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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2장의 앨범으로 신화가 된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

1980년은 해비메틀 원년의 해라 할 수 있다.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British Steel’, AC/DC의 ‘Back in Black’,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Heaven And Hell’ 그리고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의 ‘Blizzard of Ozz’가 쏟아진 해이기 때문이다. 앨범이 발매되기 1년 전 블랙 사바스의 원년 보컬리스트였던 오지 오스본은 마약 문제로 해고된다. 결국 홀로서기를 위해 새로운 팀을 구성하게 되었는데, 이때 역사상 가장 훌륭한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Randy Rhoads)를 만나게 된다. 새 기타리스트 오디션에는 조지 린치(George Lynch) 같은 기타리스트도 있었음에도 무명인 랜디 로즈를 연주도 듣지 않고 뽑았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오지 오스본의 성공적인 데뷔에는 25세에 단명한 천재기타리스트 랜디 로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랜디 로즈는 1980년 ‘Blizzard of Ozz’,1981년 ‘Diary of a Madman’ 단 두장의 앨범에만 참여했지만 락계에 미치는 파장은 여전하다. 오지 오스본 밴드를 거쳐 간 브래드 길스(Brad Gills), 제이크 이 리(Lake E. Lee), 잭 와일드(Zakk Wylde) 등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랜디 로즈 시절의 오지 오스본을 가장 좋아할 것이다. 오지 오스본은 한 인터뷰에서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랜디 로즈는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기타리스트였다. 그는 여지껏 내가 만난 최고의 뮤지션인 것이다.” 튜닝 모습만으로 오디션 합격! 랜디 로즈는 1956년 캘리포니아 산타모니타 음악교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보통 아이들보다 잘 걷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랜디 로즈는 소아마비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7살에 처음 기타를 시작하여 클래식 기타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16살 되던 해 랜디 로즈는 그의 기타 선생님이었던 가니(Garni)와 함께...

발행일 201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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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닉 드레이크의 생애와 음악

정택수 사회정책팀 수습간사 wildwylde@ccej.or.kr 가을이 언제 왔었는지도 모르게 어느덧 완연한 겨울이 되었습니다. 갑작스레 불어 닥친 호된 추위에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란 말을 절로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11월은 짧은 가을이 끝나고 겨울로 들어가는 문턱이자 많은 젊은 뮤지션들이 세상을 떠난 달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름인 김현식, 유재하를 비롯해 록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와 원맨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도 11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을단풍처럼 아름다운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는 스치듯 세상을 떠난 이들 가운데 오늘은 요즘과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음악의 주인공, ‘닉 드레이크’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그의 이름은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소위 아는 사람만 아는 이름이었는데 요즘은 인터넷을 잠시만 검색해보아도 그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더군요. 이 글로나마 미처 그에 대해 모르셨던 분들도 그의 음악을 찾아듣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글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천재의 작품이 금세 찬탄을 받기가 어려운 것은, 그것을 쓴 천재 자신이 상규에 벗어나고 거의 모든 사람이 그와 비슷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을 이해할 줄 아는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를 만들어내며, 그것을 길러내고 증식시키는 것은 그 작품 자체이다. 베토벤의 사중주곡(제12·13·14·15번)은, 그것을 이해하는 대중을 낳아 기르는 데에 50년이 걸렸다.’ -마르셸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中 닉 드레이크는 영국 중부지역에 위치한 워릭셔라는 시골마을 출신입니다. 닉은 어릴 적부터 혼자 놀기 좋아하는 몹시 내성적이고 우울한 성격의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집안 분위기 덕에 여러 가지 악기들을 배우며 음악가로서의 꿈을 키울 수가 있었습니다. 어린 닉은 클래식을 너무나 좋아하여 가족들은 그가 훗날 명지휘자가 되리라고 생각했다는군요. 공부뿐만 아니라 운동에도 두각을 나타냈던 닉은 고등학교...

