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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담보대출 제대로 규제하라

주택담보대출 제대로 규제하라 홍종학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경원대교수 경제학) 필자는 몇 년째 한국 주택담보대출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참여정부 말기에 규제를 강화하여 다소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최근 들어 다시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고 있다.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주택가격이 40~50%씩 하락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정책 당국은 무분별한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해 주택가격에 낀 거품을 지탱하는 것도 모자라 늘어나는 주택담보대출을 방관하고 있다. 美 대공황 때와 닮은 대출구조 감독 당국의 일부 인사들이 규제 강화를 거론하면 정부 내외의 투기조장론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허황된 논리를 들이대길 반복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은 1980년 대 말 일본이나 최근 미국에서 문제가 된 주택담보대출과는 달리 안전하고, 그 이유는 주택가치 대비 담보가액 비율인 담보인정비율(LTV)이 2007년 말 기준 47.9%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리가 잘못되었음을 수없이 지적했음에도 계속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들의 논리가 틀렸음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1920년대 미국의 평균 담보인정비율이 50%가 채 되지 않았고, 은행들은 주택가격이 50% 이상 떨어져야 손실이 발생하니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다. 이 은행들은 주택가격이 폭등하며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었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다가 1929년의 대공황으로 줄줄이 무너진 바 있다. 상황도 그렇고 허황된 주장이 난무하는 것도 당시와 매우 유사하다. 대공황 당시를 회고해 보면 담보인정비율이 낮음에도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당시의 주택담보대출이 만기가 짧고, 변동금리 위주이며 특히 이자만 갚다가 만기가 되면 원금 전액을 상환하거나 대출을 재연장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정책당국이 주목해야 하는 바는 바로 당시의 대출이 현재 한국의 주택담보대출과 매유 유사하다는 점이다. 주택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는 과정에서 만기가 다가오자 손실을 우려한 은행들은 만기 연장을 거부했고...

발행일 200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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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갈증을 풀어주었던 경실련

Q. 회원님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실련 통일협회를 후원하고 있어요.   Q. 경실련과의 처음 인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1996년 경실련 통일 협회의 ‘민족화해아카데미’ 강의를 듣게 되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당연히 대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기도 했고, 북한이라는 나라가 서서히 가깝게 와 닿기 시작했었죠. 그러던 차에 경실련 민족화해 아카데미 모집 공고를 보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Q. 제1기 민족화해아카데미 수료 이후, 어떠한 활동을 하셨나요?  제가 1기를 졸업하고, 곧 이어서 북한의 어려운 사정이 방송을 통해 알려졌죠. 그 당시에 강사님들이 사회적으로 북한학 분야에 지명도가 있으신 분들인데, 적은 강의료를 받으면서 학생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정도의 단체이고 저런 분들의 강의면 들을만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문화 1기 80명, 2기는 100명. 종로에 위치한 경실련 강당 뒤 자리가 꽉 차서 서서 듣고 그랬어요. 그 사람들이 졸업하고 나서 곧 이어서 북한의 어려운 사정이 방송되고 해서, 당시 금융노조와 같이 신촌, 대학로에서 북한을 돕기 위해 모금 활동을 했어요. 정작 여유로운 사람들은 돈을 내지 않고, 노동자, 학생 진짜 어려워 보이는 분들이 돈을 내는 것을 보고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 부녀회 회장과 함께 의류등을 기증받는 행사도 하고 했어요.   Q. 경실련이 창립 20 주년이 되었는데, 경실련 활동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포괄적으로 정책을 제시하고 이끌어줄 만한 시민 단체가 부재했기 때문에 경실련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중요했었죠. 이러한 상황에서 부동산 문제 그리고 IMF 이후의 많은 경제 문제들과 관련해서 대안을 제시하고, 시민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경실련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시민들의 ...

