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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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비싼 장난감 없어도 종일 즐거웠던 마을, 만들 수 있을까?

   어르신들이 “마실(마을) 갔다 온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실 때가 있다. 이 표현을 직역하면 물리적인 공간인 마을에 다녀온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람’을 만나고 온다는 뜻으로 이 표현을 사용한다. 지난 4월 18일 저녁 7시부터 경실련 강당에서 진행된 세미나의 발제자 윤혁경(ANU디자인그룹 도시부문) 대표는 “마실 갔다 온다”라는 표현에 담겨 있는 사람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마을 만들기’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배웅규 도시개혁센터 재생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세미나는 윤혁경 대표의 ‘도시재생에서 마을 만들기의 역할’이라는 발제로 시작되었다. 이어 ㈜두꺼비하우징 이주원 대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여혜진 연구원, 인천대 도시건축학부 권영상 교수,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임정민 전문위원이 지정토론자로 나섰다. 세미나에서는 ‘마을 만들기’의 정의, 종류, 방법에서부터 현실적인 문제점과 공공과 제도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마을 만들기’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마을 만들기의 정의와 종류    박원순 시장은 ‘마을공동체 만들기’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우고, 표류중인 뉴타운 사업의 대안 중의 하나로 제시하였다. 지난 16일에는 외부전문가를 포함한 ‘서울 마을공동체위원회’가 발족하면서 ‘마을 만들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마을 만들기’의 의미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지역을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사람간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을 뜻한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재개발, 재건축, 도시정비와 같은 ‘물리적인 환경개선’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구축하는 마을 만들기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물리적인 환경개선을 수단으로 하더라도, 마을 만들기가 이전의 도시정비 사업들보다는 마을 공동체의 회복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마을 만들기는 전면철거 후 재개발 또는 재건축을 하는 방식에서부터 소규모 리모델링과 환경개선을 하는 방식까지 그 규모와...

발행일 2012.04.25.

스토리
[릴레이인터뷰]사람을 중시하는 사람 좋은 활동가

사람을 중시하는 사람 좋은 활동가 박한 간사가 만난 윤철한 시민권익센터 국장    시민권익센터 윤철한 국장은 1999년 회원조직을 통해 경실련과 인연을 맺고 현재 회원․홍보팀의 전신인 경실련 사이버팀에 2001년 정식 활동가로 입사했다. IT쪽에 관심이 많아 초기 경실련 홈페이지를 제작했고 최근 개편된 홈페이지 작업에도 참여했다. 또한, 최근 들어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 이슈에 대해 소비자이익이 최우선 돼야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정보통신분야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로서의 포지션을 구축하고 있다. 우선 시민권익센터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봤다.   “살아가면서 상식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했을 때 옳지 않은 것을 고치기 위해 고민하고 그 고민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곳이 시민권익센터이다. 또한 현행 법체계를 존중하지만 일반인의 상식을 벗어나는 법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미숙아, 가맹점주 등 경제적․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했고, 최근에는 보편적 권리인 소비자의 권리와 관련된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윤 국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상식과 법이다. 특히 법대에 들어가지 않으면 법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은 우리나라의 법률교육시스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우리 사회가 법치국가이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법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법과 상식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경실련의 역할’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윤철한 국장의 성향이면서 또 그가 시민운동을 해왔던 방식은 사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태도였다. 시민운동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중요하다. 사업의 성과를 떠나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시민운동과 경실련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며 나아가 사회에 대한 열정이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사회를 위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만큼 그는 사람을...

발행일 2012.04.17.