발행일 201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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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달, 이상 그리고 고갱

[문화산책] 달, 이상 그리고 고갱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를 다녀와서      박지호 소비자정의센터 간사 jhpark@ccej.or.kr       선물을 준비해야하는 지인의 생일, 연말모임 때마다 서점으로 가곤 했다. 그리고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고 서머짓 몸의 ‘달과 6펜스’를 집어 들었다. 받는 사람들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늘 ‘달과 6펜스’의 맨 앞장에 넌지시 마음을 전하는 짧은 글귀를 적어 선물했다. 언제나 그랬다.   ‘달과 6펜스’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책이다. ‘태백산맥’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고뇌와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줬다면, ‘달과 6펜스’는 이상의 추구와 그를 위한 노력의 시작을 가져다 준 책이다. 물질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는 책 제목부터 매력적이지 않은가, 달과 6펜스. 이 책은 다음 세계로 연결된다. 바로 고갱(외젠 앙리 폴 고갱, Euge‵ne Henri Paul Gauguin, 1848년 6월7일 ~ 1903년 5월8일)이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는 고갱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물론 모델만 폴 고갱이고 소설은 소설이다. 대부분 허구다. 하지만 그런건 중요치 않다. 고갱으로의 연결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고갱의 작품을 처음 만나본 곳은 오르셰 미술관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엔 드가에 빠져있어서였는지 솔직히 고갱의 작품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타히티의 여인들(Tahiti Women or on the Beach)’ 정도만 기억한다. 고갱의 대표작이기는 하나 그리 큰 인상을 주지 못했었다. 엽서도 사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고갱이 한국에 왔다. 세계 곳곳에서 다작을 하다 보니 어느 한 곳에 모여 있지 않은 그의 작품을 모아서 서울시립미술관이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시작한 것이다. 허세와 낭만을 즐기는 내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는 없었다. 남산을 걸어 내려와 들어간 서울시립...

발행일 20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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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어느 새 멀어져 가는 봄, 영화 동사서독을 기억한다

[문화산책] 어느 새 멀어져 가는 봄,  영화 동사서독을 기억한다 오세형 (사)경실련도시개혁센터 간사 dipsec@ccej.or.kr 아침저녁으로 쌀쌀함 때문에 봄이 왔는지 모르겠다가, 어느 새 뜨거운 열기마저 느껴져 이대로 봄이 가는 것인가 아쉬워하는 이 즈음이다. 성큼 멀어져가는 봄을 생각하며 떠오른 영화가 있으니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이다.  왕가위 감독과 동사서독을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영화읽기에 능하지 못한 나에게 한 차원 높은 영화읽기를 가르쳐준 친구다. 학업에 지치고 사랑에도 지친 시절, 친구의 자취방에서 함께 본 영화는 언제든 기억하고 찾게 되는 감동이 있는 영화로 내게 남았다. 왕가위 감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명작들을 만들어냈다.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타락천사, 중경삼림, 화양연화…. 우리나라 광고에서도 패러디했던 장면들이 줄줄이 나오는 작품들의 감독. 한 번 쯤 왕가위식 표현과 영상미에 매료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사서독’ 역시 그의 필모그래피에 꼭 들어갈 영화 중 하나이다.  “해마다 봄이면 고향에는 복사꽃이 찬란하게 피지” 김용의 무협소설을 기초로 했지만, 이 영화는 칼부림과 각종 신기한 도술이 넘쳐나는 스펙타클한 무협영화가 아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상처 깊은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랑의 이야기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면서도, 기다려주지 않음에 상처받고, 그리워한다. 떠난 이를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배신한 사랑에 절망하여 방황하면서도 끊임없이 그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에 함몰되어 조금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서로의 육체를 탐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다른 누군가를 담고 있다. 뒤틀린 사랑을 하는 등장인물들이 넘쳐난다. 온전히 자신의 욕망에 이끌려 행동하고 사랑하면서 조금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은 커다란 공허함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인 것이다. 그러나 ...

