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구호에 그쳤던 재벌개혁, 대선후보들 핵심공약으로 넣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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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12.06. 조회수 7758
칼럼

[월간경실련 2021년 11,12월호 – 특집. 문재인 정부가 남긴 과제, 그리고 2022(1)]

구호에 그쳤던 재벌개혁, 대선후보들 핵심공약으로 넣어야


권오인 경제정책국 국장


 

재벌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벌개혁’, ‘공정경제’를 외치며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의 임기도 불과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국정농단 사건이 있었기에 개혁의 적기였지만 문재인 정부는 아쉽게도 반대의 길을 가버렸다. 물론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정부와 정치권을 포함해 우리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재벌들을 상대로 개혁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180석에 가까운 거대 여당이 탄생하여 의지만 있었으면 상당부분 개혁을 했으리라 본다. 이제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개혁은 차치하더라도 임기말 대폭적인 규제완화라도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개혁의 몫은 차기 정부로 넘어갔다.

부실 설계, 그마저도 후퇴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3대 경제정책, 즉 혁신성장, 공정경제,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웠었다. 공정경제 정책의 성과로는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이라는 거창한 구호에 비해 속 빈 강정같은 법안을 통과시킨 게 전부였다.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 「금융복합기업집단의 감독에 관한 법률안」이 그것이다. 3개 법안 중 가장 핵심적인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은 설계도 부실했고, 그마저 국회 논의 과정에서 후퇴해 버렸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해 필요한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보유 요건(상장회사 20%->30%, 비상장 회사 40%->50%)은 신규 지주회사만 적용토록 했고, 전속고발권은 일부 경성담합에 대해서만 폐지하도록 했다가 아예 삭제해버렸다. 일반지주회사의 기업주도형벤처캐피탈(CVC) 보유를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해 놓고서도, 이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벤처지주회사 설립요건 및 행위 제한 규제도 대폭 완화시켜 버렸다. 그 외에도 은산분리를 훼손해 인터넷전문은행 대주주의 지분보유한도를 34%까지 늘려주는 법안들은 180석에 가까운 거대 의석수를 활용해 속전속결로 통과시켜 버렸다. 그것도 부족해 정부에서는 ‘한국판 뉴딜’이라는 명목하에 재벌들에게 유리한 정책지원은 물론, 삼성과 SK 등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세제 혜택까지 늘려주는 친재벌정책을 펼쳤다. 결국 불공정한 재벌중심의 경제구조 속에서 고통 받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여파로 다수가 붕괴되어 경제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 특혜 가석방

문재인 정부의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재벌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정권을 잡았음에도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특혜 가석방해줌으로써 개혁의지를 상실했음이 드러났고, 재벌들과 같은 편임을 자인해 버린 점이다. 재벌총수 구속과 그룹 경영, 국가 경제는 큰 관련이 없음이 과거 사례에서 잘 나타났음에도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석방해야 한다는 재벌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특히 이 부회장은 경제질서를 어지럽힌 중대경제범죄자로 가석방 고려사항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삼성 총수로서 경영세습과 사익편취 등의 재범 위험성이 상당하며, 경영권 세습을 위해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에서 배임·횡령·뇌물공여라는 중대경제 범죄를 저질렀다. 나아가 그 죄질과 범죄동기 또한 상당히 좋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 합병 사건에서 주가조작과 회계부정 뿐만 아니라, 프로포폴 투약과 관련된 재판도 진행 중에 있어 가석방 심사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특혜 가석방을 강행해 사법정의와 법치주의를 훼손시킴은 물론, 정경유착, 삼정유착(삼성과 정부의 유착) 시대로 시계를 되돌려 버렸다.

