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에 대한 입장

관리자
발행일 2014.09.12. 조회수 1884
정치



정권 눈치보기로 사법 정의 상실한 사법부



오늘(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경실련은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한 국정원의 공직선거법 위반사건에 대해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무죄선고에 이어 원세훈 전 원장에게도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에게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이 피고인들의 지시로 매일 시달받은 이슈 및 논지에 따라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또는 비방하는 정치 관여 행위를 한 점은 인정되지만 선거법상 선거 개입 혐의로까지 볼 수는 없다고 봤다. 또한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려면 특정 후보자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행위라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그런 지시는 없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 후보와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와 반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전략적으로 퍼뜨렸다. 4대강 사업 등에 대한 지지 표명은 물론, 박근혜 당시 후보의 후원 계좌를 안내하는 트윗을 작성하고, ‘박근혜는 마음도 넓다. 빨갱이 개새끼들하고 다퉈야 하니’, ‘문재인이 왕수석 시절에 청와대 80%가 주사파였죠’ 등과 같은 트윗글을 리트윗하며 박근혜 후보 지지와 야당 후보들에 대한 종북몰이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원세훈 전 원장이 있었다. 국정원 직원들에게 야당에 불리한 정치 관련 글을 인터넷을 통해 게시하고 퍼뜨리도록 지시하는 등 공직선거법을 명백히 위반했다. 검찰 역시 원 전 원장이 적극적인 선거개입을 지시한 증거로 매달 부서장 회의 등에서 전달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녹취록과 국정원 명의의 트윗글 78만여 건을 법정에 제출하는 등 사건의 엄중함과 여러 증거들만으로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충분히 인정된다.


그럼에도 원 전 원장에게 무죄 선고를 내린 것은 재판부가 김용판 전 청장의 사건과 마찬가지로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스스로 배제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놓은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특정 정당 지지, 반대는 했지만 특정 후보자를 위한 것은 아니라며 선거운동을 했다는 형사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니 과연 재판부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술을 마시고 운전은 했지만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여러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사건’을 맡고 있던 이번 재판부가 민주주의를 훼손한 국기문란 행위를 단죄하고 실체적 진실규명에 적극 나서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국민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수사가 시작된 후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이 보직 해임되는 등 검찰 특별수사팀에 대한 외압,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의혹 등 숱한 외압 논란이 있어 왔다. 검찰과 사법부가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민주주의의 원칙과 사법적 정의를 바로 세워주기를 고대했지만 연이은 판결은 검찰과 사법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번 무죄 판결은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무죄선고에 이어 예견되었던 수순이다. 검찰과 법원 모두 정권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라는 초유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국정원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민을 기만한 초유의 사건이다. 검찰은 즉각 항소를 통해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에 다시 나서야 하고, 2심 재판부를 포함하여 사법부 역시 정권 눈치보기를 중단하고 민주주의와 사법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연이은 정권 눈치보기식 판결은 국민들의 사법 불신만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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