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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동서양의 꽃 작명법

[월간경실련 2024년 5,6월호][전문가칼럼] 동서양의 꽃 작명법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이제 계절은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봄꽃들이 지고 이제 여름꽃들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있다. 동백꽃과 매화로부터 시작하여 산수유, 목련, 벚꽃이 활짝 피었다 져버리고 개나리와 진달래, 유채꽃, 철쭉이 이어받더니 이제 봄과 함께 종말을 고한다.  우리말의 봄꽃의 이름들은 참 다채롭다. 더러는 꽃이 피는 계절을 알려주기도 하고(동백), 더러는 꽃이 피는 장소를 알려 주기도 하며(산수유, 목련), 때로는 꽃의 특성을(개나리, 진달래) 알려주기도 한다.  우선 ‘동백’(冬柏, 冬栢)은 ‘겨울 동(冬), 측백 백柏’으로 구성되어, 겨울에 피는 측백나무라는 뜻을 보이고 있다. 봄을 준비하는 시기에 제일 먼저 피는 꽃이라는 뜻이다.  ‘산수유’(山茱萸)는 ‘산에서 나는 수유’(쉬나무의 자주색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씀)를 뜻한다. ‘산딸기, 산머루, 산나리, 산달래, 산냉이, 산국화, 산버들, 산철쭉’ 등의 이름에서도 ‘산’(山)의 쓰임을 볼 수 있다.  물론 들에서 난 것을 알리는 ‘들장미, 들국화, 들꽃, 들모란, 들뽕나무’ 등도 있지만, 이는 사실 꼭 ‘들’이라기보다는 (기른 것이 아닌) ‘야생의’ 또는 ‘저절로 난’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들’은 넓은 땅을 가리키는 말인데, ‘땅’과 어원이 같다. 그리고 ‘들’을 집앞으로 옮긴 것이 ‘뜰’이다.  또 ‘목련’(木蓮)은 ‘나무에 핀 연꽃’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인데, 연꽃과 생물학적으로는 달라도 모양이 비슷한 것을 근거로 하여 지은 참 멋진 이름이다. 연꽃과 모양이 비슷하면서 이름도 비슷한 꽃이 또 있다. ‘수련’(睡蓮)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물 수(水)’가 아니라 ‘졸음 수’(睡) 자를 쓴다는 점이다. 곧 '잠자는 연꽃'이라는 뜻이다. 낮에는 꽃잎을 여러 차례 활짝 열지만 기온이 내려가는 밤에는 완전히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한편 개나리와 ...

발행일 202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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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후보, 권력, 국회의원의 정의 - 선거의 꿈인가?

[월간경실련 2024년 3,4월호][전문가칼럼] 후보, 권력, 국회의원의 정의 - 선거의 꿈인가?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앞으로 4년간 우리 지역의 삶을 결정지을 국회의원을 잘 결정해야 한다. 어떤 후보를 선택해야 할지 확신이 잘 안 선다면, 결정의 기준에 대해 한 번 곰곰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우리보다 민주주의 제도가 앞서 확립되었던 유럽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면 말이다.  ‘후보’라는 말은 영어로 candidate인데, 이 말은 라틴어의 candidatus에서 온 것으로 ‘흰색 옷을 입은’이라는 뜻이다. 공직에 지망하는 사람들을 ‘흰 옷을 입은 사람’으로 지칭했다는 뜻인데, 흰 옷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청렴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한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토가(toga)라는 길고 펑퍼짐한 옷을 입고 다녔는데, 요즘 대학의 졸업식 때 학생들이 학위를 수여받을 때 입는 옷의 원조이다.  candidate와 어원을 같이하는 단어로 candle(촛불)을 들 수 있는데, 촛불이 빛을 내는 물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빛을 흰색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요컨대 candidate과 candle 모두가 ‘빛’을 뜻하는 라틴어 candela(칸델라)에서 온 말인데, 칸델라는 빛의 세기, 즉 광도(光度)의 단위로도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일단 후보들은 당선이 되면 엄청난 권력을 얻는다. 힘, 특히 정치적인 힘을 power(파워)라고 하는데, 이는 처음부터 힘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power는 앵글로 프랑스어(Anglo-French, 영국의 노르만 왕조에서 사용한 프랑스 말)인 pouair(푸에르)에서 온 말로 고대 프랑스어(Old French) povoir(포부아르)로부터 기원한 것인데, 그 뜻은 ‘능력’이었다. 그러니까 능력이 있으니까 권력을 가질만 하다는 것이다. 능력을 뜻하는 povoir는 현대 프랑스어의 동사 pouvoir(푸부...

