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문재인 정부의 소비자정책 회고와 향후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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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12.06. 조회수 7085
칼럼

[월간경실련 2021년 11,12월호 – 특집. 문재인 정부가 남긴 과제, 그리고 2022(6)]

문재인 정부의 소비자정책 회고와 향후 과제


박성용 소비자정의센터 대표(한양여대 교수)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얼마 남지 않았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밝힌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슬로건은 많은 국민들에게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하였다. 본인도 ‘이제야 소비자정책이 제 대로 추진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부가 대선과제로 약속한 소비자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든다.

소비자정책의 일차적인 목적은 피해구제에 있다. 피해를 입기 전의 상태로 소비자를 되돌려 놓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에서도 “고장난 소비자 피해구제, 이제는 작동하게 하겠습니다”라는 슬로건하에 집단소송제 전면도입, 피해자 지원 기금 설치 추진, 금융소비자의 부담완화 및 보호 강화 등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집단소송제의 전면 도입’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20년 9월에 정부안으로 집단소송법(안)이 발표되었으나, 이후 아무런 진척이 없는 상태이다. 소비자피해는 소액의 피해가 다수에게 동시에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피해구제 활동에 대한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집단소송제의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피해자 지원 기금 설치 추진’ 또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소비자기본법 개정(안)에는 기금 마련 관련 규정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국회에서 이 부분이 모두 삭제된 채 상정되어 있다. ‘금융소비자의 부담 완화 및 보호 강화’는 2020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의 제정으로 많은 부분이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금융사업자에 대한 건전성 유지와 소비자보호는 서로 상충되는 면이 많기 때문에 별도의 기관에서 담당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기관(금융감독원)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금융사업자 입장에서는 건전성 유지를 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 많다. 따라서 현재의 금융소비자보호 시스템으로는 진정한 소비자보호는 기대하기 어렵다. 하루빨리, 금융소비자보호 업무가 별도의 독립된 기관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개인정보가 기업들의 소비자 니즈 분석, 맞춤형 광고 활동 등 여러 측면에서 그 활용성이 증대됨에 따라 부당한 개인정보 이용에 대한 문제도 심각한 소비자 문제 중 하나가 되었다. 이에 “촘촘한 그물망으로 안전하게 보호하겠습니다”라는 슬로건하에 개인정보 보호 체계 효율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상 강화, 무더기 정보이용 동의(일괄 동의)를 통한 무분별한 신용정보 활동 금지, 목적 외 그룹 내 무단정보 사용에 대한 제재 강화, 금융기관 정보보호시스템 상시 평가제 도입 등을 통하여 개인정보를 보호하겠다는 공약도 발표하였다. 그동안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등을 통하여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위상 강화 등 공약내용의 일부는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경제 활성화 등을 이유로 개인정보보호가 후퇴된 점은 매우 안타깝다. 개인정보보호법에 ‘가명정보’라는 용어를 도입하고, 동 정보이용에서 상당부분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도록 하였으며, 데이터 3법 개정을 통하여 개인정보를 기업 활성화 측면에서 보다 많이 활용될 수 있도록 한 것은 개인정보보호 측면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공공 WiFi 무상제공, 데이터 요금 인하 등 통신비를 낮추겠다는 공약도 있다. 월 1만 1천원인 이동통신 기본료 폐지,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조기 폐지(단통법 개정), 고가 단말기 가격 투명화 유도, 주파수 경매 시 통신비 인하 성과 반영, 데이터 요금 할인 확 대 및 잔여 데이터 이월과 공유 활성화 등이 구체적인 정책 수단들이다.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서 통신비 인하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가인 단말기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를 폐지하지 않고 있다. 사업자는 지원금을 많이 주겠다는데, 정부가 이를 말리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는 소비자보호 차원의 정책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다. 소비자정책과 경쟁정책이 충돌될 경우, 소비자후생 측면에서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여 선택하여야 한다. 하루 빨리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소비생활 환경에서의 안전성 확보 문제도 매우 심각한 소비자문제로 부각되었다. 이에 문재인 정부에서도 모든 인체작용 제품에 대한 인체 위해성 통합평가로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상시 모니터링을 통한 소비자피해 예방 및 확산 방지 등을 통하여 “인체위해물질과 제품에 대한 통합관리로 안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공약도 발표하였다. 이후,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 2018년에 제정되고, 화학물질관리법, 화평법 등 화학물질 안전성 관련 법률들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9세월호 참사 특별조사 위원회가 출범하여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이 발생한 원인과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동 위원회에서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동 위원회에서 지난 3여년 간 노력한 결과물들이 소비 생활 환경에서의 안전성을 확보하는데 반드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고, 인터넷상 익명표현의 자유보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공약도 있다. 그러나 상기 공약이 제대로 추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특히, 집권 후반기에 가짜뉴스 규제를 위하여 도입을 추진한 징벌배상제는 공약내용을 크게 후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다. 입법 추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법률에 의한 강제규제가 아니라, 언론 스스로 자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식생활 안전성 확보와 관련한 공약으로는 수산물 클린 인증제도 도입 등을 통한 안전하고 깨끗한 수산물 공급체계 구축, 친환경 급식 등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책임지겠다는 공약도 있다. 그러나 식생활 안전성 확보 차원에서 가장 시급한 사항은 GMO식품에 대한 표시제도의 개선이다. 식품에 GMO가 원재료로 포함되어 있는지를 소비자에게 알려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소비자는 이러한 정보를 받을 권리가 있다. 현재의 GMO 표시제도는 사업자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시장에서의 주인은 소비자라는 소비 자주권 사상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하루빨리 GMO 완전표시제도가 시행되어야 한다.

상기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항 중에서 아직까지 추진되지 않은 내용과 함께, 소비자보호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과제로는 우선, 징벌배상제의 개선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징벌배상은 대부분 3배이다. 외국의 경우, 재산상 손해를 야기한 경우는 3배가 일반적이지만, 생명·신체상의 위해를 야기한 경우에는 배상에 제한이 없다. 혹자는 우리나라의 징벌배상제는 징벌배상제가 아니라 3배배상제라고도 한다. 징벌배상의 범위를 법률에서 규정할 것이 아니라, 고의 또는 중과실의 정도, 소비자 피해내용 등을 고려하여 법원에서 판단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소비자 입증책임을 대폭 경감시켜야 한다. 입증책임은 입증으로 이익을 보는 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측면에서 소비자분쟁에서 소비자가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원칙에 부합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소비자가 사업자의 불법행위 등을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사물인터넷시대의 본격적인 도래 등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따라서 소비자분쟁에서 입증책임을 사업자로 전환시키는 등 획기적인 입증책임의 경감방안이 도입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앙정부의 소비자정책 추진체계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비자정책위원회의 활성화와 함께 소비자정책을 독립적으로 수립하여 추진할 수 있는 정부부서(가칭 소비자부)가 신설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시장의 특성, 소비자정책의 성격, 공정거래위 원회의 기능과 경쟁정책의 성격 등을 고려할 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소비자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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