삼성 이 부회장에 대한 특혜는 가석방 뿐만 아니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법」상 ‘5억원 이상 횡령· 배임 등의 범행을 저지른 자는 가석방 이후 5년간 취업이 제한된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이 부회장은 풀려 나자마자 삼성 서초사옥으로 가서 삼성전자 사장들을 만나 경영현안에 대해 보고받는 등 경영행보를 이어갔다. 그리고 법무부는 이 부회장의 경영행보에 대해 무보수, 미등기 임원직 등을 언급하며, 취업제한 위반이 아니라는 논리까지 들어 보호해줬다. 취업제한의 취지에 비추어 본다면, 무보수나 미등기 임원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련회사에 영향력, 집행력, 경영권 등을 행사하였는지가 중요함에도 이를 무시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정권 마지막까지 친재벌법안 통과에 주력

문재인 정부는 비상장 벤처기업에게 1주에 10개 이하의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 법률안」(이하 ‘벤처기 업법 개정안’)을 작년 12월 2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고, 다음 날인 23일 국회에 제출했다. 복수의결권이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을 언급하며 반대하는 시민사회와 일부 국회의원들로 통과가 쉽지 않자, 지난 8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통과를 촉구했다. 화답하듯이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연내에 처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복수의결권은 차등 의결권의 한 형태로 적은 자본으로 기업을 지배할 수 있게 하여,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증대시킨다. 이미 한국 재벌 총수들은 소수의 지분으로 계열사 간 출자를 이용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2020년 5월 기준 공시대상 55개 기업집단 재벌총수일가들은 평균 3.6%의 지분율로 57%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안전장치가 있다고 하나, 도입되면 향후 법안이 완화될 수도 있어 복수의결권 허용은 장기적으로 재벌세습의 제도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2016년 국정농단의 주역 중 하나였던 전국경제인연합이 복수의결권 도입을 언급하고 있어, 사실상 비상장 벤처기업보다 재벌들이 더 필요하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따라서 자칫 잘못하면 재벌세습의 고속도로만 깔아주게 된다.

2022년, 재벌중심의 경제구조 전환을 시작해야

현재 우리 경제구조는 재벌의 과도한 수직계열화와 내부거래, 전속거래에 따른 경제블록화로 인해 혁신기업의 시장 진입이 어렵고, 경쟁이 제한되어 기술 혁신과 시장의 활력이 떨어져 있다. 재벌중심의 오랜 구조로 인해 고용 없는 성장과 대·중소기업 간 격차도 심화되어 청년실업, 조기 퇴직, 자영업자들의 붕괴, 노인 빈곤의 경제적 생애주기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대선후보들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중견·중소기업과 인적자본 중심의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이를 통해 혁신성장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재벌중심의 경제구조 개혁을 위해서는 우선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부터 해소해야 한다. 현재 지주회 사제도도 무력화되어 재벌들은 큰 제약없이 소수자 본으로 계열사를 늘리고 경제력도 넓히고 있다. 때문 에 기업집단 출자구조를 모회사-자회사라는 2층으로 제한시켜 무분별한 확장을 막아야 한다. 2단계를 넘어 확장을 하겠다면 100% 출자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금융회사와 주요 실물회사를 동시에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구조적 금산분리를 단행해야 한다. 둘째, 사익편취를 방지하고, 지배주주를 견제하기 위해 소수주주동의제(Majority of Minority rule)를 도입해야 한다. 총수일가나 주요 임원의 이해관계가 있는 거래, 총수일가의 이사 또는 임원으로서 보수와 퇴직금, 계열사 간 기업결합에 대해 지배주주를 제외한 소수주주들의 동의를 받도록 하면, 황제경영을 막고 소수주주의 권익 보호도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스튜어드십코드의 실효성을 강화, 공익법인과 금융 및 보험사의 보유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금지, 자사주의 마법 금지 등이 필요하다. 셋째, 노사 상생 모델과 새로운 산업정책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즉 산업별 노사정을 통한 상생모델을 만들어 사업 재편과 적극적 고용정책을 펼치도록 하고, 플랫폼 산업규제와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을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생애주기를 해결하고, 양극화 해소를 위해 재벌, 노동, 재정, 복지라는 종합적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탈피하지 않고는 우리 경제의 미래는 어둡다. 구조개혁 및 전환이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를 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인 성장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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