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의료법 통과와 간호법 무산, 다르지만 같은 것

관리자
발행일 2023.05.31. 조회수 35230
칼럼

[월간경실련 2023년 5,6월호] [시사포커스(2)]

의료법 통과와 간호법 무산, 다르지만 같은 것


- 정치싸움에 휘말린 보건의료제도 -


가민석 사회정책국 간사


“의료인의 방탄면허가 사라졌다”. 지난 4월 27일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경실련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환영 논평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의료인의 면허는 살인이나 성범죄를 저질러도 굳건히 유지됐다. 변호사, 회계사 등 다른 전문직의 경우 즉시 자격이 취소되지만 유독 의료인은 예외였다는 점에서 이를 정상화한 의료법 개정은 곧, 의료특혜의 폐지였다.


한편 의료계 및 정치권에서는 의료법과 같은 날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으로 인해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간호계 vs 의사단체를 포함한 연대 단위 구도로 서로 등을 지고 있으며, 정치권에서도 다수 의석을 동원한 입법폭거였다느니 국회 입법권을 무시한 처사라느니 혈전을 벌이고 있다. 경실련은 의료법에 관해서는 2년 넘게 꾸준히 개정을 요구하며 국회 대응을 벌였지만 간호법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힌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최근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가 결정되었을 때는 적절한 처사가 아니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의료법과 간호법, 보건의료 분야의 두 가지 화두는 내용도 다르고 결과도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히 닮아있다.


의료법 개정: 방탄면허와 특혜가 사라졌다?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인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경우 그들의 면허를 일정 기간 취소하도록 규정한다. 금고 이상의 형이란 사형, 징역형, 금고형을 포함한 형으로 다른 전문직종에는 이미 자격 취소의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다. 심지어 과거 의료인에게도 적용한 적이 있는데,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사 달래기용으로 허위진단서 작성이나 면허 대여와 같은 의료업무에 관한 기준으로 완화하여 지금까지 이어졌다.


치료받으러 가는 환자들이 의료현장을 신뢰할 수 없게 되자 다시 정상화 요구가 빗발쳤다. 마취되어 의식 없는 환자를 성폭행하거나 수술 중에 환자를 방치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의료인도 버젓이 의료 현장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자는 것도(의무화됐고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의료현장에서 자격 없는 의료인을 퇴출시키자는 것도 자정력을 잃은 의료계를 믿기 힘들다는 사회적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사회적 요구가 국회 입법으로 이어지면서 자격 취소의 기준으로 ‘금고 이상의 형 선고’를 채택했다. 다른 직종에는 이미 적용하고 있고 한때 의료계에도 그러했던 대로 말이다.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여야가 합의하여 법사위로 넘겼고 법사위가 2년간 심사를 마치지 않아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로 직회부시켰다. 본회의 의결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안 통과를 반대하며 자리를 이탈했다. 몇 년에 걸쳐 본회의장에 오면서 수많은 사회적 합의가 있었고 심지어 본인들이 법안에 합의했음에도 말이다.


의료법 개정의 반대 주장

입법 과정에서 의사단체와 여당을 중심으로 다양한 반론이 있었는데, 몇 가지만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의료인에 대한 과도한 처벌인가. 이건 엄밀히 입법재량의 영역이다. 일관된 취지에 따라 법체계를 통일하며, 특별히 고려할 예외사항은 무엇인지 따져보는 것이 가능하다. 다른 전문직들은 죄를 저지르면 처벌은 처벌대로 받고, 그것이 금고 이상의 형이었다면 즉각 자격이 취소된다. 전문직 종사자에게는 고도의 기술과 윤리의식이 요구되기 때문에 일관된 잣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과 안전의 완전성을 다루어 누구보다 뛰어난 수준의 기술과 윤리의식이 필요한 의료인에게 예외를 요구할 이유는 없다.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예외로 두던 것을 이제야 바로 맞추었다 볼 수 있고, 특히 이번 개정안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의료 특성을 고려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제외했기 때문에 합리적인 대안이라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변호사는 법을 직접 다루는 직업인데 반해 의료인들은 의료기술을 다루기 때문에 업무연관성을 따져야 한다고 하지만, 사회복지사나 공인중개사 등에도 이미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반론은 아니다.


두 번째, 의료체계가 붕괴하는가. 교통사고나 재산범죄 등 의료업무와 상관없는 범죄로 과도하게 면허가 취소될 경우 의료체계가 붕괴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이 또한 실체가 없다. 일례로 교통사고로 금고형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려면 기본적으로 교통사고 피해자를 두고 가던지(뺑소니), 무면허 혹은 음주상태로 운전하는 등 중대사유에 속해야 가능하다. 가벼운 접촉사고 정도로는 형사 처벌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중대사유로 실형을 선고받은 안일한 의료인에게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맡길 수는 없다. 경실련은 정보공개청구를 하여 금고 이상의 형 선고 시 자격을 취소시키고 있는 다른 산업이 혹시 붕괴하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최근 5년 공인회계사, 공인노무사, 변리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금고 이상의 형으로 자격을 박탈당한 사례는 연간 1~2건뿐이었다. 한 산업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주장하기에는 너무 미약한 수치다.


