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동칼럼] 시민운동의 주인은 시민

관리자
발행일 2022.12.01. 조회수 13115
칼럼

[월간경실련 2022년 11,12월호][동숭동칼럼]

시민운동의 주인은 시민


윤순철 사무총장



6월 무더운 여름이었다. 종로5가 25-1 신탁은행 4층. 친구의 부탁으로 자료를 구하러 들린 사무실은 흡사 도떼기시장 같았다. 60평 남짓한 사무실에 80-90명이 북적였고, 다들 정신이 없이 바쁘고 분주하며 시끄러웠다. 요즘 말로 핫하다는 시민운동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실 풍경이다. 당시 금융실명제 실시, 부동산실명제, 토지공개념 등 우리의 경제질서를 바꿨던 경실련의 정책들이 제도화 되던 때였다. 시사저널이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 경실련이 군보다 영향력이 세다고 나왔던 그 시절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유재현 사무총장님이 통일협회 사무처장을 맡고 계셨다. 학생운동을 하고 공장에 갔다가 겨우 주민등록증이 있는 정상인이 되어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였는데 경실련에서 통일운동을 같이 해보자는 유총장님의 제안을 주저없이 수용하였다. 사실 공장에서 나올 때 나름의 진로 원칙을 세웠다. 월급을 받을 수 있을 것, 전문성을 갖출 수 있을 것, 도망 다니는 일을 하지 않을 것, 운동을 계속할 수 있을 조건이었다. 경실련이 그 조건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자리였다. 또한 세계의 온갖 술을 맘껏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당시 경실련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교포 청년들을 초청하여 세계한민족청년대회(GKN)를 매년 개최하였는데 12-13개국 청년들이 입국하면서 큼지막한 캐리어에 술을 가득 담아 왔으니 술 좋아하는 나로서는 천국과 같았다.

나의 경실련 생활은 1994년 7월에 시작되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하지만 사무실엔 비행기 엔진 같이 큰 소리가 나 귀가 먹먹해졌던 큼지막한 에어컨, 책상마다 널브러져 있는 서류,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소리, 천장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황소만한 쥐, 뿌연 담배연기와 수북이 쌓인 꽁초더미, 엘리베이터가 없어 출판물들을 4층까지 계단으로 낑낑거리며 등짐을 져 나르고, 매달 수천 장의 회비납부 지로를 풀칠하고, 사무총장님이 방송토론에 나가면 회원가입 전화 받으려 밤늦게까지 대기하고, 밤늦게 야근하고 길 건너 광장시장에서 냉동 회를 녹여먹던, 5가 시대를 마감하고 정동으로 이사 가면서 보관해야 될 자료들을 트럭 5대 분량이나 처분하고 좋아했듯이 자료의 중요함을 인지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학생운동이나 재야운동의 집회를 생각하고 나간 첫 집회에서 현수막, 손 스피커, 피켓 몇 개가 전부였던 황당함, 전국의 시·군에서 경실련 지부를 만들겠다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고, 다수결로 정하면 간단할 것을 반대하는 한사람을 설득한다며 새벽 늦게까지 토론하여 사무실에서 그냥 자야 했고, 사회 현안에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낄 정도의 정책중심, 제 역할을 못하던 국회를 찾아 설득하고 입법화 하려는 로비, 종교모임도 아닌데 교독문 같은 ‘회원의 다짐’을 총회에서 낭독하고, 회원-상근활동가-전문가들의 수직구조가 아닌 절묘한 역할분담으로 구성된 조직의 긴장감, 모든 회의에서 강조되는 실사구시•합법•비당파성, “100개 경실련 10만 회원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등 이런 시민운동이 참 낯설었다.

당시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동산 투기와 빈곤한 시민의 삶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자각한 몇몇 시민들이 ‘부동산투기와 싸우는 시민의 모임’을 만들어 시작한 경실련이 경제에 정의를 붙여 경제정의의 좌표를 설정하고 시민운동의 장을 열었다. 시민단체들의 토론회, 기자회견, 집회, 정책제안 등 일반화된 활동 방식이 ‘경실련식’으로 명명되고, ‘시민 없는 시민운동, 백화점식 시민운동’이란 비판도 받았지만 지난 33년의 경실련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끈 시간이었다. 그동안 한국의 시민운동은 우리 사회 전반의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를 견인하며 환경, 여성, 소비자, 지역공동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민들의 권리와 책임을 확장해 왔다. 이제 시민운동은 경실련, 참여연대 같은 대변형
(advocacy) 시민단체들로 대표될 수 없을 정도로 그 폭과 범위가 확대되었고, 활동 의제와 방식에서 다양성이 증가하였다. 시민들의 일상의 요구에 부 응한 소규모 단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중간 지원조직이나 사회적경제와 같은 새로운 활동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어느덧 시민운동 29년째이다. 다음 달이면 6년의 사무총장직을 마치고 활동가로서의 생활을 마감한다. 시민운동의 주인은 시민이다. 시민들 스스로 만들고 키운다. 지금 시민운동은 구성원들의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인식이 충돌하고, 먹고사는 실존적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냉혹한 현실을 외면한 채 정체성을 놓아버린 소수의 단체들에 대한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에 직면해 있다. 조직의 규모가 크든 작든, 활동의 범위가 서울이든 전국이든, 미션이 전문적이든 종합적이든 예외 없이 변화를 겪고 있다. 그 변화가 거부할 수 없는, 되돌릴 수 없는, 조직이 원하는 것이 아닌 시민이 원하는 활동을, 조직을 지키려는 것이 아닌 시민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변화이면 좋겠다. 국가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자본이 정치와 결탁하여 탐욕을 드러내는 이 시기에 시민운동의 역할이 중요하다. 시민사회가 권력과 자본에 눌려 제 역할을 못했던 때가 불과 30여 년 전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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