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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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신입간사 적응기

봄의 내음이 여기저기서 풍겨지기 시작한 3월 말, 설레임과 기대감 약간의 긴장감에 가빠진 호흡으로 처음 경실련에 출근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간사 생활은 시작되었다. 1. 새로워지는 삶의 의미 처음 내가 경실련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하나같이 나의 선택에 의아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전에 했던 일이 경실련의 운동과는 반대의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설계사무소와 건설현장에서 기사로 일했었다. 처음 경실련에 와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부분 중의 하나는 이곳에서는 누구도 일에 대해 지시하거나 명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갖추어진 틀 안에서 마치 군대에서처럼 시키는 일만 잘하면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던 직장에서와는 무척이나 다른 부분이었다. 또 한가지 (어렵다기 보다는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던 부분)는 이전에는 뉴스를 통해 한번쯤 듣고 흘려버렸을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이 일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독도 문제에서부터 공직자의 투기와 비리, 부동산 거품 문제, 현재의 국정원 도청 파문까지  여러 문제들을 토론하고 공부해 오면서 이전에 막연하게 느껴졌던 이 땅에 정의를 회복하는 일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 알아 가고 있다. 2. 활동가에 대한 선입견 사실 나는 활동가들에 대한 많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듯하고 잘 웃지도 않고 과격할 것 같고 약간은 딱딱할 것 같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생각은 깨져 버렸다. 오히려 얼마나 재미있는지 나도 개그라면 한 개그하던 사람인데...씨알이 잘 안 먹힌다. 쩝...다들 무지 웃기다. 처음 장기 자랑을 하게 된 자리에서 이덕화 성대 모사를 했다. 그 썰렁한 분위기...지금도 생생하다. 지난주 지역 경실련과 함께 하는 전국 경실련 상근자 수련회가 있었다. 신참이라 대부분의 활동가들을 처음 만나는 것이었지만 이내 마음을 열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건강이 ...

발행일 2005.09.08.

칼럼
8.31 대책은 '투기 시작 신호'

2005년 8월31일 TV속에 등장한 경제부총리 입에서 나온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라는 발표가 왜 내 귀에는 '부동산투기는 이제 시작'이라고 들리는지 모르겠다. 금년 초 부동산투기 의혹을 받고 줄줄이 퇴진했던 경제수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참여정부 3기 경제수장들은 국민들 앞에서 투기억제에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이 발표한 수많은 대책들 가운데 내 눈에는 개발정책 밖에 보이지 않았다. 또 다시 투기 반복 신호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85% 국민이 요구했던 정책은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건설하지 않은 아파트 선분양에 대해 완공 후 분양과 공공(영구)보유주택확대 등 근본 해결방향은 접어 두고, 국민을 속이기 위한 미봉책만 담아냈다. 지난 5년간 250만 채라는 단군 이래 최대물량을 공급했지만 투기세력이 300만 채를 사들여 집 없는 가구가 오히려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이런 분석은 하지 않고 물량만 확대하겠다니 개발오적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개발 오적이 환영할 대책 정부는 향후 5년간 수도권에 중대형 아파트 42만 가구 공급, 광역 공공개발과 도심 재개발지역 층고 제한 완화를 통한 고층 주택건설, 용적률 최고 350% 상향조정 등 개발오적을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공공택지 내에서는 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이 주택을 건설해 분양·임대하는 주택공영개발 방식을 확대하고 공공택지 내 25.7평 이하·초과 모두 원가연동제 방식으로 분양가 규제하고, 25.7평 초과에 대해서는 주택채권입찰제 도입하겠다는 것은 문패만 바꾼 정책에 불과하다. 또 채권매입 의무가 없는 25.7평 이하 전매제한을 강화해 수도권은 10년, 그 외 지역은 5년으로 연장하고 25.7평 이하 재당첨 금지기간도 수도권은 10년, 기타 지역은 5년으로 연장하겠다고 하는데, 지난 수십 년 부동산투기로 돈을 번 투기꾼이 이 정도로 겁을 먹을지 의문이다. 2005년 8월말 대한민국의 하늘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15% 기득권층과 85% 국민은 정부의 부동...

