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프랑스의 이민자 갈등과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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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07.31. 조회수 47013
칼럼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3년 7,8월호] [전문가칼럼]

프랑스의 이민자 갈등과 우리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


지난 6월 27일 아침 17세의 젊은이 나엘(Nahel)이 프랑스 파리의 교외 낭테르(Nanterre)에서 경찰이 쏜 총에 의해 사망하였다. 바로 앞에서 총구를 겨눈 조준 사격이었다.


나엘은 동승자들과 함께 승용차를 몰고 버스 전용차선을 빠르게 달리고 있었는데, 빨간불이 켜져 있는 상황이라 경찰이 제지하려 했으나 차를 멈추지 않고 달렸다. 오토바이를 탄 경찰 두 명이 추격했는데, 다른 차들로 인해 막히자 차가 멈추었고 경찰은 검문을 하려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를 거부했고, 다시 출발하자 한 명의 경찰관이 나엘에게 총을 발사했다. 차는 기둥을 들이박았고 몇 분 후 그는 숨졌다.


경찰의 최초 증언에 따르면 그들이 자신들에게 돌진하여 정당방위로 발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장면은 촬영되고 있었고 SNS에 올려져 확산되었는데, 이 영상을 보면 경찰은 차의 옆에 있었고 이미 총구를 운전자에 겨냥하고 있었다. 그리고 “네 머리에 총을 쏠 거야”라며 옆의 동료는 그를 부추긴 정황이 드러난다. 경찰은 해당 경찰관을 구금했지만, 당일 저녁부터 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차량 방화와 폭죽이 동반되는 과격 시위로 발전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애도를 표명하며 국민들에게 침착하게 대응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시위는 파리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시청, 경찰서 등이 공격 대상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일반 상점들이 파괴되고 약탈되었으며 학교까지 파괴되고 버스가 불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 시위는 2005년 10월 클리시수부아(Clichy-sous-bois)에서 십대 소년들이 경찰의 추격을 피해 변전소에 들어갔다가 감전사한 사건과 2015년 1월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에 무장괴한 2명이 난입해 총기를 난사한 사건, 그리고 2020년 10월, 한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프랑스의 교사 사뮈엘 파티를 참수한 사건 등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리게 했기에, 이는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만 볼 수 없는 프랑스 사회의 단면을 보게 만들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프랑스의 보수층은, 검문에 불응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이는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구금된 경관을 위한 모금 운동까지도 시행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먼저 겪고 있는 프랑스 사회의 갈등 사례들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것이므로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프랑스의 이민자들과 주류사회가 이렇게 대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직접적인 이유로는 경찰의 차별적 법 집행 태도에 있다고 하겠다. 단속의 대상은 대개 이민자들의 후손들로서 백인에 비해 불심검문과 과잉진압의 경험을 많이 갖고 있다.


그렇다면 경찰이 이들에게 이처럼 차별적으로 공권력을 집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 도시들의 교외지역(banlieue)은 대개 백인들보다는 이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이며, 이들은 주류사회에 진입하지 못해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는, 많은 불만을 품고 살아가는 계층이다.


주류사회는 왜 이런 불평등의 희생자인 이민자들에 대해 오히려 불만을 품고 있을까? 이는 이들이 범죄를 많이 저지르고 치안을 위협하는 많은 폭력과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대개가 무슬림인데, 이들은 종교 때문에 민주주의를 잘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그러나 이민자들의 범죄와 폭력은 프랑스가 이들을 건강한 세력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라기 보다, 반대로 프랑스가 이들을 사회에 통합시키지 않고 이들을 차별해 온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말하자면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폭력과 약탈이 자행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조준하여 의도적으로 인명을 살상한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 공화국에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가 있지만, 이는 이상적인 선언에 그치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는 소수자인 이민자들이 프랑스 사회 내에 통합되는 것을 막는 많은 문화적 장벽들이 존재한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이주민을 가장 많이 수용한 나라로서, 19세기 후반부터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이주민을 받아들였는데, 이들이 호황기가 끝난 이후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프랑스에 남으면서 노동시장에서 경쟁자가 되었고 이는 외국인들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적대감을 형성하게 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외국인 혐오는 정치적 영역으로 파급되었다.


그런데 이민자 수용 정책에 있어 프랑스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가 아니라 동화주의(assimilationism) 정책을 펼친다. 동화주의는 이민자들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을 사회 주류 문화의 언어와 가치관으로 동화하는 것을 장려하는 정책을 말한다. 그런데 이민자들을 프랑스의 가치 아래 통합할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종교 문제이다.


프랑스 헌법 제1조는 공화국의 정체성의 하나로 ‘라이시테(laïcité)’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공적인 영역에 있어 종교를 배제하는 정교분리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종교로부터 탈피함으로써 자유를 누리도록 하자는 이 원칙이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오히려 종교적 자유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예컨대 공공장소에서 이슬람 여성들이 착용하는 히잡이 종교적 상징물이므로 라이시테를 어긴다는 판단하에 ‘히잡착용 금지법’을 2004년 발효한 것이다.


그러나 히잡은 착용하는 사람의 삶의 방식에서 핵심적인 신념이며, 자기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라이시테는 분명 이슬람 탄압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무슬림의 관습과 충돌함으로써 이들을 프랑스 사회로 동화시키는 것을 막고 있다. 사실 무슬림이 (이미 프랑스 인구의 10%를 넘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얼마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이는 라이시테 원칙으로 인해 종교가 무엇인지를 묻는 설문 통계조차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인 파악도 못하니 대책도 세울 수 없다는 역설적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주민들은 본래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임시 노동자로 입국하였다가 프랑스에 남게 되면서 이민자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도 동남아 등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므로 프랑스가 겪었던 것과 동일한 경험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이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외국인 거주자가 200만명을 넘었다. 엄청난 속도로 다문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저출산이 개선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힘든 일을 기피하려는 현 상은 계속될 것이므로 이주노동자는 필연적으로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이에 대한 분명한 입장 정립도 사회적 합의도 없이 무작정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것 같다. 종교적 갈등도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이슬람 사원 공사 현장 앞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우려가 깊어진다.


모든 사람과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프랑스가 겪고 있는 사례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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