발행일 200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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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있는 시민들은 경실련의 소중한 자산

오전 내내 날씨가 흐려서 걱정했는데, 회원님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여서일까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았다. 6월 첫 주, 구로구에 위치한 구로기계공구상가에서 박흥기회원님을만났다. 박흥기 회원님과 함께 회원님의 아버님이 경실련 활동가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상가 한 쪽의 셔터를 올리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아늑한 사무실이 나타났고 우리는 그곳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Q. 경실련과의 첫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셨나요? 10년 전 경실련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그 땐 회원들의 모임이 많아 상근자 분들과 안면도 꽤 있었고요, 저 같은 경우엔 의정감시단 활동을 해보고 싶어, 시민입법학교에 참여했습니다. Q. 10년 간 경실련의 활동을 지켜보시면서 특별히 느낀 점이 있으신가요? 제가 2000년에 시민입법학교 1기로 참여했는데요, 참 좋은 활동이었는데, 아쉽게도 1기에서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사회개혁단도 처음엔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결국에는 유야무야 되었고요. 지속적인 프로그램이 미흡한 것 같아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의 문제에 침묵하는 가운데, 의식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이라도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역할이 필요한데 그 점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Q. 회원님께서 생각하시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방금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소신을 갖고 일하는 분들이 적다는 게 일단 가장 큰 문제겠죠. 특히 존경 받아야 할 정치인들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니깐, 국민들은 점점 정치인을 불신하게 되지요. 의정감시단이 바로 이런 정치활동들을 감시해야 할텐데, 지속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사실 국민들도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활발한 참여가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단 국민의 합법적인 지지를 받아 선출 된 지도자가 마음 놓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국민의 몫 같은데, 우리 국민들은 너무 비판에만 치우쳐있습니다. 물론, 비판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임...

발행일 2009.08.01.

칼럼
믿을 만한 단체, 합리적인 단체라는 소리를 들어야

‘믿을 만한 단체’, ‘합리적인 단체’ 라는 소리를 들어야 ‘예전의 성공을 오늘날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손봉호|3,4대 경실련 공동대표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양혁승| 20년이 짧다면 짧지만 경실련으로서는 성인기에 접어드는 시기다. 과정 중에 어려움도 많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위치에 이르게 됐었는데, 초창기에 중심을 잘 잡아주던 대표님들 덕분에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손봉호| 시민들의 의사를 경실련만큼 잘 표현한 기관이 없었다. 언론과 정부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졌었고, 경실련의 성공 때문에 다른 시민운동들도 많아졌지만 그때는 아주 독보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경실련이 민주주의 발전에 획기적인 일을 했지 않았나 싶다. 민주주의면서 시민운동이 안 되는 국가도 있는데 한국은 시민사회면서 민주주의가 더욱 성숙하게 됐다고 봐야 한다.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양혁승| 그 당시에 경실련 운동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상당히 강했었다. 그 공백을 맡은 대변기관들이 없다 보니 경실련이 태동하면서 주목을 많이 받았었다. 그 수요들과 요구들을 대변하는 역할로서 경실련이 초기에 역동적으로 잘 이끌어갔었다. 손봉호| 전까지는 민주화 운동에 사회의식이 깬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활동했지만, 민주화 된 이후로는 그 세력이 할 일이 없어졌다. 그 전 민주화 운동의 역량이 상당 부분 옮겨왔다고 볼 수 있다. 제일 처음 경제 정의, 부동산문제가 굉장히 심각했고, 정치민주화는 어느 정도 시작 됐지만 경제정의가 힘든 문제였는데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왔으니까 상당히 좋았다. 양혁승| 88년 올림픽 전후로 해서 처음으로 우리 경제에서 경상수지 흑자가 났다. 경상수지 흑자가 나니까 부동산 폭등현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 집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세입자들의 주거문제 불안이 아주 심각했다. 집값도 폭등했고, 전세금도 폭등했다. 그 흐름이 어떤 면에서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소득을 부동산으로 이전...

발행일 2009.07.28.