발행일 2005.09.02.

스토리
할머니의 얼굴-Peace & Green Boat 첫번째 이야기

지난 8월 13일부터 27일까지 보름동안 Peace & Green Boat 크루즈 여행에 참여하고 돌아왔습니다.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 각 300명이 함께 참여하여 아시아의 평화문제에 대한 많은 교류와 체험을 하였습니다. 보름동안의 여행을 하며 개인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주신 소중한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은 바로 ‘조선반도의 사람’ 리옥희 할머니입니다. 이제 그 분의 이야기를 당신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조선반도의 사람, 리옥희 할머니 내가 리옥희 할머니를 만난 것은 Peace & Green Boat 여행 중에 중국 단동에서의 기항지 프로그램의 하나인 조선족 홈스테이를 통해서이다. 단동은 압록강 하류에 있는 항구도시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맞닿아 있는 국경도시이다. 할머니는 5년 전 북한에서 중국 단동으로 이주하셨다고 한다. 이 말만 듣고 혹 탈북자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북한에서는 오랜 교편생활 후에 교감으로 정년퇴임을 하신 엘리트이시다. 사실 할머니는 중국인 남편과 결혼하셔서 그 이전에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중국에서 사실 수 있으셨지만, 세 자녀의 교육을 모두 북한에서 마치게 하실 정도로 북한에 대한 높은 자긍심과 애정을 갖고 계시다. 그러나 한편으로 할머니는 김일성 주석 혹은 김정일 위원장의 통치하에 있는 북한의 정치현실에 대해 일방적으로 좋게만 생각하지는 않으셨다. 나름대로 북한의 현실을 냉정히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는 안목을 지니고 계셨는데, 이는 역시 오랜 세월동안 중국에서 교편생활을 하신 남편의 영향과 또한 그에 따른 외부로부터의 정보가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할머니의 세명의 자녀들은 모두 결혼을 해서 분가를 했고, 남편 역시 오랜 교직생활 후 은퇴를 하신 후에 지금은 주로 북한상품을 거래하는 중국 무역회사에 근무하고 계신다. 5년 전 단동으로 이주한 이후에 할머니는 가사를 돌보는...

발행일 2005.08.31.

칼럼
대통령이여, 정녕 국민의 절규를 듣지 못하는가?

   홍종학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 필자의 지난번 칼럼에 대해 어느 독자께서 외국의 사례를 좀 더 설명해 달라는 당부를 하였다. 정부가 종합대책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의 부동산정책과 비교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필자가 아는 범위 내에서 간략하게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근로소득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부동산 정책 각국 사례를 비교하기 전에 먼저 부동산 정책의 목표에 대해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 정책의 주 대상은 근로소득자가 되어야 한다. 열심히 일을 하는 근로소득자가 주택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사업자가 땅값 걱정 없이 장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주택정책만 한정해 보자. 한 마디로 말하자면, 열심히 일해서 두툼한 월급봉투 들고 집에 들어서는 가장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뚝방촌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간 일하면, 노부모 모시고 살 수 있는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주택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각 국의 부동산정책, 특히 주택정책을 비교할 때 각국에서 이러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펴는가를 주목하면서, 현재 정부에서 논의하고 있는 정책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 예측 가능한 내집 마련, 건설비용보다 싸게 분양 싱가포르 주택정책의 특징은 뛰어난 예측가능성에 있다. 근로소득자가 자신의 소득에 비추어서 몇 년 후에 그에 맞는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지 예측이 가능하다. 싱가포르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주택을 건설했고, 저소득층에게는 능력에 맞는 임대료를 부과하는 '응능응익' 원칙에 의해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한편, 일반 국민들에게는 자가 주택의 보유를 촉진하기 위해 50년대부터 각종 혜택을 부여해 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봉의 2배 수준에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목표를 설정...

발행일 2005.08.22.

