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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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충무로에서] 공공 공간은 공공의 것인가

  김세용 (사)경실련도시개혁센터 운영위원장(고려대 건축학 교수)     해마다 세계 여러 기관에서 발표되는 도시평가에서 올해는 우리나라의 서울이 몇 위를 했는가가 언론의 관심을 끌곤 한다. 평가 대상으로 거론되는 우리의 도시가 항상 서울 하나라는 것부터가 일단 문제다. 그만큼 우리 도시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는 우리 도시가 다른 세계 사람들에게는 매력을 끌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마다 서울의 삶의 질은 몇 위, 경쟁력은 몇 위 하는 식으로 순위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모습(주로 자책을 하지만)도 보기 좋지 않다. 무엇이 좋은 도시인가를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난센스에 가깝다. 도시마다 개성이 다르고, 무엇보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행태는 다르기 마련이다. 즉, 도시는 문화 현상이지 살기 위한 기계나 그릇은 아니다. 따라서 도시라는 문화에 굳이 하나의 잣대를 들이대어 새로 출시된 자동차 평가하듯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좋은 도시를 가름하는 요건 가운데 하나가 시민을 위한 도시 공간, 다시 말해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이 얼마나 잘 제공되고 있는가라는 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사람들이 편안히 걸을 수 있고, 앉고 쉬고 보고 듣고 만나는 등의 사람 사는 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이 부족하거나 불편하다면 그 도시는 결코 좋은 도시라고 할 수 없다. 도시에는 공원, 광장, 보도 같은 여러 유형의 공공 공간이 있는데 공개 공지도 그중 하나다. 공개 공지는 사유지 내의 옥외 공간 중 일반 시민의 보행과 휴식을 위해 개방된 공간으로 연면적의 합계가 5000㎡ 이상인 건축물은 법에 정해진 일정 면적 이상의 공개 공지를 설치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연면적 합계가 5000㎡ 이상이니 대로변의 큰 빌딩들은 대개 공개 공지를 제공...

발행일 2011.10.12.

칼럼
사회주의의 실패

  이근식 경실련 공동대표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전번 글에서 정부와 국가의 실패를 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사회주의의 실패를 살펴보자. 정부가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사회의 모든 면을 완전 관리하는 것이 사회주의이므로 사회주의의 실패는 국가의 실패의 극단적 형태이다. 자본주의의 성공에 대응하는 사회주의의 성공이 전연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예컨대 사회주의혁명이후 약 한 세대 동안의 쏘련, 중공 및 북한의 공업 발전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이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필자의 무지 탓이기도 하지만 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 국가들의 사회주의 경제가 와해되어 그 이전의 공업 발전의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자기를 과학적 사회주의자라고 자신하였던 칼 마르크스는 사회주의가 실현되면, 노동자들의 빈곤, 인간소외, 불황, 실업, 등 자본주의의 모든 폐해가 사라지고 이 세상에 낙원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실의 사회주의 국가에 나타난 것은 낙원이 아니라 생산성 하락, 권력투쟁, 권력에 따른 불공정한 분배, 공산당독재와 개인자유의 실종이었다. 사회주의국가에서 나타난 이러한 병폐를 사회주의의 실패(socialism failure)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경제가 생산성이 낮은 주된 이유는 근로의욕의 부족, 경쟁의 부재와 정보수집의 어려움이라는 세 가지이다. 이 중에서 근로의욕과 경쟁의 부족은 자명한 것이므로 생략하고 정보수집의 어려움을 보자. 사회주의에서 정부가 생산계획을 정확하게 세우려면 각 생산물 별로, 한 종류의 생산물 안에서도 수많은 각 모델 별로, 수요가 얼마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수요는 끊임없이 변하므로 정확한 수요 정보를 얻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자본주의경제에서는 앞서의 11번째 칼...

발행일 2011.10.12.

칼럼
정부의 성공과 실패

  이근식 경실련 공동대표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앞의 두 글(☞관련기사 11일자 "시장의 힘"과 19일자 "시장의 실패" )에서 본 시장과 자본주의의 성공과 실패에 대응하여 정부와 국가의 성공과 실패도 존재한다. 노동자들의 빈곤이 시장에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짐에 따라서 19세기 말부터 서구에서 노동자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복지정책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공공복지제도는 1880년대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k)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도입하였던 질병보험(1883년), 산업재해보험(1884년) 및 노령폐질보험(1889년)이다. 이 제도 도입의 주 목적은 사회주의혁명의 예방이었다. 그 후 1930년대의 대공황은 시장의 실패를 재확인시켜줌으로써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는 개입주의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케인스의 <일반이론>(1936년)은 개입주의의 보급을 더욱 촉진시켰다. 정부의 성공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영미 경제학의 주류는 1950년대에 사무엘슨(Paul Samuelson)을 대표로 하는 신고전학파 종합이었다. 기존의 불공정분배이론과 케인스의 불황이론에 덧붙여서 이들은 공공재와 외부효과에 관한 이론들을 새로이 발전시켜서 시장의 실패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여 정부의 경제개입의 필요성을 확립함으로써 개입주의 경제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완성하였다.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는 개입주의의 전성기였다. 구미 각국 정부는 빈부격차와 빈곤을 치유하는 공공복지 제공, 정부의 재정지출과 통화증발을 통해 불황에 대처하는 총수요 조절, 독과점 규제, 공공재(공공시설 등)의 공급, 환경보호 등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복지국가(welfare state)를 확립하였다. 그 결과 선진국들은 유례가 없는 장기 번영기를 누렸다. 이처럼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여 시장의 실패를 치유 내지 완화하여 경제상황을...

