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관피아’의 기원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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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6.02. 조회수 8597
칼럼

[월간경실련 2022년 5,6월호 – 특집. 관피아 실태 보고서(1)]

‘관피아’의 기원과 발전


김호균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명지대 명예교수)


 

대한민국 ‘관피아’가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정권교체와 더불어 관피아가 퇴직공직자의 재취업을 넘어서 다시 고위공직자로 ‘재재취업’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한덕수 총리후보자의 고문활동으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는 ‘김앤장법률사무소’가 관피아 집결지로서 확인되고 있다. 한 정권 내에서 돌려막기하던 ‘회전문 인사’가 이제는 민간부문과 공공부문 사이를 오가는 ‘회전문인사’로 질적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관피아의 양적 팽창국면이었다면 윤석열정부는 당선인의 ‘늘공’에 대한 선호로 인해 현직공직자의 정무직공무원으로의 승진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에 고액연봉을 받으면서 재취업했던 퇴직공직자가 최고위 공직자로 재재취업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김앤장에는 전직 장관을 비롯한 퇴직공직자들이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공직에 재재취업 하기를 대기하고 있다. 이는 공익과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 임용된 공직자가 공직을 수행하면서 얻은 정보와 지식은 물론 공직 수행과정에서 형성한 인맥을 퇴직 후에 (재)활용하여 사익을 추구하다가 다시 공익과 국익을 담당하는 공직자로 돌아오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현상이다. 그래서 퇴직하는 공직자들에게 김앤장이 가장 선호하는 재취업 기업으로 알려지고 있다. 퇴직공직자 재취업은 물론 재취업한 퇴직자의 공직으로의 재재취업이 문제가 되는 근본원인은 재취업과 재재취업 과정에서 이해충돌(이해상충)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가능성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성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론은 관피아는 기업이나 민간주체의 사익 추구 활동에 조력한 대가로서 고액의 보수를 받는다는 사실과 그의 조력의 기반은 그가 공직에서 취득한 지식과 정보, 인적 네트워크라는 사실에 기초한다. 그리고 관피아가 받는 보수의 수준이 한덕수 총리후보자가 김앤장에서 4년여 동안 받은 20억 원처럼 통상적인 급여의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이유가 공직에 있는 동안 그가 획득할 수 있었던 지식과 정보, 인적 네트워크 때문이다. 말하자면 관피아의 존립 근거는 공익과 사익의 이해충돌 자체에 있는 것이다. 관피아는 사익을 위해서 공익을 침해하는데 조력함으로써 보수를 받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충돌이 현행법상으로는 하자가 없을지라도 윤리적으로는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


당초 퇴직 후 재취업하는 공직자를 가리켜 ‘관피아’라 불렀는데 이 관피아가 다시 공직에 취임한다면 그는 ‘관피아 출신 공직자’가 되는 셈이다. 다음백과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관피아’는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로서 정부 부처에서 일하다 관계기관이나 민간기업, 협회 등에 재취업한 퇴직공무원을 부정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국에서 관피아의 본질은 민간부문(자본권력)이 정치권력 뿐만 아니라 관료의 행정영역과도 유착되는 ‘변종 정경유착’이다.