스토리
[릴레이인터뷰] 갈등의 시대, 새로운 시민운동의 개척

백두대간, 백두산에서 시작해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산줄기. 우리나라의 등뼈와 같은 이곳은 산악인들의 종주산행욕구가 가장 많은 구간이다. 한해 1만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종주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로인해 그만큼 자연훼손에 대한 논란도 가열차다.   현재 경실련 갈등해소센터(아래 갈등센터) 박한 간사의 ‘가장 의미있는 사업’이 ‘국립공원 내 백두대간 보전과 이용에 관한 갈등해소’ 사업이다. “입사 후 처음부터 시작한 업무가 백두대간 사업이에요. 저도 처음이고 협의체 구성원들도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 하는게 처음이어서 초반엔 적응하느라 힘들었습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환경부, 환경단체, 산악단체와 함께 협의체를 구성해 끝없는 논의를 벌인 결과 지난 11월 ‘백두대간 마루금 비법정탐방로 산행을 둘러싼 갈등해소를 위한 합의문’을 도출하기에 이르렀다.(http://www.ccej.or.kr/index.php?document_srl=134492) “가치관에 관한 갈등은 잘 풀리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향이 있어요. 백두대간을 개발할 것이냐, 보존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10년 넘게 표류하고 있었으니까요.”       조정자로서가 아닌 순수한 개인의 백두대간에 관한 입장은 무엇일까. “일방적으로 막을 수도 없고,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행동할 수도 없는거 아니겠어요. 자연을 보존하는 한도에서 일정 정도의 허용은 하는게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중간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너무 뻔한 대답이다. 그러나 입사 후 전임자를 이어 맡은 밀양 송전탑 문제를 조정하던 중 분신 사건이 일어난 것을 봤으니 조정자의 역할이 얼마나중요한지 감안하고 한 말이리라.    밀양 송전탑 건설 갈등 분신에 대한 죄송함   “소장님께서 조정자 역할 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 중요성을 실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갈등이 증폭 되서 쌍방이 더 이상 말이 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대화와...

발행일 2012.04.11.

칼럼
[김철환의 건강이야기] 항우울제 복용 주저하지 마세요

항우울제 복용 주저하지 마세요 김철환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인제대학원대학교 교수/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금연클리닉)         필자가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나라,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살기 좋은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말한다면 독자들은 동의할까. 그렇게 믿고 싶지만 갈수록 살기가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심지어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은 세계가 다 인정한다. 이 작은 나라가 최근 50년동안 가장 빠르게성장한 국가 중 하나이며, 몇 개 부문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업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살률 1위, 행복하지 않다고 답하는 국민 비율이 가장 많은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까.   우리나라는 2010년 총 1만5천566명이 자살해, 자살률은 10만 명당 31.2명(1998년 18.4명)으로 세계 최고이다.OECD 인구표준화 사망률로 보면 10만 명당 ▲한국 28.1▲일본 19.7 ▲프랑스 13.8 ▲스웨덴 11.0 순이다. ▲이탈리아 4.9 ▲스페인 6.0 ▲호주 7.5 ▲미국 10.5 등의 수준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높은 지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10대, 20대, 30대가 사망하는 원인1위가 자살이다. 교통사고나 암이 젊은 사람들의 사망원인 1위가 아니고 자살이 1위인 대한민국,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자살률 세계 1위, 대한민국   자살은 노인에서 많고 미혼과 이혼자, 당뇨병, 심근경색증, 중풍, 혹은 완치하기 어려운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 짜증을 잘 내고 욱하고 화가 치미는 반응이 흔한 사람, 직장에서 가중되는 업무 부담으로 탈진증후군을 겪는 사람에서 흔하다. 이것은 세계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고 자살이 늘었을까? 그것은 사회가 불안하고 빡빡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 가족, 동네, 지역사회가 10년이 아니라 5년, 아니 3년이면...

발행일 2012.03.27.

칼럼
[스포츠이야기] '승부조작'과의 전쟁, 무엇이 필요할까?

