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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밑져야 본전이다_노귀남 동북아미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밑져야 본전이다     노귀남 동북아미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물안개 속 신의주-새벽까지 건축조명이 남아있다.)   그냥, 사는 땅을 지켜본다. 그것도 안도 밖도 아닌 압록강 변경에서 살면서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보기만 해도 건질 게 꽤 많다. 밑져야 본전이니 걸릴 게 없고 발 닿는 대로 귀 열린 대로 보고 듣는다. 북중관계는 적대국이 아니니까 국제적 차원의 대북제제가 있다고 해도 변경의 민초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남한 해역에서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의 현장을 비추어 보면 짐작할 수 있는 바이다. 해경(海警)보다 날고뛰는 어선을 어떻게 막으랴! 여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니, 불법거래의 단위가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제재결의안으로 북한을 강경하게 압박하고, 중국도 가세했다. 하지만 중국이 자국민의 생업에 걸린 이해관계를 스스로 막을 수 없다. 특히 신의주-단동 사이 소형선박이 무수히 왕래하며 벌이는 해상 밀수는 유명하다. 이 국면에서 북한의 경비정은 중국배를 깃발로 멈추게 하고서는 번번이 수천 위안씩, 이전보다 더 많은 벌금을 물린단다. 그래도 손해 보지 않는 장사를 하기 위해 반쯤은 전쟁과 다를 바 없는 거친 생존투쟁이 일상이 되고 있다.    (북한 산악지대의 화전 연기)  평양에서 수예품 샘플이 나왔다. 북중 간의 거래에서 중국 사람들도 현지로 가서 직접 보고 주문하기 쉽지 않은 형편이라, 작은 거래라도 성사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겨우 넘겨받은 샘플을 여기서 ‘대방’이라고 부르는 상대 거래처에 보냈다. ‘주문 불가’라는 회신이 오고 사건이 벌어졌다. 갑자기 샘플 반환을 요구했다. 그대로 돌려주자 그 샘플이 본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현상인가? 중국측 상사(商社)는 고민을 했다. 싸울까, 멈출까, 갈까? 여기에서 북중 간의 개인 무역은 법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관행과 생존방식에 따르기 때문에 특정한 신뢰 관계로 이어진 인맥으로 이뤄진다. 국외...

발행일 2013.06.04.

스토리
[경실련 사람들] "소비자 안전과 알권리 확대가 먼저”

[경실련 사람들] "소비자 안전과  알권리 확대가 먼저” 김성훈 소비자정의센터 대표를 만나 안세영 회원홍보팀 간사 sy@ccej.or.kr 지난 4월 18일 경실련 강당에서는 김성훈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취임식이 열렸다.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진영 변호사는 “대통령을 역임하셨던 분께 구청장 자리를 부탁드리는 격이라 송구스럽기도 하지만, 흔쾌히 맡아주셔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시민사회의 원로이자, 전 농림부장관인 김성훈 대표는 환경정의 이사장에서 퇴임한지 몇 달 만에 다시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이하 소비자정의)의 수장이 됐다. 그런 그에게 먼저 소비자운동 한 가운데 서게 된 소감부터 물었다. Q. 소비자정의 대표로 취임했습니다.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경실련에 처음 참여한 때가 경실련 설립 1년 후인 1990년에 가입했어요. 그때까지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일명 소시모의 창립맴버로 활동하고 있었지요. 원전사고가 발생한 체르노빌에서 오염된 농산물이 우리나라 모 회사 분유로 들어왔고, 건포도도 수입됐어요. 면역력이 없는 어린 아이들에게 방사능에 유출된 식품을 먹일 수 없어서, 위에서부터 소비자운동을 시작하게된 것이지요. 경실련에 들어와서는 농업개혁위원장을 맡아 우루과이라운드 등 농업통상 문제에 집중했는데, 최근 들어 다시 젊은 변호사들이 소비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데 동참하게 됐습니다. 사실 신년회 자리에서 짜고 왔는지는 몰라도 고계현 총장이 김성훈 전 대표를 소비자정의 대표로 하는게 어떠시냐고 그러니까 ‘옳소!’하면서 박수를 다섯 번 씩이나 치는 게 아니겠어요. 너무 빼면 ‘저 혼자만 편하게 살려고 한다’고 될 것 같아서,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승낙을 했어요(웃음). Q. 전화로 밤낮없이 아이디어를 제시해 사무국 내에서는 ‘괜히 대표 맡으신 것 같다’라고 하기도 하는데요(웃음). 그 열정의 원천은 어디서 나오나요? A. 경제민주화가...