칼럼
불법 도청과 국가정보원의 미래

김상겸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 동국대학교 헌법학 교수) 안기부의 X파일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우리 사회는 또 다시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 사건이 출발점이 국가기관에 의하여 자행된 불법도청이었던 만큼, 관련기관인 국정원은 자체 진상조사에 들어갔고, 시민단체의 고발로 사건은 검찰로 넘어가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불법도청에 대한 국정원의 자체 조사는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국정원장의 대국민사과와 함께 진상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는 그 끝이 어딘지 짐작하기 어렵게 하면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방송을 통하여 국민에게 그 형체가 공개적으로 들어날 때까지 소문으로 우리 사회를 회자하면서 국민적 의혹을 받았던 사건이다. 사건이 공개되면서 그 내용의 심각성은 우리에게 충격을 줄 만한 것이었다. 그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향후 사건의 전개방향에 따라서 밝혀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불법정치자금의 문제는 두고두고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사안이다. 나아가 이번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동안 입소문으로만 나돌았던 국가기관에 의한 도청사건이라는 것이다. 국민에게 국가란 보호하는 울타리요 그 터전인데, 주권자인 국민의 사생활을 염탐하고 이를 악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자행된 도청은 그야말로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결과가 되고만 것이다. 더구나 그동안 국정원은 이런 도청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잡아뗐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불법도청이 국정원의 정상적인 조직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하나, 일사불란한 조직체계를 가진 기관에서 그 실체를 모르고 통제하지 않았다고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불법도청사건으로 인하여 일부에서는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의 지유와 생명, 재산을 지켜야 할 최 일선의 중요한 국가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면서 국민의 권리를 짓밟는 행위만 한다고 그 무용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과거 국정원의 전신이었던 국가기관들의 행태를 보면 심정적으로 충분히...

발행일 2005.08.20.

칼럼
우리 사회 개혁, 이대로 좋은가

이의영(경실련 정책위원장, 군산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우리사회에 드러나고 있는 일련의 실상들을 지켜보며 참담하고 허탈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삼성의 적나라한 정·경·언·검 유착의 실태, 두산의 형제의 난과 초법적인 가족회의의 운영, 여전한 거대규모의 불법 비자금과 분식회계, 현대의 대북사업 비리설, 경악할 만한 도청 X파일, 부동산과 건설 그리고 국책사업으로 얽혀 있는 건설족들의 복마전. 이것이 전부일 것인가. 군사정권 시절부터 민간정권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의와 개혁을 주장하며 떠들썩한 개혁정책을 내세워 왔다. 이제는 개혁이며 혁신이 피곤하다고들 말한다. 일컬어 개혁피로증후군이다. 개혁을 말하면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하고, 개혁을 주장하면 반기업적이고 반시장적이라고 공공연히 몰아붙인다. 그러나 어이가 없다. 그럴싸한 개혁의 모양은 있었으나 개혁의 능력은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실세들의 본질은 여전히 전근대적이고 반시장적이다. 거대재벌들이 시장을 통한 이윤추구에 몰두하기보다는 비자금을 동원한 정경유착과 특혜를 통한 사익추구에 여전하다. 일컬어 이윤추구보다는 지대추구(rent seeking)를 지향하는 것이다. 지대추구야말로 반시장적인 행태의 전형이다. 이를 개혁하자는데 누가 반시장적이라 하는가. 재계를 대표하는 양대 조직인 전경련과 대한상의의 대표급 재벌들의 불법 비자금을 통한 지대추구적 행태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가관이다. 게다가 두산의 경우는 가족회의라는 해괴한 전근대적 모임에서 명예회장직을 해임하고 이제는 명예회장이 아니라고 기자회견을 통해 공언한다. 기업의 의사결정구조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다른 재벌들은 안 그런가. 두산사태의 당사자는 우리나라 재계를 대표하는 대한상의의 회장이다. 부끄럽다. 그러나 당사자는 당당하다. 전혀 죄의식이 없이 형제간의 싸움을 확대시키고 있는 듯하다. 싸움에 앞서 대한상의 회장직을 먼저 사퇴해야 하는 것 아닌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체면은 있어야 하는 것 아...

발행일 2005.08.16.