'승부조작'과의 전쟁, 무엇이 필요할까?   김건호 국책사업감시팀 팀장   고전 문구의 인용은 진부하긴 하지만, 현재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기에 빈번하게 쓰이곤 한다. 그렇기에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하나의유령이 대한민국 스포츠판을 떠돌고 있다. 승부조작이라는 유령이.’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지 두려운 존재. 작년부터 계속 이어져오고 있는 승부조작 이야기다.     ▲ 지난 2월16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현대건설-흥국생명 경기에 앞서 선수들이 관중들에게 승부조작 사건에 대해 사과 인사를 하는 모습. 검찰 수사 결과 흥국생명 선수 2명은 브로커로부터 1경기당 300만~500만원을 받고 모두 2~3차례에 걸쳐 경기 중 고의적인 실수르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1일 프로야구 LG트윈스 김성현이 브로커로부터 ‘첫 이닝 고의볼넷’ 등 불법 스포츠 베팅사이트의 베팅 항목에 대한 조작 부탁을 받고 기록 조작에 가담한 뒤 수백만원의 사례금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같은 혐의로 2일 검찰에 출석한 박현준은 조사가 끝난 뒤 귀가했으나 혐의를 일부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청정지대’라고 생각되었던 프로야구에서도 승부조작이 벌어진 것이다.   이미 지난해 5월 프로축구에서 승부조작이 적발되면서 65명의 선수와 지도자가 영구 제명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3명의 선수와 지도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어 올해 2월에는 프로배구에서도 승부조작에 15명의 전·현직 선수들이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른바 4대 스포츠라고 불리는 인기 구기 종목 중 3개의 종목에서 승부조작이 터졌고, 프로농구 또한 ‘3점슛 실패 베팅’ 등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쉬쉬하며 소문으로만 돌았던 판도라의 상자가 드디어 열린 것이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들 종목에서 승부조작이 진행된 과정은 대동소이하다. 불법 스포츠 베팅사이트에 거액을 베팅한 전주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기기 ...

발행일 2012.03.27.

칼럼
[김철환의 건강이야기] 대머리 특효약은 없나요?

대머리 특효약은 없나요? 김철환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인제대학원대학교 교수/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금연클리닉)         “이러다가 곧 대머리 되는 것은 아니죠?” “여자도 대머리가 되나요?”   갑자기 변하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인해 놀란 사람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떤 사람은 앞머리, 어떤 사람은 정수리 부분의 머리가 많이 빠진다. 사실 몇년 전부터 그 곳의 머리카락이 힘이 없어지고 가늘어졌지만 못 느꼈을 뿐이다. 나이가 60세가 넘어서 대머리가 되는 것은 견딜 만하지만 20대, 30대부터 대머리가 되는 것은 누구나 견디기 힘들다. 더구나 여성들이 머릿속이 훤하게 보일 정도로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은 정신적으로 꽤 충격이 크다.   사람의 머리카락은 총 10~12만 개 정도가 되는데 이들 머리카락은 각각 발생, 성장, 퇴화, 휴지기라는 주기를 갖고 순환한다. 일반적으로 휴지기의 머리카락이 매일 50~70가닥 정도 빠지는데 탈모가 시작되면 주기가 사라지고 모든 머리카락이 점차 가늘어지고 짧아져서 결국은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연모 형태로 변한다. 문제는 이런 자연스러운 순환의 한 과정으로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급속도로 과도하게 빠지는 경우이다. 이런 문제되는 탈모는 원형 탈모증, 남성형 탈모, 그리고 여성 탈모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원형 탈모증, 우선 지켜보세요!   원형 탈모증은 원형의 모양으로 모발이 갑자기 빠지는 병이다. 동전 정도의 크기로 빠졌다가 조금씩 커져서 동전 서 너 개의 크기로 커지지만 수개월 후 다시 좋아진다. 간혹 두피의 모발 전체가 빠지기도 하고 두피뿐 아니라 눈썹, 속눈썹, 음모, 체모가 빠질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원형 탈모의 원인은 분명하지 않지만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으로 이해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혈액 속의 T 임파구가 자신의 털을 자신의 몸의 일부로 인식하지 못하고 공격하여 모발의 탈락을 유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발행일 2012.03.26.

