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의대정원 확대로 드러난 왜곡된 의료정책 변천사

회원미디어팀
발행일 2024-04-01 조회수 8043
칼럼

[월간경실련 2024년 3,4월호][시사포커스(1)]

의대정원 확대로 드러난 
왜곡된 의료정책 변천사

가민석 사회정책팀 간사

 의과대학 정원 2천 명 확대, 정부 발표 이후 온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전공의를 필두로 의사들이 환자 곁을 떠났고, 최근에는 제자들을 지키겠다며 의대 교수들도 집단행동에 동참할 것을 알렸다. 이로 인해 환자 고통과 국민 불안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의사 수를 늘리려고 하면 의사들은 거리로 나온다. 기득권이 구성원 확대를 막는 전례는 수없이 많고 상식적으로도 이해된다. 그러나 용납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의료위기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고 현재 의사 수 확대는 양보할 정책도 아니기 때문이다.

 경실련에서 10년 넘게 지적하고 해결하려는 우리나라 의료문제 핵심은 필수·공공의료 공백과 지역 의료 격차다. 민간 중심 의료체계를 가졌고 수도권 집중현상이 극심한 나라에서 마땅히 발생하는 문제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감염병 환자를 수용할 공공인프라가 부족해 환자가 사망하면서 온 국민이 경험했다. 응급실 뺑뺑이, 수도권 원정진료, 유령간호사의 불법의료 같은 사건사고가 연일 터져 나올 때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의료 자체가 공익성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나 시장실패가 일어나 위기가 심각한 영역에는 공익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의대정원 확대

 의료위기가 발생하는 여러 원인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인기과와 기피과, 수도권과 의료취약지 간 격차도 극심하지만 기본적인 총량 자체가 부족하다. OECD 자료를 통해 국제 간 비교를 해보면 실제 우리나라 의사 수는 회원국 중 꼴찌다. 이외에도 국내 의료수요에 따른 필요인력 추계, 공공의료기관의 최소배치기준 대비 부족한 의사 수 등 수많은 자료가 우리나라에서 의사를 더 배출하는 것이 정책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사 수와 관련해 실행할 수 있는 정책은 사실상 의대정원 조정, 한 가지뿐이다. 국가가 직접 필요한 곳에 배치할 근거도 없고 다른 나라처럼 의사를 수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학교 정원은 사회 수요에 따라 매년 늘리고 줄일 수 있고, 동결하더라도 전공과목 간 조정도 가능한 유연한 정책영역이다. 그러나 의과대학 정원은 1998년 이후 27년째 단 한 명도 늘리지 못했고 심지어 2006년에는 351명을 감축하며 19년째 동결됐다. 의료기득권은 이 그동안 ‘구성원 확대’라는 나름의 위기를 아주 잘 막아왔고 지금도 결사 항전에 나서고 있다.

2천 명 확대는 적절한가.

 경실련은 최소 기준이라 본다. 수차례 발표를 통해 최소 2천 명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올해 정부가 발표한 증원규모와 정확히 일치해서 경실련이 이렇게 영향력이 있었냐, 정부와 내통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물론 아무런 관련은 없고, 의료이용량 기준 입학정원 4천 명 이하(현 3,058명에 1,000명 확대)면 중장기적으로 공급 부족이 발생하고, 5천 명 이상(현 3,058에 2,000명 이상 확대)이어야 수급 부족 해소가 가능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단계적 증원은 사회적 갈등 지속과 환자의 희생이 예상되므로 일괄증원한 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 하였다(23년 10월 26일 경실련 보도자료 참고). 자체 분석뿐 아니라 국책연구기관을 비롯한 여러 연구자의 장기추계와 시나리오별 증원규모를 통해 2천 명 증원규모에 대한 논증도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2천 명’이라는 숫자는 의료계 반발에서 핵심이 아니다. 2천 명이 아니라 천 명이라면, 혹은 그보다 더 적었다면 의료계가 동의했을까. 지난 문재인 정부 때도 의사들은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불법 집단행동에 나섰는데, 당시 증원 규모는 400명이었다. 현재 전국에 40개 의과대학, 각 대학별로 10명씩 증원하는 수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랬듯 어떤 숫자든 확대한다고 하면 집단행동을 불사할 것이다. 지금까지 비정상적인 공급 통제가 있었고 의료인력 공백이 오랜 기간 누적됐기 때문에 최소 인원으로서 2천 명 확대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의사선생님, 환자 곁으로 돌아오세요!”

