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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붕괴론’의 ‘망령’이 아직도 떠돌고 있다_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북한 붕괴론'의 '망령'이 아직도 떠돌고 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3년 가까운 시간이 경과했지만 ‘김정은 정권붕괴론’이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그 배경은 김정은 어린 나이와 경험 일천, 잦은 권력엘리트 교체, 장성택 처형, 김정은 건강 문제 등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 상황에서 볼 때 ‘연목구어’인 것 같다. 북한 붕괴론은 당연히 해야 할 남북대화와 대북 지원을 회피하기 위한 논리로 활용된다. 더욱 나쁜 것은 북한 조기 붕괴를 핑계로 회담을 건성건성하거나 합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94년 10월에 북미간에 이루어진 ‘북미제네바 합의’였다. 합의과정이 건성건성이었고 합의도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 배경은 당시 미국측 회담대표였던 갈루치(Robert Gallucci)가 실토했듯이 ‘북한 붕괴론’이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사이비’ 북한전문가들이 언론에 나와 김정일 후계체제는 “3일 아니면 3년 내에” 붕괴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정세 분석이 1994년 10월 ‘북미제네바 합의’를 가능하게 하였다. 북한이 곧 붕괴될 터이니 북한이 원하는 북미관계 개선 및 경수로 건설을 합의해 줘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고 경수로 건설 중 북한이 붕괴되면 그것은 어차피 남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남한이 비용의 70%를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왔다. 더 큰 문제는 북미제네바 합의를 이행하면서 북한붕괴를 기다리는 바람에 공사가 지연됨으로써 북한의 대미 불신이 매우 커졌고 북한이 미국의 대화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발이 되었다. 즉, 미국은 북한체제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어떻게든 “북한이 붕괴되기를 바란다”는 인식이 북한 지도부에 박히게 된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북미관계개선이나 평화체제의 정착 없이는 어떤 합의나 성명도 그 뒤에는 북한붕괴 의도가 숨어있다는 극단적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북한붕괴...

발행일 20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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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공생관계 해소를 위한 대북전략의 기초이념_이장한 평화와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 사무국장

적대적 공생관계 해소를 위한 대북전략의 기초이념  이 장 한 평화와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 사무국장 어느덧 올해로 해방 70년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 한반도는 오랜 식민통치의 결과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국민의사 형성에 실패하고 국내 정치가들의 패권싸움과 미일중러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지배되어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이내 분단을 맞이하게 된다. 알다시피 우리 한반도는 미중일러 세계 열강들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중심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유교 문화권과 기독교 문화권이 맞물려 있는 대립과 긴장의 완충지대이다. 따라서 우리 한반도의 정세는 국제정세의 변화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로 평가되며 미국과 중국의 동북아 전략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그런데 장기집권 체제인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북한에게 있어 향후 몇 십년간 한반도 전략의 획기적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편 자본주의 국가체제인 미국에게 있어서도 그들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상 한반도를 매개로 하는 대외전략은 여당과 야당 간에 큰 입장의 차이를 나타내지 못한다. 즉 현 동북아의 국제정세 상 한반도 분단체제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의 대북전략과 대외정책은 진보, 보수 정권의 집권 여하에 따라 그 방향이 180도 뒤바뀔 수 있는 매우 동태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한국의 정부형태인 대통령제 5년의 임기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우리 대북정책의 특수성인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단순히 북한문제를 넘어 한반도 주변 열강들의 동북아 전략, 나아가 세계 전략에도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는 시계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대북정책은 미중 세력간의 무게 중심에 위치해 있는 균형전략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 질서 전반의 세력균형을 담당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

발행일 201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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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남북관계 평가와 2015년 대북정책 전망_김근식 경실련통일협회 이사