1. 정부주도 경제개발과 정경유착

한국 사회경제에서 관피아의 뿌리는 매우 깊어 경제개발연대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당시에는 아직 ‘관피아’ 개념이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정치인들이 국가기구의 권한을 오남용하여 경제적으로 사익을 편취하는 행위, 즉 ‘정경유착’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작과 더불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부터 시행된 정부주도 경제성장 전략은 당연히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경제성장을 위해 국가가 지원할 전략산업의 선정은 물론 어떤 기업이 참여할지, 어디에 생산거점을 둘지, 어느 정도의 금융 및 세제상의 지원과 특혜가 주어질지에 대해서도 정부가 선택, 결정했다. 기업에게는 이러한 정부선택을 받는다는 것이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성장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한국 사회경제에서 정경유착과 마치 개념쌍을 이루는 것이 재벌이다. 정부와 재벌 중 어느 쪽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지 상관없이 둘 사이에는 ‘경제적 이익(이권)’을 둘러싸고 자연스럽게 밀접한 협력관계가 형성되었다. 정부는 재벌에게 사업권을 부여하고 재벌기업은 정부를 대표하는 고위공직자 또는 의사결정권자에게 경제적 이익을 배정해준 대가, 뇌물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고받는 관계가 ‘정경유착’이다. 정경유착의 사전적 정의는 “경제계와 정치권이 부정부패의 고리로 연결돼 있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기업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정치인에게 뇌물을 주거나 반대로 정치인이 기업에 압력을 가해 불법 정치자금 따위를 받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재직 중 받은 불법자금에 대해 법원이 부과한 추징금이 각각 2205억 원과 2682억 원이었다. 노태우는 완납한 데 반해 전두환은 959억 원을 미납한 채 사망했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독재권력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온전하게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료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거나 이익을 추구할 여지는 크지 않았다. 관료는 정치에 종속되어 있었다. 정부 주도이면서 동시에 재벌주도의 성장전략에 힘입어 재벌들이 성장하고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서 불법적인 정경유착은 점차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당 및 정치인 관련해서는 거액의 정치자금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02년 대선정국에서 적발되어 당시 한나라당에게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안긴 수 백 억원의 ‘불법 대선자금 전달사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부과된 벌금 130억 원, 추징금 57억8000만 원,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과된 벌금 150억 원, 추징금 35억 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가 근절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이들 불법 정치자금에는 직접적이고 즉각적이지는 아닐지라도 당연히 반대급부가 따르기 마련이다. 대통령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재벌총수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2. 사법부의 ‘전관예우’

관피아의 원조는 사법부에서 시작된 ‘전관예우’이다. 전관은 범죄행위에 대해 수사 및 기소하는 검찰이나 최종적인 판결을 내리는 법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권력이나 금권(경제권력)과 타협하면서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퇴직 법조인을 의미한다. 다음백 과사전의 의미로는 “판사나 검사로 재직했던 사람이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맡은 사건에 대해서 법원과 검찰에서 유리하게 기소하거나 판결하는 법조계의 관행적 특혜”이다. 당초에는 ‘장관급 이상의 관직을 지냈던 사람에게 퇴직 후에도 재임 때와 같은 예우를 베푸는 일’을 일컬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되는 ‘전관’의 범위가 사법부와 행정부는 물론 공공기관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관피아’에 이르게 되었다. 사법부의 전관예우는 외견상 삼권분립을 근거로 삼을 뿐만 아니라 법의 해석과 적용이 법관의 ‘양심’에 따라 이루어지고 퇴직 법관의 변호사 개업이 법적인 보장을 받기 때문에 비판에 필요한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기가 행정부 관피아에 비해 어렵다.


독재정부 시절 사법부는 존재를 위해서도 정치권력에 순응하는 관행을 유지하면서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았다. 동시에 사법부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국민을 향해서는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신화를 창조했다. 사회의 민주화와 더불어 사법부 독립에 대한 강한 요구가 분출되었고 실현되었다. 사법부는 국민의 민주화 투쟁으로 쟁취한 독재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시험권력’이라는 존립기반과 결합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의 독립까지 달성하면서 사실상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변신했고, 이는 결국 ‘사법농단’에까지 이르렀다. 판사뿐만 아니라 검사도 퇴직하면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검사의 ‘전관예우’는 기소독점권이 가장 든든한 기반을 이룬다. 판사와 검사의 변호사 개업이 의미하는 바는 국민주권의 수호자이자 공익추구자에서 철저한 사익추구자로의 변신이다. 그래서 이들의 사익추구행위가 과거 공익추구자인 판검사 경력에 결정적으로 의존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전관’은 ‘현재의 전관’을 예우함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전관예우는 퇴직한 판검사가 향유하는 특혜에 그치지 않고 이들에게 특혜를 배려하는 현직 판검사들에게도 ‘사법정의’를 훼손하도록 함으로써 결국 사법부 전체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엄연한 사법부의 오류를 시정하는 절차마저 사법부가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전관예우가 존재하는 한 삼권분립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자정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3. ‘모피아’와 관피아

