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K팝의 영어 가사, 이대로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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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02.05. 조회수 48153
칼럼

[월간경실련 2024년 1,2월호][전문가칼럼]

K팝의 영어 가사, 이대로 좋을까?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최근 K팝에 영어 가사의 비중이 확대되고 한국어 가사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 음악 시장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루미네이트(Luminate Data Holdings)가 발표한 ‘2023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50여 개국 음원 플랫폼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상위 1만 곡 중에서 가사가 한국어로 된 노래가 전체의 2.4%로 나타났는데, 이는 2022년 3.2%에 비해 0.8% 포인트가 감소한 것이라고 한다. K팝의 음원 소비가 전년도보다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K팝이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로 가사를 쓰는 경향이 크게 증가했음을 뜻한다. 대표적인 예로, 방탄소년단(BTS) 멤버인 정국이 솔로 앨범 '골든'을 내면서 전곡의 가사를 영어로 썼다. 그리고 블랙핑크 멤버인 제니가 솔로곡 ‘유 앤 미’를 내면서 가사를 모두 영어로 한 것이다.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의 비중이 이처럼 낮아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일까? 
 혹자는 기존의 K팝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인해 영·미권 시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이라고 하면서 K팝의 소비자를 전 세계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처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오히려 K팝 팬덤의 지지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는 잘못된 흐름이라고 하며 우려한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는 노래 시장에서 영어 가사의 비중이 감소하고 지역어 가사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이 흐름과도 맞지 않는 대책이라고 볼 수 있다.
 노래는 음악과 문학의 결합이다. 두 요소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우선할까? 아마 음악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사를 모르는 외국의 노래를 듣고 또 좋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가사를 이해하지 못해도 이것이 노래를 듣는 데 장애 요인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래의 국적을 결정하는 것은 멜로디일까? 물론 중국 노래는 멀리서 들어도 중국 노래 같고, 아랍 노래는 가사를 몰라도 아랍 노래 같으므로 이러한 질문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가사와 상관없이 노래 자체의 풍이 이미 이를 결정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곡조와 가사의 국적이 일치하는 경우이다. 만일 멜로디 자체가 특정한 문화권의 것이 아닐 경우, 특히 K팝처럼 영미의 대중음악인 팝(Pop)에 기반을 둔 노래일 경우에는 (물론 K팝을 한국적 고유성을 가미한 대중음악으로 간주하는 주장들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뚜렷한 한국 음악적 정체성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K팝이 담아내는 정서는 한국 고유의 정체성보다는 개인적 정서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오히려 보편적 호소력을 추구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때로는 국가를 초월하는 문화세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가수의 국적은 어떠한가? 이것도 기준이 될 수 없다. 예컨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가수들이 꽤 있었다. 이들이 일본어로 된 노래를 부르는 경우 이를 한국 노래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뿐 아니라, 이들의 노래도 일본 노래로 생각하고 심지어 가수도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한국 매체로부터 뉴스를 접하기 때문에 기업과 가수가 한국 국적이라는 것을 알지 현지인이 꼭 그러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K팝 그룹에 외국인이 많이 참여하고 있어 가수의 국적이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CT(문화기술)라고 하는 기술적 측면일까? 그러나 프로듀싱은 한국적인 기술이라고 규정하기보다는 다국적 기술이라 간주해야 할 것이다. 사실 K팝은 작곡, 작사, 안무의 전문가들을 국내외에서 아웃소싱(outsourcing)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 투자와 유통 등도 글로벌 비즈니스를 통해 이미 다국적화하고 있기에 노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으로 볼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노래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쓰인 가사의 언어일 것이다. 가사는 분명히 특정한 언어로 되어 있기에 명확하다. 음악적 경향이 어떠하더라도 일반적으로 프랑스어로 되어 있으면 샹송이요, 이태리어로 되어 있으면 칸초네로 인지된다. 마찬가지로 한국어로 되어 있으면 한국 가요로 간주된다. 사실 가사가 영어로 된 노래를 들을 때 그것이 한국 노래라는 인식을 갖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K팝의 음악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K팝은 영미 팝과 차별화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오래 생존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한국적 정체성을 추구해야 한다. 한국어 가사는 이 점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이다.
 해외 시장 소비자들의 음악적 취향에 맞추려는 목적을 위해 반드시 가사를 영어로 해야 할까? 영어를 채택하는 것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청취자들에게 접근성을 확대하는 데 도움을 줄 뿐 다른 이점은 없다. 앞서 언급한 루미네이트의 '2023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음악 청취자의 약 40%가 비영어권 음악을 소비하고 있으며, 약 69%가 미국 외 지역 아티스트의 음악을 즐기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곧 미국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반드시 영어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사실 한국어라는 어려운 접근성을 선택하면서 오히려 한국어를 배우면서까지 소비하는 경향을 어떻게 설명할까?
 노래는 하나의 상품이지만 자동차 같은 공산품과는 다르다. 공산품은 기본적으로 상품이고, 그 효능은 거기에서 그친다. 즉, 사용하는 것으로 그 욕망이 충족되는 대상이다. 우리가 독일 차를 좋아한다고 독일어를 배우고 싶어지거나 독일 문화를 소비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화 상품은 단순히 상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인간을 환기해 준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정신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노래를 좋아하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싶게 되고 나아가 그 나라 문화를 좋아하게 되는 동기가 형성된다. 이것이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차이이다.

 해외의 한류 팬들은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K팝을 들으면서 한식도 먹으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문화에 있어서 핵심은 언어이다. 언어는 정신을 담고 있는 문화의 정수이다. 한국어 없는 K팝은 이제 한국 음악이 아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한국어 배우기 열풍을 충분히 살려 나갈 수 있는데, 우리가 그토록 어렵게 얻은 한국어의 국제적 위상을 왜 영어로 가사를 쓰면서 스스로 내려놓는가?
 K팝은 아직 영미의 팝송에는 견줄 수 없지만 이제 엄청난 소비자의 세계성을 획득하고 있다. 일찍이 이처럼 한국의 대중음악이 영미권의 팝 음악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세계로 나아간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고 또한 우리나라의 국가 이미지 개선에 일등 공신이 되어 있다. 
 나는 연예기획사의 이익 창출 목적을 비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그것은 올바른 한류의 방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현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팬서비스의 차원에서 부수적으로 시행하고 지켜나가야 할 정책이다. 이것이 주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일 뿐이다.
 가사가 영어로 되어 있는 스웨덴 그룹 아바(ABBA)의 노래는 스웨덴 가요일까 미국 팝일까? 물론 스웨덴인들이 이 그룹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지만 그 어떤 스웨덴인들도 스웨덴 노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어를 통해 한국의 노래로 나가자! 

댓글 (3)

아주 시의적절한 지적이십니다^^ 늘 명쾌하고 통찰력넘치는 컬럼 잘 읽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한국어 사랑이 애국이네요~예리하고 멋진 컬럼입니다!!!

오래전부터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네요. 교수님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