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스토리

필터
칼럼
X파일의 본질은 불법 도청이 아니다

  이종수(시민권익센터 대표,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X파일은 우리 사회의 이중적 구조와 후진적 제도운용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핵폭탄’에 비유되는 가공할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접근시각들은 그러나 영 마뜩찮다. 판도라 상자의 빗장을 열어야 할 책임 있는 당국자들은, 말은 어떻게 하든, 너나없이 테이프 내용의 공개를 꺼려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검찰은 이슈의 초점을 ‘불법도청’에 맞추면서 도청물 토대 수사 '필패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한동안 공황에 빠져 있던 정치권은 공소시효와 불법수집 증거의 법적 효력과 같은 형식논리를 내세워 국민들을 미혹에 빠뜨리고 있다. 지엽적 문제를 둘러싼 지루한 공방과 함께 흥미위주의 선정적 보도를 통해 이슈의 초점을 흐리면서, 적절한 시기에 ‘국정 안정과 경제에 미칠 악영향’ 논리를 등장시키면 국민들의 흥분이  쉽게 잦아들 것이라는 점을 기득권 세력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불법도청’ 문제 자체가 어떻게 X파일 이슈의 첫 번째 본질이 될 수 있는가? 이 사건의 첫 번째 본질은 테이프 속에 담겨 있는 ‘정경유착’, ‘권언유착’과 같은 우리 사회의 구조화된 비리 커넥션이며, 두 번째 본질은 제도를 무시한 집권층의 탈법적 권력운용 행태다. 우리가 X 파일을 통해 얻어야 할 교훈은 진상의 철저한 규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제도운용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우리 사회를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데 있다. ‘가벌성’ 여부는 지엽적 문제다. 불법도청과 공소시효 그리고 도청자료의 법적 효력과 같은 문제는 법정에서 가려지면 그만이다. 선진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검은 커넥션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진다면, 관련당사자들이 법정에서 설사 무죄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나름의 사회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회일각에서는 통신비밀 보호법과 사생활 보호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테이프 내용을 공개해서는 아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국가권력을 좌우할 대통령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등 국가의 기본질서를 송두리째 흔들 중...

발행일 2005.08.06.

칼럼
국민의 신뢰를 짓밟은 政.經.言의 유착관계

김 상 겸 (金 漺 謙)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 동국대학교 헌법학) 소위 안기부 X파일이라 불리는 도청테이프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과거 소문으로만 나돌았던 정치비리들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불법도청과 정치비리라는 두 문제가 혼재하면서 그 파문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서 초점은 역시 정치비리에 관한 내용이다. 누구말대로 그동안 야사로만 읽었던 내용들이 이제 조선실록처럼 정사로 읽는 것과 같은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진위여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지만 정치권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 정도로 구체적인 자료라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일거라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아마 상당수의 국민들도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실체가 지금에 와서야 드러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지 모른다. 물론 그 진실여부야 앞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드러난 내용이 사실이라면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정치비리는 정경유착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그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번 사건이 보도된 대로라면 정경유착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한 언론사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정경유착을 넘어서 언론까지 그 위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무서운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은 말할 수 없이 확산되었다. 그동안 정부는 국민의 여망을 쫓아서 입법과 정책을 통하여 정치개혁 작업을 지속적으로 펴 왔다. 이번 사건이 보도대로 과거 정권에서 정치개혁 작업을 진행하던 중에 일어난 것이라면, 앞에서는 정치개혁을 외치면서 뒤로는 정치비리를 자행한 그 철저한 이중성에 국민은 기가 막히게 농락당한 것이다. 또한 한 점의 망설임이나 부끄럼 없이 민주주의라는 무대를 이용하여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면 국민을 한낱 허수아비로 보고 신뢰를 짓밟은 것이다. 루소나 로크와 같은 근대 계몽주의자들이 국민주권을 외치면서 시민사...

발행일 2005.07.26.