발행일 2013.05.31.

칼럼
[함께 걷다] 초원의 나라에 세운 ‘책의 궁전'

[함께 걷다]  초원의 나라에 세운 ‘책의 궁전' 안세영 회원홍보팀 간사 sy@ccej.or.kr 몽골 울란바타르 시내 중심에 있는 수하바타르 광장 동쪽으로 50m남짓 이동해 ‘문화궁전’건물 뒤편으로 걸어 들어가면,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이 숨겨져 있다. 한국어로 풀어 쓰면 ‘어린이를 위한 책의 궁전’. 구전 시 읊기를 즐기는 민족답게 도서관 이름 역시 서정적이다. 몽골에서는 아이들이 교과서 외의 책을 접할 기회가 매우 희박하다. 출판물 평균 가격이 우리나라 돈으로 7,800원을 호가하는 1만 투그릭으로, 몽골인 생활물가를 고려했을 때 매우 비싼 편이다. 또한, 대다수의 서민들이 생활하는 몽골의 전통가옥 ‘게르’의 중심에는 난방을 위한 큰 아궁이가 있는데, 혹독한 추위를 겪는 겨울 동안 교과서조차도 불을 지피기 위한 불쏘시개로 쓰이기 일수다. 몽골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다. ▲큰 지식의 자료실 어린이와 청소년 층을 주 대상으로 설립된 ‘어린이를 위한 책의 궁전’은 2003년 5월9일 문을 열어 그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정부에서 2000년부터 햇수로 4년간 준비과정을 거쳐 설립된 계획적인 도서관이라 할 수 있다. 몽골인 연령층 구성에서 15세 이하의 인구가 35.6%라는 통계가 말해주듯이 어린이, 청소년층이 전체 인구 중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며, 이들을 위한 별도의 도서관 건립은 당시 몽골 행정부의 당면 과제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와 얽힌 일화를 소개하면, 현 몽골 대통령인 차이야긴 엘 벡더르쯔가 총리로 재직하고 있던 2005년, 유아 및 청소년만을 위한 독립된 도서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소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2003년 이미 문을 연 어린이 도서관을 뒤늦게 방문하고서는 이런 곳이 존재하는지 몰랐다며 멋 적게 사인만 남기고 갔다는 후문이다. 정책입안자의 생각은 앞섰지만, 정작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웃을 수 만은 없는 에피소드이다.  도서관에서...

발행일 2013.05.31.

칼럼
[문화산책] 어느 새 멀어져 가는 봄, 영화 동사서독을 기억한다

[문화산책] 어느 새 멀어져 가는 봄,  영화 동사서독을 기억한다 오세형 (사)경실련도시개혁센터 간사 dipsec@ccej.or.kr 아침저녁으로 쌀쌀함 때문에 봄이 왔는지 모르겠다가, 어느 새 뜨거운 열기마저 느껴져 이대로 봄이 가는 것인가 아쉬워하는 이 즈음이다. 성큼 멀어져가는 봄을 생각하며 떠오른 영화가 있으니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이다.  왕가위 감독과 동사서독을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영화읽기에 능하지 못한 나에게 한 차원 높은 영화읽기를 가르쳐준 친구다. 학업에 지치고 사랑에도 지친 시절, 친구의 자취방에서 함께 본 영화는 언제든 기억하고 찾게 되는 감동이 있는 영화로 내게 남았다. 왕가위 감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명작들을 만들어냈다.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타락천사, 중경삼림, 화양연화…. 우리나라 광고에서도 패러디했던 장면들이 줄줄이 나오는 작품들의 감독. 한 번 쯤 왕가위식 표현과 영상미에 매료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사서독’ 역시 그의 필모그래피에 꼭 들어갈 영화 중 하나이다.  “해마다 봄이면 고향에는 복사꽃이 찬란하게 피지” 김용의 무협소설을 기초로 했지만, 이 영화는 칼부림과 각종 신기한 도술이 넘쳐나는 스펙타클한 무협영화가 아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상처 깊은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랑의 이야기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면서도, 기다려주지 않음에 상처받고, 그리워한다. 떠난 이를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배신한 사랑에 절망하여 방황하면서도 끊임없이 그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에 함몰되어 조금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서로의 육체를 탐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다른 누군가를 담고 있다. 뒤틀린 사랑을 하는 등장인물들이 넘쳐난다. 온전히 자신의 욕망에 이끌려 행동하고 사랑하면서 조금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은 커다란 공허함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인 것이다. 그러나 ...

