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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공직자에게 인문학을 부과하자!

[월간경실련 2022년 11,12월호-우리들이야기(2)] 공직자에게 인문학을 부과하자!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후 한 달이 지나고 있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여전히 스산하다. 국회에서의 국정조사에 관한 여야의 극한 대립에서부터 유가족들의 눈물의 기자회견과 각계각층의 성명서 발표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해결된 것이 없고 모든 일들에 분노만 쌓여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난 여론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번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공직자들이 없다는 점이 우리를 가장 화나게 한다. 행안부장관, 경찰청장, 경찰서장, 용산구청장 등 관련 기관장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바와 같이, 국민의 안전 유지와 복리 증진을 떠맡고 있는 공직자들에게는 누구보다 강한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공직자에 많은 그토록 많은 권한을 부여한 것은 반대로 그만큼의 막중한 책임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이란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制裁)’이다. ‘책임’(責任)이라는 말의 구성은 ‘꾸짖을 책’, ‘맡길 임’으로 되어 있다. 잘할 것으로 기대되어 일을 맡기지만 만일 잘못하면 꾸짖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인정받은 능력만큼의 노력을 다하되, 만일 그렇지 않으면 국민으로부터의 질책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리만을 누리고 질책은 면하려 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그 개념 자체로도 논리적인 모순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의 정신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고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의 공직자들이 보이는 태도는 왜 이럴까? 한 마디로 이는 공직의 기강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업무 수행에 있어 근본적으로 인문학적 사유가 결여되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인문’이란 인간의 근원적 문제와 인간의 문화와 사상을 말하므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

발행일 20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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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노동과 휴식이 어우러진 삶

[월간경실련 2022년 7,8월호-전문가칼럼] 노동과 휴식이 어우러진 삶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지리했던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펼쳐졌다. 너도나도 앞다투어 바캉스를 떠난다. ‘바캉스’(vacances)는 프랑스어에서 온 말로, 우리말에서 ‘피서’(避暑)나 여름 휴가의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바캉스’라는 단어는 프랑스어에서 단순히 ‘휴가’라는 뜻이어서 여름에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다만 한국어 들어와서 ‘여름 휴가’로 제한된 것이다. 영어로 들어가 vacation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프랑스어 vacances는 본래 ‘비어 있음’을 뜻하는 말이었다. ‘일의 비움, 빈집, 빈방’을 뜻하는 영어 단어 vacancy와 그 형용사형 vacant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가리라. 이뿐 아니라 evacuate((위험한 장소를) 비우다, 떠나다, 소개(疏開)시키다), vacuity(공허, 허무), vain(공허한, 헛된), vanity(덧없음, 허무) 등 상당히 많은 단어들이 이 바캉스와 동일한 어원에서 파생된 어휘들이다. ‘진공’을 뜻하는 vacuum도 마찬가지로 ‘비어 있음’의 개념 에서 왔는데, 진공청소기를 vacuum cleaner라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서 쓰이는 개념이다. 그런데, 왜 ‘휴가’가 ‘비어 있음’에서 왔을까? 여기서 ‘비어 있음’은 ‘일이 비어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꽉 찬 스케줄 표를 보면 금방 이해가 가리라. 하루가 할 일들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해 보라. 바로 실감이 날 것이다. 한편 우리말의 ‘휴일’(休日)은 글자 그대로 휴식이 있는 날이다. 휴식이란 노동으로부터의 휴식을 뜻한다. 영어 에서 휴일을 뜻하는 holiday는 ‘holy day’, 즉 ‘성스러운 날’에서 왔다. 이는 본래 ‘종교 축제’ 혹은 ‘종교적으로 보내는 날’을 뜻하였는데 14세기부터는 여기에서 종교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 일상의 노동으로부터 면제되는 휴식의 날이라는 의미가 ...

발행일 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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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장애는 비용이 아니다!