발행일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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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K팝의 영어 가사, 이대로 좋을까?

[월간경실련 2024년 1,2월호][전문가칼럼] K팝의 영어 가사, 이대로 좋을까?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최근 K팝에 영어 가사의 비중이 확대되고 한국어 가사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 음악 시장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루미네이트(Luminate Data Holdings)가 발표한 ‘2023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50여 개국 음원 플랫폼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상위 1만 곡 중에서 가사가 한국어로 된 노래가 전체의 2.4%로 나타났는데, 이는 2022년 3.2%에 비해 0.8% 포인트가 감소한 것이라고 한다. K팝의 음원 소비가 전년도보다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K팝이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로 가사를 쓰는 경향이 크게 증가했음을 뜻한다. 대표적인 예로, 방탄소년단(BTS) 멤버인 정국이 솔로 앨범 '골든'을 내면서 전곡의 가사를 영어로 썼다. 그리고 블랙핑크 멤버인 제니가 솔로곡 ‘유 앤 미’를 내면서 가사를 모두 영어로 한 것이다.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의 비중이 이처럼 낮아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일까?   혹자는 기존의 K팝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인해 영·미권 시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이라고 하면서 K팝의 소비자를 전 세계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처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오히려 K팝 팬덤의 지지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는 잘못된 흐름이라고 하며 우려한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는 노래 시장에서 영어 가사의 비중이 감소하고 지역어 가사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이 흐름과도 맞지 않는 대책이라고 볼 수 있다.  노래는 음악과 문학의 결합이다. 두 요소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우선할까? 아마 음악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사를 모르는 외국의 노래를 듣고 또 좋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가사를 이해하지 못해도 이것이 노래를 듣는 데 장애 요인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래의 국적을 결정하는 것은 멜로디일까? 물론 중국 노래는 멀리서 들어도 중국 노래 ...

발행일 202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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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프랑스의 이민자 갈등과 우리

[월간경실련 2023년 7,8월호] [전문가칼럼] 프랑스의 이민자 갈등과 우리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 지난 6월 27일 아침 17세의 젊은이 나엘(Nahel)이 프랑스 파리의 교외 낭테르(Nanterre)에서 경찰이 쏜 총에 의해 사망하였다. 바로 앞에서 총구를 겨눈 조준 사격이었다. 나엘은 동승자들과 함께 승용차를 몰고 버스 전용차선을 빠르게 달리고 있었는데, 빨간불이 켜져 있는 상황이라 경찰이 제지하려 했으나 차를 멈추지 않고 달렸다. 오토바이를 탄 경찰 두 명이 추격했는데, 다른 차들로 인해 막히자 차가 멈추었고 경찰은 검문을 하려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를 거부했고, 다시 출발하자 한 명의 경찰관이 나엘에게 총을 발사했다. 차는 기둥을 들이박았고 몇 분 후 그는 숨졌다. 경찰의 최초 증언에 따르면 그들이 자신들에게 돌진하여 정당방위로 발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장면은 촬영되고 있었고 SNS에 올려져 확산되었는데, 이 영상을 보면 경찰은 차의 옆에 있었고 이미 총구를 운전자에 겨냥하고 있었다. 그리고 “네 머리에 총을 쏠 거야”라며 옆의 동료는 그를 부추긴 정황이 드러난다. 경찰은 해당 경찰관을 구금했지만, 당일 저녁부터 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차량 방화와 폭죽이 동반되는 과격 시위로 발전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애도를 표명하며 국민들에게 침착하게 대응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시위는 파리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시청, 경찰서 등이 공격 대상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일반 상점들이 파괴되고 약탈되었으며 학교까지 파괴되고 버스가 불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 시위는 2005년 10월 클리시수부아(Clichy-sous-bois)에서 십대 소년들이 경찰의 추격을 피해 변전소에 들어갔다가 감전사한 사건과 2015년 1월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에 무장괴한 2명이 난입해 총기를 난사한 사건, 그리고 2020년 10월, 한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

발행일 202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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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안전’, ‘안보’, ‘보안’이 모두 security인 이유?