발행일 2013.05.31.

칼럼
[건강이야기] 마흔, 내시경검사 시작할 나이

[건강이야기] 마흔, 내시경검사 시작할 나이 김철환 상임집행위원 (인제대 교수/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금연클리닉) 우리나라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제1원인은 암이다. 암 중에서도 1위는 폐암이다. 그런데 문제는 폐암을 조기발견해서 조기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폐암은 너무 빨리 자라서 조기발견해도 이미 퍼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흡연자들에게 매년 시행하는 폐 CT검사가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춘다는 보고가 있기는 하지만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따라서 아직 폐암의 조기진단을 위한 검진은 하지 않고 있다. 암 조기발견 및 조기치료가 가능해야 정기적인 건강진단의 의미가 있다. 이에 해당되는 암은 위암, 대장암, 간암, 그리고 여성의 자궁암과 유방암 5 가지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5대암 검진사업을 하고 있다. 이 중 위암은 남녀 모두에게 발생률 1위이다. 위암이 제일 흔한 암임에도 사망률은 1위가 아닌 것은 완치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위암은 조기발견하면 95% 완치가 가능하지만 진행성 위암 상태에서 발견하면 완치율이 50% 이하로 떨어진다. 위암을 조기발견하는 방법이 바로 위내시경검사이다. 따라 서 남녀 모두 40세부터는 2년마다 위내시경검사를 받아야 위암의 조기발견이 가능하다. 특별히 위험요인이 없는 사람은 2년마다, 위암 발생 가능성이 높은 사람(위암 가족력, 장화생성위염과 같이 위암 위험도가 높은 경우)은 1년마다 위내시경을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  대장내시경, 50세부터는 5년마다 대장암을 조기발견하는 방법으로 현재 가장 정확한 방법은 대장내시경이다. 대장암을 조기발견하려면 50세부터 매 5년마다 대장내시경을 받아야 한다. 가족 중에 대장암의 병력이 있거나 과거 문제가 되는 대장 용종이 있거나, 대장암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40세부터 5년마다 대장내시경을 받기를 권고한다.  어떤 사람들은 내시경검사가 힘들다는 이유로 상부위장관조영술이나 대장조영술과 같은 x-선 ...

발행일 2013.05.31.

칼럼
[사회적 경제이야기] 좋은 사회적기업이란 어떤 모습인가?

[사회적 경제이야기] 좋은 사회적기업이란 어떤 모습인가? 이병관 청주경실련 기획국장 '갑의 횡포’와 기업의 윤리경영 최근 벌어진 일련의 ‘갑의 횡포’는 우리 사회가 ‘윤리경영’의 필요성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라면상무, 빵회장, 욕우유’라고 지칭되는 사건들로, 각각은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지만 갑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저지른 비윤리적 행위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라면 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항공기 여승무원을 폭행한 포스코에너지 임원, 임시 주차만 가능한 곳에 장시간 차를 대놓고 차를 옮겨달라는 호텔 지배인을 폭행한 중소제과업체 프라임베이커리의 회장,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하며 제품을 억지로 ‘밀어내기’하려던 남양유업의 영업사원까지…. 모두를 분노케 한 이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중 윤리경영에 대해서 조금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특히 갑의 위치에 있는 자들도 윤리경영이 단순히 착한 일을 하여 반짝 생색내는 차원이 아니라, 회사의 매출과 존립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사실 윤리경영은 그 개념이 매우 넓다. 불투명한 회계처리로 투자자의 이익이 침해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투명한 경영과 회계제도를 지칭하는 것은 이제는 소극적인 견해에 속한다.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대두되어, 기업 역시 사회를 구성하는 한 단위로 다른 구성원들과의 공존을 강조하게 되었다. ▲추석을 맞이하여 시민들에게 사회적기업을 홍보하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2012년 9월 11일) 여기서 윤리경영의 핵심으로 강조되는 것은 ‘신뢰’이다. 기업 혹은 기업 구성원이 신뢰를 잃으면 이번 일련의 사태와 같이 사회적 공분을 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업의 매출과 존립에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번 사건을 보며 ‘법은 멀고 인터넷은 가깝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

발행일 2013.05.31.