[월간경실련 2022년 5,6월호-전문가칼럼] 장애는 비용이 아니다!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5월 2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은 지난해 말부터 진행해온 지하철 시위를 재개했다. 이에 대해서 울경찰청은 이 시위가 비록 사회적 약자 단체의 의사표현이라고 하더라도 시민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경찰의 강제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출근길 지하철 '휠체어' 시위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여론은 이에 대한 옹호론과 비판론으로 갈려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 ‘이동권’ 요구의 근거는 무엇인가? 영어에서는 ‘장애’를 handicap(핸디캡)이라고 하는데 이의 어원을 살펴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 ‘handicap’은 ‘hand in cap’(모자 속 손)이라고 불리는 1650년대에 시작한 게임에서 유래했다. 이 게임에서는 한 사람이 상대방이 갖고 있는 물건 중 하나를 소유하고 싶을 때 비슷한 가치의 자기 물건을 내놓으면서 거래를 시도한다. 이때 심판이 판단할 때 두 물건의 가치가 불균형할 경우 값이 덜 나가는 물건의 소유주에게 물건을 더 내놓으라고 한다. 그 사람이 물건을 더 내게 되면 이제 두 교환자는 손을 모자 속에 넣는다. 모자에서 손을 뺐을 때 손이 펴져 있느냐 혹은 주먹을 쥐고 있느냐로 각자 거래에 대한 동의와 거부 의사를 표시하며 진행하는 게임이었다. 이로부터 가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더 부담하는 행위나 조처를 이 게임의 이름인 ‘hand in cap’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발음이 변하여 handicap이 된 것이다. 이는 이후 경마에도 영향을 미쳤다. 1754년에 최초의 기록이 나오는 ‘핸디캡 경기’(Handy-Cap Match)가 그것이다. 당시 경마가 인기가 있었지만 1등마가 계속해서 1등을 하는 문제가 노정되었다. 잘 훈련되고 근육이 많은 말이 유리하므로 너무나 뻔히 예측이 되어 내기가 성립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젊고 더 강해서 ...

발행일 202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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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당선인’이 틀리고 ‘당선자’가 옳은 이유들

[월간경실련 2022년 3,4월호-전문가칼럼] ‘당선인’이 틀리고 ‘당선자’가 옳은 이유들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되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자꾸 ‘당선인’이라고 한다. 언론이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관행은 2007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가 ‘당선인’으로 불러 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당시 인수위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당선자’ 명칭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했고, 선관위에서 ‘당선인’이 맞다는 해석을 내렸는데, 이는 공직자선거법과 국회법, 대통령직인수위원회법 등 법률에서 ‘당선인’(當選人)”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듬해 1월 10일 헌법재판소는 헌법을 기준으로 하면 ‘당선자’(當選者)로 쓰는 것이 맞다고 발표를 하면서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특히 당시 헌재의 김복기 공보관은 헌법이 최상위 법이므로 설사 다른 법률에 당선인이라는 표현이 있더라도 헌법에서 규정하는 표현인 ‘당선자’를 써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인수위의 이동관 대변인은 바로 다음날인 11일 헌재의 결정을 일축하고 ‘당선인’을 계속 사용할 것이며 언론이 이를 따라 줄 것을 요구했다. 한시적인 기구인 인수위가 국가 법체계의 최종심판관인 헌재의 의사를 무시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어느 쪽이 옳을까? 법률의 용어가 헌법과 맞지 않을 때는 헌법을 기준으로 헌법의 하위 규정인 법률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 법률가의 상식이다.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들이 최상위 법인 헌법을 무시하고 헌법의 하위 법률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당선인’으로 불러달라고 하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인수위에서 ‘당선인’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 근거로 들고 있는 법률들은 헌법 67조 5항의 명시적 위임에 의거하여 설치된 헌법의 하위법률들이다. 그러므로 헌법에 나온 ‘당선자’를 따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법률...

