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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진정 당신의 청춘은 찬란한가?

라이언 맥긴리의 ‘청춘, 그 찬란한 기록’   ▲ Somewhere Place, 2011 ⓒ라이언 맥긴리 공식홈페이지(http://ryanmcginley.com/)   박지호 소비자정의센터 간사 jhpark@ccej.or.kr   ‘청춘’이란 단어가 2012년의 ‘꼼수’라는 단어와 비슷한 느낌이 되어 가고 있다. 식상하고 지겹다. 아파야지만, 흔들려야만 청춘이라고 여러 서적에서 언론에서 청춘을 동정하고 비아냥 댄다. 스스로를 여전히 청춘이라 생각해서인지 이러한 표현에, 눈빛에 상당한 불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청춘이란 단어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청춘은 이렇게 나에게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떠나가는 청춘을 잡아주는 사진들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대림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 사진전이다. ‘청춘, 그 찬란한 기록’이란 제목이 걸린 사진전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어루만져주는 청춘은 없다. 그냥 청춘일 뿐이다. 봄이다.   어느 따뜻한 겨울날, 아침 일찍 종로구 통의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진전을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식사를 마친 후 자연스레 대림미술관 쪽으로 향했다. 사실 기대하는 작품은 단 하나였다. 바로 ‘Somewhere Place’. 한 언론에 따르면 “미국 전역을 횡단하며 환상적인 풍경과 함께 젊음의 해방과 순수를 표현”했다는 라이언의‘Road Trips’ 시리즈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는 끓어오르는 사회적 분노대신 사라져버린, 아니 어쩌면 숨어버린 감성을 되찾고 싶었다.   막상 사진 앞에 서니 모호해진다. 젊은 남녀가 형언할 수 없는 색상의 하늘을 바라보며 여자는 남자에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이 하늘인지, 그들은 웃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서질 않는다. 설명할 수 없지만 환상, 신기루가 떠오른다. 오디오가이드에서는 그 혹은 그녀를 ‘바람이 빚어놓고 책임지지 않는 고아’라고 안내한다. 이해를 못하겠다. 하지만 그들은 뒷모습만으...

발행일 201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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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스토리] 평화의 사다리로 통일을 꿈꾸는 그들

2030 통일활동가들의 솔직유쾌한 이야기   안세영 회원홍보팀 간사 sy@ccej.or.kr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부정적 인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2010년 5.24조치 이후 남북교류협력은 개성공단을 제외하고 모두 중단됐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통일, 한반도 평화운동에 뛰어든 청년들이 있다. (사)경실련통일협회 홍명근 간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이영재 간사,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이미현 간사,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조성아 간사가 생각하는 통일의 비전, 그리고 평화운동은 무엇일까? 그들도 진정 ‘통일은 대박’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안세영 경실련 회원홍보팀 간사(이하안) : 소속 단체와 하고 있는 활동을 소개해달라.   ▲ 홍명근 (사)경실련통일협회 간사   홍명근 (사)경실련통일협회 간사(이하홍) : 경실련통일협회는 올해 창립 20주년이 됐다. 주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과 같은 대북정책 모니터링에 집중하고 있다. 25기째를 맞은 민족화해아카데미와 ‘콕스, 리더십체인지과정’ 등의 교육 사업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는 한일피스보트에서 평화법 개정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주제로 동영상을 만들고, 시민교육박람회를 통해 ‘인증샷’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 조성아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간사   조성아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간사(이하 조) :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이하 흥민통)는 흥사단 산하 단체로 민족통일촉진과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1997년에 창립됐다. 흥민통에서는 보다 많은 시민들이 통일한국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도록 ‘대학생 통일아카데미’, ‘청년위원회 들꽃’, ‘4050통일만사’등 회원모임을 운영 중이다. 지난 3년간 회원 1004명을 모으자는 목표로 ‘통일천사 운동’을 했는데 2008년 60명에서 시작해 2013년 12월 920여명으로 종료했다. 이밖에도 올해로 5기를 맞는 대학생 통일 아카데미의 집중강좌 ‘리더스쿨’과 그 안...