스토리
[릴레이인터뷰]'열심(熱心)' 으로 통하는 까칠한 서른살의 활동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필자에게는 상대를 금세 재단해버리는 몹쓸 습관이 있었다. ‘이 사람 말 좀 통하겠는데’, ‘이 사람 안 되겠구나’ 등의 양분화 작업이 불과 10분안에 진행됐다. 섣부른 판단이 가져온 몇몇의 좋지 않은 상황을 겪은 이후로 못된 버릇을 고치려고 노력 중이지만, 최승섭 간사와의 만남은 때로는 첫인상이 반이상 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줬다. 누가 봐도 성실하고, 본인만의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약간의 까칠함과 소탈함을 지닌 승섭 간사와의 대화, 지금부터 시작한다.     지금은 평간사들 중에서 최고참이 되어버린 최승섭 간사에게도 경실련에 대한 첫인상이 있었으리라. ‘아파트 거품 빼기 운동’이 한창이던 2005년 대학신문사 활동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경실련은 부동산운동 단체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한다. 7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대한민국의 집값을 내리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는 부동산감시팀의 간사가 되었다. “주택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인식변화가 필요한데 이는 사회철학을 바꾸는 작업이라 쉽지 않다”며 “언론이 일조해 재테크의 수단으로 굳어진 주택에 대한 거품을 빼고, 질 높은 정보를 제공해 언론의 영향력을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경실련에서 일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업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관련기사를 꼼꼼히 체크하고 예전보다 더 공부하려는 태도가 생겼다는 것을 꼽았다. 의도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논문 및 보고서를 찾아 비판적으로 읽는 습관도 기르고 있다고.    활동하면서 느낀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지난해 12월에는 경실련에서 가락시영 종상향과 관련하여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하자 조합에서 의도적으로 집단 항의전화를 해 이틀간 경실련의 모든 전화기 코드를 뽑아두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최 간사는 어려움을 느꼈기보다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성실’의 아이콘 최승섭 간사는 주말에는 편의점 야간 아...

발행일 2012.03.26.

칼럼
[스포츠이야기]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엘클라시코와 올드펌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 엘클라시코와 올드펌   김건호 국책사업감시팀장     “프랑코한테까지 맞선 카탈루냐의 정신, 그 중심에 바르샤가 있었잖아요. 홈 구장 누 캄프는 진짜 울분과 분노를 배출하는 유일한 해방구였다고요.바르샤는 바르셀로나의 고결한 정신이에요. 축구이상이죠.”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중 여주인공 인아의 말)   스페인은 카스티야, 카탈루냐, 아라곤, 바스크등의 국가들이 오랫동안 자신들의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일구어 온 나라이다. 1469년 각국 간의 각축이 끝나고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카스티야 왕국이 다른 왕국들을 통합하면서 스페인 왕국이 탄생한다. 하지만 카탈루냐, 바스크 등 비카스티야 지역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이 곪디 곪은 상처는 1936년 2월 총선거에서 인민전선 내각이 성립되자 이에 반발하여 프랑코 장군이 인솔하는 군부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내전으로 이어진다.   반정부군은 마드리드를 거점으로 한 귀족과 지주들의 지지 그리고 파시스트 세력을 확장하려는 독일·이탈리아의 전폭적인 원조가 겹치면서 처음부터 우위를 점해갔다. 반면 카탈루냐 지역을 거점으로 한 좌파 인민전선은 대다수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중립을 표방한 미국 등 국제사회의 방조 속에 점차 힘을 잃게 된다. 앙드레 말로, 파블로 네루다, 헤밍웨이, 조지 오웰 등 유럽 각지의 지식인과 젊은이들이 ‘지금은 펜이 아니라 총을 들 때’라고 외치며 ‘국제여단’의 이름으로 내전에 참여했지만 파시스트의 승리를 막지는 못했다. 약 50만 명의 희생을 낳은 가운데 1939년 마드리드에 반정부군이 입성하면서 내전은 끝났다. 하지만 이때 부터 또 다른 내전, ‘엘 클라시코(El Clasico, 영어로는 the classical) 더비’가 본격화 된다.   내전이 끝나자 프랑코 정권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인민전선을 지지했던 카탈루냐, 바스크 지역의 독자 언어와 깃발 사용을 금지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카탈루냐 지역의 상징이었던 축구...

발행일 201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