2014년 남북관계 평가와 2015년 대북정책 전망 김근식 경실련통일협회 이사 ▲지난 12월 29일 통일준비위원회는 '새해 통일기반 구축에 관한 통일준비위원회 계획'을 발표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북측에 공식적으로 대화를 제의했다. 2014년은 남북 모두 대화의지를 밝히고 상대방에게 대화를 제의한 한 해였다. 그러나 동시에 상호 대화의 노력이 지속되었지만 정작 대화의 성과는 미미했던 한해이기도 했다.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천명했고 곧이어 1.16일 국방위 중대제안을 통해 남북간 정치군사 의제를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신년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2월 고위급 접촉이 개최되었고 한미군사훈련 기간과 일정이 겹침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켰다. 2014년 상반기 남북대화와 이산가족 상봉은 양측이 한발씩 양보한 결과였다. 북은 키리졸브 훈련을 맹비난하면서도 훈련기간에 이산가족 상봉을 수용했고 남측 역시 북이 선제의한 고위급 접촉을 수용하면서 북의 관심사항인 정치적 비방중상 중단을 받아들였다. 남북 모두 상대방의 관심과 요구에 화답한 긍정적 결과였다. 그러나 박대통령의 통일대박론과 뒤이은 드레스덴 선언은 북한에게 흡수통일과 북한붕괴 시도로 간주되었고 북한의 정치군사 회담 제의는 한국에게 진정성 없는 평화공세로 받아들여졌다. 남북은 각자 자신의 대화 제의에 상대방이 응하기만을 요구하면서 팽팽한 줄다리기로 시간을 허송했다. 서로 대화를 원하면서도 상대방의 대화제의는 거부하는 묘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북한은 6.30 국방위 특별제안을 통해 재차 정치 군사 의제를 논의하자고 강력히 주장했고 박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환경 민생 문화 인프라 등 작은통일부터 시작하자고 제의했다. 여전히 남북의 접근방식은 평행선을 달렸고 박근혜 정부가 8.11 제안한 2차 고위급 접촉에 대해 북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

발행일 2015.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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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과 남북 대화, 이렇게 풀어라_서보혁 경실련통일협회 정책위원장

북한 인권과 남북 대화, 이렇게 풀어라 북한 인권 문제 무시할 수 없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서보혁 경실련통일협회 정책위원장 남북관계가 기로에 서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대립을 계속해오던 남북이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 관계개선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우리는 물론 국제사회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 4일 황병서 일행의 전격적인 방남이 2차 남북고위급 접촉으로 나아갈지는 상대를 배려하는 남북의 노력과 국제적 지지가 필요하다. 2차 접촉 성사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난 10일 남한 반북단체의 대북 비난 전단 살포로 인해 남북한 총격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남북관계 개선이 남북한 정부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대내적 요인들에 대한 적절한 통제도 필요하다. 주변국들의 견제나 유엔에서의 강도 높은 북한 내 인권문제 제기는 대외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 오찬하는 남·북 고위대표단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방남한 북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4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영빈관에서 김관진 국방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 우리 측 관계자들과 식사하기 전 대화를 하고 있다. 남북 외교 경쟁이 인권 문제에 미치는 영향 지난 9월 말, 뉴욕에서 열렸던 제69차 유엔 총회에서 남북한의 외교경쟁이 재연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포문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상기하며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와 북한인권사무소의 한국 설치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북한이 흡수통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독일 통일도 언급했다. 연설 하루 전인 지난 9월 23일 뉴욕에서는 한·미·일 3국 외무장관이 주도한 '북한인권고위급회의'도 열었다. 북한은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거부당했다. 박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 직후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등 관련 기구와 관영...

발행일 201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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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_박경화 환경운동가 겸 작가