발행일 2011.10.12.

스토리
독이 든 성배, 지자체의 국제대회 유치

독이 든 성배, 지자체의 국제대회 유치   김건호 국책·사업팀 부장 지난달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막을 내렸다. 몇 가지 해프닝도 있었고 조직위원회의 실수도 있었지만 무난하게 진행되었다는 게 중론이다. 언론에서는 이로써 우리나라가 3대 국제스포츠 이벤트, 즉 올림픽과 월드컵 그리고 세계육상대회를 모두 성공적으로 치러낸 스포츠 강국임을 강조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그리고 화룡정점격인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적 개최의 주문 또한 잊지 않는다. 이렇게 규모가 큰 국제대회를 유치하거나 개최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막대한 경제효과다. 이번 대구 세계육상대회도 대회 개최 전 생산유발효과와 부가가치를 합치면 8조원의 경제효과를 낳는다는 분석이 발표된 바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최대 64조원까지 나왔다. 이를 다루는 언론보도를 보고 있노라면 지금까지 개최되었고, 앞으로 줄줄이 열릴 국제경기대회는 끊임없이 황금알을 낳고 있는 거위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막대한 적자, 무모한 유치 경쟁의 악순환 이번에 끝난 대구 세계육상대회를 위해 대구시가 투입한 비용은 3,084억원. 반면 입장료, 선수촌 임대료 등 수입은 924억원이다. 단순 계산으로는 2,160억원 적자다. 대구 세계육상대회뿐만 아니라 이전에 열렸던 모든 국제대회는 대회가 끝나면 적자였다. 단기간에 열리는 국제대회를 통해 기반시설 등 인프라 구축에 들어간 비용을 당장 뽑아낼 수는 없는 터. 적자가 당연해 보인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단순히 금액으로만 환산할 수 없다는 경제효과다. 대회를 운영하는 주최 측은 국가브랜드 가치제고, 지역홍보, 고용유발효과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들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을 잊지 않는다. 대구시의 경우도 홍보효과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할 때 사실상 흑자 대회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이제 막 끝난 대구 세계육상대회를 평가하기 ...

발행일 2011.10.06.

칼럼
박원순, 이석연 그리고 시민단체, 시민사회

이석연과 박원순 고계현 경실련·사무총장     경실련과 같은 공익(public interest)적, 비영리(nonprofit) 시민단체는 존재론적으로 정치단체와 구분되어야 합니다. 구분이 모호하다면 공익성의 바탕아래 권력감시와 대안제시라는 시민단체 본래 역할 또한 정파적(partisan)으로 오해되고 이로 인해 신뢰도가 떨어지는 등 시민단체 존립 근거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공익적 시민단체는 정파적 중립성이라는 원칙으로 자신들을 노사모, 박사모 등 정치 서포터즈(supporters) 단체나 정당 주변의 정치조직과는 자신들을 구분하려 합니다. 물론 공익적 시민단체 또한 정책을 형성하고 이러한 정책들을 정치영역에 관철시키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 활동 또한 정치활동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선거에 후보자를 내고, 특정의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직접적 정치활동은 지양하는 것이 공익적 시민단체 활동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과거 혹은 최근까지 시민단체 활동을 하였던 이석연, 박원순 두 변호사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주목받고 있습니다. 언론은 ‘시민사회 후보’, ‘시민단체 후보’로 칭하며 마치 공익적 시민단체들이 이들을 위해 직접 선거운동에 나선 것처럼 보도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활동이 조직의 활동과 쉽게 구분되지 않는 풍토가 존재하더라도 사실이 이러한지는 엄정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까지 시민단체가 직접적으로 이들을 지지하거나 반대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공익적 시민단체 범주에 들어가기 어려운 뉴라이트 등 보수적 이념운동 단체 대표들이 시장후보로 이석연 변호사를 추대한 바는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공익적 시민단체를 포괄하는 ‘시민단체 후보’라고 칭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습니다. 특히 ‘시민사회’ 후보는 더욱 적절치 않습니다. 개념적으로 시민사회는 ...

발행일 2011.09.30.

