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스토리

필터
칼럼
재경부를 개혁해야 경제가 산다

필자는 중증 개혁병 환자다. 개혁피로증에 개혁무용론이 판치며 개혁은 그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현실속에서 혼자만 소리높이 개혁을 외치고 있다. 필자에게만 한국경제의 신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탓일까? 과거의 개혁은 잘못된 개혁이며, 그 개혁이 성과도 없이 좌초한 것은 파괴적 개혁의 결과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필자는 새로운 창조적 개혁을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나라도(!)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개혁을 요구해온 이론적 근거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홍종학 교수 (경원대 경제학과,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97년 12월, 난데없는 외환위기에 온 국민은 경악했다. 충격에 휩싸인 국민들에게 도하 각 언론은 재경부(당시 재경원)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기사를 연이어 쏟아냈다. 진로를 예측하기 힘들던 한국경제의 앞길을 헤쳐 나가야 할 재경부에 대한 공격의 화살은 날카로웠다. 어디서 그런 자료를 그리도 쉽게 구했는지 모피아들의 독단과 전횡, 도덕적 해이에 대한 심층 취재 기사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필자는 당시 이러한 보도태도에 반대했다. 위기를 수습한 후, 위기의 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한 후 재경부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다.   크나큰 오산이었다. 외환위기에 대한 청문회는 논란만 거듭하다가, 상대당을 헐뜯기만 하는 반쪽짜리로 끝났다. 재경원은 재경부로 이름만 바꾸었다. 예산을 다루는 부서만 떼어 내 기획예산처를 만드는 것으로 재경부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처방은 끝났다.  금융감독위원회를 새로 만들어 재경부로부터 독립적인 금융감독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시늉만 냈다. 그리곤 모든 것은 예전으로 돌아갔다.   재경부의 관료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정책실패는 계속되고, 각종 거품의 후유증으로 한국경제는 중병에 걸린 환자의 형국이 되어버렸다. 한국의 외환시장은 다시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을...

발행일 2004.10.08.

칼럼
[시민기고]우리나라의 건축비, 턱없이 높다

  지난 7월23일 서울지역 아파트 가격수준이 주요 선진국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는 내용의 분석글을 보내주신 서영훈님이 다시 기고문을 보내주셨습니다. 주요 골자를 보면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낮은 물가수준에도 불구하고 건축비가 높은 수준이며, 분양원가 및 분양가격에서 차지하는 건축비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다는 내용입니다. 좋은 글을 보내주신 서영훈님께 감사드리며, 기고문의 주요내용을 발췌해서 싣고, 전문은 파일로 첨부하였습니다.(편집자 주) 우리나라의 건축비, 턱없이 높다  - 일본 도쿄도와 건축비 비교분석 - 서영훈 Ⅰ. 분석배경 경제규모나 가계의 주택구매력 등 펀더멘탈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과도하게 고평가된 주택가격과 카드사태로 형성된 사회전반적인 버블로 인해 우리경제의 2/3를 차지하는 소비의 심각한 위축을 초래하고 있고,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향후 성장잠재력을 크게 훼손하여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등 그 해악이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지표가 경제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여야 하듯이 경제현실도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이나 인식과 큰 괴리를 보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성원인 각 경제주체들에게 많은 경제적인 고통이 따르고 이는 커다란 갈등요인으로 작용하여 자원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배분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분양시장도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된다면 이러한 논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러한 관점에서 아파트 분양시장에서의 분양원가 공개와 관련하여 거론되고 있는 건축비의 적정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분양가격은 토지비, 건축비 및 기타 간접비로 구성되는데, 토지비는 공시지가의 공표로 대략적인 수준을 알 수 있지만, 건축비는 건설회사들이 자의적으로 산정하므로 어느 정도가 적정수준인지 파악하기가 매우 곤란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외국의 건축비 수준을 조사하여 한국과 비교하여 봄으로써 주택 공급자 및 수요자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

발행일 2004.09.03.