[월간경실련 2023년 5,6월호] [전문가칼럼] ‘안전’, ‘안보’, ‘보안’이 모두 security인 이유?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뉴스를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기계에 손이 끼이고, 하역 중 사고로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도로와 지하철, 그리고 건설현장에서 끊임없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 곳곳에서 항상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안전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고, 집단이 해체되지 않고 존속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그래서 안전 수칙을 마련하고 안전 교육을 시키며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하도록 사회 전반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말의 ‘안전’(安全)이라는 말은 그 쓰임의 영역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흥미로운 사실이 관찰된다. ‘안전’이 국가와 결합할 때는 특별히 ‘안보’(安保)라는 말을 즐겨 쓴다. ‘국가 안보’, ‘안보 협력’, ‘안보 태세 확립’ 등과 같이 말이다. 물론 ‘안전 보장’의 줄임말로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정보 통신 분야로 가면 ‘보안’(保安)이라는 말로 이름이 바뀐다. ‘컴퓨터 보안’, ‘컴퓨터 보안업체’, ‘사이버 보안’ 등과 같이 흔히 쓰인다. 왜 그럴까? 이때의 ‘보안’은 비밀을 유지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물리적인 위험뿐 아니라 조직 내의 비밀을 빼내 가려는 위험도 그 조직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비밀 유지로서의 ‘보안’은 ‘보안 유지’, ‘보안상의 이유로’, ‘보안에 철저를 기하다’, ‘기밀문서의 보안에 구멍이 뚫렸다’ 등과 같이 쓰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보안이라는 말은 예전부터 많이 쓰였는데, 그 의미는 ‘사회의 안전을 위한 질서의 보호’라는 뜻이었다. 즉 ‘치안’이라는 개념이었다. 이 같은 의미는 ‘보안관’, ‘보안요원’, ‘보안부대’, ‘보안 사령부’ 등에서 볼 수 있다. ‘안전’이건 ‘안보’건 ‘보안’이건 그 중심은 역시 ‘안전’이다. 사실 영어에서는 이 세 단어의 의미가 모두 security 하나로 실현되는 것을 ...

발행일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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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챗GPT, 어떻게 해야 할까?

[월간경실련 2023년 3,4월호-우리들이야기(2)] 챗GPT, 어떻게 해야 할까?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 열풍이 뜨겁다. 미국 로스쿨 시험과 의사면허시험을 통과했으며, 새로 나온 GPT-4는 미국 수능 SAT 상위 7%, 미국 변호사 시험 상위 10%로 통과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챗GPT를 공부하는 많은 모임들이 생기고 있고, 사회 전체가 이에 대한 대응을 위해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왜 이토록 열광하는가? 어떤 것에 대해 알기 위해 지금까지는 검색엔진을 이용해 왔는데 이는 대개 키워드를 여러 번 넣어 수행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반해 챗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에 기반한 대화형 인공지능(conversational A.I.) 서비스의 경우 직접 하나의 질문을 던지면 해결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정보 검색의 시대에서 지식 문의의 시대로 바뀐 것이다. 오픈AI의 챗GPT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의 뉴빙(New Bing), 구글의 바드(Bard) 등 새로운 서비스가 속속 경쟁적으로 등장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여러 기업이 뛰어들어 서비스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과연 새로운 디지털 혁명인가? 요즘 ‘혁명’이라는 말이 너무 인플레가 되어 있다. 우선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도 우리나라와 독일 등 일부 나라에서만 쓰는 용어일 뿐이다. 게다가 요즘은 새로운 기술이 하나 나올 때마다 ‘혁명’이라는 말을 기본적으로 달고 나온다. 작년 한 때 떠들썩했던, 세상이 다 뒤집어지는 줄 알았던 ‘메타버스’(Metaverse)도 혁명이라고 했다. 혁명이 너무 흔해졌다. 거의 매년 나온다. 그래서 혁명이라고 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이 챗GPT도 아직 모른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은 맞다. 대화형 AI의 커다란 진전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우선 기존의 모델과 달리 문맥을 고려한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에 이 챗GPT를 쓸...

