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에서산책] 가려진 이름, 명작으로 남다

관리자
발행일 2023.02.03. 조회수 35584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3년 1,2월호-우리들이야기(4)혜화에서 산 책]

가려진 이름, 명작으로 남다


-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워더링하이츠> -


이성윤 회원미디어국 부장


2023년의 우리는 누구든 자신의 이름으로 자기만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글을 SNS나 블로그에 올릴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출판사의 도움 없이도 누구나 쉽게 책으로 만들 수도 있죠. 하지만 1800년대 영국의 상황은 달랐습니다. 여성들이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글을 쓰고 책을 낸 여성작가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바로 이 작가들의 책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익명의 작가가 쓴 최초의 SF소설, <프랑켄슈타인>

아마도 ‘프랑켄슈타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흔히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하면 머리에 나사가 두 개쯤 박혀있거나 꿰맨 자국이 있는 바보 같은 괴물이 떠오르실 겁니다. 하지만 정작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줄거리를 알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은 많지 않을 겁니다.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라는 겨우 20살쯤 된 젊은 여성 작가가 썼지만, 1818년 초판이 발간될 당시에는 작가의 이름 없이 익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책의 서문에는 작가의 남편이었던 시인 ‘퍼시 셸리’의 글이 실려 있어서 그가 쓴 글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을까요? 익명으로 출판된 소설처럼 그 안에 나오는 괴물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은 바로 이 괴물을 만들어 낸 사람의 이름이죠.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는 북극을 탐험하던 월튼 선장이 조난 당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구조하면서 시작됩니다. 빅터는 월튼에게 그와 그가 만들어 낸 괴물에 관한 오래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빅터는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여 놀라울 만한 성과를 이뤄냅니다. 그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고, 지금의 인류보다 더욱 진화된 새로운 종족을 만들어내겠다는 목표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름 모를 무덤을 파고, 신체의 조각조각을 모아 마침내 새로운 생명체인 괴물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그 생명체가 눈을 뜨는 순간, 그 끔찍한 모습에 절망하며 도망치고 말죠. 돌아왔을 때, 그 생명체는 사라졌고 이 끔찍한 비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시간이 흘러 복수를 위해 다시 나타난 괴물은 그의 창조주인 빅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끔찍한 외모때문에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위협당하면서 괴물에게 남은 것은 오직 인간에 대한 혐오와 빅터를 향한 복수심뿐이었죠. “저주받을 창조자! 어째서 스스로도 혐오감에 고개를 돌릴 만큼 끔찍한 괴물을 만들었단 말인가?”라는 괴물의 외침에는 그의 복잡하고 비통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줬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라며 빅터를 원망하고, 설득하기도 하죠. 그러나 빅터는 끝까지 괴물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야기는 서로의 파멸을 향해 끝없는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우습고 바보 같은 괴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외모만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시대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하고, 기술의 발달로 만들어진 새로운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이 담긴 이야기로 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당시 문학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고 합니다. 괴기스러운 이야기에 어린 여자가 쓴 소설이라는 이유가 따랐다고도 하죠. 이처럼 소설의 내용이 당시로써 파격적이고 놀라웠기 때문에 작가의 정체를 더욱 더 예상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200년이 지난 지금, 이 소설은 최초의 SF소설이라는 평가와 함께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또 다른 콘텐츠1)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철저히 외면당했던 이야기, <워더링하이츠>

이와 비슷하게 당시에는 외면당했지만, 지금은 명작으로 평가받는 또 한 권의 소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폭풍의언덕>이라는 이름으로 훨씬 더 잘 알려진 소설 <워더링하이츠>입니다. 책이 처음 출간된 1847년 당시 작가의 이름은 엘리스 벨이 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작가의 필명이자, 가명이었죠. 실제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는 자매인 샬럿, 앤2)과 함께 가명으로 책을 내고 있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이 나온 지 30년 정도 지났을 때였지만 여전히 여성의 출판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에밀리 브론테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이 책은 평가는 좋지 못했습니다.


<워더링하이츠>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이야기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소설을 전부 다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을 싹 사라질 것입니다.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히스클리프의 미친 사랑이야기이자, 끔찍한 복수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지금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막장드라마의 원조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워더링하이츠>는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에 세를 들어 살게 된 록우드가 주인이 살고 있는 ‘워더링하이츠’에서 캐서린이라는 이름의 소녀 유령을 보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록우드는 그곳에 오래 살았던 가정부 엘렌에게 그곳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고, 엘렌은 두 집과 두 집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복잡하고 기구한 사연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워더링하이츠에 살고 있는 언쇼는 어느날 히스클리프라는 버려진 아이를 데려옵니다. 하지만 언쇼가 죽은 후, 히스클리프는 언쇼의 아들에게 무시당하고 하인처럼 대우받게 되고, 친구이자 사랑했던 캐서린와도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캐서린이 그레인저 살고 있던 린턴과 결혼하면서 히스클리프의 절망과 분노는 커집니다. 그리고 한동안 모습을 감췄던 히스클리프는 복수를 위해 이들 앞에 다시 나타나죠.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끊임없는 복수와 어리석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놀랍게도 누구 하나 호감 가는 인물이 없는 소설입니다. 인물들은 하나 같이 이기적이고,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표출합니다. 하인을 무시하는 건 기본이고 복수를 위해 가해지는 폭력은 더할 것 없이 끔직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이 소설을 여자가 썼을 리 없다는 평가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이런 평가를 뒤집을 기회도 없이 작가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워더링하이츠>가 작가가 남긴 유일한 소설입니다. 그러나 이 한편의 소설은 역시 200년이 지난 지금 더욱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영화나 뮤지컬 등3)을 통해서 재생산되고 있죠.


메리 셸리와 에밀리 브론테는 당시 시대에서 여성이라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책을 완성했습니다. 그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존의 문법이나 이야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 이름을 알고 그 소설을 알고 있습니다. 가려졌던 이름은 2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명작으로 남았습니다.


1) <프랑켄슈타인>은 연극, 영화, 뮤지컬로도 나왔고, 작가의 이야기를 다룬 <메리셸리>라는 뮤지컬도 나왔습니다.
2) 샬럿 브론테는 <제인에어>의 작가이며, 앤 브론테는 <아그네스 그레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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