칼럼
노무현 정부를 떠나 보내며...

필자는 중증 개혁병 환자다. 개혁피로증에 개혁무용론이 판치며 개혁은 그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현실속에서 혼자만 소리높이 개혁을 외치고 있다. 필자에게만 한국경제의 신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탓일까? 과거의 개혁은 잘못된 개혁이며, 그 개혁이 성과도 없이 좌초한 것은 파괴적 개혁의 결과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필자는 새로운 창조적 개혁을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나라도(!)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개혁을 요구해온 이론적 근거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홍종학 교수 (경원대 경제학과,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더 이상 지켜 볼 수가 없다. 통한의 눈물을 삼키며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 한국경제의 희망을 접고, 언제 올지 모르는 진정한 개혁세력의 집권을 다시 기다리며 이별을 고해야 한다. 안녕, 노무현 정부여... 어차피 짝사랑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그랬고, 김대중 정부가 그랬는데, 노무현 정부만이 크게 다르리라고 예상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제발 김영삼, 김대중 정부가 실패한 원인을 분석한 실패백서를 만들자던 필자의 호소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때부터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걸 ‘난 할 수 있다’ 증후군으로 명명해야만 했던 필자의 절박함을 권력의 단 맛에 취한 그들이 느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분노와 증오에 찬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정부 깍두기 머리를 하고 돌아온 대통령을 기대에 차 지켜보던 순간부터 그 이후 절망감으로 감싸일 때까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마도 권력의 속성일 것이다. 국민들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쥐어준 그 순간, 그들은 그 국민을 잊어버렸다. 재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들의 거짓 공세에는 일일이 답하지만, 말없는 중소기업과 영세 상인들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잘못된 위험관리로 부실해진 카드사와 투신사는 한 푼이라도 더 회수하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지만, ...

발행일 2004.08.10.

칼럼
창조적 상상력의 빈곤(2)-일주일만에 끝난 정지선 준수

필자는 중증 개혁병 환자다. 개혁피로증에 개혁무용론이 판치며 개혁은 그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현실속에서 혼자만 소리높이 개혁을 외치고 있다. 필자에게만 한국경제의 신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탓일까? 과거의 개혁은 잘못된 개혁이며, 그 개혁이 성과도 없이 좌초한 것은 파괴적 개혁의 결과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필자는 새로운 창조적 개혁을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나라도(!)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개혁을 요구해온 이론적 근거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홍종학 교수 (경원대 경제학과,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필자가 살던 아파트는 고가도로 밑에서 좌회전을 해서 들어가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전방의 터널에서 나온 차들이 고가를 타지 않으면 아파트 입구 쪽의 가파른 경사로를 타고 내려오게 되어있었다. 가파른 경사로에 신호등도 꽤 멀리 있는 탓에 이 차들은 정지선을 무시하기 일쑤여서, 차가 밀리는 퇴근 시간에는 신호가 바뀌기를 몇 번이나 기다리다가 경적을 울려대며 간신히 좁은 차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서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퇴근시마다 자주 이런 일을 겪으며 짜증이 났지만 길을 막아선 차의 운전자들만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가끔 정지선을 지키는 지혜롭고(!) 선량한 운전자가 있어도 곧 옆 차선에서 비집고 들어오는 탓에 결국은 마찬가지 상황이 되었다. 교통체증이 심한 퇴근시간에 조금 더 가봐야 서있긴 마찬가지인데도 그런 운전자가 대부분이었다. 더욱 짜증나게 하는 것은 파출소가 바로 10미터 밑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그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은 정지선 단속을 하겠다고 나섰다. 놀랍게도 그날 집에 가기 위해 좌회전을 기다리고 있던 필자의 차를 막아서는 차는 없었다. 퇴근 시간에 처음 뻥뚤린 대로를 가로질러 아파트에 들어가며 필자는 기분이 매우 좋았...