발행일 201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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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이야기] "사회적경제, 시장의 새 판을 짜다"

▲ 지난 12월 15일 경기도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사회적기업 우수기관 시상식   박은호 사회적경제활성화경기네트워크 사무국장   최근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사회적경제’의 올바른 방향과 지속가능한 방안을 깊이있게 고민해보고자 마련한 ‘사회적경제 이야기’ 연재를 이번호를 끝으로 마무리짓는다. 지난 132월호부터 5회에 걸쳐 정부주도의 사회적기업 지원정책의 한계와 개선방향, 전남, 충북, 인천, 경기지역 사회적기업활성화네트워크 활동내용과 각 지역의 좋은 사회적기업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번 연재가 사회적기업의 지속가능한 생태계 조성과 질적인 성장을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며, 사회적기업에 대한 건전한 인식이 사회전반에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시행되고, 2012년 12월에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어 1년 남짓 경과한 지금 경기도에는 145개의 인증사회적기업, 254개의 예비사회적기업, 164개의 마을기업, 419개의 일반협동조합과 37개의 사회적협동 조합이 존재하고 있다. 사회적경제조직의 본원적 존재이유는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고자 결성한 경제공동체가 경제사업으로 발생한 이윤(잉여)의 대부분을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경제공동체나 지역사회를 위해 사용하는데 있다. 사회적 경제조직을 통한 사회적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역시 사회적경제가 담당하고 기여하는 사회적 목적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는 사회적일자리 창출이라는 일면적 목적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실업문제가 극대화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시행한 공공근로 정책 및 사업이 단발적이고 지속가능하지 않음에 따라, 비영리조직이 일자리를 만 들고 정부가 최소한의 재원을 조달하는‘사회적일자리 제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경제, 대안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시행 이후, 사회적 경제 영역이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되고 확장되어왔지만, 여전히 정...

발행일 201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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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숭동칼럼] 창립 25주년을 맞는 경실련 혁신 방향

경실련이 처한 환경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지나며 우리사회는 민주적 기본가치들이 붕괴하고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횡행했던 국가기관의 공안몰이와 정치적 비판세력에 대한 배제가 노골화되고 있다. 특히 사실에 근거한 정론으로 사회 통합에 기여해야 할 주류언론은 권력의 영향력에 장악되거나 연합되어 건전한 담론과 여론 형성을 왜곡하고 있다. 통합보다는 갈등이, 혁신과 쇄신보다는 과거로의 회귀가 일반화되어 국가발전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사회적 측면에서도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사실상 실종되고 전통적인 경제기득권 세력인 재벌중심 체제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복지사회는 구호로만 그쳐 빈곤계층으로 전락한 개인은 경제시장으로의 재진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로써 경제주체들의 공정한 참여와 경쟁이 사라져 산업간 격차는 물론이고 비정규직 문제 심화, 가계부채 급증 등으로 개인간 격차도 더욱 심화되어 균형적 경제성장은 더욱 요원한 상황이다.   이러한 때 한국의 시민사회는 지난 시기 정치의제의 과잉, 운동가들의 정치참여 등으로 기존 정당과 같은 정치세력과 동일하게 인식됨으로써 시민적 기대와 신뢰를 얻지 못하며 우리 사회 문제의 해결주체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해결주체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조직의 지속성 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우울한 상태이다.   경실련은 다행히 시민단체 활동의 기본원칙인 공익(Public Interest), 정파적 중립(Nonpartisan)을 철저히 유지하여 시민단체로서 순수성과 독립성을 크게 의심받지 않고 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경실련이 어떤 위치를 갖느냐에 따라 시민 사회 지형이 변화하는 상황으로, 경실련의 행보는 시민사회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경실련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지고 있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초기 경실련의 신뢰와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행할 경실련 내부 역량은 참으로 허약하기 그지없는 상...