칼럼
시대가 변하듯 경실련도 변해야 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오늘날 당면한 시민과의 관계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더욱 중요’ 권태준| 3대 경실련 공동대표     ‘환경과 개발’의 조화를 추구하는 경실련 환경개발센터로 참여   권태준|공동대표 하기 전에 환경개발 센터일로 90년 초쯤 먼저 참여했다. 이사장이란 감투로 시작을 했는데, 분야가 대학분야랑 비슷하기도 했고, 변교수의 강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위정희|당시에 경실련 환경개발센터는 경실련의 '환경운동'이라는 점에서 어떤 의미를 두었는지? 권태준|그 당시 환경이란 이름 붙인 시민단체로는 환경운동연합밖에 없었기에 유재현박사가 시작한  경실련에서의 환경운동이 나름 의미가 있었는데, 그 당시 환경운동은 ‘사회적으로 반(反) 개발 운동이다’ 였는데, 당시 경실련은 '개발과 환경' 두 가지를 적절히 조화 시키는 적극적인 전략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해서 주로 연구사업을 했다. 환경적 측면에서 지속가능한(sustainable development)사회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고, 운동이기보다는 정책연구를 생각했었던 것 같다. 시민을 위해 희생적으로 일하는 모습에 인간적인 끌림으로 적극활동   권태준|경실련은 처음에 주택문제로 출발 했다. 시민단체로서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그렇게 크게 발전한 건 경실련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여러 가지 기대가 경실련에 한꺼번에 집중되었다. 시대상황하고도 관련이 있었고, 87년 이후 성숙한 사회의식은 다양한 시민적 요구들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이러한 다양한 요구들이 경실련으로 집중이 되었다. 위정희|시민운동, 지금도 명확하게 활동영역을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그때는 그 개념자체가 더 낯설었을 것 같다. 권태준|한국사회에서 그때 시민운동, 시민조직이란 개념이 지금에 비하면 훨씬 적었다.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시민운동 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다라는 이해만 있었지, 일반 시민들은 ‘그게 대체 뭐 하는 건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있을 때 그 이해당사자들...

발행일 2009.07.21.

칼럼
양보를 통해 상생의 길 찾아라

양혁승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경실련 정책위원장)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유예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다. 7월1일부터 효력이 발생하게 된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르면, 2007년 7월1일을 기점으로 기간제 근로자가 2년을 초과해서 근무하는 경우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간주하게 된다. 이 법은 기업들의 비정규직 남용을 막고 고용 불안과 차별적 근로조건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취지에서 제정된 법이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에 따른 논란은 간단치 않다. 단기적 관점에서 보면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해고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정부·여당이 법 시행 유예론으로 내세우는 논거이다. 그러나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문제는 법 시행 시점에 항상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한 시점에서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는 한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과 열악한 처우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민주당과 진보야당들이 유예 불가론을 주장하는 논거이다. 고용 유연성 대신 급여 유연성 높여 기업-근로자 ‘윈윈’을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비정규직보호법의 시행을 둘러싼 논란이 국가 차원에서 고용의 유연성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와 깊이 연계되어 있다는 데 있다. 그동안 기업들은 정규직 근로자들을 해고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용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인력 구조조정의 용이성을 높여왔다. 이명박 대통령도 고용의 유연성을 높여야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고용의 유연성 강화를 핵심 국정과제에 포함시켜온 터이다. 이러한 저간의 배경을 감안하면 당장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비정규직을 앞세워 법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부 여당의 의중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과 근로조건을 보호하려는 데 있다기보다는 고용 유연성을 높여주기 위해 비정규직 체제를 유지하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과 근로...

발행일 2009.07.09.