칼럼
행정수도 헌재 결정에 대한 비평

김상겸 교수(동국대 헌법학) 헌법재판소는 21일 신행정수도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8:1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3개월만에 신속한 결정을 내림으로서 수도이전과 관련된 분쟁을 조기에 종식시켜 사회적 평화를 추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수호기관으로서 헌법재판소는 헌법적 평화를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결정을 내리는데 3가지의 의견이 있었다는 것을 밝혔다. 첫 번째는 재판관 7인의 견해로 한 국가의 수도에 관한 사항은 헌법적 사항으로 법률로서 수도이전을 정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보는 것이다. 현행헌법은 명문으로 수도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수도에 관한 문제가 헌법문제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으나, 오랜 역사 속에서 한 국가권력과 작용의 중심지로서의 수도에 관한 문제는 헌법적 사항일 수밖에 없으며, 그런 점에서 명문의 규정이 없다면 관습헌법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도이전의 문제는 헌법사항으로 현행 헌법 제130조에 의한 헌법개정절차를 밟아서 결정할 사항이며, 그 결정과정에서 주권자인 국민의 투표권 행사를 통하여 결정되기 때문에 신행정수도특별법은 헌법의 규정을 위반하였고 국민의 투표권을 침해한 위헌법률이라 본 것이다. 두 번째 의견은 다른 관점에서 신행정수도특별법이 위헌이라고 보았는데, 수도이전의 문제는 불문헌법에 해당하는 사항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국가의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헌법 제72조에 의하여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고 보았다. 헌법 제72조가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한 정책에 대하여 대통령의 재량에 의한 국민투표부의권을 규정하고 있기는 하나, 이 규정은 단순히 국민투표에 대한 대통령의 재량권의 행사만이 아니라 국가의 중요한 정책에 대하여 당연히 국민이 참여하여 결정해야 할 투표권도 함께 도출된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수도이전의 문제는 국가의 중요한 정책으로 국민의 투표권 행...

발행일 2004.10.22.

칼럼
국회의원 금배지 고치자

  김성훈 경실련 공동대표 새 국회의 개원을 앞두고 각 당이 추진코자 하는 국회 개혁구상은 아주 신선하다. 면책·불체포 특권 제한, 국민소환제 신설, 윤리위원회 강화, 상시 개원 등 그동안 비리와 부정, 비능률로 얼룩진 국회상을 뜯어고쳐 새롭게 출발하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일반노동자의 평균월급 180만원만 개인보수로 받고 나머지 세비는 당 운영비로 내놓겠다는 당마저 생겨났다.   정작 일반국민들은 “정치란 거짓행위를 마다하지 않는다(政不厭詐·정불염사)”는 옛말을 떠올리며 반신반의의 눈초리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 정치권이 총체적으로 국민들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된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 혐오현상은 그 원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우리 정치권에 대한 한가닥 미련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천만다행이다.   광복 이후 지난 16대까지 우리 국회, 즉 정치권을 지배해온 각종 의혹과 비리 및 ‘아니면 말고’식의 정치행태의 근원과 그 방지책은 무엇일까.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 벽면에 크게 붙어 있는 국회 엠블렘이 이 의문에 대해 상징적으로 해답의 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나라꽃인 무궁화 꽃잎들 한 가운데에 동그라니 둘레를 치고 뚜렷하게 ‘或(혹)’자가 새겨져 있는 국회 문장(紋章)을 TV를 통해 볼 때마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그 의미에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같은 모양의 배지를 달고 다니는 분들이야 관성에 젖어 제대로 느끼지 못했겠지만, 길거리의 아무나 붙잡고 이 마크와 배지 속 ‘或’자의 의미를 물어 보았다고 치자. “그거 ‘유혹(誘惑)’이라는 뜻 아니에요? 아니 ‘의혹(疑惑)’을 말하겠지요. 무슨 소리, 그건 ‘미혹(迷惑)’을 뜻함이 틀림없어”라고들 대답할지 모른다.   엠블렘 속 원래의 글자는 ‘나라 國(국)’을 나타냄이 틀림없을 터인데, 도대체 국가기관 중 유독 국회만이 나라글을 쓰...

발행일 2004.05.04.

칼럼
국민 대통합 서두를 때다

<김성훈 경실련 공동대표>   우리 국민들은 헌정 60년사에서 참으로 기이한 선거를 경험했다. 총선 따로, 경제 따로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선거경제(economies of democracy)' 특수현상이 이번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선거 인플레이션도 없었고 통화량 증가, 소비 급증, 제조업 장애현상도 없었다. 증권시장도 선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그만큼 성숙 됐음을 뜻한다. 그러나 경기침체, 성장둔화, 성장기업들의 해외 이탈, 일자리 부족, 신용불량자 양산 등이 심각한 상황인데도 정작 경제이슈들은 정치 현안에 밀려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   급조된 듯한 각 당의 경제공약들은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 百步)' 일 정도로 엇비슷하고 재정조달 및 지출면에서 대부분 실현성마저 의문시된다.  지역 대표를 뽑는 총선인데도 대선 때나 볼까말까 할 정치이슈만 선거기간 내내 판을 쳤다. 마치 경제문제는 '나 몰라라' 하듯 정치권이나 유권자들이 온통 국회의 대통령 탄핵, 60~70대 노인 폄하와 세대간 대결,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 거여ㆍ거야 견제론 등에 편갈려 입씨름 하느라 총선 15일을 지새웠다.   국론분열이 지나쳐 국민분열(國民分裂) 현상이 나타난 것은 적잖은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정치 속성상 씨앗을 뿌린 자가 그 결과를 거두지 않아 문자 그대로 국민만 죽어날 판이다. 그 근원은 탄핵정국의 출현이었다. 양쪽이 조금씩만 양보 타협했어도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 국민분열 사태로까지 진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이득을 노리는 '정치 10단' 들의 전술은 적중했을지 모르나 그 상처와 후유증은 또다시 십수 년을 경과해야 치유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3김(金) 퇴장으로 반세기를 넘긴 동서대립과 남북갈등 현상이 차츰 아물어가는 시점에서 새로 출현한 국민분열 현상은 참으로 개탄스럽기 그지 없다. 선진국 진입을 ...

