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대선개혁과제] 공공복지강화와 소비자 권익보호

관리자
발행일 2022.02.16. 조회수 9359
칼럼

[월간경실련 2022년 대선특집호]

공공복지강화와 소비자 권익보호


가민석 사회정책국 간사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권역별 공공의대 및 공공병원 확충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되는 순간 모두가 의료현장의 공백을 실감했다. 코로나19 환자 대부분을 전체 10%도 되지 않는 공공병원에서 감당하면서 모자란 병상과 일손을 채우기 위해 다른 지역의 도움을 받기 일쑤였다. 지금까지도 병상이 부족해 행정명령을 통해 민간에서 임시로 확보하고 있고, 과로에 시달린 의료인들은 현장을 지키면서도 시위 등을 통해 고통을 호소하는 중이다.


국가 재난이 찾아오기 전에도 의료공백은 여전했다. 집 앞에, 혹은 옆 동네에도 병원이 없는 지역에 사는 환자는 아파도 제때 치료받기가 어려웠다. 이윤이 담보되지 않는 곳에는 병원도 들어서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는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큰 제약을 받는다. 현재의 민간 중 심 의료체계로는 의료의 공공성, 즉 다수가 동등한 조건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데 한계가 있으며 감염병으로 인한 국가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국가가 나서서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 권역별 공공의과대학 및 부속병원을 설치하고 공공병상을 추가 확보해야 한다.


메르스, 코로나19 등 재난적 감염병의 주기적 도래, 인구 고령화, 소득 증가, 새로운 의료기술의 발달 등으로 의료수요는 증가하지만 의약분업 이후 의대정원 감축, 의료계의 인력 증원 반대 등으로 2000년 이후 의료 인력은 오히려 10% 감소했다. 인구 대비 활동의 사수는 OECD 평균 대비 0.61배, 활동간호사 수는 0.47배, 활동 치과의사 수는 0.64배, 활동 약사 수는 0.86배 수준이고, 지역 취약층 치료와 필수의료를 담당할 공공병원에 근무할 의사를 확보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부족한 의료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현재 3천 명인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5천 명 수준으로 증원해야 한다. 의과대학이 없는 지자체나 지방국공립대학교에 공공의과대학을 신설하여 졸업 후 일정 기간 동안 지역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할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 공 공의료 인력 부족과 불균형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와 함께 현행 50명 내외 소규모 의과대학의 입학정원을 100명 수준으로 증원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공공병원의 병상 비율을 현재 10% 수준에서 20%로 확대하여 지역주민에 필수의료, 중증의료, 응급의료 등을 보장하고 재난적 감염병의 주기적 발생을 대비해 의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재정 자립도가 낮아 자체적으로 공공병원의 신증설이 불가능한 지자체에 중앙정부가 시설투자예산을 지원하고 공공병원 신증축에 대해 일정 기간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난 2020년 의료계 총파업으로 원점화된 공공의료 인력 양성 방안 등에 대한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해 공공의료 부족 및 격차를 해소해야 할 의무가 있으나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진료 거부를 일삼는 의료계의 반대를 이기지 못했다. 의료공백을 국민 전체가 피부로 느끼며 앓고 있는 지금, 공공의료 확충에 대한 새 정부의 결연한 의지와 실천을 기대한다.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공·사연금의 근본적 개혁

연금 고갈에 대한 불안이 국민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고령화와 노인 빈곤 문제 등으로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고 구체적으로 1990년생부터는 연금을 수령하지 못한다는 걱정과 우려가 깊다.


연금은 기본적으로 소득 창출이 어려운 상황을 대비한 제도다. 우리나라는 기초연금-국민연금-퇴직연금으로 구성된 소위 다층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1988년 국민연금 제도를 시행하면서 국민 개개인이 미리 낸 보험료를 통해 소득 활동이 중단됐을 때도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05 년에는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면서 현재 상용근로자 중 다수가 퇴직연금에 가입되어 있으며, 2007년 도입되어 2014년 확대된 기초(노령)연금은 저소득 노인들을 위한 제도로서 운용되고 있다.


5년마다 이어지는 ‘국민연금 재정 재계산’이 2018년 4차로 진행되면서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개혁 필요성은 커졌지만 현 정부는 개혁으로 인해 예상되는 위험 부담이 크다고 판단하여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무엇보다 연금개혁의 논의가 거듭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단편적으로 이뤄지는데 우리나라 연금구조가 다층이라는 점을 숙지하지 않는다면 22년 3월에 예정되어 있는 5차 국민연금 재정 재계산도 현재와 비슷한 양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후 빈곤이 어느 정도 해소된 상황에서 미래의 재정 안정화에 초점을 두었던 서구 국가들과 달리 연금재정 안정 문제와 노인소득 부족 문제가 동시에 심각하여 연금개혁의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양해진 노후소득보장제도의 역할 이나 성격 등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한 채 소모적인 논의를 반복하는 것은 큰 걸림돌이 된다.


또한, 공무원 등에게 제공되는 특수직역연금과 일반 국민연금 간의 형평성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으며, 기득권층인 공무원이나 군인에게 정부보전금이라는 명목으로 일반 조세를 지원하는 것 역시 상식에 반하는 일이다. 이처럼 연금재정 확보, 노후소득 부 족, 불공정성이라는 복잡한 문제들이 산재했음에도 연금개혁 논의는 정체되었는데, 연금 고갈을 걱정하는 후세대에 대한 현세대의 신속한 대처가 요구된다.