발행일 2004.08.02.

칼럼
국민의 생명에 우선하는 국익은 있을 수 없다

송병록 (경희대 교수, 경실련 상집위원)   인간 개개인은 이 우주의 중심이다. 내가 존재할 때에만 이 우주도 의미가 있다. 내가 살아서 꽃을 바라볼 수 있을 때 꽃의 아름다움도 살아나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도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23일 새벽 홀연히, 이 우주의 ‘하나의’ 중심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제는 영정사진이 되어버린 학사모를 단정히 쓴 김선일씨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금쪽같은 내 새끼”였다.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지만, 머나먼 이라크 땅에서 피살체로 발견된 김선일씨의 주검은 이제 그를 우리 국민들의 가슴 속에 묻게 되었다. 절대적 절망 속에서 살려달라는 외침에, 아니 살고싶다는 절규에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이렇게 무능하고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을까. 정말 안타깝고 비통한 차원을 넘어 분노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매번 사건, 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의 무사안일과 무능, 책임전가 등이 지적되었지만, 이번 김선일씨의 피살사건도 정부의 무책임과 안이한 상황판단에 기인하는 바가 큰 것으로 보인다. 만약 AP통신의 보도처럼 피랍 한국인의 신원확인 요청에 대해 한국 정부가 무성의하게 대처했다면 이는 정부의 역할, 나아가 국가의 존재의미 그 자체가 의문시되는 문제이다. 납치범들의 파병결정을 철회하라는 요구조건에 파병원칙에는 절대로 흔들림이 없다는 정부의 강경한 발표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한편에서는 미군측의 늑장통보에 어찌 동맹국으로서 그럴 수가 있느냐고 분통을 터트리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동맹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겐 동맹은 없고 오직 세계전략과 세계지배만이 있을 뿐이다. 주한미군의 재배치 계획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 바로 미국이다. 문제는 미국이 이렇게 나오는 데에도 우리는 초지일관 미국과의 동맹...

발행일 2004.06.25.

칼럼
창조적 상상력의 빈곤(1)

필자는 중증 개혁병 환자다. 개혁피로증에 개혁무용론이 판치며 개혁은 그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현실속에서 혼자만 소리높이 개혁을 외치고 있다. 필자에게만 한국경제의 신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탓일까? 과거의 개혁은 잘못된 개혁이며, 그 개혁이 성과도 없이 좌초한 것은 파괴적 개혁의 결과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필자는 새로운 창조적 개혁을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나라도(!)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개혁을 요구해온 이론적 근거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홍종학 교수 (경원대 경제학과,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개혁은 ‘새로운 질서의 창조’를 의미한다. 개혁이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질서를 통해 사람들은 경제사회의 운용방식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갖게 되고, 이러한 인식의 공유가 거래비용을 축소하여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현대 경제사회의 제도나 기구 등은 대부분 이런 질서를 유지하여 거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 경제학의 많은 과제들이 이러한 경제 질서의 중요성과 경제 질서의 효율성을 다루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개혁은 창조적 작업이다. 개혁이 단순히 과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개혁 작업은 단순하다. 그러나 과거의 질서보다 더 우월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내지 못한다면 개혁은 무의미한 것이다. 더욱이 개혁은 새로운 질서를 매우 빠르게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즉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거의 질서가 무너지면 혼돈으로 인한 값비싼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렇게 비용을 치르면서 사람들은 개혁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고,  개혁은 불가능하게 된다.   과거의 질서는 오랜 역사를 통해 유지 발전되어 왔다. 이미 사람들은 과거의 질서에 길들여져 있고,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새로운 질서로 이동하기 어렵다면 현상유지(s...

발행일 2004.06.04.