발행일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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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공직자에게 인문학을 부과하자!

[월간경실련 2022년 11,12월호-우리들이야기(2)] 공직자에게 인문학을 부과하자!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후 한 달이 지나고 있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여전히 스산하다. 국회에서의 국정조사에 관한 여야의 극한 대립에서부터 유가족들의 눈물의 기자회견과 각계각층의 성명서 발표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해결된 것이 없고 모든 일들에 분노만 쌓여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난 여론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번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공직자들이 없다는 점이 우리를 가장 화나게 한다. 행안부장관, 경찰청장, 경찰서장, 용산구청장 등 관련 기관장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바와 같이, 국민의 안전 유지와 복리 증진을 떠맡고 있는 공직자들에게는 누구보다 강한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공직자에 많은 그토록 많은 권한을 부여한 것은 반대로 그만큼의 막중한 책임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이란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制裁)’이다. ‘책임’(責任)이라는 말의 구성은 ‘꾸짖을 책’, ‘맡길 임’으로 되어 있다. 잘할 것으로 기대되어 일을 맡기지만 만일 잘못하면 꾸짖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인정받은 능력만큼의 노력을 다하되, 만일 그렇지 않으면 국민으로부터의 질책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리만을 누리고 질책은 면하려 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그 개념 자체로도 논리적인 모순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의 정신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고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의 공직자들이 보이는 태도는 왜 이럴까? 한 마디로 이는 공직의 기강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업무 수행에 있어 근본적으로 인문학적 사유가 결여되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인문’이란 인간의 근원적 문제와 인간의 문화와 사상을 말하므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

발행일 20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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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대통령과 욕, 비어, 속어

[월간경실련 2022년 9,10월호-우리들이야기(2)] 대통령과 욕, 비어, 속어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지난 9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7차 재정공약회의 참석 후 회의장을 나오며 한 언행이 중계되었는데, 그 내용은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로 알려졌다. 이를 언론은 욕설 혹은 비속어 파동이라는 말로 전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의 언행이라 그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다. 국격의 실추, 국제적 망신 등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이번 파동에 대해 대통령실 및 여당 측과 야당 측의 입장 차이가 크다. 특이한 점은, 대통령실과 여당은 국회가 미국의 의회를 말하는지 한국의 국회를 말하는 것인지의 문제와 ‘바이든’이라는 말을 했는지 혹은 다른 단어였는지 진위를 가리는 데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야당은 대통령이 욕설 혹은 비속어를 썼다는 사실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욕설과 비속어에 관한 개념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욕설’ 혹은 ‘욕’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는, 사전에 나오는 대로,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 또는 남을 저주하는 말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누가 누구에게 욕을 하다’처럼 반드시 ‘~에게’라는 대상이 있다. 그저 혼자 하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누군가에게 향하는 행위이다. 바로 이때문에 욕을 하면 상대방이 모욕감을 느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에게 ‘꼴통’이라고 하거나, 내가 한 말에 대해 ‘개소리’라고 하면 나는 즉각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강도(强度)가 비교적 약한 욕에 해당한다. ‘쪼다’, ‘꼴깝을 떨다’, ‘아가리’와 같은 단어나 표현들은 조금 더 강도가 세고, ‘새X’ ‘개새X’, ‘X할 놈’ 등 더욱 더 심한 욕이 된다. 강도의 차이가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모두 인격을 모독하는 말, 즉 ‘모욕어’이다. ‘욕’의 둘째 의미는, (꼭 상대방의...

발행일 2022.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