발행일 201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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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人] 도시경관(都市景觀): 볼 권리와 보여질 권리

 ▲ 그림엽서에 나타난 세계 유명도시의 이미지   바야흐로 도시경관의 시대이다. 2013년 8월에 전면개정된 경관법에 의하면 인구 10만 이상 의 도시는 의무적으로 경관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민들의 도시 경관에 대한 의식수준은 아직 후진국에 가깝다. 왜 도시경관을 가꾸어야 하는지, 무엇이 소 중한 경관자원인지, 그러한 경관자원을 어떻게 가꾸고 지켜나가야 할 것인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도시의 이미지         ▲ 런던의 주요 경관자원인 세인트폴 성당과 밀레니엄 브리지 전경     ▲ 런던시의 경관관리 방법(1) : 세인트폴 성당 돔이 보이도록 건물높이를 규제하는 시뮬레이션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국회의사당, 뉴욕의 자유여신상은 세계적인 대도시의 대표적 이미지다. 외국여행을 할 때 흔히 사오는 그림엽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그 도시의 대표선수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자기 도시에 대한 이미지와 그 도시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느끼는 이미지에는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매일 보아오던 일상적인 도시의 풍경은 너무 친근해서 오히려 도시이미지의 대표 선수가 되지 못한다.   미국의 도시건축가인 케빈린치는 보스톤, 로스엔젤리스, 저지시티 등 미국의 세 도시에 사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하고 인지도(認知圖)1)를 분석하여 도시 이미지의 5대 요소2)를 도출했다. 그 중에서 일반인들이 가장 알기 쉬운 요소가 이른바 표식(標式)이라고 번역되는 랜드마크(landmark)이다. 대체적으로 높이 우뚝 솟아있거나 크기가 매우 큰 요소, 형태나 양식이 독특한 요소, 재료나 색채가 이질적이어서 금방 눈에 띄는 요소를 말한다.   파리, 런던, 뉴욕과 같이 세계적인 도시와 비교할 때 서울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각인될만한 랜드마크가 별로 없다. 국보 1호인 남대문은 고층건물에 둘러싸여 있어 파리의 개선문에 비해 너무 초라하다. 남산타워는 서울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는 인기가 있을지 몰라도 서울 시민들에게는 왠...

발행일 201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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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_황지연 민주평통 자문위원/통일교육위원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                                                                         황지연 통일교육위원/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     통일을 왜 해야 하는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고 누가 이것을 모르느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 모든 문제는 원칙을 가지고 쉬운 문제부터 차근차근 간결하게 논의해야 실마리가 풀린다. 통일문제도 마찬가지다. 통일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도 한꺼번에 꺼내 놓고 뒤죽박죽 논의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수없이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 여러 곳에서 추진하고 있는 통일담론들, 통일교육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정파나 이념에 관계없이 간결한 논리로 접근해 가야 해결의 길에 다다를 수 있다. 여기에서는 우선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민족에게 통일이 왜 필요하고 꼭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대 명제 앞에서 다른 것들은 모두 방법론에 불과 하다. 방법은 찾으면 되는 것이다. 통일을 해야 하는 당위론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 모든 것을 생각해 볼 수는 없을 것이고 차츰 보완해 나아가고자 한다.   통일에 대한 논의가 너무 많아 요즈음 젊은이들은 통일이야기만 나오면 기피하고 피해간다는 말도 있다.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심지어 통일이 불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정말 통일이 필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세대를 위해서 이다. 이들이 가슴속으로 통일이 왜 필요한 거고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통일의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통일담론의 시작은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서 먼저 의견통합을 해야 한다.   우리는 왜 분단이 되었는가?   우리 한민족의 분단은 참으로 억울하다. 해방직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분단되어 버린 것이다. 오천년 단일민족 우리 한민족은 외세에 의해서 분열 되어 있다. 우리 한민족 역사를 살펴보면 고조...

