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경제냐 예술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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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09-25 조회수 19575
칼럼

[월간경실련 2024년 9,10월호][전문가칼럼]

경제냐 예술이냐?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인간을 동물과 구별지어 주는 몇몇 요소들 가운데 으뜸은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먹고 사는 경제 문제가 인간에게는 생존의 조건이지만 예술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고차원 활동이기에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요즘 경제가 좋지 않지만 미술계에는 굵직굵직한 행사들과 전시들로 바빠서 보기가 좋다. 그 가운데에서 눈에 띄는 것이 ‘피노 컬렉션’ (Pinault collection)이다.

 피노 컬렉션은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의 수집품이라는 뜻으로, 그가 모은 미술품을 기반으로 창시한 재단의 이름이기도 하다. 피노는 프랑스의 명품 그룹 케링 (Kering)의 창업자로서 프랑스 재계 순위 4~6위를 차지하고 전 세계에서는 20~30위를 차지하는 부호이다. 명품산업 분야 세계 2위인 케링 그룹에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브랜드만 들어도 구찌(Gucci), 이브생로랑(Yves Saint Laurent),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발렌시아가(Balenciaga), 부셰론(Boucheron), 린드버그(Lindberg) 등이 있으며, 지주회사 아르테미스(Artémis)를 통해 경매업체 크리스티(Christie's)와 보르도 와인 5대 그랑 크뤼 중 하나인 샤토 라투르(château Latour), 그리고 주간지 르푸앵(Le Point)도 소유하고 있다.

 프랑스 명품업계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명품산업을 경영하던 사람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이 다른 사업을 하다가 명품산업에 뛰어드는데, 피노도 처음에는 목재업을 하던 사람이었다. 브르타뉴 지방의 작은 시골 마 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제재소를 경영하는 것을 보고 자라다가 큰 도시 렌느(Rennes)로 가서 중학 교를 다녔는데, 놀림과 따돌림을 당하는 바람에 견디다 못해 16세 때 학교를 자퇴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아버 지가 돌아가시자 뛰어든 목재매매업에서 성공하여 돈을 벌었다. 특히 목재를 사고 팔면서 중간단계가 복잡한 유통구 조를 보고 핀란드 등 북유럽의 목재를 직수입하면서 싸게 팔아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 설탕산업에 투자한 것이 어마어마한 부를 가져다 주었고, 사업을 확장하면서 결국 명품업계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리고는 어느날 아들인 프랑수아 앙리 피노(François Henri Pinault)에게 사업을 물려주고는 본인은 다시 새로운 사업에 투신하였는데, 그것이 현대 미술품 수집과 전시 사업이었다.

 목재거래를 하던 비즈니스맨이 왜 예술 영역에 뛰어들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나를 흥분시켰다. 나는 더 많은 사람과 그것을 나눌 생각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이렇게 바뀐다. 왜 예술은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흥분시키는가? 물론 그를 예술계에 첫 발을 들여놓게 한 계기는 아마도 1970년 렌느의 골동품 상인이던 마리본 캉벨(Maryvonne Campbell)을 두 번째 아내로 맞이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사업에 매진했던 사람이고 서른네 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휴가라는 것을 가졌던 지독한 일벌레였기에 예술품을 즐길 시간이 없었을 것이었기에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예술을 감상하려면 지식도 쌓아야 하는데 그는 16세에 중학교를 중퇴한 사람이라 좋은 교육을 많이 못 받았었다.

 나는 이것이 프랑스의 문화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지적하고 싶다. 프랑스의 부유한 사업가들은 예술품 수집과 후원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그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를 공고히 하고, 국가적 정체성과 문화적 유산을 유지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이는 확연하다.

 예컨대 영국의 부자들도 예술에 관심을 가지지만, 대부분 미술품보다 역사적 건축물이나 고전 예술 작품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프랑스와 달리 예술보다는 교육과 사회적 복지에 더 많은 기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의 부유층은 예술보다는 과학 연구나 교육 분야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본고장으로서 예술과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프랑스만 못하고 건축물 복원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정도이다.

 반면에 프랑스의 재벌들이 예술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프랑스가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아 왔기 때문이고, 프랑스혁명 이후 귀족계급을 폐지하면서 등장한 부르주아 계층이 졸부라는, 그러니까 돈만 많고 교양이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 측면이 강하다. 프랑스에서는 항상 권력과 부를 가진 계층이 (왕 이든, 귀족이든, 시민이든) 예술을 애호하는 수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자부심을 느끼려 하는 문화가 있었 다. 이리하여 프랑스의 부유층은 예술 후원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위상과 권력을 과시하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부심은 더 나아가, 지도층이 예술을 후원하는 것이 자신들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의식으로 발전했다.