칼럼
[도시人] "타슈, 누비자, 페달로"

[도시人] "타슈, 누비자, 페달로" 류중석 (사)경실련도시개혁센터 이사장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 ▲프랑스 리용의 벨로브 공공자전거 시스템  ‘타슈, 누비자, 페달로’는 언뜻 외래어 같이 보이지만 대부분 우리말에서 유래한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공자전거 이름들이다. 타슈는 “타보세요”의 충청도 사투리에서 유래한 대전시의 공공자전거 이름이고, 누비자는 ‘자전거로 도시를 누비고 다닌다’는 창원시의 공공자전거 이름이며, ‘페달로는 페달을 밟고 간다’는 안산시의 공공자전거 이름이다. 최근 공공자전거 시스템이 여러 도시에서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굳이 리우회의, 교토의정서, 기후변화협약 같은 국제적 협약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온실가스 감축은 이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현안과제가 되어버렸다. 사실 자전거에 대한 관심은 우리가 분당이나 일산과 같은 수도권 신도시를 계획할 때부터 있었다. 당시 신도시계획팀에서는 자전거 도로를 인도 안쪽으로 설치하느냐 차도쪽으로 설치하느냐를 가지고 많은 토론을 했었다. 분당과 같이 남북으로 길쭉한 모양의 신도시에서 지하철은 남북방향으로 계획되었기 때문에 동서로 폭이 긴 지역에서는 버스나 자전거를 이용해서 지하철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교통시스템이다. 이러한 구상 아래 아파트단지에서 주요 지하철역을 연결하는 자전거 도로 시스템을 도입하기는 했지만 이용률은 기대치를 한참 밑돌았다. 이 때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시스템은 그 이후 다양한 주거단지 계획에 활용되어 오늘에 이른다. ▲의정부 녹양지구의 자전거길 전경.   차도 안쪽에 초록색의 보행도로가 있고 그 안쪽에 자전거 도로를 설치했다 비싼 대중교통 대신 자전거를 사랑하는 유로피안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은 자전거 이용에 있어서 가장 선진국으로 손꼽힌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전거가 항상 주차되어 있다. 많은 시민들이 출퇴근시 자전거를 이용해 집에서 기차...

발행일 2013.05.31.

칼럼
[도시칼럼] 도시를 고향으로 만들자 -최봉문 도시개혁센터 운영위원장

<도시칼럼>       도시를 고향으로 만들자.                                                                                                                     최봉문 도시개혁센터 운영위원장           고향하면 떠오르는 것은 언제나 시골이다. 동요에서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표현되고 있듯이, 고향의 배경에는 꽃이 피고 작은 오솔길이 있으며, 동구 밖의 정자와 집집마다의 너른 마당, 작은 오두막도 그려진다. 배경이 되는 장면에 차이가 있더라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살던 집은 낡았고 도로는 좁고 차는 덜컹거려도 그 곳에는 사람이 있고 그리움이 있으며 추억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국민의 90%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고, 소년기와 청년기의 대다수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이다. 근대화의 상징인 넓은 도로와 현대식 삶과 부유함을 대변하는 고층의 아파트가 이들에게는 유일한 삶의 기억이고 나중에는 고향이라는 이름의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럼 이들에게 연상되는 고향의 장면들은 무엇이 될까 생각해본다. 삭막한 아파트 벽면과 주차된 차들을 피해 위험스럽게 걸어 다니던 학교길, 이웃이 누군지 모르는 단절된 공동체, 집에서는 하루 종일 TV와 전자게임에 몰두했던 기억들만이 추억이 되지는 않을까?    그러나 이런 기억의 장소들마저 도시에서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각종 개발사업이나 정비사업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예전의 삶을 추억할 수 있는 어떠한 자취들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새롭고 낯선 공간이 만들어지고, 나의 이웃들은 모두 거기서 밀려나 흩어져 버린 경우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도시의 추억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마다 바람과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새삼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가자고 주장하는 것에 모두가 찬성하는 방향을 찾기는 쉽...

발행일 2013.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