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스토리

필터
칼럼
교육개혁-양적,질적 측면의 동시 성장을 위하여

교육개혁-양적, 질적 측면의 동시 성장을 위하여   박정수(전 경실련 재정세제위원장)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문제는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고비용, 고투자, 저효율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돈 값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 성과중심, 그리고 수요자 중심의 교육체계를 견지하기 보다는 중앙집권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체계가 견고하게 유지됨에 따라 발생한 문제로 생각된다. 2008년 현재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83.8%로 50∼60% 수준인 미국과 일본을 훨씬 뛰어넘는 과잉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 진학시 개인의 적성과 특성은 무시되고 천편일률적인 진학으로 대학도 경쟁압력을 크게 느끼지 못하며 질적 수준에 대한 평가도 낮은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전문계고, 전문대학의 일반고, 일반대학과의 차별성, 특성화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개선에도 불구하고 선진국과는 격차가 있는 물리적 교육환경도 여전히 문제로 지적된다. 취학률의 상승과 더불어 교사 1인당 학생 수, 학급당 학생 수, 학생 1인당 공교육비 등의 지표는 꾸준히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선진국의 교육환경과는 아직도 일정한 격차를 보이고 있는 바, 교사 1인당 학생 수, 학급당 학생 수, 학생 1인당 교육비 공히 OECD의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행히 교육환경의 개선과 객관적인 학업성취 지표(ex. PISA, TIMSS)는 우수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학업에 대한 흥미와 학습시간 대비 성취도를 보면 전혀 다른 결과를 보인다. 국내 15∼24세 학생의 일주일 학습시간은 49.43시간으로 OECD 평균(33.92시간)보다 15시간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나 투입 대비 효율성이 떨어지고 만족도도 바닥 수준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교육에 대한 신뢰 부족과 사교육의 팽창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그 결과 사교육의 비중이 높고 해외...

발행일 2009.11.20.

칼럼
투명하고 청렴한 사회를 위하여

  투명하고 청렴한 사회를 위하여   박인제(전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1987년은 우리 민주헌정사에서 큰 이정표를 세운 한 해였다. 그러나 이는 시작의 처음에 지나지 않았다. 민주화의 담론은 무성하였으나 내용을 채울 대안은 거칠고 빈약하였다. 이런 각성에서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시민운동, 경실련 운동이 1989년 닻을 올렸고 허무는 일에서 만드는 일에의 참여에 목말랐던 보통 시민들의 봇물 같은 동참이 이어졌다. 말석에서나마 그 대열에 합류한 것은 나로서도 행운이었다.   경실련 출범 초기의 주요의제는 당시 광풍같이 몰아치던 토지투기 같은 부동산 문제였다. 사람들은 땅 투기, 집 투기에 열중하였고 기업 심지어는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업이 본래의 생산 활동 보다는 업무와 무관한 부동산 취득에 열을 올리자 정부는 기업으로 하여금 비업무용 토지를 처분토록 하는 한편 감사원이 그 실태조사에 나섰다. 그런데 1990년 5월 감사원의 어느 감사관이 감사원이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를 감사하던 중 외압에 의해 그 감사가 중단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하여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다음 전격 구속당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용기 있는 감사관이 이후 국민감사관으로 불리어진 이문옥 前감사관이다. 근래의 가장 인상적인 양심선언자 중의 한 사람이요, 서구에서 말하는 호루라기 부는 사람 즉 ‘휘슬블로어(Whistle Blower)’의 전형으로 최초의 내부고발자, 공익제보자라고 불려 마땅한 분이다.   이문옥 前감사관의 용기 있는 양심선언은 경실련 운동이 지향하던 바로 그 핵심의제를 온 세상에 각인시킨 일이었다. 경실련에서 즉각 공동변호인단을 꾸려 변론에 나섰고 그런 의미 있는 사건의 주심변호사를 맡게 된 것은 나에게는 또 다른 행운(?)이었다. 6년여의 지루한 법정투쟁 끝에 석방, 무죄, 감사원 복직판결을 차례로 받아낸 것은 경실련 운동사에서도 기록될 만한 일이었다. 경실련 운동은 당연히 한국사회 전 분야에 걸친 ...

발행일 2009.11.20.