이에 범정부 차원에서 사회적 합의체를 구축하고 공·사 모든 연금제도를 동시에 고려한 개혁을 시행해야 한다.


연금의 경우 전문가 1명마다 하나의 이론이 존재한다는 말이 있는 만큼, 각론에서 차이를 논쟁할 것이 아니라 노후소득 보장체계의 큰 틀에서 개별 연금의 역할과 개선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 5차 국민연금 재정 재계산 작업이 이루어지기 전에 우리나라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구조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 틀 내에서 기초연금-국민연금-퇴직연금의 역할이 각각 규정될 것이다.


이러한 상식적인 논의가 지금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소관 부처가 다르다는 점도 작용한다. 기초연금,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반면 퇴직연금은 고용노동부 뿐 아니라 금융위원회, 금감원 등이 관여하고 있다. 부처 칸막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위상을 가지고 더 큰 범위에서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구축할 시점이다.


소비자 피해구제 및 예방을 위한 집단소송법 제정

소비자 피해는 불특정 다수에게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모펀드 위법 판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폭스바겐 배기가스 불법조작과 같은 사건이 금융, 의료, 환경, 노동, 자동차, 주택, 교통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면서 기업의 책임 강화와 소비자의 피해구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묘책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은 원하는 물건이 있을 경우 기업에게 제 값을 주고 구매한다. 그러나 잘못된 물건을 판매한 기업은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피해에 대한 책임을 전면 부인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도 현행 민사소송 및 행정소송으로 소액·다수의 피해를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소비자 피해를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많다.


소송비용 대비 구제 금액이 적어 사법절차를 이용하는 실익이 적거나 심지어는 구제신청 자체가 의미 없는 경우도 많다. 동일·유사한 피해의 당사자들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해야 하므로 사회적 비용의 낭비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소송을 진행할 경우 피해와 과실에 대한 인과관계를 피해자가 직접 입증해야 하는데, 소비자 입장에는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비롯한 주요한 증거에 접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비자 피해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구제하기 위해서는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여기서 집단소송은 피해자 중 일부가 동일한 피해의 모든 당사자를 대표해서 소송을 진행한다는 특이한 개념이다. 본인을 제외해달라고 신청하지 않는 한 확정판결 효력을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을 옵트아웃(opt-out) 방식, 포함시켜달라고 신청할 경우에만 모 두에게 적용하는 것을 옵트인(opt-in) 방식이라고 한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집단소송은 단순히 다수의 원고가 소송을 진행하는 공동소송, 소비자단체가 피해자를 대표해 소송을 진행하는 소비자단체소송과 다르다. 때문에 현재 다수 원고가 소송을 진행한다 하여 집단소송이라 표현하는 대부분의 소송은 사실 공동소송이다.


현재 「증권관련 집단소송법」(현행법)을 통해 증권 분야에서는 집단소송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소송 개시 절차가 복잡하여 2013년 시행 이후 집단 소송이 진행된 것은 불과 10건 정도이며 소송을 허가 받는 데만 최대 5년이 걸렸다. 종합하면 전 분야에서 발생하는 소비자피해를 구제하고 예방할 실효성 있는 집단소송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집단소송제도는 모든 분야에 적용되어야 한다. 소가 제기되면 법원이 3개월 이내에 소송허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허가 결정 후에 피고가 불복할 수 없도록 제한해야 한다. 소송을 진행하려고 하면 인지액을 지불해야 하는데 마땅히 회복해야 하는 피해를 호소하는 것에 액수가 장애가 되지 않도록, 현행법에서 정하고 있는 인지액 5천만 원 상한을 대폭 인하해야 한다. 집단소송을 소송목적의 값을 계산할 수 없는 소송으로 규정할 경우 인지액은 일괄적으로 23만 원으로 줄어든다. 피해자의 입증책임은 완화하고 기업이 사실관계 등을 입증하도록 전환해야 하며, 피해를 입었음에도 소송건을 알지 못해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옵트아웃(opt-out)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이 증거개시제도와 징벌배상제도다. 증거개시제도는 소송이 허가되기 전이라도 사실을 확정하는 것에 이익이 있을 경우 원고 측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고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징벌배상제도는 실제로 일어난 손해보다 더 크게 배상하도록 함으로써 악의적이거나 사회에 큰 혼란을 가져온 기업의 행태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시민·소비자단체는 오랜 기간 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 21대 국회에서도 다수 법안이 발의되어있고,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을 국정과제로 채택하면서 2020년 9월에 법무부가 집단소송법 제정안(증거개시제도 포함)과 상법 개정안(상행위 전반의 징벌배상제도 포함)을 발표했다. 입법예고를 끝으로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20대 대선을 맞아 해당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한편으로 기업의 무책임한 행태가 근절되길 바란다. 집단소송제와 징벌배상제 등이 화두로 등장할 때마다 재계는 소송의 남발과 기업 위축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 등을 우려하며 강력히 반발한다. 기업들이 나서서 소송이 남발될 것을 걱정하지만, 이는 법원에서 소송 허가 절차를 통해 요건에 맞으면 소송을 진행할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반려할 문제다. 또한 기업의 위법한 행위로 인해 국민의 생명, 안전 및 재산 등이 심각하게 침해되었을 경우 책임을 묻는 최후의 수단을 마련하자는 것인 만큼 정상적인 기업의 경우 적용될 사안이 아니다. 특히 위법행위를 저지른 기업의 경쟁력은 특별히 제고될 필요가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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