발행일 20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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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햇볕 정책이 현명한 선택이다_Lu Chuang 베이징대 비교정치학 석사과정

햇볕 정책이 현명한 선택이다. I think that the Sunshine policy is a wiser choice.    Lu Chuang (베이징대 비교정치학 석사과정/서울대 국제대학원 교환학생)       중국과 대만과의 통일 문제 때문에,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의 통일에 대한 기대를 잘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포스트-80 세대(중국의 일자녀 정책과 개혁개방이 시작되던 80년대 이후에 태어나 오늘날 중국의 젊은층을 이루는 세대) 중국인로서 한국의 통일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먼저 이 문제는 대만문제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차이점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한반도 문제와 중국-대만 문제의 공통점은, 대만과 한국 문제 모두 냉전 기간 중 내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내전은 국제정치에 의해 영향을 받았는데, 한반도와 중국-대만 문제에 있어서 그 시작부터  미국의 영향력은 매우 깊었다. 한국전쟁 발발 이틀 후인 1950년 6월 27일, 미 제7함대가 대만 해협에 진주하였다. 이는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본토와 대만의 통일을 직접적으로 저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이는 향후 수십년 간 중국과 대만의 통일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었다. 한편, 한국전쟁 동안 미국은 남한을 보호하였고, 그 이후 현재까지도 미국은 남한의 주요 동맹국으로서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미국이 여전히 이 두 문제(대만과 한국)에 대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대만문제와 한반도 문제의 주요 차이점은 중국의 분단이 비대칭적인 것에 비해 한국의 분단은 처음부터 비교적 대칭적이다는 것이다. 1949년, 대만은 전체 중국의 2% 미만의 인구와 0.5%의 영토만을 가져갔다. 그러나 1950년, 북한은 전체 한국의 40%의 인구와 57%의 영토를 통제하였다. 이렇듯 국력이 엇비슷했기에 남북한의 경쟁은 더욱 심화되었다. 여전히 남한은 북한을 제 1 위협국으로 여기고 있다.   ...

발행일 201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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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북한은 왜 그럴까?_김효선 경실련통일협회 인턴

북한은 왜 그럴까?  - 극장국가 북한 이해하기 -   김효선 경실련통일협회 인턴 / 한양대 정책학과 4학년   북한이라는 나라는 정말 이상하다. 특히 피폐한 경제현실 속에서도 '위대한 조국’이니 ‘강성대국’같은 공허한 구호만 외치는 걸 보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아버지에서 아들로, 그리고 다시 손자로 권력이 승계되는, 희귀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어떻게 북한은 경제정책면에서 대단히 실패했음에도 독재에 대한 사회의 조직적인 저항을 받지 않았을까? 혹자는 삼엄한 주민통제, 정신세뇌 등을 통해 이를 달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완벽히 설명되지 않는다.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권익현교수와 정병호교수의 저작인 <극장국가 북한>은 바로 그 ‘다른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북한은 김일성의 강력하지만, 시간적인 한계를 지닌 카리스마 권력을 아들에게 승계한 유일무이한 일을 해내었는데, 이는 예술과 문화, 사상과 이론을 동원한 거대한 ‘승계 드라마’를 만드는 일에 국가의 총력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드라마’는 김일성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한다. 14살의 김일성은 아버지 김형직에게 권총 두 자루를 받는다. 그 의미는 식민치하의 조국을 구하기 위해선 무력이 필요하다는 것. 두 권총을 받고 김일성은 혁명가로서의 길을 내딛게 된다. 1930년대 김일성은 만주 항일 빨치산을 이끈다. 여러 혁혁한 무공을 쌓고, 일제의 수탈로 신음하고 인민들에게 구원의 빛이 된다. 특히 부모 잃은 고아들을 보듬어 안았고, 이들의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었다. 결국 그의 위대한 영도 덕분에 조선민족은 역사상 처음으로 강한 국가를 갖게 되었다. 조선민족은 그의 영도를 찬양하였고, 세계 여러 나라의 지도자 및 주요 인사들도 그의 탁월함에 감명한다.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 때 김일성은 몸소 참전하여 인민군대를 이끈다. 그때 열 살 된 김정일이 그의 막사...

발행일 2014.01.14.