행정부 관피아의 모태는 기획재정부(또는 재정경제부) 퇴직관료를 일컫는 ‘모피아(Mofia)’이다. 관피아의 어원이 바로 모피아이다. 모피아가 본격적으로 세를 키우기 시작한 계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였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에서 사실상 결정권을 행사한 것은 당시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였다. 이후 경제 관련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대형 금융회사, 유관단체의 경영진이 급속하게 모피아들로 채워졌다. 이들이 재취업한 자리는 다시 후임 모피아들로 채워지면서 퇴직관료들이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공직자윤리법’과 ‘이해충돌방지법’이 있지만 규정을 교묘히 우회하면서 재취업하는 경로는 충분히 예측 가능할 정도로 열려있다.


정치권과 재계 사이의 정경유착이 사회가 민주화되고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나타난 변종이 ‘관피아’이다. 모피아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이 모든 부처로 확산되면서 관피아로 거듭난 것이다. 그리고 관피아에서 모피아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모피아가 산하기관은 물론 유관협회, 금융회사 등에 퇴직 후 재취업하면서 이들 기관에 대한 국가의 관리· 감독이 금융회사와 민간기업에게는 유리하고 국민(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시장경제에서 국민주권(헌법 제1조)의 경제적 표현인 소비자주권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고 외환은행 인수합병 사례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국익에도 손상이 가해질 수 있다. 문재인정부에서는 조달청장, 통계청장, 관세청장 등 대부분 기재부 산하에 있는 기관들이 모두 기재부 실장 출신이었고, 청와대의 정책실장, 경제수석, 경제보좌관, 국민경제비서관이 모두 기재부 출신이었다. 기재부가 대통령을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다. 재난지원금을 요구하는 여당의 강한 목소리에도 기재부가 버틸 수 있는 데에는 이러한 요인도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민주화 과정에서 정치권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수평적 정권교체도 이루어지면서 국정운영 경험이 부족한 정치인들이 정계에 대거 진출하게 되었다. 선거 때마다 ‘참신한 인물 영입’을 통해 지지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반복되면서 정치인들의 정책 역량은 답보상태에 머물거나 오히려 후퇴했다. 그만큼 정치권은 정당의 비전을 내재화하고 구체적인 국정경험을 축적하지 못한 채 관료의 전문성에 의존하는 관행이 오히려 심화되었다. 특히 수평적 정권교체 국면에서는 정치권의 관료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다. 한국 사회경제의 성장속도에 비해 정치역량의 성장속도가 뒤떨어지면서 행정을 담당하는 관료의 활동영역이 확산될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마련되었다. 정부주도 성장을 이끈 독재권력으로 인해 취약한 입법부, ‘거수기로서의 입법부’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고 야당은 수권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행정부의 비대화는 관료의 비대화와 정치권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의 점진적 강화로 이어졌다. 두 차례에 걸친 민주당의 집권 경험은 민주당의 집권역량의 취약성을 노출했을 뿐이다. 민주당은 관료를 지휘하고 감독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와 행정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면서 민주당 정부에서 오히려 관피아의 성장이 더욱 두드러진 결과를 초래했다. 관피아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관피아 문제는 퇴직 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자신의 미래 재취업 일자리를 위해서 현직에 있는 동안에도 재취업제한 규정을 우회하기 위한 경력관리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재취업할 기관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현직 관료가 피감기관에 대한 조사나 감사에서 전직 상관을 마주 대하게 되면 엄정한 처리가 이루어지기 어렵고 그것이 바로 관피아의 존재 이유다. 그리하여 현직에서도 공익과 사익이 뒤엉키는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가권력을 사유 화하는 관피아는 차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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