발행일 201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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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베토벤이 들려주는 봄의 선율을 만나다

베토벤이 들려주는 봄의 선율을 만나다       서울오케스트라, <베토벤 시리즈1> 음악회   이기웅 경제정책팀 부장 leekiung@ccej.or.kr       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지난 3월 7일, 지인의 추천으로 한 음악회에 다녀오게 되었다. 퇴근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달려간 곳은 왕십리역 근처에 위치한 성동문화회관 소월아트홀이었다. 큰 플래카드 하나 없는 조그만 지역회관의 소규모 클래식 공연이었다. 공연 제목에 ‘베토벤’만 없었어도, 무슨 공연을 하는지도 모른 채 흘려버렸을 것이다. 공연시작 2분 전에 겨우 도착한지라, 저녁식사도 생략한 채 입장티켓을 받고 좌석으로 직행했다. 여느 클래식 공연처럼 소형 오케스트라 형식에 맞춰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자리에 앉자마자 연주자들은 하나둘 무대 위로 올라와 자리에 착석했다. 간단한 음정 조율 후 지휘자가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며 공연은 시작되었다.   공연시간에 맞추느라 입구에서 프로그램 하나 구입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행이 첫 곡은 어디에선가 들어본 듯한 귀에 익숙한 곡이었다. 그러나 제목과 달리 연주되는 곡이 베토벤 곡이 아니라는 점이 내내 마음에 걸렸고, 그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어 초반에는 공연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소위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유명 오케스트라가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두 번째 곡부터는 처음 듣는 연주곡들이 이어졌다. 클라리넷 협연, 바이올린 협연 등이 이어졌는데 역시나 귀에 익은 베토벤의 곡은 아니었다. 1부가 끝난 뒤에 알게 되었지만, 크루셀의 <클라리넷 협주곡 2번 바단조 1악장>과 화려하고 애절한 멜로디가 아름다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나장조 1악장>이 연주되었다.     그러나 초반의 어지럽던 나의 머릿속은 2~3곡이 지나가면서 편안해졌다. 클래식 공연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내 마음과 머릿속을 슬며시 지배하기 시작한 탓인지, 무대 위에 도화지를 펼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밖은 여전히...

발행일 201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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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그녀, 사랑으로 달리다

그녀, 사랑으로 달리다 사랑이라는 정체성으로 이야기하는 영화 박진호 사회정책팀 간사 gino8429@ccej.or.kr 광화문의 한 귀퉁이에 작은 극장이 하나 있다. 100석 정도의 좌석이 있는 그 극장은 우리가 도심의 큰 극장들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아닌 독립영화 또는 예술영화 중심의 영화들을 상영한다. 그래서 보통 친구들에게 “너 그 영화 봤니?” 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모른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럴 때마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그리고 나만 알고 있는 영화에 대한 애정이 약간의 희열감을 느끼게 해 준다.  그 날은 아무런 일정 없이 서울의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그리고 발길이 멈춘 곳에 영화 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4명의 배우 중, 틸다 스윈튼의 얼 굴만 비추고 있는 포스터를 바라보며 어떤 영화일까라는 호기심이 일어 극장에 들어섰다. 아무리 작은 극장이라고 하더라도, 남자 혼자서 표를 구매하는 모습은 이상하게만 보이나보다. 아르바이트생은 갸우뚱한 표정을 지으며, “혼자세요?” 라고 묻는다. 난 당당하게 답한다. “네! 혼자예요” 그렇게 영화는 시작되었다.   밀라노에서 버려진 사랑   영화는 어두운 이탈리아의 밀라노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시작부터 지루함이 밀려오는 듯하다. 그리고 엠마가 등장한다. 엠마, 그녀는 한 재벌가문의 며느리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자녀들의 어머니로서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부러워할 고위층의 삶은 그 녀의 옷과 음식들 속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그녀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녀의 색색의 옷을 밝게 비쳐주는 치장된 보석들은 타인의 눈을 부시게 만들 뿐이며, 맛있는 음식들은 타인의 입맛에 맞도록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철저하게 타인의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하나의 사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사실이었다. 타인의 일상에 맞추어져버린 그녀의 삶, 그 속에서 사랑이라는 그...