칼럼
X파일의 본질은 불법 도청이 아니다

  이종수(시민권익센터 대표,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X파일은 우리 사회의 이중적 구조와 후진적 제도운용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핵폭탄’에 비유되는 가공할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접근시각들은 그러나 영 마뜩찮다. 판도라 상자의 빗장을 열어야 할 책임 있는 당국자들은, 말은 어떻게 하든, 너나없이 테이프 내용의 공개를 꺼려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검찰은 이슈의 초점을 ‘불법도청’에 맞추면서 도청물 토대 수사 '필패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한동안 공황에 빠져 있던 정치권은 공소시효와 불법수집 증거의 법적 효력과 같은 형식논리를 내세워 국민들을 미혹에 빠뜨리고 있다. 지엽적 문제를 둘러싼 지루한 공방과 함께 흥미위주의 선정적 보도를 통해 이슈의 초점을 흐리면서, 적절한 시기에 ‘국정 안정과 경제에 미칠 악영향’ 논리를 등장시키면 국민들의 흥분이  쉽게 잦아들 것이라는 점을 기득권 세력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불법도청’ 문제 자체가 어떻게 X파일 이슈의 첫 번째 본질이 될 수 있는가? 이 사건의 첫 번째 본질은 테이프 속에 담겨 있는 ‘정경유착’, ‘권언유착’과 같은 우리 사회의 구조화된 비리 커넥션이며, 두 번째 본질은 제도를 무시한 집권층의 탈법적 권력운용 행태다. 우리가 X 파일을 통해 얻어야 할 교훈은 진상의 철저한 규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제도운용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우리 사회를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데 있다. ‘가벌성’ 여부는 지엽적 문제다. 불법도청과 공소시효 그리고 도청자료의 법적 효력과 같은 문제는 법정에서 가려지면 그만이다. 선진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검은 커넥션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진다면, 관련당사자들이 법정에서 설사 무죄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나름의 사회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회일각에서는 통신비밀 보호법과 사생활 보호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테이프 내용을 공개해서는 아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국가권력을 좌우할 대통령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등 국가의 기본질서를 송두리째 흔들 중...

발행일 2005.08.06.

칼럼
재벌 개혁의 허와 실

권영준(경희대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 재벌들의 악취나는 구태(舊態)가 연일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삼성그룹의 공정거래법 위헌 소송, 삼성그룹과 중앙일보 사주의 검은 돈거래를 폭로한 X파일, 두산그룹의 형제의 난과 비자금폭로 등 대형사건의 연속이다. 외환위기 이후 재계는 적어도 겉으로는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선포하면서, ‘재벌개혁론’을 경제살리기에 찬물을 끼얹는 반(反)기업 정서로 매도하였고, 재벌들의 제왕적 기업지배 구조를 한국형 최적(最適)의 지배구조로 주장하기도 하였다. 급기야는 올해 초 청와대가 앞장서고 일부 시민단체가 들러리를 서는 소위 ‘반부패투명사회 협약’이라는 거창한 의식을 통해 재벌문제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살리기라는 명분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특히 분식회계 유예를 위한 증권집단소송제의 개정을 정점으로 하여 더 이상 재벌개혁론은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공정거래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삼성그룹이나, 실정법을 위반한 삼성계열사들을 처벌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던 금융감독당국 입장에서 최근 사건들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큰 대형사고가 아닐 수 없다. 지금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16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쏟아붓고 수십만 명의 실직자들이 거리로 쫓겨났던 IMF 외환위기를 겪었지만 환란(換亂)의 가장 큰 당사자 중의 하나였던 재벌 오너들의 행태에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 재벌 정책이 회칠한 무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근본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환란 이후 지난 8년 동안 재벌개혁의 핵심인 기업지배구조는 주변은 두드려왔지만 심장부인 총수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전혀 구축되지 않았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재벌 총수들의 불법·탈법 행위에 대해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원칙을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 밥 같이 먹고 그룹의 제왕으로 대접하면서, 불법을 저질러도 의법조처하지 않거나, 하...

발행일 200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