발행일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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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아침, 내일 그리고 인샬라

[월간경실련 2022년 대선특집호] 아침, 내일 그리고 인샬라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우리나라를 서양에 소개할 때 흔히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라는 명칭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아침이 고요해서가 아니었다. 상고 때부터 중국에서는 한반도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를 ‘조선’(朝鮮)이란 이름으로 불러왔다. 고조선(古 朝鮮,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때부터 그러했다. ‘朝鮮’이라는 말에서 朝는 ‘아침 조’이고, 鮮은 ‘빛날 선’ 혹은 ‘고울 선’이다. 그러므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조선은 ‘아침해가 빛나는 나라’, ‘아침이 맑고 고운 나라’라고 불렀다는 뜻이 된다. 왜 이렇게 불렀을까?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조선은 동쪽에 자리잡고 있기에 아침을 먼저 맞이하며 햇빛이 빛나는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鮮을 ‘고요하다’로 새길 수도 있는데, 바로 이 때문에 19세기 구한말 이래 조선은 그 한자의 의미를 직역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로 서양에 소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이제는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을 만들어내는 문화강국이 되면서 세계를 호령하는 ‘Dynamic Korea’(역동적 대한민국)가 되었다. ‘역동적’이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을 여는 나라가 아니다. ‘역동적인 내일’을 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내일’을 나타내는 tomorrow (투모로우)가 ‘아침’을 가리키는 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내일’을 뜻하는 영어 단어 tomorrow는 전치사 to(at의 뜻)와 ‘아침’을 뜻하는 명사 morrow(모로우)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이 morrow는 다양한 어형 변화를 거쳐 현대 영어의 morning(모닝)이 되었다. 요컨대 tomorrow는 ‘아침에’라는 뜻인데, ‘내일’을...

발행일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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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송년회, ‘함께주의’보다 ‘서로주의’로!

[월간경실련 2021년 11,12월호] [우리들이야기(2)] 송년회, ‘함께주의’보다 ‘서로주의’로!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연말이 다가오니 송년회 날짜를 잡는 데 분주하다. 그런 데 왜 연말이면 모든 직장에서 송년회를 가지는 것일까? 우선은 직원들에게 한 해 동안 회사를 위해 행한 수고에 대해 보상과 격려를 하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말에 있는 아름다운 말인 ‘수고’는 일을 열심히 하는 데 대한 찬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일이 ‘수고’라고 불린다는 것은 구성원들이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가지 고통을 견뎌내었음을 뜻한다. 이를 보상해 주기 위해 흔히 여러가지 상을 주어서 격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은 단지 크게 수고를 해 준 몇몇 개인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집단 구성원 전체에 보상을 행하고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고생했다고 하는 사실을 공유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회식이다. 그리고 연말에 갖는 마지막 회식은 특별히 더욱 성대하게 시행하여 기억에 남도록 마무리해야 한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동의하듯이 우리는 한(恨)이라는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특히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뛰다 보면 서로에게 원망도 생기고 각자 나름의 억울함도 생겨서 마음 한구석에 깊은 응어리가 진다. 이러한 한은 해가 가기 전에 모두 풀고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그런데 한은 나 혼자서 풀고 싶다고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면서 적절한 분위기를 만들어 모두가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는 의식을 진행하면서 다 같이 풀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분위기 속에서 함께할 때 이것이 가능하다. 집단적인 공감이고 카타르시스이다. 집단 카타르시스를 위해 우리가 동원하는 방법의 첫 번째는 노래이다. 사실 한민족은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프랑스인 셋이 모이면 토론을 하고, 영국인 셋이 모이면 스포츠를 한다는 말이 있듯이, 한국인 셋이 모이면 노래를 부른다고 말해도 될 정도이...

발행일 20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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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만들기 힘든 한식의 대역전!