칼럼
한국 사회를 위한 보편적 가치

한국 사회를 위한 보편적 가치        김호균(경실련 재정세제위원장)  한국사회가 모든 이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간적, 사회적 가치가 구현되어야 한다. 그것은 모든 국민을 위한 행복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보다 구체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목적으로서의 위상을 가지는 이들 가치는 당연히 한국 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기본가치)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특수한 여건을 반영하는 내용을 가지는 보편적 가치일 것이다. 평화, 인권, 신뢰, 포용, 정의가 그러한 보편적 가치의 지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가치는 한편으로는 각각 독자적인 의의를 가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 밀접한 보완관계를 가진다. 이들 가치는 어느 특정 영역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적용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가치가 구현되면 다른 가치를 구현하는데 도움이 되고 하나의 가치가 상실되면 다른 가치의 구현도 저해될 수 있다(‘가치들의 상호의존성’).   1. 평화 평화는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 할 첫 번째 보편적 가치이다. 평화는 그 자체로서 인간적인 삶의 수준과 질을 구성한다. 한반도에서 전쟁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상호협력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다른 보편적 가치가 구현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매우 크다. 평화가 위협받으면 국민의 인권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신뢰와 포용의 인간관계가 심화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평화는 세계적 차원에서 인류 보편적 가치로서 구현되어야 한다. 평화가 유지되어 국제적 교류와 소통이 활발해지고 민족간 상호이해의 폭이 지속적으로 넓어지면 신뢰와 포용의 구현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도 UN 활동 등을 통해 세계평화 구현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

발행일 2009.11.20.

칼럼
경제정의실현 지금이 그 기회가 아닌가?

경제정의실현 지금이 그 기회가 아닌가?   김헌동(아파트거품빼기운동본부장)   노무현 입으로만 경제정의 “오늘밤이 지나면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납니다. 성별 학력 지역의 차별 없이 모두가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세상 어느 꿈은 이미 현실이 되었고 어느 꿈은 아직 땀을 더 쏟아야 할 것 입니다.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마을 뒷산에서 몸을 던져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 정치인 노무현이 2002년 12월 대선 직전 했던 발언이다. 화려한 말솜씨와 강한 표현 그러나 2003년 집권 후 폭등하는 집값을 안정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 붓기’ 식의 대책만 쏟아내는 한심한 처방을 보다 못해 대안제시를 위해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탄핵, 대선자금수사 2004년 4월 총선 등 정치이슈로 인해 수면 아래 머물던 아파트 가격 폭등현상, 다수 의석 확보로 강해진 대통령은 경제정의와 정반대의 발언을 쏟아냈다. “공기업도 장사다. 장사는 10배 남길 수도 밑질 수도 있다.” 분양원가공개가 곧 개혁은 아니다. 총선에서 만일 공기업의 분양원가공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면 잘못된 것이고, 협의되지 않은 공약이다. 다수의 시민들과 2004년 4월 총선에서 과반이 넘는 의석으로 힘을 얻은 직후 발언이다. 분양원가공개를 반대하는 세력 중 핵심은 토건재벌과 개발업자, 개발독재시대에 관료로 임용된 개발관료, 땅장사와 집장사로 덩치를 키운 공기업, 아파트광고 수입으로 사세를 늘린  조중동 등 개발오적이다. 개발오적이 노렸던 민간분양원가 속이고, 감추고, 숨기고를 넘어 개발독재, 군사독재 때도 해왔던 공기업 분양원가의 공개조차 노무현대통령이 앞장서 강력 반대했다. 이어 여당의 당의장, 당대표, 대다수 여당 국회의원이 반대하자 기다렸다는 듯 장차관들이 공개적으로 법에 정해진 공공아파트의 분양원가공개를 거부하고 나섰다. 2003년부터 4년간 30회 이상의 각종대책을 발표하고도 뛰는 ...

발행일 2009.11.20.

칼럼
모두가 건강한 사회

  모두가 건강한 사회   김진현(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서러울 때가 배고플 때와 질병으로 고통받을 때라고 한다. 배고픔의 문제는 다행히 경제성장으로 대부분 해소되었지만 질병은 여전히 신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가계소득을 넘어서는 엄청난 치료비로 인해 가정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질병은 가난한 계층에서 더 많이 발생하였고, 사망률 또한 빈곤층에서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인구 특성, 사회경제적 수준, 문화적 환경, 보건의료제도에 따라 질병 발생과 그에 대한 대처 능력은 소득계층 간에 차이가 나타나고 정책적으로 해결하기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런데 질병 발생보다 더 큰 문제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 지출되는 치료비가 개인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날 때가 많아 가족 중에 중환자나 난치성 질환자가 있으면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우리 이웃에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다. 저소득층은 물론이고 중산층이라고 해도 간혹 고액의 치료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거나 치료시기를 늦추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헌법은 "모든 국민은 건강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건강권을 헌법적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국가가 아직 건강권을 보장해주지는 못하고 있으며, 선언적 의미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민의 치료비를 보장하기 위해 건강보험제도가 시행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치료비의 60% 정도밖에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질병으로부터 이중 삼중의 고통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중증으로 대학병원에서 수술하고 진료비 청구서를 받아보면 건강보험에서 급여해주는 것이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말이 보험이지 진료비 할인제도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대부분 진료비의 90% 이상을 보장해주고 있으며, 우리처럼 ...