칼럼
대통령께 경제위기 타개를 위해 보내는 글

                                       김헌동(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 공공분야에 있어 치열한 경쟁 입찰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택부문에 있어 후분양제도를 도입하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막대한 국가예산을 절감하고 부패척결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이러한 개혁은 이공계 위기타개와 기술개발 제고 그리고 주택가격 문제해소 등 우리의 국가경쟁력을 한 차원 높이는데 기여할 것입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조달청장과 건교부장관의 견해는 관료주의와 밀실행정의 산물입니다. 2003년 10월 이후 대선자금 수사를 통하여 일부 재벌기업과 건설업주 그리고 정치인 간의 부패 고리를 검찰이 밝혀내고 있던 그 시간에도 일부관료는 건설업자와 밀실회합을 지속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과 정당 그리고 장관들이 했던 국민과의 약속, 참여정부의 국정과제 수행의지, 시민단체의 감시, 몇몇 국회의원의 활동 등에 못 이겨 계속 버티기를 하던 건설관료들은 지난해 마지못해 500억 이상의 공사로 최저가낙찰제를 확대하였습니다. 하지만 불과 5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벌써 이들의 조직적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들 건설관료들은 참여정부의 지난 일년 동안에도 건설업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저가심사제 도입과 최저가낙찰제 확대 시행최소화를 끊임없이 시도해왔습니다. 이들은 시행시기를 지연시키기 위해 약 5개월 동안 건설업계와 건설관련 각종 협회연구원, 건설관련공무원(조달청, 재경부, 건교부, 몇몇 공기업 등)이 모여 비공개회의를 통하여 묵시적으로 합의한 내용을 2003년 7월 15일 발표했었습니다. 사실상 마지못해 발표한 입찰제도 개선방안은 업계의 이해관계를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한 것으로 알맹이가 전혀 없는 개선방안이었습니다.  2004년부터 500억 이상 공사에 적용하기로 했던 최저가 낙찰제도를  PQ 대상공사 만으로 한정한 것입니다. 게다가 저가심의제를 도입해 사실상 일정 낙찰율을 보장하는 장치를 두어 최저가 낙찰제를 불구로 만들려고 시...

발행일 2004.05.18.

칼럼
[김태현의 TV를 말한다] ‘VJ특공대’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꾸준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 얼마 전 방송 200회 특집을 맞이하였다. VJ프로그램은 방영초기 'VJ‘(Video Journalist)라는 개념조차 낯선 상황에서 아마추어적인 거친 화면이지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제는 방송사에서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다큐멘터리가 VJ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보편화되었다.   VJ시스템은 기존의 방송국 기자, 보도국 기자, 교양다큐 PD들의 틀에 박힌 촬영과 편집, 기획구성, 소재에 대한 새로운, 대안적 의미에서 TV저널리즘의 가능성을 찾게 하였다. 무엇보다 1인 제작시스템으로 인건비와 제작비 문제를 절감하면서도 다양한 소재 발굴과 생생한 현장감으로 리얼리티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 기존 방송제작 시스템이 따라잡기 힘들만큼 경쟁력을 갖게 하고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이런 의미에서 <병원24시>는 VJ프로그램의 효시이면서도 상당히 성공을 거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으며,  는 시청자들에게 VJ의 존재를 확실히 알린 프로그램으로 꼽히면서 ‘다큐멘터리=무겁고 따분한 것'이란 세간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다큐의 대중화를 선도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VJ시스템 제작은 상대적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열악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상황에서 혼자 다 결정해야 하므로 경력이 없는 VJ의 경우는 연출에 의존하여 취재대상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프로그램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는 "소재주의의 전형"으로 다큐멘터리의 진실과 감동을 고려하기보다는 충격적 영상들로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쇼크멘터리"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병원 24시>와 같은 프로그램은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가며 기승전결 구조를 갖는데 반해, 는 사회적인 의미라든지 또는 해결방안보다는 짧은 시간에 시청자를 계속 잡아둘 수 있는 강한 그림, 이야기를 더 고려하는 듯하다. 시청자들에게 익숙...

발행일 2004.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