통일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 박경화 환경운동가, 작가 로저 셰퍼드, 전직 뉴질랜드 경찰관인 40대 후반의 이 사나이는 내가 가장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사람이다. 아마 2012년 어느 날이었을 게다. 경복궁역에서 지하철을 타려다가 우연히 로저 셰퍼드의 사진전을 보게 되었다. 남쪽 백두대간뿐 아니라 북쪽 백두대간까지 종주를 하고, 그 사진을 모아 산림청 주최로 사진전을 열고 있었다. 강원도의 산보다 더 높고 장쾌하게 펼쳐진 개마고원 풍경과 인가 가까운 곳에는 나무 한 그루조차 없는 민둥산, 다양한 표정을 가진 금강산까지…, 우리에게는 미지의 세계 같은 북녘의 웅장한 산줄기들이 큰 액자 속에 담겨 있었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우리 땅을 남반구 출신 사나이가 먼저 걸었다는 것이 몹시 부럽고도 배가 아팠다. 우리는 기껏해야 반쪽 백두대간만 볼 수 있는데, 남북 백두대간을 온전히 걸은 이가 우리 민족도 아닌 뉴질랜드 사람이 될 줄이야. 몇 달 후 로저 셰퍼드가 걸었던 북쪽 백두대간 종주는 텔레비전 다큐로도 방영되었다. 탐방로가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진흙탕길을 달리다가 낡은 차가 고장이 나고, 코펠과 버너가 아닌 냄비에 모닥불을 피워서 밥을 해 먹고, 빨치산 대원 같은 후줄근한 가이드 사내와 함께 종주하는 모습은 못내 안쓰러울 정도였지만 언젠가 나도 저 길을 걷고 말리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욕망이 불타올랐다. 도라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본 개성공단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개성공단 뒤로는 아파트 여러 채가 우뚝 솟아 있는 개성시가 보였다. 그 마을에 살면 세금도 내지 않고 군대면제라는 말에 남자들이 매우 부러워하는 대성동도 보이고 판문점도 어렴풋하게 보였다. 정말 이렇게 가까울 줄이야. 10월 18일 경실련통일협회 민족화해아카데미 프로그램의 일환인 현장기행을 따라갔다. 제3땅굴과 도라전망대, 도라산역, 임진각을 간다는 말에 두 번 고민할 틈도 없이 냉큼 같이 가겠다고 했다.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릉과 연천군에 있는 북한...

발행일 201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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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궁정혁명’은 일어날 것인가?_전현준 경실련통일협회 이사

북한에서 '궁정혁명'은 일어날 것인가? 전 현 준 (경실련통일협회 이사)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9월 3일 이후 40일 여일 이상 공식석상에 등장하지 않으면서 ‘쿠데타설’을 비롯해서 수많은 추측이 난무하였다. 그러나 그가 10월 13일경 지팡이를 짚고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지도’한 후 일단 ‘권력 이상설’은 잠잠해졌다. 김정은은 김책공대 교육자아파트 시찰(17일), 제323·162군부대 소속 항공육전병부대 이착륙 훈련지도(19일), AG참가 선수단 격려(19일), 연풍과학자휴양소 현지지도(22일), 조선인민군 제526대연합부대와 제478연합부대 사이의 쌍방 실동훈련 지도(24일) 등을 실시하여 정치적 건재와 육체적 건강을 과시하였다. 그가 완쾌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무리한 현지지도를 강행하는 것은 젊어서 가만있지 못하는 면도 있지만 북한 내·외에서 발생한 각종 루머와 ‘김정은 정권 흔들기’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건재가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장래와 관련하여 ‘단기 안정, 중장기 불안정’ 기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특히 중장기적 차원에서 김정은 정권 ‘급변사태’가 운위되면서 핵심 권력엘리트에 의한 ‘궁정혁명’ 가능성이 유력한 시나리오로 등장하고 있다. 과연 북한의 핵심 권력엘리트들은 ‘궁정혁명’을 일으킬 것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북한 권력 엘리트들의 성향과 문화를 잘 파악해 보아야 한다. 북한에서 당·정·군 권력 엘리트는 매우 중요하다. 김정은은 수령후계자로서 무소불위의 절대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혼자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핵심 엘리트들의 ‘집단보좌’를 받고 있다. 그들의 충성스런 보좌 없이는 김정은은 하루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김정은은 정치적 안정성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난, 외교적 고립, 북핵 문제, 남북 경색 등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핵심 엘리트들의 적극적이고도 효과적인 보좌가 필요하다. 그렇다...