발행일 2004.04.27.

칼럼
[선거연령 하향 조정]의무만큼 권리도 인정해야

 고계현(경실련 정책실장)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선거연령 하향을 논의하다 결국 현행 20세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결국 각 정당은 이번에도 선거연령 하향 논의를 ‘정치철학적 기준’이 아닌 단순한 당리당략적 관점의 ‘표의 논리’에 따라 결정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정치권의 선거연령 하향 논의는 선거연령을 하향할 경우 새로 발생할 무시 못할 표들의 성향을 고려해 여야간 공방을 벌이다 없던 일로 하는 것을 반복해 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혹은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시키기 위해서라는 나름의 철학과 기준을 갖고 논의를 했다면 현행 유지라는 결정을 또 다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선거연령은 1948년 건국 당시 21세로 시작돼 지난 60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20세로 낮춰졌다. 그 후 40여년 동안 이같은 연령의 법적 규정은 그대로 유지돼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치개혁 논의가 있을 때마다 줄곧 선거연령 하향이 제기돼 왔다. 이러한 제기 배경에는 인권탄압의 소지를 없애기 위함이다. 선거권을 스스로 대표자를 뽑는 국민의 참정권적 기본권리라면,과거 유럽에서 여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아 여자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았듯이 대학교를 입학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능력을 가진 자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인권탄압의 소지가 존재한다. 고문만이 인권탄압이 아니라 이같은 선거권의 박탈도 인권에 대한 탄압이다. 더구나 18세가 되면 주민등록증이 발급되고 이에 따라 여러 의무도 부과되는데 의무는 지우면서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유언가능 17세,병역 지원입대 17세,운전면허 취득 18세,공무원 임용 18세,혼인 남자 18세 여자16세,선거운동 자원봉사 18세,병역 징집 19세로 부과하는 법률들을 종합하면 적어도 주민증과 함께 병역 의무 등을 부과하는 18세가 되면 충분히 정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이를 표현 행사할 수 있는 인격체로 인정하고 제정됐음을 ...

발행일 2004.02.28.

칼럼
정치개혁: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1: 정치개혁의 목적 정치개혁이 이 시대의 최대의 話頭가 되고 있다. 국민 모두가 한 목소리로 그 절박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치개혁 없이 더 이상의 국가발전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 이 국민이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정치개혁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치개혁의 바람직한 목적과 방향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정치개혁의 목적은 우리나라의 정치의 [質과 水準]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정치의 生産性을 높이는데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치의 질과 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치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우선 정치가 고도의 [專門的 政策能力]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가 국민들에게 국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비전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 비전에 기초하여 국가 목표와 전략을 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수립능력과 집행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제는 결코 주먹구구로 국가경영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탁월한 국가 비전력과 고도의 정책전문성 없이는 이 세계화시대에 국가를 올바로 끌고 나갈 수 없다. 이제는 아무나 국가지도자가 되고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결코 아니다. 아니 되어서도 아니 되는 시대이다. 둘째, 정치가 강력한 [國民統合能力]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사회구성원간의 사상적 이념적 분열과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대립과 갈등이 심각하다. 우리 정치가 이러한 사회적 분열과 이념적 대립을 극복하고 국민을 하나로 묶어 내는 국민통합과 사회통합에 성공하여야 한다. 국민적 에토스와 열기를 다시 불러 일으켜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조직화해 내야 한다. 그래야 경제발전도 국가발전도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는 국민들을 통합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앞장서 분열시키고 있는가?        셋째, 정치가 확고한 [國家指導能力]을 회복하여야 한다. 오늘날과 같이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대에 정...

발행일 2004.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