발행일 201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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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내면의 방에 새로운 시놉시스를 제시하다 - 「자기만의 방」

 내면의 방에 새로운 시놉시스를 제시하다   이연희 국제팀 간사 yhlee@ccej.or.kr     ‘문학 속에는 사회가 녹아들어 있다.’ 문학 작품을 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문구이다. 그만큼 하나의 문학 작품은 그 시대를 반영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자기만의 방」은 20세기 영국의 여류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가 수필집으로 작성한 작품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수필집 도입부에서부터 느껴지듯 작가는 그 시대의 여성의 고찰과 이를 통한 해결책을 뚜렷이 제시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그 당시 여성이 열등한 존재로 여겨졌던 이유를 우선 경제적 요인에서 찾는다. 당시 여성들은 집안에서 육아만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았으므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또한, 자신이 번 돈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법률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로 빈곤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빈곤은 여성을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게 만들었으며 남성이 우월한 권력구조를 형성하게끔 했다. 또한, 그녀들의 빈곤함은 점차 자신들의 신체를 비롯하여 정신적, 지적 자유를 빼앗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당시 이런 상황의 여성들에게서 창작활동을 기대하기란 힘들 것이라고 시사하며, 자기만의 방과 돈이 그녀들을 해방시켜 줄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런던 출생으로 의식의 흐름 장르를 탄생시킨 작가이다.   저자가 언급한 「자기만의 방」에 대해 정의를 따로 내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독립된 자기만의 방이란 단순히 공간적인 의미만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독립된 여성의 방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방은 주체의식을 나타내며 실체 의 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정신적인...

발행일 201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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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4천원의 반란을 꿈꾼다

4천원의 반란을 꿈꾼다   정회성 미디어워치 간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시대의 노동일기 뉴스엔 늘 통계가 등장한다. 금리, 환율, 출생률, 스마트폰 가입인구추세, 건강상태와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영양섭취의 황금비율까지 통계는 숫자로 그려낸 삶의 총체다. 구체적이고 선명한 지표다. 다만, 숫자엔 영혼이 없다. ‘60대 여성 사망원인 1위 골다공증’이란 통계 속에 일생을 가족에게 바쳐온 어머니의 고단함은 묻어나지 않는다. 통계의 맹점이다. 보기 쉽고 활용하기에도 편리하지만, 상상력을 헤치고 무관심은 증식시킨다. 「4천원 인생」은 건조한 숫자와 무심한 통계에 사람의 얼굴을 입혀보자는 동기에서 출발한다. 4천원은 최저임금을 상징하는 숫자다. 사람다움을 지켜낼 최후의 보루이자 대물림하는 가난의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몇 해 전 시사주간지 <한겨레 21>의 네 기자는 식당, 가구공장, 대형마트 납품업체, 중소제조공장에 각각 위장취업해 최저임금 뒤에 숨은 삶의 모습을 발굴하고 전했다. 「4천원 인생」은 그 이야기를 하나로 엮은 책이다. 「4천원 인생」 이전까지 미디어는 ‘노동자’에게 붉은 머리띠와 억센 팔뚝질로 몽니부리는 이미지를 덧칠해왔다. 하지만 ‘노동자’는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의 다른 이름이기에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시대의 노동일기’란 부제는 「4천원 인생」이 전하는 진성성의 실체다.   가난의 잔혹사 「4천원 인생」은 친절한 책이 아니다. 기성 미디어 속 ‘체험, 삶의 현장’처럼 노동의 신성과 땀의 가치를 전도하지 않을뿐더러 ‘극한직업’이나 ‘생활의 달인’처럼 현장이 지닌 스펙터클 혹은 숙련된 노동의 경이로움을 비춰주지도 않는다. 고되게 일해도 가난하고, 가난해서 고된 일밖에 할 수 없는 이들의 일상을 그저 담담하게 서술할 뿐이다.   그럼에도 <한겨레 21>의 네 기자가 구조적 분석이나 대안 제시라는 목적 없이 한 달씩 현장에 머물며 기사를 써내려간 까닭은 ‘97년’...

발행일 2012.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