칼럼
광교, ‘로또 신도시’로 전락하나

수원시 광교신도시는 경기도의 역점 사업이자, 입지가 좋아 수도권 시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 그러나 최근 광교신도시가 경기도가 내세우는 ‘명품 신도시’가 아니라 ‘로또 신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이 앞장선 땅장사·집장사, 고분양가로 집값 안정이나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년 전 김문수 지사는 광교의 중소형 아파트 분양가를 평당 1000만~1100만원 수준, 중대형 아파트는 1200만원 선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미 분양된 중소형 아파트 분양가는 1207만원을 넘어섰다. 광교신도시 인근의 중소형 아파트 시세가 1000만원 내외인 점과 비교해도 높고, 최고의 위치로 관심을 끈 판교신도시의 중소형 분양가(평당 1134만원)보다도 비싸다. 그 결과 집없는 서민에게 공급되어야 할 국민주택규모의 아파트가 주택 소유 여부를 가리지 않고 선착순 분양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반면 수원경실련의 분석 결과 경기도시공사·주택공사·공무원연금공단·용인지방공사 등 4개 공기업 등이 수의계약 받은 국민주택규모 아파트를 현 분양가로 분양할 경우 가구당 1억원이 넘는 땅장사, 집장사의 폐해가 무주택 서민들에게 전가될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등 시행자들이 땅값 차액으로 가구당 4109만원의 수익을 가져가고, 경기도시공사 등 4개 공공기관이 가구당 6585만원의 집장사 수익을 가져갈 것으로 추정됐다. 또 개발한 땅이 모두 팔리면 경기도 등 공동시행자들은 광교신도시에서 수조원의 땅장사 수익(개발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분양가와 땅장사, 집장사 논란 속에 본격적인 아파트 분양을 앞둔 현 시점에서 김문수 지사의 선택이 요구된다. 김 지사는 왜곡된 택지개발방식을 이용해 공공기관이 땅장사에 앞장서고, 고분양가로 집값을 올리는 행태를 방치할 것인지, 집없는 서민들의 주거 안정과 집값 안정을 위한 정책을 실행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김 지사가 결단하면 대안은 있다. 먼저 중소형아파트 용지의 가격을 조성원가 이하로 낮출...

발행일 2009.06.18.

스토리
다시 지역운동을 시작하며

다시 지역운동을 시작하며 박완기  협동 사무총장·수원경실련 사무처장 봄부터 다시 수원경실련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1993년 창립 때부터 수원경실련에서 일하다가 2001년 이후 중앙경실련에서 활동을 했으니 지역과 중앙운동을 절반씩 경험한 셈이다. 다시 지역운동을 시작하면서 몇 가지 일상의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매일 신문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제도개혁과 정책대안의 제시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운동의 특성상 중앙경실련의 실국장들은 매일 뉴스를 꼼꼼히 체크하고 언제 걸려올지 모르는 기자들의 전화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 반면 지역에서는 그 부담이 훨씬 적다. 다음으로 경실련 회원분들을 포함해 훨씬 많은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점심시간이면 전,현직 임원분들을 찾아뵙고 집행위원회가 있는 날은 꼭 뒷풀이를 거하게 한다. 경기도내에 있는 상근자들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고 다른 지역경실련 사무실도 찾아간다. 지역경실련은 훨씬 인간적 정감이 넘친다. 사무실의 근무환경도 변했다. 수십 명의 상근자들로 북적거리는 동숭동 사무실이 아니라 세명의 단촐한 상근자와 넓지 않은 안락한 공간이 서로를 더욱 끈끈하게 연결해준다. 출퇴근에 대한 부담도 줄었다. 중앙경실련과 지역경실련의 운동패턴 차이가 보여주는 일상의 변화들이다. 이런 변화와 돌아온 것을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회원분들을보면 지역경실련 운동을 다시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흔치 않게 지역과 중앙운동을 넘나들었던 것은 돌아켜보면 큰 복이다. 다시 지역경실련 활동을 시작하면서 희망하는 것들이 있다. 먼저 지역사회를 위해, 수원시민들과 함께 올해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정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부터 알던 한 기자에게 수원경실련 활동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더니 세 가지만 기억이 난다고 했다. 시외버스터미널 문제, 쓰레기봉투 값 문제, 이의동 개발문제였다. 15년 넘게 수원경실련에서 수많은 성명발표, 이슈제기와 활...

발행일 2009.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