발행일 2009.11.20.

칼럼
새로운 동아시아 협력모델의 구축

새로운 동아시아 협력모델의 구축   김종걸 (경실련 대외통상위원장) 2008년부터 2009년에 이어지는 글로벌 경제위기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게 한다. 경제운영의 기본목적이 성장과 안정, 그리고 사회적 공공성의 확보에 있다고 한다면 지금의 상황은 이 3가지 목적에서 모두 실패한 듯 보인다. 경제적 성장은 지구촌의 극히 일부분에 한정되고 있으며, 그나마도 작금의 경제위기로 크게 후퇴하고 있다. 60억 세계 인구 중 9억 가까운 인구가 영양실조에 시달리며, 그 수도 매년 400만 명 늘어난다. 환경, 의료, 식량, 식품, 노동의 위기 등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도의 공공성도 확보되지 않는다. 미국과 서구 중심의 패권, IMF,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 국제적 생산주역인 다국적기업 모두 지구촌의 성장과 안정, 그리고 사회적 공공성의 확보에 상당 정도 실패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여기서 잡아야 할 화두는 자본주의의 극복과 새로운 국제레짐의 구축이라는 점이다. 만약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문구가 그대로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 식의 단순한 사고방식을 지양한다면, 적어도 현재의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의 파악,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인류사회의 노력에 대해서는 좀 더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패권구조의 극복’이 단순한 ‘반미구호’로 폄하되지 않기 위해서도 새로운 지역질서의 미래상에 대한 재설계가 요구됨은 당연하다. 여기서 첫째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동아시아적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자본주의적으로 가장 발달한 한국과 일본은 기존의 ‘양극화성장’으로부터 ‘균형성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에 있어서 평등주의적 편향을 수정시키려는 노력과, 이미 충분히 양극화되어 있는 한국과 일본에서의 그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IMF환란 이후의 한국의 경제회복 과정은 경제사회적 양극화의 진행과정이기도...

발행일 2009.11.20.

칼럼
사회적 평등 가치와 개인적 성장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교육을 위하여

사회적 평등 가치와 개인적 성장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교육을 위하여 김재춘 (경실련 교육개혁위원장) 학교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대단하다. 특히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에 대한 논란은 뜨겁다. 한편에서는 학교교육이 사회경제적 계층을 재생산하는 기능 (즉 빈부의 대물림 현상)을 막기 위해서 평준화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다른 편에서는 학교교육이 개인적 성장에 적합한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평준화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준화 정책에 대한 이처럼 상반된 시각은 ‘학교’라는 공적 기구와 ‘교육’이라는 개인적 활동 간의 결합을 뜻하는 ‘학교교육’의 특수한 지위와 성격에서 유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공적 기구로서 학교는 빈부격차 해소라는 사회적 평등 가치를 추구해야 함을 강조하는 사람들과 개인적 활동으로서 교육은 개인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개인적 적절성을 유지해야 함을 강조하는 사람들 간의 의견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다.   학교교육에서 학교라는 사회적 기구와 교육이라는 개인적 활동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이 둘을 조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한가?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격이 강했던 노무현 정권에서는 학교의 사회적 기구로서의 성격을 더 강조하였으며, 상대적으로 보수적 성격이 강한 이명박 정권에서는 개인적 활동으로서의 교육의 성격을 더 강조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학교와 교육 중 어느 하나를 살리고 다른 하나는 희생시키는 ‘either/or’보다는 학교와 교육을 동시에 살리는 ‘and/both’여야 한다. 학교와 교육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교육 정책이 어떤 모습이여야 하는가를 설명하기 전에 학교와 교육이 만나서 오늘날의 ‘학교교육’이라는 맥락을 형성해 온 역사적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약 200여 년 전에 서구에서 등장한 근대 학교교육 체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분과 직업의 세습 제도를...

발행일 2009.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