 의료계가 진료거부 등 집단행동에 돌입하자 수술이 밀리고 응급환자들이 길거리를 떠돌면서 환자 피해가 커지고 있다.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의 업무부담이 심해졌고 그동안 유령간호사로 불렸던 PA간호사의 불법의료에 더 의존하게 된 상황이다. 의사들은 환자 곁에 있을 때 의사라 칭할 수 있다. 전문성을 인정하고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면허를 통해 의료독점권을 부여했다. 대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국가는 의료법에 근거해 진료개시를 명할 수 있고 이에 따르지 않는 집단행동에는 불법에 따른 행정조치를 할 수 있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인종·종교·국적·정당·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해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겠노라” 의사들은 선언했다. 대한의사협회가 속한 세계의사회는 ‘집단행동이 대중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필수응급의료서비스와 치료가 지속해서 제공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이번 의사집단은 수술실,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자리를 비우면 환자 생명에 즉시 영향을 미치는 곳까지 버려둔 채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또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다. 불법이라고 모두 부정할 것은 아니겠지만 명분도 설득력도 충분하지 않은 이번 집단행동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의료는 의료전문가에게 정책은 정책전문가에게

 국가의 의료정책을 직역에서 결정하는 비정상적인 논의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에 대한 의견 수렴은 필수 절차 중 하나지만, 이익에 반하는 정책이 나오면 환자들 버리고 현장을 떠나는 관행을 더 이상 두고 보면 안 된다.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 의사집단의 불법 집단행동을 떠받치고 있는 기본 신념이다. 지금까지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직접 저지하면서 승리공식을 만들어 왔고 현재 의료대란 속에서도 그들의 믿음은 확고해 보인다.

 이익집단이 구성원들의 이익 신장을 위해 투쟁하는 건 당연한 이치지만, 공익 보호를 위해 정책 결정에 나서야 하는 국가가 휘둘려온 역사를 되짚어 보면 정부의 무능이 불러온 참사기도 하다. 의사 부족을 직관하면서도 30년 가까이 대학교 정원을 늘리지 못했다. 지금도 의사집단은 의료현장의 공백을 적극적으로 유발하며 정부를 향해 엄포를 놓고 있다. 의사들은 본연의 임무에 맞게 환자 곁에 돌아가야 하고, 공공정책의 결정자로서 정부는 시장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매진해야 한다.

의대정원 확대가 정말 국민을 위한 정책이 되려면

 정부는 의대 증원을 포함해 지역의 필수의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추진 중이다. 여러 선진 정책이 담겼지만, 경실련은 중대한 두 가지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단순히 의사 수만 늘려서는 지역의 필수 의료를 살릴 수 없다는 점이다. 경실련은 “의대정원 확대”가 반드시 “공공의대 신설”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롭게 배출되는 의료인력이 필수 진료과와 의료취약지에 근무하도록 하려면 배치 근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민간 중심 의료 체계가 유지된 채 대폭 의대정원만 늘린다면 인기과와 대도시·수도권에 몰릴 인력만 더 키우는 꼴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한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나 필수의료분야 수가 인상 등도 담겼다. 그러나 계약의사제는 지원받은 장학금을 나중에 토해내면 의무복무지역에 남지 않아도 그만인 현행 ‘공중보건장학제도’에서 이름만 바꾼 격이라 실효성이 없다. 그러면 수가 인상이 남는데, 언제까지 국민이 80% 이상 부담하는 건강보험 재정으로 의사들 주머니를 챙겨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특성에 맞게 배치 근거를 마련하는 구조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의료계를 달래겠다고 말도 안되는 특혜법안을 들고 왔다는 점이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그것인데, 의료사고가 잦아 의사들이 기피하는 필수의료분야로 의료인력을 유입하기 위해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의료인에게는 형사처벌을 면제하겠다는 내용이다. 일단 위헌을 다툴 일이다. 과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해 위헌이 결정됐을 때도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로 말미암아 피해자로 하여금 중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하였다. 이는 필수의료행위에 대해서는 피해자 의사와도 상관없이 중상해 및 사망에 이르러도 공소 제기를 할 수 없다는 특례법과 정확히 일치해 위헌 소지가 크다. 또한 필수의료 분야를 살리겠다는 정책 목표가 대단히 궁색해졌는데, 법안이 공개되면서 필수의료분야뿐 아니라 미용성형 분야까지 형사처벌 면제를 적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대로 가면 국내외 전무후무한 특혜법안이 만들어져 향후 의료체계 뿐 아니라 형사체계에도 큰 혼란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된다.

모진 풍파에도 의대정원 확대는 완수해야 한다

 정부가 맘에 안 들어서 일단 반대하기도 하고, 같이 엮인 다른 정책이 문제라서 의대 증원까지 ‘패키지’로 무산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해당사자인 의료계는 이번에도 강경 대응하고 있고 사회적 갈등에 지쳐 얼른 양보하고 끝내라고 외치는 여론도 있다. 사회가 바뀌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갈등과 고통이 있지만 여기서 기본을 잊으면 모든 게 무의미해진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의료위기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공공정책의 취지가 기득권 논리에 잠식된다면 이 같은 사회적 갈등은 단지 날짜만 바꾸어 계속 반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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