 우선 프랑수아 피노의 경우, 베네치아에 팔라조 그라시(Palazzo Grassi)와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라는 두 개의 현대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파리에 브루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를 개관하여 자신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다. 이 모든 미술관들은 기존의 건물에 용도를 변경하여 미술관으로 개조한 경우인데, 그가 건축을 의뢰한 사람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였다. 안도 다다오는 원주의 ‘뮤지엄 산(SAN)’ 등을 비롯해 우리나라에도 6곳의 건축물을 지었다.

 세계 최고의 부호인 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회장도 파리의 불로뉴 숲에 ‘루이 뷔통 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을 운영하고 있으며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인 프랑수아즈 베탕쿠르 메이에(Françoise Bettancourt Meyers) 로레알 부회장도 베탕쿠르 슈엘레 재단(Fondation Bettencourt Schueller)을 통해 예술을 후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화적 전통은 프랑스의 국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루이 14세와 같은 왕들이 예술을 정치적, 사회적 수단으로 활용하였으며 이를 통해 프랑스의 국가 이미지를 최고 품격의 국가로 만들었으며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을 유지하는 이를 최대한 활용하였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모든 대통령들은 문화정책을 통해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20세기 후반의 대통령들은 다양한 대규모 문화사업을 추진하며, 스스로를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우고자 했다.

 샤를 드 골(Charles de Gaulle)은 무엇보다 최초로 정부 내에 ‘문화부를 설립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조르주 퐁피두 (Georges Pompidou)는 복합문화공간 퐁피두 센터(Centre Georges Pompidou)를, 지스카르 데스탱(V. Giscard d'Estaing)은 오르세 미술관을, 프랑수아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은 루브르 피라미드 등의 ‘그랑 프로제’ 시리즈를, 자크 시라크 (Jacques Chirac)는 ‘케 브랑리(Quai Branly) 미술관’을 개관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는 기업인들뿐 아니라 정치인들도 문화 예술 사업에 힘을 기울이는 그야말로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나라이며, 스스로를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고자 노력하는 명실상부한 문화 대국이다. 우리는 거의 모든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분위기인데, 먹고 사는 것도 좋지만 정말 부럽다. 우리는 언제쯤 '문화 대통령'을 자처하는 대통령을 가져 볼 것인가!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은 정신적인 것을 나타내는 물질을 창조하는 행위이다. 정물화도 물건을 그리지만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풍경화도 자연을 그리지만 인간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것은 인간성의 정수이다. 그래서 예술은 가장 고차원적인 인간의 행위이다.

 예술은 과학과 공학, 의학, 법학과 경제학, 경영학과 비교해 볼 때 인간의 편리한 삶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위기가 닥쳤을 때, 예컨대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하등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그 참상을 알리고 그러한 일에 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사람들에게 그 어떤 과학적 논증보다 더 웅변적으로 일깨운다. 그리고 인간의 편리한 삶 속에 실상은 어떻게 차별이 일어나는지를 고발하고, 불평등의 견고한 구조를 탐색하고 비판함으로써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

 이렇게 예술은 그 비판 정신을 통해 사회를 부패하지 않게 하고 더욱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만들어 준다. 자동차가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게 된 것은 우수한 엔진 덕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수한 브레이크 덕분이기도 하다. 브레이크가 없으면 결코 빨리 달릴 수 없다.

 인간성의 정수인 이러한 예술을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프랑스는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선 예술을 후원하는 데에 많은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여 기업과 부유층의 예술 후원을 장려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이다. 음악과 미술 같은 교육을 받으려면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사교육에 의존하여야 한다. 그래서 소득이 낮은 계층은 이용하기가 어려운 구조이다. 다른 서양의 선진국들도 예술은 공교육 체계라 하더라도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음대와 미대 등의 등록금은 매우 비싸다. 그러나 프랑스는 국립의 경우 무료에서부터 몇 십만 원 선이며, 사립의 경우라도 대개 백 여만원 수준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술 교육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우리나라는 공교육조차도 입시 위주의 교 육을 시행하고 있어서 음악, 미술 같은 예술 교육에 매우 등한하다. 그러니 국민들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하는 것을 일상생활의 영역에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뭘 알아야 즐기지 않겠는가?

교육부터 조금씩 바꾸어서 문화를 바꾸어 보자!

Comment (1)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공감되는 내용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