칼럼
국물효과로 전락한 낙수효과

소득 효과를 늘려 투자를 하라 했더니 금고에 돈 쌓아놓는 재벌대기업의 행태 윤순철 기획·총무팀 실장     세금은, 간단히 말해서 공동경비다. 부모들이 가족 부양을 위해 집안 살림을 하듯이 정부도 공공서비스를 위해 나라살림을 한다. 정부는 나라 살림에 필요한 돈을 세금이란 이름으로 국민들로부터 거둔다. 그래서 세금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내야하는 공동 경비인 것이다.     1. 실패한 낙수효과 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기조는 나라살림을 할 돈을 덜 거둔다는 감세다. 정부가 세금을 덜 걷으면 기업은 투자를 늘리고 국민들은 소비를 더 할 것이므로 투자와 소비가 늘어 경기가 살아난다는 논리이다. 특히 정부는 기업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선언하며 재벌대기업들이 좋아할 감세를 추진하였다. 이른바 부유층이나 대기업이 먼저 잘 되어야 하고 그 과실이 중소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 그리고 빈곤층에게 혜택이 고루 돌아간다는 낙수효과(落水, Trickle-down Effect)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것이 이미 경제학 교과서나 한나라당 내에서도 자본주의의 가장 큰 거짓말 중 하나라거나 실패로 검증된 이론이라는데도. 어찌됐든 정부의 희망은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고 가계가 소비를 늘릴 때 달성된다. 하지만 기업이 돈을 쌓아놓고 투자를 하지 않거나 가계가 소비를 늘릴 수 없다면 경제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지난 5월 경실련이 재벌기업들의 재무 상태를 조사했더니 이들은 돈을 곳간에 쌓아놓고 투자는 하지 않고 있었다. 2005~2009년 5개년 간 자산 순위 1~15위 재벌기업들의 순이익은 평균 13.7%, 사내유보금은 20.3% 증가했지만 이들이 고용한 근로자 수는 0.83%, 투자금액은 8.4%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현 정부 들어 15대 그룹의 총자산은 ...

발행일 2011.09.26.

칼럼
의료자치 왜 필요한가?

    ▲ 윤일규 천안아산경실련 상임공동대표ㆍ 순천향대 의대교수   국토 균형발전은 민주주의 사회적 실현과제로 실질적 지방자치를 통해 실행될 수 있다. 이 자치에는 행정, 교육, 경제와 의료자치가 포함된다. 이런 다양한 자치들이 통합 구현될 때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를 통한 사회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 논의는 행정자치 수준에 머물러 다른 분야는 상대적으로 간과되기 쉽다. 필자는 의료자치에 대해 제기하려 한다. 의료자치는 지역의 인적, 물적, 행정적 토대를 기반으로 지역민의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해 건강권을 자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지켜나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정치와 경제의 중앙집권적 구심현상은 모든 사회분야 자원을 수도권에 집중시켰다. 특히 신자유주의 영향과 더불어 분야별 과두화현상이 두드러진다. 이 현상이 의료분야에서도 예외일 수 없어, 빅 4로 통칭되는 학원자본과 산업자본을 기반으로 한 서울소재 대형병원들이 전국의 환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여기에는 중앙 언론방송매체를 통한 간접광고, KTX 등 공간축소, 저수가정책의 유명무실한 의료전달체계 등으로 이들의 능력이 때로는 과장되고 부풀려져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갑작스런 죽음의 반이 발병 한 시간 안에 일어난다. 누구나 예측할 수 없는 생명의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역 의료기관으로 긴급히 이송된다. 이런 의료의 우연과 돌발성 때문에 의료기관에 대한 주민 개개인의 호불호 문제를 떠나서 지역의료기관의 역량과 주민 의료정보들이 항시 그곳에 예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

발행일 2011.09.21.

칼럼
시장의 실패

  이근식 경실련 공동대표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시장의 실패 자유방임의 시장경제에서는 빈부격차와 빈곤, 불황과 대량실업, 독점화, 공공재(公共財)의 공급부족, 외부효과(공해 등)와 같이 여러 가지의 폐단들이 반드시 발생한다. 자유방임의 시장경제에서 반드시 발생하는 이런 경제적인 폐단들을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라고 부른다. 시장의 실패, 첫째 요소는 불공정한 분배와 이로 인한 빈부격차와 빈곤의 확대이다. 밀(J.S. Mill)은 백오십 년 전에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가장 큰 몫은 전연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고, 그다음으로 큰 몫은 거의 형식적으로만 일하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일이 힘들고 혐오스러워질수록 분배는 작아져서, 육체적으로 가장 고되고 사람을 마모시키는 일을 하는 노동자는 생존유지에 필요한 생필품마저 얻는 것이 불확실하다"라고 개탄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많은 빈민들이 비참한 절대 빈곤 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자본주의는 이들을 구제해줄 장치를 자체 내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빈곤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이전의 전통 사회는 교회나 마을 공동체와 같이 빈민을 구제하는 장치를 자체 내에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등장은 이런 전통적인 빈민구제장치들을 파괴되고 인민들은 절대 빈곤과 저임금으로 내몰았다. 이 때문에 폴라니(Karl Polanyi)는 시장경제를 '악마의 맷돌'(satanic mill)이라고 불렀다. 시장의 실패, 두 번째 요소는 불황과 그에 따른 대량 실업이다. 자본주의 경제에 불황이 존재한다는 것이 최초로 인식된 것은 1870년대 초이다. 1870년대 초부터 1890년대 중반까지 무려 20여 년 동안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전 세계에 걸쳐 대불황이 발생하여 자유방임시장에 대한 신뢰가 동요하고, 보호 무역주의가 ...

발행일 2011.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