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억울하게 의료사고 당한 환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죠?

관리자
발행일 2022.06.02. 조회수 12183
칼럼

[월간경실련 2022년 5,6월호] [시사포커스(4)]

억울하게 의료사고 당한 환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죠?


-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의료과실 감정의 공정성 훼손 사례 -


가민석 사회정책국 간사


 

의료사고 피해의 책임을 가려보고 싶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는 직접 병원에 가서 따지는 쉽고 빠른 방법인데, 병원 측에서 과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이상 손쓸 도리가 없다. 다음은 소송을 진행하는 것으로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며 무엇보다 의료인의 과실 여부, 과실 및 사고 간 인과관계 등을 환자 측에서 직접 밝혀야 한다. 마지막은 의료분쟁 해결을 위해 국가가 설립한 공공기관을 찾아가는 것으로 앞선 두 가지의 한계를 보완한 방법이라 볼 수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간단히 의료중재원은 환자와 의료진 간 의료분쟁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해결한다는 취지로 보건복지부 산하에 설치된 공공기관이다. 2011년 4월 7일 제정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며, 크게 ‘감정부’와 ‘조정부’로 구성된다. 감정부는 의료행위가 적절했는지 과실은 없었는지 판단하는 감정업무를 담당하고, 조정부는 감정결과 등을 종합해 의료분쟁이 최종 합의되도록 하는 조정업무를 담당한다. 여기서 감정부는 진료과를 고려해 10개로 나뉘어 있으며, 각 감정부는 상임감정위원 1인을 비롯해 비상임감정위원(의료인, 법조인, 비영리민간단체 추천인)까지 총 5인으로 구성된다. 5인 중 최소 3인 이상 출석, 출석위원 전원 찬성으로 회의가 의결되어 감정서가 작성되며 해당 결과가 조정부로 건너가 조정단계의 근거자료로 쓰인다.


상임감정위원의 의료과실 은폐 정황
2022년 1월 18일 경실련은 상임감정위원 3명을 공정해야 할 의료중재원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 의료분쟁 조정 신청자가 직접 입수한 ▲상임감정위원이 작성한 감정서, ▲감정회의에 비상임감정위원이 제출한 감정소견서, ▲감정부 회의 내용이 담긴 회의록을 비교 검토해본 결과, 의료과실이 있다는 의견을 누락시키거나 사실을 반대로 기재하는 등의 문제를 발견한 것이다. 조정부 입장 에서 의료과실을 인정하는 의견이 삭제된 반쪽짜리 감정서를 토대로 조정을 진행할 수밖에 없어 사실상 정해진 조정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현재 의료중재원 압수수색을 거쳐 수사가 진행 중이다.


감정 공정성 회복을 위한 시민사회의 공감대 형성 그리고 4월 20일 경실련과 건강세상네트워크,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앞선 문제를 비롯해 감정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전·현직으로 감정부 회의에 참여한 비상임감정위원들이 직접 겪었던 감정 공정성 훼손 사례를 소개하며, 개인의 비리를 넘어 의료중재원 감정 업무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음을 공감했다. 기본적으로 상임감정위원이 전권을 휘두르면서도 견제나 감시를 받지 않고, 절차나 결과에 대해 당사자도 알기 어려워 감정 결과에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에 ▲관리감독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감정실태 전수조사, ▲경찰의 의료과실 은폐·조작 수사, ▲의료중재원의 감정부 구성 프로세스 공개를 주장했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죠?”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의료중재원 문제가 사회에 드러나자 경실련을 찾는 시민들께서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본인 혹은 가족이 의료사고를 당했는데 국가마저 믿을 수 없다면 이 문제를 어디서 해결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숨겨진 문제를 공론화한 것에 고마움을 느낀 분이 많았지만, 한편으로 또 다른 고민거리를 떠안은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또한 모든 의료사고가 의료진의 과실로 일어나는 게 아니며, 무엇보다 의료중재원에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위원들이 더 많을 것이기에 경실련 문제제기에 억울한 분도 제법 많을 듯하다.


당연하게도 이 활동의 목적은 공공기관이 제 역할을 하고, 환자 피해가 온전히 구제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기 위함이다. 의료중재원이 설립될 시기 경실련을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단체는 환자피해 구제를 위해서는 의료인이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하도록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목소리 높였다. 의료행위가 전문성과 밀실성을 특징으로 하고 증거자료인 진료 기록 등도 의료기관에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시민이 의료사고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적절히 피해보상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입증책임 전환은 배제된 채 오늘날 독자적 감정부를 둔 형태의 의료중재원이 설립되었다.


당시 지적처럼 의료중재원이 감정기구를 따로 두는 것만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감정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소수가 감정 결과를 주무르고, 과정과 내용에 대한 어떠한 감사도 없는 지금과 같은 운영방식으로는 억울한 피해환자가 더 많아질 것이다. 다행인 점은 시민사회의 문제제기로 인해 감정부 회의가 더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일부 참여위원들의 후문이다.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 예기치 않게 의료사고를 당하고도 어디 가서 하소연하지 못한 환자 혹은 그 가족들이 아직도 많다. 의료중재원이 본래 목적에 맞도록 의료 분쟁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해결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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