발행일 201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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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시각으로 본 남북통일_코디무어 독일 하노버대

독일인의 시각으로 본 한국통일 코디 무어(Cordelia Moore) 독일 하노버대학 / 국제정치학 독일에서 자라면서, 나는 분단된 나라의 역사와 이를 통일하려는 시도에 관해 공부했다. 어떤 면에서 독일인이 겪어온 어려움은 한국인이 아직까지도 경험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두 나라 모두, 한 나라가 두 나라로 나뉘어 서로의 지역에 대한 통행을 제한하여 주민을 분리시킨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동독과 마찬가지로 북한 또한 상대국인 남한보다 훨씬 느리게 발전했고 분단선이 생긴 이후로 시간이 지날수록 두 나라 간의 경제력 차이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바로 이 경제력 차이가 한국의 통일을 생각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안 중 하나다. 독일 통일 후 약 25년 동안 약 2백만 달러의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며, 오늘날까지도 아직까지 존재하는 격차를 좁히기 위해 매년 돈이 동쪽으로 흘러들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둔다면 두 한국의 경제력 차이가 동서독의 차이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통일 이후의 독일보다 더 큰 경제적 과제가 될 것이다. 분단의 시각이 길어질수록 통일의 열망은 식어... 경제 문제를 제외하고라도 해결해야 할 다른 많은 문제들이 있으며 두 나라가 분단되었던 아주 다른 상황 때문에 현황을 비교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이로인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두 나라가 분단된 배경을 살폈을 때, 독일은 2차대전 후 순전히 연합국의 결정으로 나뉘었지만 한국은 한국 내부의 민족 전쟁인 한국전쟁이 원인이었다. 다른 요인들도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내전은 특히 그것이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것이라면 언제나 나라를 통합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초래한다. 남한과 북한 간 사회적 차이가 매년 커지고 있다는 점에 더해 휴전선이 존속하고 있으며 두 나라를 통일하는 데 있어 사회적 통합이 가장 중요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존재하는 경제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독일 통일은 사회적 측면에서 봤을 때 실로 성공적인 것이었다. 다시 ...

발행일 201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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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평화 전도사가 아닌 영토 정복자의 길을 걷겠다는 것인가 _이승철 한양대

일본은 평화 전도사가 아닌 영토 정복자의 길을 기어코 걷겠다는 것인가 이승철 한양대 토목공학과 4학년 / 경실련통일협회 인턴   우리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 초등교육을 일본어로 받은 할머니는 팔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숫자를 일본어로 센다. 그게 더 편하다고 한다. 할머니가 해준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것 하나가 있다. 45년 8월 15일, 느닷없이 흘러나온 라디오 전파에서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그때 할머니는 정규 수업 대신 밭에서 작업을 (아마 전쟁 물자 보급을 위해 학생들을 동원한 듯하다.) 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는 할머니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이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지독한 한국어 말살 정책과 천황에 대한 충성 맹세 때문이었다. 지금의 할머니는 일본이 저지른 잔악한 전쟁 범죄와 식민 지배에 통탄을 금치 못한다. 광복한 지 5년 만에 겪어야 했던 6.25의 참혹함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전쟁에서 진 일본은 무조건 항복과 함께 ‘육, 해, 공군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이를 더 발전시켜 평화헌법 9조를 제정하여 발표한다.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써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의 평화 헌법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끈질기게 성찰한 끝에 내놓은 의지의 산물이었다. 비록 잘못에 대한 뉘우침이라고는 해도 평화 헌법이라는 조항은 그 자체로 일본이 세계에 자랑으로 내놓을 만한 정신적 보물임에 틀림없다. 또한 칸트가 영구 평화를 위해 제시한 단서를 한 나라가 성문법에 실제화시켜 놓았다는 사실은 일본이 세계 평화의 전초 기지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헌법의 정신을 수출하고 세계에 전파시켜도 모자랄 판국에 일본 정부는 그것의 해석을 각의 결정만으로 변경해버렸다. 인류의 위대한 발걸음을 일본 정부가 자진해서 후퇴시킨 것이다. 나는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일본 정부의 집단 자위권 용인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아무리 침체기라 해도...

발행일 2014.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