세 번째, 전 정권의 의사죽이기 법안이냐. 문재인 정권 당시인 2020년, 코로나19 상황에서 집단으로 진료를 거부한 의료계를 향해 압박용 카드로 이번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현재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입법을 완수했다는 해석이다. 우선 정치권의 진짜 속뜻은 경실련에서도 알 길이 없다. 다만 정치권의 셈법 정도로 이 법안 취지를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의료현장에서 자격 없는 의료인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논의는 수년 전부터 이어지던 의제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과 같은 내용이 의약분업 전까지 시행되었고, 없어진 이후로도 부활시키자는 사회적 요구가 있었다. 그 배경에는 의료현장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범죄가 끊이지 않음에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는 것이다. 의료현장에 대한 불신이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의료계는 스스로 과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살아남은 의료법과 거부 당한 간호법

의료계는 여전히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았지만, 의료법 개정안은 살아남았다. 대통령거부권의 화살이 비껴갔고 여야 간 정쟁의 불씨도 꺼진 듯하다. 반면 간호법 제정안은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결정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고, 예견된 사회적 갈등과 논란은 증폭됐다. 간호법 제정 여부와 상관없이 뜻이 수용되지 않은 쪽에서는 단체행동을 예고했었기 때문에, 이제 간호협회의 대대적인 단체행동이 이뤄질 예정이다.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이 발동된 것을 보면 아이러니한 부분이 몇 개 있다. 첫 번째, 현 여당인 국민의힘은 대선 준비과정에서 간호법을 공약했던 입장인데, 이제와서 대통령까지 동원해서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국회에서 재의가 이뤄질 경우 반드시 부결시킬 것이라고 한다. 만약 내용이 부족하면 이후 개정할 사안인데, 호언장담하던 제정 자체를 막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싶다. 그저 선거 전후로 급변하는 정치권의 모습이 1년 만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일까? 1년도 안 남은 내년 총선 때는 어떤 자세를 취할지 기대될 뿐이다.


두 번째, 간호법을 둘러싸고도 실체 없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크게 간호사가 단독 개원이 가능해질 것이며 간호조무사의 학력을 고등학교 졸업자 이하로 제한하게 됐다는 것이다. 우선 사실과 다르고, 설령 사실이더라도 현재 의료법에서 이미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논거로 사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현재 의료법상 의료기관의 간호사 단독 개원은 불가능하며 요양기관 개설은 이미 다른 법률에서 허용하고 있다. 간호법은 의료법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의료법을 넘거나 다른 사실을 규정하지 않는다. 학력 제한도 마찬가지인데,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했을 뿐 대학생부터는 간호조무사가 될 수 없다고 막은 바가 없다. 대학교 졸업자도 복지부가 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시험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정부가 간호법안 통과에 우려를 표하는 이유’를 발표하면서 보건의료직역단체가 반발하고 있고, 학력제한 기준이 다른 직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며 사실상 간호법 제정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미 의료계는 양분되었고 반발은 양쪽 모두에 있다. 반발 여부가 쟁점이 아닌데, 굳이 한쪽 편을 들었다. 또한 학력 제한과 관련한 부정확한 유권해석을 했다. 그것이 문제라면 기존 의료법체계부터 고쳐야 하는데, 법을 만들고 운용하는 주무부처로서 국민께 사과하고 전면 개정하는 게 맞는 모습 아닐까.


보건의료제도의 정쟁화

의료법과 간호법 논란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내용도 다르고 결과도 정반대지만, 법안 자체에 대한 숙의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이해관계자들끼리의 직역다툼은 사회적 대화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불법 진료거부처럼 그 정도가 지나친 행위는 지양해야 하지만, 이익집단은 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해 결사항전하는 것이 존재 목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을 법제도로 해결해야 하는 국회와 정부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해관계자들끼리 합의하고 설득할 수 있도록 갈등의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국민이 지켜보는 그들은 한쪽이 반대하니 같이 반대하고, 선거 때 자신 있게 공약했지만 국회에 또 법안이 올라오면 부결시키도록 당론을 채택하는, 그런 모습 뿐이다.


더 많은 갈등과 해결과제가 남아 있다. 간호법 제정이 무산됨에 따라 간호사들은 단체행동을 선언했다. 코로나19 당시 불법으로 진료를 거부했던 의사단체들과 달리 이번에는 ‘준법투쟁’이다. 지금까지 의사를 대신해서 불법으로 진행하던 대리수술 및 처방 등을 이제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근래 본 단체행동 중 대단히 합리적인 조치라 보지만, 의사가 부족해서 유지되던 관행이 사라진다면 의료현장의 공백은 더 크게 벌어질 것이다. 이래저래 정치권이 본업에 충실해야 해결될 일이다. 보건의료제도를 수립하면서 거듭 직역단체에 휘둘리고 상대 진영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대하는 형국이라면, 우리 사회의 대화방식은 지금처럼 거칠고 소모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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