[월간경실련 2021년 9,10월호-우리들이야기(1)] 만들기 힘든 한식의 대역전!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추석 연휴가 끝났다. 명절은 가족끼리 모이는 즐거움의 장이지만, 주부들에게는 명절 공포증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고생의 장이기도 하다. 그 중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을 해 올리는 고생이 으뜸이 아닌가 싶다. 사실 우리의 음식은 참으로 문제가 많은 것 같다. 도대체 왜 그리 양념도 많고 다듬고 버무리고, 손이 많이 가는지, 주부들은 하루 세끼 만들고 치우는 데 하루가 다 가버린다. 왜 이럴까? 우선 우리의 음식에는 김치와 된장, 젓갈을 비롯하여 발효음식이 많고, 재료를 오랫동안 익혀서 깊은 맛을 내는 조리법이 많기 때문이다. 오래 삶고 찌고 고고 달이는 음식이 좀 많은가! 중국 음식만 하더라도 대개가 강한 불에 짧은 시간 조리하는 음식들이다. 서양에서도 많은 경우 고기나 생선에다 양념을 얹어 오븐에 넣으면 조리가 끝나는 음식들이 많다. 다음으로 음식 만드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가는 이유는, 우리 음식이 전적으로 먹는 사람이 먹기 쉽도록 차려지기 때문이다. 서양 음식의 경우, 요리가 다 익으면 오븐에서 꺼낸 다음 식탁에 내놓기만 하면 된다. 먹는 사람들은 각자 접시에 덜어서 칼과 포크로 잘라 먹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고기나 야채 등 모든 재료를 항상 사람이 먹기 좋게, 그것도 사람 입에 들어갈 크기로 다 자르고 손질해 놓아야 한다. 먹는 사람은 젓가락 들고 집어서, 아니면 숟가락으로 떠서 입 안에 넣는 일만 하면 된다. 모든 재료는 식감이 부드럽도록 거친 부분을 제거하고 다듬고 다져 놓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칼과 포크가 필요 없고 젓가락과 숟가락이면 족한 것이다. 우리는 보통 서양인들이 칼과 포크를 이용하고 동양인들이 수저를 이용하는 이유를 서양인의 주식이 고기이고 동양인의 주식이 쌀과 채소이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다. 서양인들이 고기뿐 아니라 치즈나 심지어 야채 샐러드까지도...

발행일 2021.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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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안보에 제2외국어가 필수적인 이유

[월간경실련 2021년 5,6월호-우리들이야기(1)] 안보에 제2외국어가 필수적인 이유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대한민국의 GDP가 작년 말 기준 1조 6,310달러로 세계 10위의 반열에 올랐다. 또 수출에서 7위, 수출입을 합친 교역에서는 9위의 규모를 보여 명실공히 무역강국의 위치를 분명히 했다. 여기에 문화 분야에서의 한류도 지속하여 경제와 문화 모두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우리의 아킬레스건, 안보 그러나 반대로 우리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하는 영역이 있는데 이는 바로 안보다. 안보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이 항상 답답하다. 그것은 한반도의 운명이 우리가 아니라 주변 강대국의 역학구도에 철저하게 의존되어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결코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는 것 같지도 않다. 오직 자국의 이익 관점에서만 접근하여 이익을 취하려 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역학관계를 잘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이상론에 불과하다. 지난번 사드 파동 때 이를 이미 경험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이해 당사자만의 대화와 협상을 추구하는 양자주의(bilateralism)에서 벗어나서 문제를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틀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자주의는 근본적인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우리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국들뿐 아니라 제3국들까지 최대한 포함시키는 다자주의의 틀로 문제를 가져갈 때 단지 한반도라는 지역의 문제를 넘어 인류 공영의 가치 추구라는 어젠다를 상정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그리고 오직 그렇게 할 때만이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정책에 한계를 긋고, 제동을 걸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 수준과 정보 취득력은 다자주의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가? 대답은 매우 부정적이다. ...

발행일 2021.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