로와 지하철, 그리고 건설현장에서 끊임없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 곳곳에서 항상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안전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고, 집단이 해체되지 않고 존속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그래서 안전 수칙을 마련하고 안전 교육을 시키며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하도록 사회 전반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말의 ‘안전’(安全)이라는 말은 그 쓰임의 영역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흥미로운 사실이 관찰된다. ‘안전’이 국가와 결합할 때는 특별히 ‘안보’(安保)라는 말을 즐겨 쓴다. ‘국가 안보’, ‘안보 협력’, ‘안보 태세 확립’ 등과 같이 말이다. 물론 ‘안전 보장’의 줄임말로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정보 통신 분야로 가면 ‘보안’(保安)이라는 말로 이름이 바뀐다. ‘컴퓨터 보안’, ‘컴퓨터 보안업체’, ‘사이버 보안’ 등과 같이 흔히 쓰인다. 왜 그럴까? 이때의 ‘보안’은 비밀을 유지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물리적인 위험뿐 아니라 조직 내의 비밀을 빼내 가려는 위험도 그 조직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비밀 유지로서의 ‘보안’은 ‘보안 유지’, ‘보안상의 이유로’, ‘보안에 철저를 기하다’, ‘기밀문서의 보안에 구멍이 뚫렸다’ 등과 같이 쓰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보안이라는 말은 예전부터 많이 쓰였는데, 그 의미는 ‘사회의 안전을 위한 질서의 보호’라는 뜻이었다. 즉 ‘치안’이라는 개념이었다. 이 같은 의미는 ‘보안관’, ‘보안요원’, ‘보안부대’, ‘보안 사령부’ 등에서 볼 수 있다.


‘안전’이건 ‘안보’건 ‘보안’이건 그 중심은 역시 ‘안전’이다. 사실 영어에서는 이 세 단어의 의미가 모두 security 하나로 실현되는 것을 보아도 그 의미가 근본적으로 하나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안전’의 핵심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위험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 다. ‘안전’은 ‘편안 안’(安)에 ‘온전할 전’(全)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곧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육체적으로 온전하다(즉 다친 곳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안전을 ‘위험이 없는 상태’라고 직접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육체적으로 온전하다는, (안전으로 인한) 결과를 통해 우회적으로 개념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의 security는 어떻게 개념화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우리말과 똑같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개념화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영어의 security의 형용사형 secure는 라틴어 securus에서 온 말인데, 이는 ‘~이 없는’을 뜻하는 se와 ‘걱정’을 뜻하는 cura가 결합되어 형성된 복합어이다. 즉 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안전하다는 상태를 그 결과 찾아오는 ‘걱정이 없는 상태’로 개념화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안전을 그 자체가 아니라 안전으로 인해 결과하는 상태, 즉 편안하거나 걱정이 없는 상태로 정의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하겠다.


그런데 걱정을 나타내는 라틴어 명사 cura는 이후 많은 의미 확장의 요람이 되었다. 걱정하는 마음은 ‘돌보다’는 뜻의 동사 curare를 파생시켰다. 사람을 걱정하다 보면 자연히 그를 돌보게 되므로 매우 자연스러운 의미의 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아픈 사람을 ‘돌본다’면 그 사람을 다시 건강한 상태로 회복하게 하려는 일을 하게 될 것이므로, 바로 그러한 뜻을 가진 고대 프랑스어 curer가 14세기 후반에 생겼고, 이것이 영어에 들어가서 사람을 ‘치료한다’는 의료적 개념으로 확장되게 되었다. 이후 사람뿐 아니라 병을 목적어로 취하는 용법까지로 확장되었는데 이것이 영어 동사 cure(치료하다)의 탄생 배경이다. 이렇게 하여 ‘걱정’은 ‘치료하는 행위’로까지 확장되면서 ‘안전’의 개념은 언뜻 관계없어 보이는 ‘치료’의 개념과 연결되게 되었다.


한편 ‘돌보다’는 뜻의 라틴어 curare의 과거분사인 curatus는 육체의 치료를 넘어서서 정신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는데, ‘영혼을 돌보고 치유하는 (책임자)’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서 프랑스어 단어가 cure´인데, 이는 카톨릭 교구의 (책임) 사제를 가리킨다.


‘걱정, 근심’에서 파생된 또 하나의 비유적 용법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을 뜻하는 curiosity라는 말도 걱정, 근심을 나타내는 curare로부터 세심한 마음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무엇인가에 대해 알고 싶어서 궁금해하는 마음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로부터 curious가 탄생하였고 그 명사형인 호기심을 뜻하는 curiosity가 형성된 것이다.


이쯤 되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리하고, 자료를 전시하고, 재정 확보 및 홍보 활동 따위를 하는 사람을 뜻하는 ‘큐레이터’(curator)도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것임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curator는 본래 14세기 후반 교구 신부를 뜻하는 curatour에서 유래되었는데(앞서 말한 것처럼 이것이 프랑스어에서는 cure´가 되었다), 이는 라틴어 curator(보호자, 혹은 어떤 것의 관리나 감독을 맡은 사람)에서 파생된 말이었다. 그러다 1660년대에 ‘박물관, 도서관 등을 책임지는 관리자’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큰 자금이 미술 시장에 유입되면서 전시회가 확대되자 작품을 선별하고 배치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이 커졌고, 그로 인해 큐레이터라는 말이 확산되었다.


유럽인들은 안전을 나타내기 위해 ‘걱정 없음’을 이용하여 그 개념을 만들었는데, 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확신’으로 향하게 되었다. 어떤 것에 대해 안심(secure)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것에 대해 확신(sure)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secure가 음운변화를 통해 sure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남에게 확신을 주는 행위를 타동사로 assure 또는 ensure(insure)라고 하게 되었고, 이는 더 나아가 손해를 물어 주거나 일이 확실하게 이루어진다는 ‘보증’과 ‘보장’이라는 개념을 통해 ‘보험’이라는 뜻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오늘날 보험을 뜻하는 assurance, insurance는 이렇게 하여 생겨났다.


모든 것의 출발은 ‘걱정’이었다. ‘걱정 없다’를 통해 ‘안전’의 개념을 만들었고, ‘걱정하다’로부터 ‘돌보다’를 만들었다. 때로는 건강을 돌본다는 개념에서 ‘치료하다’를 만들어내고 때로는 영혼을 돌보는 ‘사제’를 창출했으며, 사물에 적용되어서는 소장하고 있는 기물을 돌보는 관리자, 감독자의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걱정’의 개념은 다른 한편으로 ‘세심함’을 거쳐 ‘호기심’으로까지 그 의미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걱정 없음’과 ‘안전’(security)으로부터 ‘확신’(sure)으로 발전하고, 나아가 현대 사회의 기틀이라고 할 수 있는 ‘보증’과 ‘보장’이라는 개념으로까지 발전해 왔다는 점이다. ‘보증’과 ‘보장’은 호모 사피엔스를 지구의 주인으로 번성하게 해주고 복잡한 현대 사회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추상화 능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잊지 말자, 이 모든 추상적 개념의 최초 출발점은 ‘걱정’이고 ‘안심’이라는 점을! 이로부터 ‘안전’이 나왔고 고객이나 국민을 ‘안심’시키는 데 성공하는 기업과 국가가 성공한다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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